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산골처녀의 수수함과 파헤쳐진 속살

뿌리기픈 2007. 12. 10. 21:19



산골처녀의 수수함과 파헤쳐진 속살
상두산의 가을 풍경...자연, 그리고 인간

 

 

 

 

 

 

 

▲ 가을빛이 완연한 상두산 등산로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는 기회를 가졌다.11월 5일 토요일 오후, 걱정했던 비는 내리지 않았고 적당한 기온 속에서 구름까지 햇빛을 막아주니 산행하기에는 최적이었다. 올 초 정읍지역에 근무하는 사회과 교사들끼리 모임을 만들어 정읍주변의 산들을 하나씩 답사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상두산을 선택하였다.

가을빛이 가장 절정인 시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올랐다. 아래쪽엔 단풍이 절정이지만 위쪽으로 올라가면서 나무들은 잎사귀를 반쯤 떨어뜨렸고, 두텁게 쌓인 낙엽 위를 밟는 발의 촉감이 눈으로 보는 가을빛보다 더 좋았다. 상두산의 가을은 내장산 단풍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산골처녀처럼 수수한 느낌을 주었고, 하나의 산 이름아래 여러 개의 봉우리를 안고 있어 대가족의 푸근함을 주는 그런 산이었다.

 

불교에서 유래한 이름, 그래서 월주 스님 등 고승을 배출했는지...

상두산(象頭山 575m)은 김제시와 정읍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동남쪽으로는 정읍시 산외면 상두리, 서쪽으로는 정읍시 옹동면 상산리, 북쪽으로는 김제시 금산면에 걸쳐있다. 상두산의 지명은 석가가 고행 길에 6년 동안 설법을 했다는 인도불교성지에서 비롯된다. 이 같은 연유로 상두산 자락인 이곳 산외면은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바 있는 월주스님 등의 고승을 배출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상두산은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정상을 오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감탄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동쪽으로 수많은 산봉우리가 보이며, 서쪽으로는 광활한 호남평야가 펼쳐져 날씨가 좋은날에는 멀리 서해바다가 보여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설래 이게 한다. 상두산에는 또 장군대(將軍臺)라고 불리는 주춧돌이 있고 그 동남쪽으로 석성(石城)이 자리해 있다.

산성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축조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삼국시대라는 주장과 후백제왕 견훤이 쌓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성내의 넓이는 약1ha정도로 전문가들은 이 산성을 근거로 모악산과 바로 연결된 상두산이 호남지방의 군사적 요새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네이버 검색)

 

 

 

 
▲ 상두산 정상에서 동쪽을 바라본 모습
김원기, 유성엽, 그리고 명당?


상두산 북쪽으로 모악산이 연결되고 그 사이 공간인 금산면에서는 예로부터 사금을 채취하여 김제시라는 지명의 근거가 되었으며 이곳의 물이 흘러 벽골제에 들어간다. 김제라는 지명도 금산면의 김(金)과 벽골제의 제(堤)가 합쳐져 이루어진 이름일 것이다.

조선후기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하여 만든 성당이 금산면 화율리 수류성당이며, 최근 이곳에서 촬영된‘보리울의 여름’이라는 영화의 무대이기도 하다.

상두산의 남쪽으로 산외면 동곡리 지금실에는 동학혁명의 주역인 김개남장군의 묘소가 있으며, 그 남쪽으로는 오공리 공동마을에 김동수 고가(古家)가 자리잡고 있다. 풍수지리로 보면 정읍시 산외면 지역 전체가 단일 명당지역으로서 주변에는 시계방향으로 상두산, 국사봉, 묵방산, 성옥산, 왕자산, 비봉산 등이 완벽한 분지지형을 만들고 있으며, 도원천이라는 동진강의 지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데 그 가운데에 평사낙안형국의 평사리가 위치한다. 또한 전주 상산고등학교의 교명도 이곳 상두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따지고 보면 유성엽 정읍시장의 출생지인 옹동면 산성리도 상두산의 지기(地氣)가 연결되는 곳이며, 김원기 국회의장도 상두산에서 연결되는 천애산 북쪽자락(감곡면 통석리)에서 태어난 것이다. 또한 이번 산행에서 김원기 국회의장의 집안인 도강김씨의 묘소가 상두산 정상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지기가 산 자와 죽은 자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는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워도, 최소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심성에 큰 영향을 끼치고 이것이 그 사람의 성격과 행동을 결정짓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인정될 것이다. 하지만 좋은 묘 자리가 후손들에게 발복(發福)으로 이어진다는 이른바 음택풍수를, 합리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근대교육을 받은 우리 세대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그저 만나면 서로 행복한 사람들과 2시간 반 가량 산행을 하였다. 등산 경로는 김제시 금산면 쪽의 산중턱에서 시작하여 산 정상을 지나 정읍시 산외면 지금실 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였다. 사람들은 등산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고 하는데 아마도 오르막과 내리막의 체험을 통해 인생에 대해 겸허함을 갖자는 얘기일 것이다.

또한 멀리서는 산이 보이지만 대신 숲이 보이지 않고, 가까이서는 숲이 보이지만 전체 윤곽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산이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가르침인 것 같다.

 

 

속살 파헤쳐진 상두산의 살풍경

 

 

나무를 제거하고 토석을 채취하는 상두산 남쪽사면의 개발현장. 

  에서 아래를 바라봄.

 

 

 

 

 

 

 

 

산을 내려오는데 남쪽사면에서는 각종 개발 사업이 한참이다. 산을 통째 허물기라고 하려는 듯 미리 나무를 제거하고 골재를 채취하는 사업장이 몇 군데 발견된다. 각종 개발사업을 위해 필요한 골재이긴 하지만 산을 울리는 소음소리와 숲을 파헤쳐 드러난 속살이 그야말로 살풍경(殺風景) 그 자체이다.


골재 채취업이 지자체가 허가하여 이루어지고 여기서 나오는 세금이 정읍시의 수입에 보탬이 되겠지만 나중에 후손들은 뭐라 말할까? 말없는 상두산은 속수무책으로 망가지고 있고 우리네 심약한 사람들은 산속에 울려 퍼지는 기계소리가 산신령의 신음소리로 들리는 듯 하다.

또한 이런 모습이 이곳 뿐 이겠는가? 정읍시의 산속 곳곳에서 이루어지는 채석작업은 결국 우리 모두가 공범일 수밖에 없다. 문명의 편리함만을 �아 살아가려는 현대인들의 개발에 대한 집착이 바로잡히지 않는 한 산들의 형체는 조금씩 무너져갈 것이다.

오늘 하루 등산의 즐거움이 하산의 살풍경으로 망가지고 말았다.

  

 

 

 

 

 

 

 

 토석 채취현장. 지자체의 수입원이기도 하지만, 유서깊은 상두산의 한쪽을 갉아먹는 형국이어서 몹시 안타까운 심정이다.

골재채취를 위한 목적이니 도시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공범이라 여겨진다.  

 

 

 

 

 

 

   


 

입력 : 2005년 11월 14일 09:00:24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3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