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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썰렁한 칠보장, 반짝 특수 산외장

썰렁한 칠보장, 반짝 특수 산외장
[풍경스케치] 14일 칠보장날 풍경...이웃이지만 명암이 교차되고 있는 칠보장과 산외장

 

박래철 ppuri1@eduhope.net

 

 

 

 

 
▲ 4일과 9일날 선다는 칠보장날의 썰렁한 장터모습
지리한 장마 중에 찾아온 태풍 '마니' 덕분에 하늘은 가을처럼 청명하고, 햇살은 여전히 따가운 7월 중순의 토요일.  풍경사진을 찍기에는 딱 좋은 날씨이기에 무작정 도회지를 벗어나 농촌지역을 향하였다. 정읍의 북동부 지역인  '옹칠내외' 를 배회(?)하다가 그전부터 다시 가고 싶었던 칠보장터를 들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라는 말처럼 오늘이 바로 7월 14일, 그러니까 4일과 9일마다 장이 선다는 칠보의 장날(5일 정기시장)인 것이다. 칠보면 소재지에도 정읍처럼 저자거리를 나타내는 '시기'(市基)마을이라는 지명이 있지만, 현재의 시장은 칠보초등학교 앞쪽의 신흥마을에 위치한다.

장터로서 생명이 끝난 칠보장 

 

 

 

 
▲ 점포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건물
그러고 보니 약 20 여년 전, 이곳에 들러서 장터국수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때만해도 이곳은 사람과 물건이 모여드는 시장답게 흥청거림과 인간미가 넘쳐나던 곳이었다. 이제 세월이 한참 흘러 다시 찾으니 너무나도 한산하고 썰렁한 풍경이다. 장날임에도 불구하고 장터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질 않는다.


상설로 유지되는 가게가 2곳(국밥집과 그릇집), 그리고 오늘 장날이라 하여 길가에 물건을 차린 노점 2곳이 전부이다. 이런 정도면 시장이라고 할 수도 없고, 장날이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그나마 장날이라 하여 찾아온 노점상 덕분에 시장의 명맥을 유지한다 하겠지만, 이미 장터로서의 생명은 끝장난 지 오래인 것 같다.

점포 즐비했던 시장 안쪽은 마을 공용주차장으로 활용

 

 

 

 
▲ 지금은 공터지만 예전엔 점포가 즐비했다고 한다.
시장 안쪽에는 넓은 공터가 있어서 동네 할머니들에게 그 사연을 여쭈었다. 이곳에는 시장의 점포 건물이 즐비하였는데, 이제는 모두 철거되고 지금은 마을 공용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장터주변에는 오래된 건물 몇 채가 남아있어 그 시절을 회상케하는 정도이다. 시장터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입구에서 다양한 종류의 농산물을 길가에 펼쳐놓고서 한가로이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고 있는 아주머니와 대화를 시도해보았다.

 

아직도 오일장의 관성이 남아있다면 장날이라도 북적여야 하건만...

장날에 맞추어 이동하며 장사를 하신다는 이 아주머니가 사는 곳은 옹동면이며, 트럭을 손수 운전하며 장터를 찾아다닌다고 한다.  정읍시 관내에서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재래시장을 5일간격으로 순회하며 찾아다니는 것이다. 재래시장이라고 해도 이미 상설시장으로 변하였지만, 아직도  장날이면 노점상과 손님이 평소보다 더 북적거리기에 이런 관습이 유지되는 것 같다. 이 아주머니의 경우에도 정기 시장의 효과를 믿으며, 1일에는 산외장, 2일에는 정읍장, 3일에는 신태인장, 4일에는 칠보장, 5일에는 태인장을 찾아다닌다고 한다.

과거에 장돌뱅이들이 도보로 이동하던 시절의 이동 패턴은 아니겠지만, 자동차가 있어 가능한 일인 것 같다. 그 옛날 부보상들이 숙식을 해결하며 옮겨다니던 시절에는 분명 지리적으로 가장 인접한 장터를 연결하며 찾아다녔을 것이다.

 

 

 

 

 

 
▲ 과거 점포가 있었던 자리에 슬레이트 차양건물만 서있고, 그 아래에서 한가로이 부침개를 만들어 드시는 동네 할머니들.


가장 어려운 곳은 칠보장, 소고기 특수에 편승한 산외장

날이 갈수록 쇠퇴해가는 재래시장의 추세에 따라, 장사가 그전보다 잘 안된다고 아주머니는 푸념하신다. 특히 이곳 칠보장의 상황이 가장 어려운데, 그래도 장날에 맞추다보니 어쩔수 없이 찾아오게 된다고 한다. 반면 이곳에서 가까운 산외장은 요즘 한우고기 덕분에 장날에 장사가 잘 된다고 한다.

재래시장 간에 나타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겠지만, 폐장 직전의 칠보장과는 대조적으로 산외장은 요즘 '뜨고있는 장'인 것이다. 결국 시장이란 사람이 찾아와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음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고기만 가져오세요" 라는 문구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고있는 산외면의 한우고기 판매 시스템의 첫 출발지점(원조?)이 사실은 칠보로 알려져 있는데, 칠보장의 쇠락을 생각하면 무척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꺼져가는 등불을 다시 살릴 수도 있었던 절호의 기회를 넘겨주었으니...

봇짐 지고 등짐 지던 장돌뱅이의 모습은 이젠 역사속으로 

이제 봇짐 지고 등짐 지던 장돌뱅이의 모습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자동차라는 교통수단이 노점상들에게도 편리함을 가져다 주었다. 하지만 그게 결국은 부메랑이 될 줄이야. 교통수단의 발달은 결국 시골장터를 포함한 재래시장의 몰락을 가져온 결정적인 요인이기도 하다. 자가용 승용차가 널리 보급되면서부터 농촌에 사는 소비자들도 이제는 더 이상 가까운 시골장터를 찾지 않게 되었다. 도회지에 가면 물건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크고 가격 또한 저렴하기 때문이다.

  이제껏 우리네 시골장터는 시장 원리에 따라 쇠퇴의 길을 줄곧 걸어왔다. 앞으로도 산외장처럼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대부분의 재래시장은 쇠락의 길을 갈 것이다. 정읍시 관내의 크고 작은 5개 재래시장(정읍장, 신태인장, 태인장, 산외장, 칠보장)의 운명도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체로 그러할 것이다. 이제 한때의 흥청거림을 사람들 가슴속에 추억으로 남기며,  이곳 칠보장터가 역사속으로 사라지듯이.....

 

 

 

 
▲ 칠보장터 부근에 있는 오래된 건물. 1층에는 예식장, 2층에는 사진관이라는 표시가 남아있다.


 

입력 : 2007년 07월 18일 01:49:17 / 수정 : 2007년 07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