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거문고 소리에 벗이 찾아오는 곳

뿌리기픈 2007. 12. 11. 15:57
거문고 소리에 벗이 찾아오는 곳
[사진으로 보는 지명 이야기] 정읍시 금붕동(琴朋洞)을 찾아서

 

박래철 ppuri1@eduhope.net

 

 

 

   
▲ 지형도에 나타나는 금붕동. 정읍시내의 동남쪽에 위치한다.


 

 

 

 

지명의 유래를 추적해보는 일은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인간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명은 일종의 조상들이 남긴 화석(fossil)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정읍시내의 동남쪽에 위치한 금붕동의 마을 이름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본다. 편의상 소지명은 생략하고 여기서는 금붕동을 이루는 ‘금북’과 '붕래'라는 두 마을 이름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여기에 관련된 자료는 1996년에 출판된 <내고장 역사의 숨결을 찾아서>중 정주고등학교 김재영 선생님이 쓰신 제3부 ‘전래지명연구’ 편을 주로 참고한다. 이미 학술적으로 연구된 결과지만, 지명의 근거를 다시 한번 사진으로 확인하는 일도 <정읍통문>의 독자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꺼리’라고 여겨져 여기에 소개한다.

 

칠보산 산자락의 금붕동은 금북, 붕래, 행정, 대석마을로 이루어져...

 

 

 
▲ 마을 윗쪽에서 내려다본 모습...칠보산 자락에 위치한 마을 윗쪽에서 내려다본 모습인데 앞쪽에 거문고 산이 자리잡고 있어 마을을 감싸주고 있다. 풍수지리적으로 말하면 책상에 해당하는 안산이 편안함을 더해주고 있다.
호남정맥에 해당하는 고당산(630m)의 한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이룬 칠보산(472m)의 산자락에는 몇 개의 마을이 위치한다. 행정구역상 금붕동(琴朋洞)에 해당하는 금북(琴北, 검듸), 붕래(朋來, 버줄), 행정(杏亭), 대석(大石)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금붕동이란 바로 금북과 붕래의 앞자를 따서 금붕동이라 한 것이다.


그 외에 행정마을에 포함되는 작은 마을로서 아래 뜸인 부금(負琴)과 신1번국도 나들목에 위치하는 쌍점(雙占, 두주막거리)마을이 있다. 금붕동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전에는 정읍군 동면에 포함되었다가, 이후에 정읍군 내장면, 지금은 내장상동 관할에 포함된 지역이다.

 

 

 
▲ 붕래마을(버줄)의 모습. 마을 뒷편에 사람 인 자가 보이는 산세. 배산임수형으로 마을 입구에는 선사시대 유적인 고인돌이 다수 산재하고 있다.


배산임수 양택에다 옥녀탄금형 

내장산에서 시작된 정읍천이 서북방향으로 흐르면서 평야를 만들어놓았고, 칠보산자락은 같은 방향으로 이어지는데 그 산과 평야가 만나는 곳에 마을이 들어서있다. 이른바 배산임수형(背山臨水)의 입지로 양택(陽宅)으로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지질학적으로는 주변 산자락에 이른바 ‘삼각말단면’ (三角末端面, triangular facet)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서 단층선의 흔적을 찾을 있다. 적어도 이 부근(금붕동, 부전동)의 정읍천은 단층작용으로 형성된 지형을 따라 형성된 하천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금북(琴北, 검듸)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먼저 소개한다. 여기에는 대략 3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번째,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을 옥녀탄금(玉女彈琴)형 이라고 하는데, 이는 칠보산 서쪽 기슭의 옥녀봉(247m)과 마을 앞쪽의 낮고 길다란 거문고산(124m)을 연결하여 이루어진 형국이다.

 

 

 
▲ 금북(검듸)마을의 유래가 되는 옥녀탄금형의 산 형국. 칠보산 왼편의 옥녀봉과 그 앞쪽의 낮은 거문고 모양의 산.
 옥녀의 거문고? 혹은 신을 모시는 큰 고개?...검듸 


실제로 정읍천 건너편 마을인 송산동에서 바라보면 다소곳이 앉은 옥녀가 거문고를 치마폭에 놓고 연주하는 모습이 연상되기도 한다. 마을의 위치는 이러한 거문고의 뒤편에 해당하므로 ‘검듸’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금북’이라는 지명도 거문고산의 북쪽(뒤쪽의 의미)에 해당하므로 붙인 이름일 것이다.

두번째, ‘듸’는 본래 마을(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금듸’가 ‘검듸’로 변하였을 것으로도 추정한다. 세번째, ‘검듸’는 큰고개 또는 신을 모시는 고개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을에서 칠보산 자락을 넘어가는 귀양실재, 길마재, 피오재 등이 있는데, 이들 고개 정상에 서낭당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고 그런 신성함의 의미로 ‘검듸’라 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다.

붕래는 버즐마을, 버들 유씨가 터를 잡아서? 아니면 벗이 와야 번창한다?

이제 붕래(붕래, 버줄)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를 알아본다. 여기에는 대략 2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 이 마을은 본래 고흥 유씨가 터를 잡았다 하여 ‘버줄’이라고 한다. 즉 버들 유(柳) 씨의 ‘버들’이 ‘버줄’로 전음된 것이라고 한다. 두번째, 마을을 감싸는 주변 산의 지형에 사람 ‘인’(人)자가 있어, 예로부터 벗이 찾아와야 마을이 번창할 수 있다는 풍수지리적 믿음을 가졌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벗올’(朋來)이라 하였고 이것이 전음되어 ‘버줄’이 되었다고 한다. 참 재미있는 해석인데 두 가지가 다 근거가 있어 보인다.

현재 이 마을의 주요 성씨는 정읍에서 오래된 본관 중의 하나인 고흥 유씨이다. 그리고 주변 지형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정읍천을 따라 나타나는 ‘삼각말단면’을 멀리서 보면 사람 인(人) 자의 형상이기 때문에 두번째 주장도 근거가 있어 보인다.

 

내장산 오가다 금붕동 주변 산세 보시고 음미하시길... 

지금까지 정읍시민들이 내장산을 즐겨 찾으면서 반드시 지나는 이 곳, 금붕동의 주요 마을 두 곳의 마을지명을 주마간산 격으로 살펴보았다. 글을 읽은 독자들도 앞으로는 이곳을 지나면서 한번쯤 주변 산세를 살펴보며 그 의미를 새겨볼 것을 기대해 본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그저 종착지만이 목적은 아닐 것이다. 오다가다 덤으로 보는 풍경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이 더 큰 기쁨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검듸마을 입구의 이정표. 요즘 이곳은 시내와의 접근성과 전원적인 분위기로 인해 실버타운과 웰빙타운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입력 : 2007년 08월 10일 13:53:21

'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성폭포  (0) 2007.12.11
면지의 눈높이를 올렸다  (0) 2007.12.11
도심에서 여름을 즐긴다  (0) 2007.12.11
쌍암리에 쌍암은 없다  (0) 2007.12.11
썰렁한 칠보장, 반짝 특수 산외장  (0) 2007.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