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로가 가져온 변화 | ||||||||||||
1번 국도와 정읍시내의 주요 고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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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철 ppuri3@ktu.or.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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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조선시대까지 한적한 고을이었던 이곳 정읍(과거 정읍현)이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게 된 것도 교통의 발달 덕분일 것이다. 즉, 일제시대 호남선 철로와 1번 국도의 개설 그리고 대한민국 근대화시절 호남고속도로의 개설 등이 그 예일 것이다. 흔히 산천(山川)을 인체의 뼈와 핏줄에 비유한다면 도로는 신경계에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도로는 예나 지금이나 고을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또한 그런 관점에서 이곳 정읍 지역의 주요 간선도로와 그에 따르는 고개의 변천을 파악하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읍은 광주와 전주사이에 위치하는데 1번국도가 통과하는 지점은 바로 노령(蘆嶺)에서 당고개를 거쳐 정읍시내를 관통하고, 이어 몰고개를 넘어 전주를 향하게 된다. 그런데 이런 신작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폭이 좁은 소로 형태의 고갯길을 이용했을 것이고 당시 정읍현 지역의 주요 고개는 노령 대신 새재고개, 당고개 대신 싸리재나 아요현, 몰고개 대신 작은 몰고개 등이 이용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교통로로 사용하는 고개나 길도 시대 변화에 따라 크게 변화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 변화의 방향은 대체로 도보에 의존했던 조선시대까지는 해발고도가 낮은 고갯길을 이용하였을 것이고, 토목기술이 발달하는 일제시대부터는 자동차의 특성상 교통이 편리한 지름길을 선택하여 주요한 고갯길이 바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런 사실은 고지도와 현재의 지도를 비교해보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정읍의 교통로와 고개길의 변화를 보면서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라는 말이 또 한번 실감난다. 또한 그 옛날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라고 했던 시 구절 속의 산천도 이제는 얼마든지 인간의 역사에 의해 바뀔 수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정읍의 자연과 인문환경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그 변화의 속도와 폭이 커질 것이 분명한데, 아무쪼록 자연과 조화되고 그 위에 사는 사람들의 문화를 보전하는 그런 방식의 변화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노령 : 갈대가 많아서 갈재라 부르며 전남 장성에서 정읍 입암으로 넘어오는 고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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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0월 02일 23:50:28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3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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