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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누리(국내답사)

소설 '아리랑'의 배경 지역을 찾아서

조정래의 소설 '아리랑'을 난 이제야 읽게 되었다.  때 늦은 감이 있어 남들에게 그 감동을 전하는 것도 멋적은 일이라 여겨진다. 뒤늦게 혼자서 느낀 그 감동을 되새김질 하기위해 소설 속 배경이 되었던 김제로 길을 떠난다.  정읍과 인접한 곳이라 한나절이면 족하다 생각되었다. 2009년 2월, 나는 먼저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근처에 위치한 아리랑문학관을 찾아갔다. 지평선이 보이는 너른 김제 들녘 가운데에 자리잡은 문학관에 찾는 이가 별로 없어 한가로웠다. 덕분에 전시실을 여유롭게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전시관에 전시된 자료들은 소설이 세상에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잘 보여주었고 전시관을 나오면서 새삼 작가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다음은 인접한 김제시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구 하시모토농장 사무실을 찾아가 보았다. 당시 전북지역에 일본인들이 조성했던 9개의 농장, 그 중에 하나였던 하시모토농장을 가게 된 것이다. 현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말끔히 단장이 되어 있었다. 일제에 의한 수탈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건축물이었다. 다음으로는 소설속의 주요 인물들이 살았던 죽산면 소재지에서 그리 멀지않은 내촌과 외리 마을을 찾아가 보았다. 한적한 농촌마을에 인적도 없어 누구하나 붙잡고 얘기하기도 어려웠다. 나즈막한 구릉지와 너른 평야가 어우러져있는 지형에  마을은 위치하는데, 취락은 그 경계지점을 따라 연속적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과거 이곳은 1914년 이전까지 홍산면이라 불리워졌고 그 홍산면의 중심마을이었다고 한다. 기러기가 날아가다 앉는다고 하는 풍수상 길지라고도 전해지는 곳이다. 소설속의 주인공이었던 보름이와 수국이가 금새라도 나타날 것 같은 착각을 하며 마을을 한바퀴 돌아보았다. 여느 농촌처럼 사람이 드문 농촌마을에서 그나마 사람을 알아보고 자기 존재를 알리는 것은 마을의 견공들이었다. 정적을 깨는 개들의 외침이 길어지면 안될 것 같아 바로 마을을 빠져나와 오늘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을 향하였다.

 

평소 문학 서적과는 별로 친하지 않기도 하였지만 10권이 넘는 대하소설에 도전하기란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상당한 인내력을 필요로 하는 장편소설 읽기를 이렇게 마치고 나니 스스로 대견스럽다는 생각까지 갖게 되었다. 하기야 십수년을 바쳐 글을 쓰는 작가에 비하면 한달정도 투자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조정래의 나머지 대하소설에도 도전을 해볼련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아리랑을 읽었으니 이제 태백산맥과 한강에 도전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본다.  늦었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빠르다고 하지 않았던가? 역사소설을 탐독하는 일은 개인적인 즐거움이기도 하겠지만, 아이들에게 생생한 근현대사의 진실을 가르칠 수 있는 소재를 마련하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 부근에 위치한 조정래의 아리랑 문학관. 옛 벽제초등학교 터를 활용하였다고 한다.

 

 문학관 안에 전시된 사진. 호남평야의 일부인 김제만경평야의 너른 들녘을 찍은 사진.

 

 소설 '아리랑'을 위해 씌여진 원고의 첫 페이지. 12권의 대하소설인데 원고지로는 2만장 정도의 분량이라 한다.

 

                              

 

 

 4부로 나뉘어지는 소설의 역사적 배경은 일제의 실질적인 통치가 시작된 1904년부터 시작이 된다. 그래서 일제 35년이 아니라 40년이라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김제시에 산재된 문화재와 소설 아리랑과 관련된 곳들을 표시한 지도. 새만금 간척지가 완공되면 이곳의 지도는 또한번 크게 바뀔 것 같다. 김제시에서 1년동안 생산되는 쌀의 양은 전국 생산량의 2.5%를 차지한다고 하고 이 정도의 양은 강원도 전체 쌀 생산량과 맞먹는다고 할 정도로 나라의 곳간 구실을 하는 곳이다.

김제시는 앞으로 소설 아리랑과 관련된 장소를 연계하는 문학벨트를 조성하여 관광 상품화를 할 계획이라 한다.

 

 벽골제 근처에 있는 아리랑 문학비.

 

 김제평야의 들녘. 파릇파릇한 보리밭이 봄의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듬성듬성 위치한 마을들이 그저 정겹기만 하다.  산이 없기에 하늘과 땅이 일직선으로 만나는 지평선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너른 들이기에 도로도 고속도로처럼 직선을 이루며 멀리 소실점을 만들어낸다. 벽골제에서 죽산면을 향해 달리는 도로.

 

 부안쪽에서 김제죽산면으로 들어서면서 볼 수 있는 원평천과 국도상의 다리. 원평천은 동진강의 지류이며 벽골제와 관련된다.

 

 김제시 죽산면 소재지에 위치한 구 하시모토(교본)농장의 관리사무실이 있었던 곳.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로 쓰였던 건물. 지금은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해방이후 한때는 병원으로, 그 이후 동진농조 사무실로 사용되었던 서양풍의 건물.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옆에 위치한 창고건물. 전형적인 일본식 가옥이다.

 

 

 하시모토 농장 사무실 뒷쪽에 위치한 기념비석. 하시모토를 찬양하는 글이 담긴 송덕비인데 아마도 당시 친일세력들이 세워준듯.....  소작인들을 닥달하며 치부하던, 우리 조선인들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었던 자에게 무슨 찬양할 것이 있었을지.....소설 내용처럼 악랄한 농장주는 아니었다 할지라도..........

 

 하시모토 농장사무실을 뒤쪽에서 바라보았다. 외벽과 내부를 최근에 페인팅한 것 같다.

 

 

 김제시 죽산면 사무소. 소설속에서는 친일행각을 벌이며 치부에 전념했던 중인출신 백종두가 면장으로 근무했던 곳.

 

 죽산면 소재지의 중심거리. 북쪽으로 직진하면 김제시. 좌회전하면 만경과 군산으로 이어지는 길. 다른 농촌처럼 이곳도 인구가 크게 감소된 곳이라고 한다.

 

 죽산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촌마을과 외리마을이 위치한다.

소설속에서 감골댁과 그 주변 인물들이 살았던 곳.  1914년 이전까지 죽산면이라는 행정구역명 대신 홍산면이 있었으며 그 당시 가장 번창했던 중심마을이라고 한다. 나중에 하시모토 농장이 들어서면서 죽산리가 번창하였고 그로인해 면의 이름과  그 중심지가 변동되었던 것 같다.  

 

 낮은 구릉지와 평야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내촌마을.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 곳. 홍산의 안쪽에 있다하여 내리라 하였고 나중에 내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기러기가 앉을만한 길지라는 의미로 마을 뒷산을 홍산이라 하였는데 마침 내촌마을 위로 기러기떼가 브이자를 이루며 날아간다.

 

 내촌 마을의 노인들이 모여드는 노인당. 마을에 노인들이 주를 이루기에 어차피 마을회관 역할을 하는 곳.

허리가 휜 할머니들이 이동할 때 사용하는 유모차. 지금은 어딜가나 농촌마을에 유모차가 흔하게 보인다.

 

 홍산교회를 중심으로 내촌마을과 외리마을이 나뉜다.

 

 홍산리에서 죽산리로 향하는 들녘의 도로.

 

 

 멀리 죽산면의 소재지 죽산리로 이어지는 도로. 죽산이라는 나즈막한 산이 있다하여 죽산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평천을 끼고 북쪽에 발달한 김제시 죽산면. 소설속의 배경지, 죽산리와 홍산리가 인접한다. 차량에 장착된 내비게이션 화면을 찍으면 지도가 따로 필요없다.

 

 내비게이션 지도의 축척을 달리하여 다시 한컷.  원평천과 동진강 본류가 하류에서 만난다. 동진강을 경계로 아래쪽은 부안군, 윗쪽은 김제시에 해당한다.

 

 지방도로가 연결되는 죽산교에서 바라본 원평천과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다리가 보인다. 멀리 원평천의 하류에서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주는 해창수문이 보인다.

 

 동진강 본류 근처의 낮은 산. 부안군 백산면의 근거가 되는 백산인데 높이는 50미터가 안되지만 주변을 조망할 수 있는 유리한 곳이기에 일찍이 동학농민혁명때 농민군이 모여서 군사를 일으켰던 곳.

여기에서 농민군의 모습을 표현하는 '앉으면 죽산, 서면 백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공교롭게도 부안군 백산면과 김제시 죽산면이 동진강을 경계로 인접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