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도로가 두승산 정기 빼앗아 갔어요"

뿌리기픈 2007. 12. 11. 15:36
"도로가 두승산 정기 빼앗아 갔어요"
29번도로 정읍구간 확장공사로 정서적 절망감에 휩싸인 고부 만수리와 입석리

 

박래철 ppuri1@eduhope.net

 

 

 

 

 
▲ 고부면 입석리 부근. 두승산의 남사면 산자락을 잘라놓은 공사현장.
현대문명의 대표적인 상징은 바로 자동차이다. 시공을 극복하고 생활권을 확대하는데 지대한 역할을 주도한 자동차야말로 현대문명의 총아일 것이다. 그런데 그 자동차에 붙어있는 바퀴야말로 한편으로는 지구를 파괴하는 주범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에 있어 바퀴는 인간을 무척이나 편리하게 만든 획기적인 발명품이지만 그에 따르는 직선상의 확대된 도로건설의 필요성은 현대인들이 감수해야할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편리함을 제공받는만큼 다른 한편에선 분명히 그 대가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진리를 다시한번 확인하게 된다.

 

직선으로, 더 넓게...자동차의 욕망은 도로의 성형 

 우리나라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 경제발전을 위한 필수요소로서 전국 곳곳에 도로를 만들었다. 일제강점기에 이미 조성된 신작로에 아스팔트나 시멘트를 입혀 포장도로를 만들거나 기존의 2차선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작업 등을 수행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에 경제규모가 확대되고 국민들의 여가활동이 증가하면서 자동차와 도로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에 따라 이제 신작로는 골목길 수준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며, 2차선도 비좁아 4차선으로 확장하고, 다시 4차선은 8차선으로 확대하는 추세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전국토가 도로망이 거미줄처럼 얼키고 설켜서 지도상에 도로를 표시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도로 밀도가 높아질 것이다. '빨리빨리'를 추구하는 국민성에 걸맞는 모습이라고 해야할까? 마치 조금씩 더디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모두들 미쳐있다는 느낌을 받는 상황이다.

정읍도 크고 작은 도로공사에 연일 중장비 굉음

 요즘 정읍도 예외는 아니다. 주변에서 크고작은 도로공사에 중장비가 동원되고 있고 도로공사를 위한 그 굉음에 산천수목과 동식물이 모두들 떨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최근 공사 진행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익산국토관리청에 들어가 보았다. '정읍'이라는 이름을 검색을 하였더니 몇건의 국도 공사진행상황이 나타난다. 정읍-원덕 공구 (정읍시 교암동~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정읍시 국도대체우회도로(삼산동~ 금붕도), 정읍-신태인 도로건설공사 등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더 자세한 사항을 알아보기위해 익산국토관리청 도로계획과로 직접 전화를 해보기도 하였다.

 

정읍~신태인간 29번 국도 확장공사, 1단계 구간은 주천삼거리~영원 후지리 

정읍-신태인 간 국도(29번 국도 구간)확장공사와 관련하여 연차적으로 공사가 진행될 예정인데, 1단계 사업으로 2010년까지  정읍시 용계동 이른바 주천삼거리에서부터 시작하여 고부면을 지나 영원면 후지리까지 완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2차선 국도를 4차선으로 확장하는 사업인데, 기존2차선 도로와 연계하여 확장하는 구간도 있는가하면 마을을  우회하는 신설도로가 만들어지는 구간도 있다고 한다. 

정부기관에서 늘상 말하길 도로건설과정에서 인근마을 주민들의 여론을 최대한 반영한다고 하지만, 도로공사에 있어서  한가지 공식이 보인다. 그것은 바로 "보상비는 최소로, 공사비는 최대로" 라는 것이다.

도로공사의 공식, 보상비는 최소, 공사비는 최대...마을 우회노선 채택 

도로건설과정에서 이해관계에 얽히는 주민들이 최대한의 보상비를 받아내기 위해 투쟁을 벌이기 때문에 도로건설을 담당한 당국은 보상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가급적 마을을 우회하여 노선을 설정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공사는 보상비 단가가 높은 평지대신 산지쪽을 선택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공사비는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주민들에게 더 주어져야 할 보상비 대신 도로건설비가 건설업자들에게 더  주어지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에게 돌아갈 보상비는 적어지고 업자들에게 갈 공사비는 높아지고

 

 

 

 

 
▲ 두승산의 남사면. 입석리와 만수리가 연결되는 부분. 왼쪽마을이 입석리, 오른쪽으로는 만수동을 통과하여 정읍시내로 이어진다.
 이제 그러면 도로건설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 보자. 정읍 장례식장을 막 지나 도로가 휘어지는 부분에 고부면 만수리 마을이 위치한다. 그곳에 요즘 도로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두승산을 뒤쪽으로 하고 산록완사면의 중턱에 자리한 유서깊은 남향의 만수리, 도로를 경계로 산쪽으로 상만, 아래쪽으로 하만마을이 나뉜다. 한때는 소성면에 포함되었지만 나중에 고부면에 편입되었던 곳이다.


상만마을의 윗쪽에는 두승산 선인봉아래에 관음사라는 조그만 사찰이 위치하는데, 그 바로 아래에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인돌군이 있다.  과거 60여개 정도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흩어지고 파괴되어서, 현재는 고인돌로 추정되는 바위가 불과 10 여 개 이하로만 확인될 뿐이다.

 

 

 

 

 

 

▲ 4차선 국도확장공사로 인해 옮겨져야 할 운명의 만수리 고인돌군


정읍~신태인간 도로 공사 노선에 위치한 만수동 고인돌군, 어찌되나...

그런데 문제는 정읍-신태인간 국도확장공사의 노선이 바로 이곳 고인돌군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적당한 위치로 옮겨지면 좋겠지만, 아직까지 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고인돌이기에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이할지 크게 걱정되는 대목이다.

주천삼거리에서 시작되는 국도 4차선 확장공사의 1단계사업이 고부면을 지나 영원면 후지리까지 이어지는데, 노선이 확정되기까지 가장 반발이 심했던 곳은 아무래도 만수리와 입석리였던 것 같다.

 

도로공사로 두승산 산자락 절단, 주민들에겐 정서적 절망감 

지도상에서 지름길을 선택하고 경작지가 펼쳐진 평야부의 보상비를 절감하는 차원에서 결국 산자락쪽에 노선을 확정하게 된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마을사람들이 경외시하는 두승산의 산자락을 절단하는 형국이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해석해보면, 이제 기존 도로와 관계없이 마을의 윗쪽인 산자락 쪽에 도로가 만들어지게 되면 더 이상 두승산의 정기를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마을 윗쪽을 통과하도록 설정된 이번 국도확장공사는 오랫동안 두승산의 지기를 받아왔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대다수 마을주민들에게 정서적으로 커다란 절망을 주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공사로 인해 얼마간의 보상비를 챙기게 되는 일부 주민들과는 또 다른 심정인 것이다.

 

 

 

 

 
▲ 과거 고려시대 영주관찰사와 안동도호부의 치소역할을 했다고 하는 고부면 입석리 안터. 두승산성 아래쪽에 해당하며 언양김씨 제각이 위치한다.


고부 입석마을 주민들, "두승산 지기 끊기니 노선 옮겨달라" 요구했지만... 

정읍의 삼신산중의 하나인 두승산, 풍수지리적으로는 평지돌출이라 하여 큰 인물이 나타난다는 신령스런 산 아래 남서향으로 위치한 입석마을. 그 마을 동편에 서있는 입석이 지금도 말없이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현재 고부와 정읍을 연결하는 29번 국도가 산록완사면의 중턱을 지나가는데, 앞으로 4차선 신설국도가 산자락을 끊으면서 마을 위쪽을 지나가게 된다.

그래서 두승산의 지기가 끊기는 것을 우려하는 마을주민들이 40 여일간 익산국토관리청을 찾아가서 노선 조정을 요구하였지만 그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나마 산자락을 통과하면서 절개공사 대신 터널방식으로 통과하는 것으로 서로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이게 바로 도로건설과정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 즉 종착지점에 위치한 도시민들의 이익을 위하여,  통과지점에 위치한  마을주민들의 의견이 쉽게 무시되는 현상이다.

 

종착 지점의 도시민 위해 통과 지점의 마을 주민들 의견이 쉽게 묵살된다

일제강점기 국토의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우리 민족의 정기를 끊어놓으려고 시도했다는 일제를 비난하면서 정작 우리는 그보다 훨씬 커다란 규모로 국토를 망가뜨리고 있다. 이대목에서 누가 누구를 탓하랴.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면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쾌속 질주를 원하는 자동차가 있는 한 직선도로는 더욱 늘어날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 국토는 더욱 망가져야 할 것이다.

경제논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자동차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시공을 초월하는 대가를 톡톡히 지불해야만 하는 것이다.

 

입력 : 2007년 07월 07일 00:50:48 / 수정 : 2007년 08월 0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