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골' 정읍, '샘'과 '물'은 어디로 갔을까 | ||||||||||||||||||||||||
정읍 시가지의 산(山)과 물(水) 그리고 샘(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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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철 ppuri3@ktu.or.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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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분지의 대체적 모습을 표현해보면, 호남정맥의 내장산 줄기가 동쪽에서부터 두 갈래로 나뉘어 뻗었는데 남쪽 사면은 아양산, 초산, 망상봉, 죽지봉을 이루고 북쪽 사면은 칠보산, 성황산, 두락봉으로 끝나며 서쪽은 두승산으로 가로막혀 있다. 정읍의 시가지 부분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지형으로 볼 수 있으며 동시에 부분적으로는 선상지(扇狀地)지형의 특성을 갖추기도 하였다. 물론 여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도 있지만, 내장산이라고 하는 산지에서 폭이 넓은 정읍의 평야지역을 향해 흐르는 하천수가 부분적으로 지하수가 되어 복류(伏流)하는데 이것이 정읍 시가지 쪽에 공급되는 구조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정읍천이 지금은 일제시대 직강공사 이후 직선으로 흐르고 있지만, 과거 정읍천은 분명 자유곡류(蛇行川)를 하면서 지하수의 수량을 더욱 풍부하게 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을 증명하는 사례는 지명에서 찾을 수 있는데 지금의 수성동, 과거의 소지명인 씨교동(일명 각시다리), 광교동, 남교동 등을 열거할 수 있겠다. 이 중에서 각시가 빠져 죽었다는 전설을 갖는 각시다리는 하천수량이 지금 보다는 훨씬 많았음을 방증하는 자료로서 이곳에 지금은 조곡천이 복개천의 형태로 흐르고 있지만 예전에 혹시 정읍천의 본류가 지나가는 곳은 아니었는지 조심스럽게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동초등학교 옆의 몰고개도 이를 모래고개로 해석하면 하천의 줄기가 지금의 정읍시가지 남쪽에 치우친 본류와는 확연히 다르게 북쪽으로도 곡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겠다. 그래서 예로부터 정읍 시가지 지역에서는 땅을 파면 물길을 쉽게 찾아 집집마다 우물을 만들 수 있었고, 동네마다 자연 샘이 곳곳에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정읍이 정읍답고, 새암 고을이라는 지명의 근거를 갖게 된 것은 결국 위에서 열거한 지형적 조건 때문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러한 이유로 예전의 정읍시가지는 井邑 즉 샘골(Spring Town)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답게 곳곳에 자연샘과 우물이 있어 여기서 나오는 물이 실핏줄처럼 시내를 적시고 흘러감으로써 물이 풍성한 고을로서 민심도 더불어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읍시 상동에 대표적으로 땀때기방죽과 중시암이 있었고 민가에 각기 우물이나 자연샘이 솟아나와 수많은 작은 시냇물(또랑?)을 이루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근래(약 30여년 전부터)에 정읍천의 바닥을 낮추어서 홍수를 예방하고 거기에서 나온 모래나 자갈 등을 건축골재로 사용하기 위한 공사를 대대적으로 하다보니 급기야 정읍 시내의 지하수면이 급격히 낮아졌다. 더구나 무분별한 대규모 지하수 개발사업도 이런 지하수의 고갈을 더욱 가속화시켰는데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이상 그 옛날 자연샘의 정취를 느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예로부터 정읍은 풍수지리상 행주(行舟)형이라 하여 함부로 땅바닥을 파서는 안 된다고 했고 이는 아마도 지하수를 보호하기 위한 훌륭한 방책이 아니었나 싶다. 아 ! 옛날이여...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근대화 이후 수돗물이 보급되어 생활은 편리해졌을지 모르지만 샘물을 돈주고 사먹어야 되는 신세가 되고 항상 물에 대해 안전성을 의심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는데 이를 우리 후손들은 어떻게 평가할지 두려워진다.
* 땀때기 방죽 : 지금은 개발로 인해 사라졌지만 지금의 관통도로 주변 중앙마트 주변에 있었던 방죽으로서 자연샘에 해당한다. 어찌나 물이 차가운지 이곳에서 목욕을 하면 땀띠가 사라질 정도라 하여 사투리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 중 시암 : 스님과 관련된 전설이 있었던 곳으로서 지금의 상동교회 주변에 있는 자연샘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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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5년 10월 02일 23:15:17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32: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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