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엄마 방뎅이 같은 산, 방장산

뿌리기픈 2007. 12. 10. 21:22
엄마 방뎅이 같은 산, 방장산
정읍의 남단, 방장산 기행

 

박래철 ppuri3@ktu.or.kr

 

 

 

 

 
▲ 방장산 서래봉에서 바라본 동쪽 산줄기...내장산, 입암산,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마치 살아 꿈틀거리는 용처럼 느껴진다. 사진의 왼쪽은 정읍쪽, 오른쪽은 장성쪽으로 동진강과 영산강의 분수계 역할을 함.
가을과 겨울이 교차하는 이 즈음, 망중한(忙中閑)을 즐기는 마음으로 토요산행에 나섰다. 정읍지역 사회교사모임에서 을유(乙酉)년 마지막 등산모임을 가진 것이다. 마침 그 날이 가을의 끝자락이었던지 다음 날 정읍에는 첫눈이 내렸다. 첫눈치고는 그 양이 많았지만 절기상 며칠 후가 대설(大雪)이었던 점을 감안한다면 자연의 절묘한 타이밍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토요일 오후 장성 갈재(입암산과 방장산 사이의 고개)라고 불리는 노령의 정상부에 승용차를 주차하고 우리는 산행을 시작하였다. 하늘은 눈이라도 막 쏟아질 듯 잿빛으로 잔뜩 흐렸고 그리 춥지 않은 초겨울 기온에 9명이 산행하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갈재 이름, 억새를 갈대로 착각해서?

참고로 이곳 장성 갈재는 갈대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서 한자(漢字)로는 노령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갈대는 억새와 달리 바닷가나 습지에 자생하는 식물로서 이곳 높은 지대와는 어울리지 않겠고 이는 아마도 억새와 혼동하여 사용한 이름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노령 고개를 사이에 두고 전북(정읍시 입암면)과 전남(장성군 북이면)이 나뉘어지는데 말하자면 북으로는 동진강의 지류가 시작되고, 남으로는 영산강의 지류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 개설한 1번국도(목포~신의주)가 이곳을 통과하며 노령산맥의 근거가 되고 있기도 하다.

 

봉우리 평등하다하여 방등산, 임진왜란 후  방장산으로

전통지리학의 개념으로 보면 이곳은 호남정맥의 지맥으로서 내장산 새재에서 갈라져 나온 또 하나의 줄기가 입암산과 방장산을 거쳐 목포 유달산까지 뻗어가는 이른바 ‘영산기맥’(영산강 수계와 관련됨)에 해당한다.

그럼 여기서 방장산에 관한 지식을 검색해본다.

방장산(方丈山 743m)은 정읍 고부의 두승산, 부안의 변산과 더불어 전북의 삼신산이라 하며 지리산, 무등산과 더불어 호남의 삼신산이라 한다. 전북 고창군과 정읍시, 전남 북이면의 경계에 있는 방장산은 서남쪽에서 오르면 양고살재, 벽오봉, 고창고개, 정상743m, 전망대 바위, 서래봉(쓰리봉 734m), 전위봉(497m)을 거쳐 장성 갈재까지 한 줄로 이어진다. 백제이후 방등산 또는 반등산이라 하다가 임진왜란이후 중국의 삼신산인 방장산과 비슷하다하여 방장산이라 불러오고 있다.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으로 방장산이라 고쳐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방등산은 삼국유사와 고려사악지에 방등산(方等山)으로 명기되어 있고. 방등이란 불가의 용어로써 ‘방정하고 평등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처음의 불교적 의미를 갖는 방등산이 도교적 용어인 방장산으로 바뀐 것이다. 한편, 고려사약지에 기록된 이른바 ‘방등산가는 신라말에 도적이 반등산에 근거를 두고 있으면서 양가집 자녀들을 많이 잡아다가 부렸는데 그 중 장일현 여자가 그의 남편이 구하러 오지 않으매 이를 원망하며 부른 노래라고 하나 노랫말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네이버 참고)

 

 

 

 
▲ 방장산 서래봉에서 바라본 입암저수지
방장산에도 서래봉이...


이번 방장산의 산행 코스는 노령에서 출발하여 낮은 봉우리에 해당하는 전위봉(497m)을 거쳐 말안장처럼 깊숙한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급경사의 서래봉(734m)을 올라갔다 제자리로 오는 길이다.

등산로에 두텁게 쌓인 갈색의 낙엽은 아늑함을 느끼게 하였고 푸른색의 산죽은 지친 몸과 맘에 새로운 힘을 주는 듯 하였다. 또한 등산로를 따라 띄엄띄엄 펼쳐지는 다양한 형태의 바위조각은 자연에 대해 경외심을 갖게 하기에 족했다.

정상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했지만 전체 소요 시간은 2시간 반 정도였다. 시간 관계상 최고 봉우리(743m)까지는 가지 못하였지만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저녁노을에 겹쳐진 산봉우리의 실루엣이 멋진 그림을 만들어 주었다.

 

엄마 방뎅이 같은 방장산 

 

 

 
▲ 방장산의 연봉. 서래봉(쓰리봉)에서 방장산의 정상쪽을 바라본 모습.
방장산은 여러 개의 봉우리를 거느린 산이다. 그래서 엉덩이가 옆으로 퍼진 엄마의 방뎅이(?)같이 정겨운 산이라고 하고 싶다. 때로는 등산하면서 오르막길이 힘들 때면 앞만 보고 걷게 된다. 그러면 앞사람의 엉덩이와 산봉우리가 겹쳐져 보일 때면 어느 것이 산이요, 어느 것이 방뎅이인지 혼미해지는 산이다. 한편 내장산, 입암산, 두승산처럼 말발굽이나 원형이 아니고 일렬로 길게 펼쳐진 산이기에 예로부터 산성을 만들기에는 어려운 조건이었을 것이다.


방장산의 최고봉은 고창군 신림면과 장성군 북이면 사이에 있고, 그에 버금가는 서래봉(일명 쓰리봉)은 정읍시, 고창군, 장성군 등 3개 지역이 접하는 꼭지점을 형성하고 있다. 이곳 서래봉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내장산과 입암산이 보이는데 전남북을 나누는 능선이 꿈틀거리는 용처럼 보이기도 하였다.

조상들이 산을 살아있는 용에 비유하는데 그 느낌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여기까지 달려온 용은 서쪽으로 위풍당당하게 달려 멀리 목포 유달산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북쪽으로는 또 하나의 높지 않은 산줄기가 국사봉과 두승산을 거쳐 천태산까지 이어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734m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주변 산세와 너른 평야의 모습은 마치 와이드 스크린의 영화 장면 같았다. 어쩌면 이런 느낌을 맛보기 위해 사람들은 열심히 산에 오를 것이다.

방장산 자락의 입암 연월리 신월마을은... 

우리 일행은 하산길을 재촉하여 회원 중 한 후배의 어머님이 사시는 방장산 아래, 입암면 연월리 신월마을에 들렀다. 여기서 우리는 덕분에 저렴한 비용으로 모든 먹거리를 해결하게 되었다. 대단한 민폐인줄 알면서 주인장이 준비한 좋은 안주에 좋은 술을 한번도 거절 못하고 계속 들이켰다. 점점 정신은 혼미했지만 오고가는 정이 튼튼한 동아줄처럼 우리를 꽁꽁 묶어 주는 느낌을 받았다.

공교롭게 이곳 마을은 1번국도 옆 마을로서 111년전 장성의 황룡강 전투에서 관군을 상대로 승리한 후 의기양양하게 북진하는 동학농민군들이 들러서 물이라도 축이고 갔을 법한 곳이라고 한다.

 

물이 좋아야 밥이 맛있다 

또한 이곳 사람들은 방장산 물을 상수원으로 삼아 식수를 해결하는데 수질이 좋아 밥도 윤기가 흐를 정도로 밥맛이 끝내준다고 한다. 실제로 여기서 생산된 쌀을 다른 지역에서 수돗물로 밥을 하면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경험적 얘기이지만 쌀의 질과 물의 질이 동시에 갖추어질 때 최고의 밥맛이 난다는 사실을 확일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곳 입암면 연월리라는 지명은 연못의 ‘연’과 과 반월형 산세를 생각한 달월의 ‘월’을 합하여 연월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측된다.

비록 짧은 한나절의 산행이었지만 산과 인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같은 직업을 바탕으로 같은 주제의 얘기를 함께 하면서 정담을 나눈다는 것은 배움이라고 하는 1차적 목적을 초월하여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등산 후 다시한번 자연 앞에 겸허해진다 

일정을 마치며 산행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산은 우리를 말없이 가르친다. 산꼭대기에 오르는 순간 모두들 정복의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발아래 낮은 땅을 내려다보면 산 아래 모두 것들이 작아져 버린 모습에 인간의 왜소함과 초라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이내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겸손함을 배우게 된다. 

그동안 자연을 정복과 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해온 서양 사람들의 자연관은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적 자연관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자연과의 합일보다는 인간이 주체가 되고 자연은 종속적인 존재로서 의미를 갖는 그런 사고체계로 인해 자연은 속절없이 파헤쳐지고 망가져왔다. 만물에 정령이 존재한다는 애니미즘이나 산줄기의 연속성을 용의 꿈틀거림으로 이해하는 풍수사상이 아니래도 우리 조상들은 항상 자연 앞에 겸손했고 순응했던 것이다.

 

입력 : 2005년 12월 10일 10:48:21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2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