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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몰고개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몰고개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면' 단위 행정구역의 재구성과 생활권-공간인식의 변화

 

 

 

요즘 등산과 걷기운동이 붐을 이루고 있다. 바야흐로 웰빙(참살이)시대에 걸 맞는 긍정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수명이 다하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살고픈 인간의 본능이야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지만 한편으로 이런 행태의 이면을 보면 인간의 어리석음도 동시에 보인다.

자동차를 유지하여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려는 마음과 걷기운동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고픈 마음이 병존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전통사회에서는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었기에 거의 도보에 의존하여 생활하였고, 오늘날의 현대인처럼 별도의 운동시간을 갖지 않아도 될 정도로 생활 그 자체가 운동을 겸하였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생활범위는 지금보다 무척 좁았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사례를 정읍의 행정구역 변화에서 찾아보자.

 

 

 

 
내장산 서래봉에서 바라본 정읍 시가지 전경...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에 자리잡은 정읍시가지 모습 서쪽으로 가면서 완만한 구릉과 평야를 형성한다.
고부+정읍+태인=정읍


정읍시민이면 대부분 아는 내용이지만 정읍시는 역사적으로 일제시대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고부, 정읍, 태인이라고 하는 3개의 중심지역이 조각모음 하듯이 합하여 이루어진 이른바 기초 지방자치 행정구역이다.

이 중에서 고부는 인구가 제일 많아서 ‘군’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서해 바닷가에서 공급되는 해산물과 기름진 평야지대에서 공급되는 농산물 집산지라고 하는 유리한 지리적 조건이 작용한 결과로 여겨진다.

그리고 태인 역시 산지와 평야의 결절지점에 자리 잡고 있어 비슷한 인구규모를 자랑하였고, 정읍은 새로운 교통시설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한적한 취락으로서 ‘현’이라고 하는 한 단계 낮은 행정구역의 지위에 만족해야 했었다.

그러다가 일제가 본격적으로 한반도를 지배하면서 벌인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 시기(1914년)에 철도와 신작로라고 하는 교통시설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생활범위는 크게 확대되었다. 이에 정읍지역은 자연스럽게 3개의 치소(治所)를 통합하여 정읍군으로 출발하였고 지금의 정읍시로 거듭나게 되었던 것이다.

 

면단위 행정구역의 합종연횡

그리고 동시에 면단위의 행정구역도 조정이 되었는데 그 방향은 역시 통합이었다. 적어도 2개 이상의 면이 합하여 다시 새로운 면으로 출발하였는데, 이는 앞에서 말한 교통시설의 발달에 따른 지역민들의 생활범위의 확대가 반영된 결과인 것이다.

그럼 여기서 통합되어진 면들의 예를 들어본다. 정읍현의 북일면과 북이면이 합하여 북면되었고, 정읍현의 남이면과 서일면이 합하여 입암면이 되었고, 고부군 소정면과 성포면이 합하여 소성면이 되었고, 고부군 남부면과 서부면이 합하여 고부면이 되었고, 고부군 북부면과 동부면이 합하여 영원면이 되었고, 고부군 우덕면과 달천면이 합하여 덕천면이 되었고, 고부군 답내면과 궁동면이 합하여 이평면이 되었고, 정토면과 우순면이 합하여 정우면이 되었고, 태산군과 인의현의 이름을 합하여 태인면이 되었고, 태인현 감산면과 은동면이 합하여 감곡면이 되었고, 태인현 옹지면과 동촌면이 합하여 옹동면이 되었고, 태인현의 고현내면과 남촌일변면이 합하여 칠보면이 되었다고 한다.

 

전통시대의 공간인식..."몰고개 너머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여기서 면이라고 하는 행정구역의 범위를 생각해보자. 이는 아마도 당시 사람들의 1일 생활공간의 범위와 일치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루 동안 도보로 생활할 만한 정도의 범위가 면의 구역으로 확정되었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그래서 과거 조선시대에 정해진 면의 범위는 지금의 면의 범위보다 훨씬 작았고, 그런 ‘면’ 행정구역이 일제시대 이후 교통의 발달에 따른 생활권의 확대로  2~4개 정도의 면이 통합되어 현재의 면의 범위로 확대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정읍 시가지의 경우, 이곳은 조선시대 정읍현의 중심지인 현내면 구역에 해당되는 곳으로써 예전에는 사람들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곳 시가지 내에서 대체로 생활을 하였고 쉽게 다른 지역으로 나간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다시 말해 시가지 남쪽의 단고개와 북쪽의 몰고개가 심리적인 장벽의 역할을 할 정도로 산과 강 같은 지형지세는 사람들과 물자의 이동을 단절시키고 차단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간혹 어렸을 적 마루에 앉아 남쪽의 산 너머에는 과연 누가 살고 있을 것인지 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하며 끝없이 상상하던 그때 그 시절이 불현듯 떠오를 때가 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지만 아련한 상상을 할 수 있었던 그때가 더 행복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든 맘만 먹으면 자동차를 타고 넘어갈 수 있는 고개 너머 세상에 대해 이제는 더 이상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신비감을 가질 일이 없어졌으니...

   

 


 

입력 : 2005년 11월 05일 00:40:18 / 수정 : 2007년 02월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