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족상잔의 현장, 행사용이 아닌 체험학습장으로 | ||||||||||||||||||||||||||||||||||||||||||||||||||||||||||||
고부 입석리 6. 25 피학살지와 장명동 충무공원 내 묘비와 집단 매장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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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한국전쟁(6.25사변) 발발 57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전쟁은 엄밀히 말하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휴전선이라는 이름이 남아있고, 남북이산가족과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의 정서적인 앙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정읍지역도 예외없이 전쟁의 생채기가 남아있는 곳인데,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을 위해서 몇군데 전쟁관련 유적과 묘비를 찾아가본다.
고부 입석리 두숭산 폐광의 '6.25피학살묘'
첫번째 찾아간 곳은 고부면 입석리 두승산 자락에 위치한 해주오씨 제각 뒷편의 '6.25피학살묘'로 불리는 유적이다. 이곳은 지금도 인적이 드문 곳으로 폐광산으로 인한 동굴이 있는 곳이다. 한국전쟁 당시 9.28서울수복으로 인해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정읍경찰서 유치장에 가두었던 우익 인사 500여 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350명 정도는 유치장에 불을 질러 소사(燒死)케하고, 150명 정도는 이곳 폐갱에 끌고와서 집단총살시키고 그 시체를 안에다 매장했다고 전해진다. 유골발굴작업은 당시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했던 분들 중 한분이 각계에 호소하여, 1994년에 유골인양위원회가 구성되고 정읍시의 지원을 받아 6개월 만에 작업을 완료할 수 있었다.
정읍유치장의 우익 인사 500명중 350명은 불태우고 나머지는 폐광으로 6. 25 피학살지에 가기위해서는 입석리 해주오씨 제각을 지나는데, 운좋게도 마침 근처 밭에서 일하던 당시 유골발굴작업에 기술책임자로 참여하였던 오승용씨(신정동거주, 47세)를 만날 수 있었다. 오씨로부터 피학살지에 얽힌 또 다른 이야기와 유골발굴작업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듣게 되었다. 당시 입석리 피학살지에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던 사람은 4사람 정도라고 하며, 그분들의 증언에 의하면 정읍경찰서에서 트럭 2대에 실려온 우익인사들을 이곳에서 집단총살하였다고 한다. 또한 정읍경찰서 유치장 방화과정에서도 살아난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에서도 나오는 끔찍한 장면이 우리 정읍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폐광 학살지에서 4명만이 극적 탈출, 수직 터널 구조로 인양작업도 어려웠고 그리고 유골인양과정은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하였다. 폐금광의 터널이 거의 수직구조여서 물과 흙으로 덮혀있었던 유골을 인양하는 작업은 아주 험난한 과정이었다고 하며, 그 과정을 비디오로 촬영하여 본인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유골은 합동묘지를 조성하여 안장하였지만, 앞으로도 해야할 일이 더 있다고 주장한다. 예산이 뒷받침된다면 유물전신관이 있으면 좋겠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보다 현장감을 가질 수 있도록 폐광앞에 설치된 철책을 제거하고 터널의 입구부분을 드나들 수 있는 시설을 갖추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아래는 피학살지 앞에 세워진 안내문입니다.
[6. 25 피학살 묘소 조성경위]
한국전쟁 희생자들의 위패와 기념비가 있는 장명동 충무공원
두번째로 찾아간 곳은 정읍시민들이 즐겨찾는 장명동 충무공원, 이곳에도 한국전쟁 관련 묘소와 묘비 그리고 기념비가 위치한다. 성황산을 오르는 계단의 좌측에는, 3.1운동 당시 만세운동을 이끌었던 33인 중의 한 분인 박준승선생의 묘 옆에 또 하나의 특별한 묘가 있다. 위에서 언급한 6. 25사변 당시 정읍경찰서 유치장 방화사건으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던 유골을 합동으로 매장한 이른바 '반공순국인사 42주지(柱之) 묘'가 바로 그것이다.
다시 가파른 계단을 올라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인 충혼탑(거룩한 얼)을 찾아가 본다. 어렸을 적 전쟁놀이를 하며 놀던 곳었는데 그땐 이곳이 그렇게 역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곳인 줄 몰랐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곳은 한국전쟁에 참여하여 희생된 정읍출신 군경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곳이다. 아래에 충혼탑의 안내문을 소개한다.
[충혼탑(거룩한 얼)]
2004년 발견된 또 하나의 집단 매장지는 좌익 인사들의 무덤
다음은 충혼탑 위쪽의 팔각정서 산의 정상쪽으로 100 여 미터를 더 오르면, 2004년에 발굴된 또 하나의 집단 매장지임을 알리는 조그만 비석을 볼 수 있다. 듣기로는 한국전쟁 당시 좌익인사들의 집단 매장지라고 하는데, 이들 유골이 왜 이곳에 묻혀있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생략되어 있다. 이들 유골에도 많은 사연이 묻혀있었을텐데...... 아래에 기념비 뒷면의 글을 소개한다.
[집단 매장 유골 발굴 지점]
동족상잔의 흔적, 역사체험 장소로 활용하자 해방이후 좌우익간 이념갈등이 극단으로 치달아 발생한 반세기 전의 한국전쟁, 그 동족상잔의 흔적이 정읍에도 곳곳에 남아있다. 이제 남과북이 지난 날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을 지향하고 있는 시점에서, 이들 유적들이 자라나는 2세들에게 의미있는 역사체험의 장소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일방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주는 이데올로기 교육이 아니라, 전쟁을 극복하고 이 땅의 평화를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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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7월 08일 17:48:10 / 수정 : 2007년 07월 09일 07: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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