쌍암리에 쌍암은 없다 | ||||||||||||||||||||||||||||||||||||||||||||||||||||||||||||||||||||||||
[연재] 박래철의 정읍땅이야기...용암과 귀암, 쌍바위를 수장시킨 내장호(內藏湖) | ||||||||||||||||||||||||||||||||||||||||||||||||||||||||||||||||||||||||
| ||||||||||||||||||||||||||||||||||||||||||||||||||||||||||||||||||||||||
| ||||||||||||||||||||||||||||||||||||||||||||||||||||||||||||||||||||||||
정읍시민들이 여름에 피서를 위해 가장 쉽게 찾는 곳은 역시 정읍천변이다. 내장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정읍시내를 관통하기에 정읍천이 흐르는 도심 한복판에는 야외 수영장까지 가능한 것이다. 정읍고등학교 앞에 위치한 ‘정읍 청소년 물놀이장’은 인공수영장이 아니고 자연하천을 그대로 활용하는 곳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는 곳이라고 여겨지며, 다른 도시들이 부러워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정읍천이 있기에 여름이면 도심에서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열섬 현상까지도 완화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사시 사철 아름다운 경관과 다양한 레져 활동의 공간을 제공해주는 정읍천이야말로 정읍시민들에게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자연생태를 더욱 살리는 방향으로 또 한번의 변신을 한다고 하니 자못 기대가 커진다.
정읍시민들의 정읍 지표공간 인식 1순위는 단연 내장산과 정읍천 정읍시민들이 정읍의 ‘지표공간에 대해 갖는 인식’(land mark)에 대해 조사를 한다면 내장산과 정읍천을 단연 1순위로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 만큼 정읍시민들의 일상과 정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읍천, 이곳에 물을 시시때때로 적절히 공급해주는 곳은 다름아닌 내장산과 그 물줄기를 모아주는 내장저수지이다. 정읍천과 동진강 하류의 수량에 영향을 미치는 내장저수지가 정읍시민들에게는 오랫동안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으로서, 삼보들에 공급하는 농업용수 공급처로서, 그리고 지역의 공업단지에 물을 공급하는 공업용수의 공급처로서의 역할을 해왔던 것이다. 또한 내장산의 초입에 해당하는 이곳은 병풍처럼 펼쳐진 내장산과 호수의 경관이 선경(仙境)을 이루어,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감동시키는 역할도 함으로써, 실로 다목적의 역할을 수행하는 저수지라 아니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전력생산의 기능까지를 포함했을 때 다목적댐이라 함)
사람이 마셨고 들판을 적시고 공장에 물을 대는 다목적 내장저수지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내장저수지가 수행했던 여러 가지 역할 중에 이제는 식수와 생활용수를 공급하는 상수원의 역할을 포기하였다. 내장저수지보다 규모가 훨씬 큰 옥정호에서 공급되는 물을 상수원으로 대체한 것이다. 공급지와 소비지가 공간적으로 멀어서 다소 비용이 더 들긴 하지만, 유역면적이 작은 내장저수지에 비해 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장저수지는 그 동안 맡았던 역할 한가지를 내려놓게 되었으니 그 어깨가 한결 가벼워 진 셈이다. 이제 내장저수지는 정읍 서부지역의 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주 기능을 담당하면서, 정읍천의 홍수를 조절하고 천변의 경관을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 비록 상수원의 기능을 옥정호에 내주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다목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1964년에 완공돼 43년 동안 묵묵히 역할을 해왔고 이제 내장저수지 제방 위에 서있는 기념비를 통해 내장저수지에 얽힌 역사의 단면을 들여다보자. 기념비에 의하면 내장저수지(내장호)는 1964년에 완공되었다고 하니, 지금까지 반세기에 가까운 43년 동안 저수지의 역할을 묵묵히 해온 것이다.
[내장호수 축조 기념비] 내장호수는 1955년 12월 27일에 착공하여 9년에 걸친 공사 끝에 1964년에 완공되었다. 이 호수는 노령의 줄기인 내장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담아 주로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쓰이고 있으며 국립공원인 내장산의 풍치를 더욱 돋구어 줄 뿐 아니라 시내 중심을 흐르는 정읍천의 근원이기에 모든 시민의 사랑과 아낌을 받고 있다. 이제 이 호수를 만드는데 많이 애쓰신 분들의 공을 기리고자 늦게나마 이 비를 세운다. * 사업개요 제당 연장 433m, 제당 높이 17. 3m, 제정 폭 5m, 유역면적 2,300ha, 만수면적 79.1ha, 총 저수량 4914천 ㎥, 수혜 면적 678ha, -이하 생략 (1999년 10월 정읍농지개량조합 / 정읍시)
내장저수지 만들면서 발생한 수몰 이주민들은 답곡 마을로 일반적으로 댐이나 저수지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조성되는 토목공사이지만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저수면적 안에 살던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른바 수몰민이 이곳 내장저수지에서도 발생한 것이다. 저수지 주변에 위치한 답곡(논실)마을을 답사하던 중 이장님으로부터 이런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의 내장면 쌍암리 용암과 귀암마을이 물속으로 사라졌고 당시 내장면 쌍암리에 해당하는 지역의 상당부분이 저수지로 편입되면서 수몰이 되었는데, 그 중 용암(龍岩)과 귀암(歸岩)마을이 물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곳에 살던 주민들 중에는 외지로 떠나 버린 사람들도 있었고, 반 수 이상은 답곡마을의 초입에 해당하는 곳(토종가든 부근)에 새로이 집을 짓고 정착을 하였다고 한다. 현재 10여 가구가 살고 있는데 행정구역상 답곡마을에 포함된다고 한다. 참고로 답곡(논실)마을은 골이 깊은 곳에 다락논이 많아서 논실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추측되며, 신라시대부터 부곡(部曲)이라는 행정구역 명칭이 붙어있을 정도로 오래된 마을이다.
답곡, 골이 깊은 곳에 다락논이 많다하여 논실마을
수몰민들은 이런 답곡마을의 초입에 셋방살이하듯이 정착을 하였던 것이다. 보상비가 적어서인지 아니면 정든 고향을 떠나기가 어려워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발 독재시대를 고려한다면 보상비가 그리 충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답곡마을 앞쪽에 정착한 주민들은 당시 수몰의 대가로 주어진 정부 융자금으로 지금의 주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정읍군지(1936년)의 기록에 의하면 내장면 쌍암리에는 용암, 귀암, 월영, 송정, 죽림, 답곡 등 6개의 마을이 포함된다. 하지만 공교롭게 쌍암리(雙岩里)라는 지명의 근거가 되는, 용암과 귀암(구암)이라는 마을과 그 마을에 있었다고 하는 2개의 바위(용바위와 거북바위)가 수장되어 버린 것이다.
쌍암리의 유래가 된 두 바위골, 용암과 귀암이 사라졌다 바위를 잃어버린 지금의 쌍암동이라는 지명은 그래서 웬지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현재 내장산저수지를 끼고 도는 도로 옆에 위치한 몇몇의 가옥들은(호수장 가든 주변) 그 때 일부가 저수지 아래쪽에서 옮겨온 집일 것이다. 내장저수지의 조성은 쌍암리에 해당하는 나머지 4개의 마을까지도 뿔뿔이 흩어지게 만들었다. 저수지 아래쪽에는 월영마을이 위치하고, 내장산가는 오래된 길 안쪽으로는 답곡마을이 위치한다. 그리고 근래에 새로이 포장된 길(동학혁명 100주년 기념탑이 위치한 곳)쪽으로는 송정과 죽림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이산가족의 모습이라고 할까?
소수의 희생위에 다수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이라면 충분한 배려가 필요 이렇듯 물을 가두는 일은, 하류에서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여러모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로 인해 해당 지역의 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만 최악의 상황이 주어진다. 소수의 희생을 바탕으로 다수의 이익을 도모하는 일인 것이다. 댐 건설과 그에 따른 수몰은 그 지역의 경관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길의 방향도 바뀌고 기후와 생태까지도 변화를 일으킨다고 한다. 물을 가두는 일을 할 때는 물론 득과 실을 세심히 따지면서 진행하겠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가 늘어나면서 인공호수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수몰민이나 공사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들의 입장도 충분히 배려할 일이다. 지금은 개발독재의 시대가 아니니까.
| ||||||||||||||||||||||||||||||||||||||||||||||||||||||||||||||||||||||||
|
||||||||||||||||||||||||||||||||||||||||||||||||||||||||||||||||||||||||
입력 : 2007년 08월 01일 01:14:35 / 수정 : 2007년 11월 09일 |
'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문고 소리에 벗이 찾아오는 곳 (0) | 2007.12.11 |
---|---|
도심에서 여름을 즐긴다 (0) | 2007.12.11 |
썰렁한 칠보장, 반짝 특수 산외장 (0) | 2007.12.11 |
동족상잔의 현장, 행사용이 아닌 체험학습장으로 (0) | 2007.12.11 |
"도로가 두승산 정기 빼앗아 갔어요" (0) | 2007.12.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