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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두 강물이 결합했다 흩어지는 곳

두 강물이 결합했다 흩어지는 곳
태인면 낙양리 낙양취입수문의 의미

 

박래철 ppuri1@eduhope.net

 

 

 

 

 
▲ 일제때 만들어진 수문을 대신하여 새로 만든 수문시설
이쪽에서 김제간선이 시작된다.


최근 전북도민의 최대 숙원사업이라고 하는 새만금 간척사업의 물막이 공사가 완료됨으로써 방조제가 완성되었다.  '새만금'이란 말은 만경강이 적셔주는 만경평야와  동진강이 적셔주는 김제평야만한 평야가 새롭게 조성된다는 뜻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다.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하여 호남평야가 이루어지니 바꾸어 말하면 '새호남평야'라고도 할 수 있겠다.

 

자유롭게 굽어 흐르는 강을 직선으로 펴는 일제의 직강공사 의도는 "농토 확보"

이런 호남평야를 적셔주는 만경강과 동진강도 원래는 자유곡류하였기에 하천주변에 습지가 많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들어 직강공사를 하면서 농경지가 확대되었다 .더구나 강이 바다를 만나는 하류에서는 대규모 간척사업도 이루어짐으로써 많은 농경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유역변경식 발전은 섬진강 수계를 동진강 수계와 연결시키는 방식 

그러나 문제는 물을 공급받아야 할 평야의 논 면적(수혜면적)에 비해 강의 상류에서 공급되는 물의 양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다. 그야말로 농업용수 확보가 최대의 현안이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생각해낸 것이 섬진강 수계의 물을 동진강수계로 연계하는 방안이었다. 이른바 유역변경식의 방식으로 운암저수지(지금의 옥정호)의 물을 두군데에서 취수하여 터널로 보내고 노령산맥의 낙차를 이용하여 전기발전(운암발전소와 칠보발전소)도 하지만 주 목적은 역시 농업용수의 안정적 공급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1927년 태인면 낙양리에 동진강 본류를 막아 도수로에 물을 공급해주는 낙양취입수문이 완공되었고, 1928년 운암저수지가 완공되어 그때부터 터널수로를 이용 섬진강의 물을 동진강 수계로 계속해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섬진강물과 동진강물이 합해져 흐르다 김제와 정읍으로 물을 나눠주는 곳

 

 

 

 
▲ 낙양취입수문을 중심으로 위쪽과 아래쪽에 자연적인 섬이 형성되어 있다. 강의 중앙부에 있다하여 하중도라고 하는데 강물이 두갈래로 나뉘면서 여의도처럼 섬이 된 것이다. 사진에서 농사가 이루어지는 왼쪽부분은 지도상에서 섬으로 확인할 수있다.


산외면 목욕리 촛대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시작되는 동진강이 팽나무정에서 쏟아지는 물을 보태고 칠보발전소에서 떨어지는 물을 더 합하여 큰 물줄기를 형성하여 흐르다가 태인면 낙양리(호남고속도로 태인 나들목 근처)에 이른다. 여기서 동진강은 낙양취입수문을 만나 잠시 속도를 늦추면서 두개의  큰 도수로로 갈라진다. 이른바 정읍용수간선(최장 22킬로미터의 길이에 초당 최대 5톤의 물이 공급됨)과 김제간선(최장 59킬로미터의 길이에 초당 최대 30톤의 물이 공급됨)으로 나누어진다.

면적이 넓은 김제평야를 적셔주는 김제간선쪽이 규모는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는데 멀리는 광활간척지와 만경강 근처까지 공급된다. 이러한 인공 도수로는 간선에 따르는 지선도 많아 가히 거미줄처럼 이어지면서 호남평야를 적셔주고 있다. 한반도의 가장 넓은 곡창지대에 물을 공급해주는 낙양취입수문, 이곳의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새삼 중요하게 느껴진다.

 

 '일원종시백파' (一源從是百派)...거미줄처럼 흩어지며 호남평야를 적신다

 

 

 

 
▲ 동진강 수계와 도수로가 잘 표시되어 있다.


낙양취입수문에서 실제로 도수로에 농업용수가 공급되는 시기는 일년중 물이 가장 필요한 4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180일 급수작전)라고 한다. 그래서 한국농촌공사(동진농조 포함)에서는 매년 수문을 열어 도수로에 물을 공급하는 의미로 통수식을 하는데 이날을 '물의 날'로 정했다고 한다. 일명 '백파제'라고도 하는데 '일원종시백파' (一源從是百派)라는 말에서 따온 말로서 이는 '한줄기 물이 백갈래로 갈라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요즘같은 농사철에는 도수로에 물이 최대용량으로 공급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이와 반대로 동진강 본류에는 물의 공급되지 않아 하천이 바닥을 그대로 드러낼 정도여서 아주 대조를 이루기도 한다.

 

 

 

 
▲ 도수로에 물이 공급됨으로써 본류는 막혀서 바닥을 드러낼 정도이다.


 

부안 계화도 간척지를 위해서 동진강 도수로 건설

한편 1960년대 부안 계화도에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더 많은 농업용수가 필요했는데 그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 바로 동진강도수로이다. 1969년에 완공된 동진강도수로는 최장길이 67킬로미터로서 칠보발전소에서부터 부안 청호저수지까지 직접 공급되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낙양취입수문 옆 동산에 기념비가 여러개 있는데 1981년 4월 1일 물의 날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풍년가를 적어본다.

한 근원 섬진강 물줄기 / 구천리 수로타고 / 백갈래로 퍼져가니 / 호남평야 젖줄이라.  세세년년 풍년들어 / 새 생명이 약동하니/ 물의 날을 지정하여/ 영원토록 기념하리.

 

동학혁명의 원인이기도 했던 수세, 2000년에 폐지

2000년에는 수세가 폐지되었던 해로서 이때의 백파제 기념행사는 예년보다 성대하게 치루기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부터 농민들의 큰 부담을 주었고 직접적으로는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던 그 원한의 수세, 생각해보면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강을 이루었고 농민들은 그것을 이용하여 농사를 짓는 것인데도 그동안 권력자들은 당연한 일처럼 농사짓는 물에 세금을 부과하였고 이것이 농민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동진강 본류물을 정읍과 김제로 갈라놓는 낙안취수구처럼 우리 농업도 존폐의 기로에... 

정읍의 너른 들녘마다 도수로가 거미줄처럼 뻗어있고 여기에 물이 풍성하게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그 옛날 하늘만 바라보며 매일같이 비를 걱정했던 농부들이 겪었을 시름이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요즘 우리네 농민들은 그런 걱정대신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라고 하는 농업개방의 파고를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라고 하는 새로운 근심걱정을 앞두고 있다. 마치 동진강의 본류가 낙안취입수문에서 갈라지듯,  농업의 흥망이 결정되는 기로에 서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입력 : 2006년 08월 21일 01:03:53 / 수정 : 2007년 02월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