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누리(국내답사)

‘DMZ와 지리’ 답사 후기

뿌리기픈 2007. 12. 9. 20:06
 

‘DMZ와 지리’ 답사기(2007년 여름) 


정읍중학교 교사 박래철

 

   

  전국지리교사모임이 주관하는 이번 여름 연수의 주제는 ‘DMZ와 지리’이며, 개인적으로는 연속 3번째 참가하게 된다. 답사를 위주로 진행하는 전지모 연수에 이번에도 전국의 지리교사들이 대거 신청하였다. 연수주제가 신선하고 개별적으로는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장소라서 그런지 더욱 경쟁이 치열하였다. 사정상 30명만을 선착순 선발하는 이번 연수에 난 여유를 부리다가 하루 늦게 연수비를 입금하였더니, 어느새 커트라인을 넘어 32번째가 되어버렸다. 예상치 못한 결과에 대해 실망과 아쉬움도 컸다. 마치 중요한 시험에서 떨어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 가닥 희망을 가져보았다. 참여가 결정된 분들 중에서 간혹 개인 사정으로 연수를 포기하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과 집행부에서 참여인원을 다소 늘릴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예상대로 포기하시는 분도 있어서 내가 그 빈 자리를 채웠고, 집행부에서 늘린 인원까지 포함하여 모두 36명의 교사가 이번 연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번 하계연수의 경우에도 선발인원은 한정되어있고 참가희망자는 많아 탈락자가 다수 발생하였다. 자발성과 함께 경쟁(?)을 통해 선발되었다는 자부심은 참가자들의 적극적인 연수 참여태도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난 운이 좋아 연수에 참여하긴 했어도 왠지 탈락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래서 이 답사후기로 그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기로 한다.


  장마철이 지난 8월초에 잡힌 연수일정이지만, 본격적인 더위대신 게릴라성(국지성) 호우가 전국의 날씨에 영향을 주고 있다. 약 10여 년 전부터 한반도에 나타나는 특수현상인데 이제는 이게 계속 반복되다 보니 일반적인 기후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전문가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이상이라고 한다. 어쨌거나 이번 연수기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으면 하는 기원을 하면서 집결지 강원도 춘천시를 향한다. 첫날 9시가 집합시간이기 때문에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하루 전에 춘천에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가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마침 경기도 부천에 사는 친척집을 방문할 겸 가족과 함께 3일전에 집을 나섰다. 그리고 연수 하루 전 오후에는 서울 청량리 역에서 출발하는 경춘선 열차에 몸을 실었다. 말로만 듣던 경춘선 열차를 처음 타보는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북한강의 중류에 해당하는 지역을 통과하는 기차 길을 따라 펼쳐지는 강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면서 종착지 남춘천 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답사부장님(조성호 선생님)과 연락하여 강원대학교 근처에 위치한 숙소를 함께 사용하게 되었다. 미리 도착한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함께 춘천의 대표음식 닭갈비집을 찾아갔다. 지리교사들끼리 모처럼 어울려 지리를 주제로 얘기를 나누다보니 모두들 흥이 나서 소주잔을 빠르게 비웠다. 밥을 먹으러 갔다가 밥보다 술을 더 마신 것이다. 각자 평소 주량을 넘어서 과음을 한 편인데 난 그 후유증이 심하여 연수가 진행되는 다음날까지 고생을 하게 되었다. 정작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운동선수의 신세라 하겠다. 우리는 늦은 시간에 숙소에 돌아왔고 나중에 도착한 상당수 선생님들과 함께 모여 자기소개도 하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하지만 난 과음을 한 탓에 자리에 오래 버티지 못하고 일찍 빠져나와 잠자리에 들었다.


연수 1일차(8월 6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해결하고 첫 번째 집결장소인 강원대학교를 향하였다. 이번 연수일정 동안 버스 내에서 자리를 함께 하고 또한 숙소 방을 함께 사용할 룸메이트는 포항제철고에 근무하는 유종철 선생님이다. 바로 2년 전 울릉도 연수 때도 짝꿍으로 지낸 인연 때문에 더욱 반가웠다.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곧바로 집결 장소인 강원대학교를 향하였다. 9시까지 모이는 시간인데 아무래도 약속시간에 늦는 분들이 있어 약 1시간 후에 버스가 출발할 수 있었다. 참여 교사들 중에는 낮 익은 분들도 있지만, 새롭게 참여하시는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이번 연수도 역시 나처럼 40대 중반 이상의 장년층보다는 젊은 선생님들이 더 많이 참여한 것 같다. 연수 자료집의 참여교사 명단을 살펴보니 고등학교에서 지리과목을 가르치는 분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나처럼 중학교에서 사회를 담당하는 지리전공 교사들이 지리교과의 답사와 연수에 소극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지리교과에 대한 정체성이 떨어지고, 교수학습과의 연관성이 낮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 전지모가 그토록 주장했던 중학교 사회과 내 지리영역의 분리 독립이 더욱 절실해진다.


  올해 전지모 답사부장님이 바뀌어서 그런지 답사 진행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다. 종전에는 사전에 모둠을 편성하여 각 모둠원들에게 개인 역할을 부여하였고, 답사를 마친 밤에도 그날 하루 일정에 대한 발표와 토론이 이루어졌었다. 나름대로 부담스럽고 피곤한 일이긴 하여도, 그런 과정을 통해 답사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여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런 과정이 생략되다보니 발표와 기록에 대한 부담감을 갖지 않고 연수에 참여할 수 있었고, 답사가 끝난 저녁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연수의 밀도와 성과를 높인다는 차원에서는 종전의 방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8월 초, 한 여름의 햇살은 대지를 뜨겁게 달군다. 이곳 춘천 시가지는 분지상의 지형과 주변 호수의 영향으로, 무더위에 따른 불쾌지수도 더 높을 것 같다. 찜통 같은 날씨 속에 에어컨이 아니면 연수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하겠다. 버스이동 중 이번 연수를 주관하는 DMZ HELP센터의 김창환 교수님을 비롯한 연구원들의 인사소개와 연수안내가 이루어졌다. 이 대목에서 연수 참여 교사들끼리의 서먹함을 깰 수 있는 자기소개 시간도 주어졌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가져본다.


  2007년 전지모 하계 직무연수는 전지모 집행부 내 답사부에서 직접 주관하는 종전 방식과는 다르게 강원대학교 부설 DMZ HELP센터(김창환 센터장)가 연수를 주관하고, 전지모와 양구군이 후원하는 형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연수의 목적은 중등 교사들의 DMZ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의 확산을 위해서라고 한다. 원래 5일간의 강의 위주 프로그램 형식을 갖추었지만, 지리과의 특성 상 답사 위주의 3일짜리 연수로 재편되어 진행된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만일 답사 없이 연수를 진행한다면 DMZ에 대한 현장감을 가질 수도 없을 것이고, 지리과 교사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번 연수의 주제는 ‘DMZ와 지리’이기 때문에 화천군, 양구군 일대 휴전선 접경지역에 대한  답사와 아울러 춘천, 화천, 양구 지역에서 지리학적으로 의미를 갖는 장소에 대한 지리답사도 병행해서 이루어졌다. 이번 답사지역은 나로선 처음 가보는 곳이어서 다소 설레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과거 군대생활도 부산에서 하였으므로 휴전선과 비무장지대에 대한 실체적 감각은 부족하다고 말 할 수 있다. 이번 연수가 시작되기 약 1주일 전에는 정읍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매년 이루어지는 2박 3일간의 역사캠프에 지도교사로 참여하였는데, 이번에는 통일을 주제로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철원 일대를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비슷한 기간에 연거푸 접경지역을 둘러보게 되는데 앞서서 본 파주와 철원은 휴전선의 서부와 중부전선에 해당하는 곳이고, 이번 답사지역인 화천과 양구는 말하자면 동부전선쯤에 해당하는 곳이라 하겠다. 글을 쓰다보니 서설이 너무 길어졌다. 이제 본격적으로 답사 이야기를 써본다.

   

 강원대학교를 출발하여 우리가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춘천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다. 사전에 준비한 지형도 묶음과 GPS(global positioning system)기기가 이때 각 조장들에게 배부되었다. 춘천분지를 살펴보기에 최적의 장소라고 하는 춘천시 동면 만천리 구봉산(441m) 중턱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곳은 춘천분지의 경사 변환점(대략 300m)에 해당하는 곳이고, 전망이 좋아서인지 고급 레스토랑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입구 간판엔 이탈리아식 레스토랑이라 해놓고 이름은 그리스의 지명을 딴 산토리니(Santorini)로 되어 있다. 우리는 식당 앞마당에 서서 춘천분지를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었다. 날씨가 맑지 않아서 풍경이 또렷하지 않았다. 호반의 도시답게 공기 중에 습기가 많아서일까? 우리는 곧바로 이어지는 김창환 교수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춘천분지

 김창환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장면.

 춘천시 구봉산 중턱에 자리잡은 산토리니 레스토랑. 여기에서 춘천분지를 조망할 수 있다.

 

춘천분지는 우리나라 강의 중, 상류에 나타나는 이른바 침식분지의 하나이며, 일반적으로 차별침식의 결과로 알려져 있다. 즉 분지 주변부의 변성암과 관입에 의해 형성된 화강암이 풍화속도가 달라서 나타나는 현상인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침식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전 단계로 풍화가 먼저 진행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차별침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면서 풍화의 과정을 반드시 설명해야 제대로 이해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한편 석영, 운모, 장석 등으로 구성된 화강암은 다른 암석에 비해 물리적으로 단단한 물질이지만, 풍화에는 약하다고 한다. 화강암의 심층풍화가 이루어져 나타나는 일명 마사토라고 부르는 새프롤라이트(saprolite)는 유수작용에 의해 점차 제거가 되면서 분지상의 지형을 만들게 된다. 춘천의 경우에는 북한강과 그 지류인 소양강이 합류하는 곳이어서 풍화물질의 제거가 잘 이루어졌을 것이고 그곳에 도시가 발달한 것이다. 또한 분지 내 고립 구릉(central hill)이나 산록의 구릉지는 그런 침식과정이 덜 진행된 상태의 유물지형으로 볼 수 있으며, 그곳은 마사토가 주요성분이기 때문에 개발이 편리하고 배수가 유리하기 때문에 집터로서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라고 한다. 분지 내에서 경사 변환점이 나타나는 산록완사면에서는 물을 구하기 쉽고 동시에 침수를 피할 수 있는 곳이어서 예로부터 취락이나 농경지가 발달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이동한 곳은 소양강댐이 보이는 댐 아래쪽 세월교라는 다리이다. 행정구역상 동면과 신북읍의 경계선이 지나는 곳이다. 동면은 닭갈비와 더불어 춘천을 대표하는 음식인 막국수의 원조라고 한다. 또한 동면은 옥(玉)을 채굴하는 옥 광산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한국에 하나밖에 없는 옥 광산이자 전 세계에서 유일한 백옥광산으로, 대리석이 변성작용을 받아서 형성되었다고 한다.

 이곳 소양강댐은 우리나라 최대 저수량을 자랑하는 다목적댐(1973년 준공)이라고 하는데, 멀리 떨어진 아래쪽에서 바라보니 그 위용을 제대로 실감할 수가 없었다. 춘천을 둘러싼 의암호, 춘천호와 더불어 소양호를 유지하는 댐인 것이다. 북한강의 지류인 소양강을 막아 이루어진 소양강댐은  평소 전력생산을 하기 위해 일정시간 물을 떨어뜨리는데 호수의 중류층 이하의 차가운 물이 쏟아지기 때문에 여름에는 이곳이 상대적으로 시원하다고 하고, 이곳에서 공급되는 춘천의 수돗물도 그래서 차갑다고 한다. 간혹 수량조절을 위해 수문을 열어 방류를 하게 되면, 세월교 같이 낮은 다리는 그 순간 물에 잠기는 잠수교가 된다고 한다. 

북한강 상류지역에는 댐이 많고 이에 따른 호수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춘천을 호반의 도시라고 불린다. 댐 건설의 효과로서는 전력과 용수를 공급, 홍수조절 기능, 관광효과 등을 들 수 있다. 하지만 이로 인한 불편과 불이익도 상당하다. 댐 건설에 따른 부정적 영향으로서는 안개일수 증가에 따른 피해, 댐건설로 인한 수몰민 발생, 교통로 단절로 인한 주민생활의 불편, 상수원 보호로 인한 지역개발의 어려움 등을 열거할 수 있다. 결국 한강 상류지역 주민들의 희생으로 다수의 수도권 주민들이 개발의 혜택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소양강댐

 

 우두저수지

   

우리는 다시 춘천시 우두동에 위치한 우두저수지로 이동하였다. 소머리를 닮았다하여 붙여진 낮고 길다란 우두산(牛頭山) 옆에 저수지가 있었다. 평지에 만들어진 정방형의 인공저수지이며, 북한강 상류와 소양강 하류 사이의 충적지(범람원에 해당)에 위치한 우두들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일명 온수지(溫水池)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소양강에서 공급되는 농업용수가 중층이하의 차가운 물이기 때문에 벼의 생육에 적합지 않아서, 이렇게 넓고 얕게 만들어진 저수지에 물을 가두어 온도를 높인 후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댐과 관련된 특별한 관개시설이라 할 수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이런 사실을 얼마나 알고 있을지 궁금하다. 참고로 이곳 춘천분지의 범람원은 하천의 하류에서 나타나는 범람원과 달리, 자연제방이나 배후습지가 발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춘천시내의 서편을 흐르는 북한강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개의 하중도(河中島) 중 하나인 위도(고슴도치 모양)를 지나 춘천시 서면 지역에 들어선다. 이곳에는 한 동네에서 박사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붙여진 박사마을과 고려의 개국공신인 신숭겸장군의 묘가 있다고 하니 풍수지리학적으로 좋은 터인 것 같다. 북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니 춘천댐이 보인다. 버스기사님은 친절하게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서행을 해주신다. 이곳 춘천댐은 발전용의 콘크리트 댐(댐식 수력발전)으로서 1965년에 준공하였다. 춘천댐으로 형성된 춘천호는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곳곳에 아름다운 풍경을 보인다. 잠시 지도를 보니 버스는 위도 38도선을 지난다. 이 곳은 한국전쟁 이전까지 남북의 분단선이었을 텐데 지금은 그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하기야 국토는 하나였으며 삼팔선이라는 것도 애초에 없었던 것이니, 언젠가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지금의 휴전선과 DMZ도 이렇게 깨끗이 사라질 것이다.

  

 

춘천댐 

 

우리는 곧 춘천시 사북면을 지나서 북한강의 지류인 지촌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하천 폭은 점점 좁아진다. 첩첩산중인 이곳에서 하천은 심하게 곡류를 하고 길도 함께 따라 구불거린다. 융기에 따른 하천의 하방침식(下方浸蝕)작용으로 나타나는 이런 지형을 감입곡류천(嵌入曲流川)이라 할 수 있겠다. 잠시 후 산간분지에 위치한 화천군 사내면(史內面)에 들어선다. 이곳은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왕의 피신처로 설정된 곳이었는데 실제로 이곳을 이용한 적은 없지만 그만큼 폐쇄적인 공간으로 인식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최근 토마토재배가 활발하여 올해에는 토마토축제가 성대하게 열렸다고 한다. 특산품을 알리고 관광객을 끌어들이려는 지자체의 노력인 것 같다.

  우리는 목적지인 화음동 계곡에 도착하였다. 화천군 사내면 삼일리, 경기도 가평군과 강원도 화천군의 도계에 위치한 화악산(1468m)의 북사면에 위치한 골짜기에 해당하는 곳이다. 풍광이 뛰어나 예로부터 선비들이 낙향하여 안빈낙도를 즐기던 곳이라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이 주변에 텐트를 치고 피서를 즐기고 있었다. 이곳 화음동을 포함하여 화천군 사내면 일대의 계곡에는 조선시대(17세기) 곡운 김수증 선생이 9곳의 절경을 정하였는데 이를 곡운구곡(谷雲九曲)이라 부른다.

우리는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가서 용담계곡이 이루어놓은 ‘신녀협’이라고 부르는 협곡을 바라보았다.  이곳 역시 곡운구곡 중의 하나로서 최근에 지어진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절경을 이룬다. 푸른 숲이 우거진 계곡에 너른 바위들이 이룬 여울을 따라 쏟아지는 물줄기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완급을 조절하며 잠시 머무는 웅덩이의 물은 에메랄드빛으로 변하니 이곳은 그야말로 선경(仙境)이라 할 것이다. 판상절리가 발달한 화강암은 곳곳에 여울을 만들었고, 급하게 떨어지는 물은 와류(渦流)를 일으키며 바위를 깎아 물웅덩이(沼)를 만든다. 아름다운 풍경도 이를 지형학적으로 해석하여 바라보면 정서적 느낌은 반감되는 것 같다.

 

 

 화악산 물줄기가 내려오는 화음동 계곡.

 

 

용담계곡 

 

 너른 바위와 맑은 물이 잘 어울린다.

 

 용담계곡.

 

 


 북한강변의 하남면을 지나 화천읍에 도착하였다. 북한강을 막아 이루어진 파로호(화천댐)와 춘천호(춘천댐)가 위치하기 때문에 ‘물의 도시’를 지역의 상징으로 내걸고 있다. 화천읍 근처 붕어섬이라고 하는 하중도에서는 붕어섬 축제가 열리고, 수달과 산천어의 서식지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일정의 첫 번째 장소인 화천군 상서면 토고미 마을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다른 농촌마을과 달리 사람들로 북적인다. 마을 입구에는 트랙터를 이용한 탈것이 눈에 띄었고, 논에는 커다란 오리 모형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토고미 마을은 비교적 너른 평야가 있어 예로부터 부자가 많이 살았다고 하고, 농사일에 품을 팔면 꼭 쌀로 품삯을 받았다하여 토고미(土雇米)라 불렸다고 한다. 신대리를  중심으로 몇 개의 마을을 포함하여 정보화마을(http://togomi.invil.org)로 지정을 받았고, 인터넷을 통한 농산물 직거래 사업을 펼쳤다고 한다. 현재까지 오리농법에 의한 쌀과 여러 가지 유기농 농산물로 고소득을 올리는 선진 농촌마을로 자리매김을 하였다고 한다. 요즘에는 이곳에서 폐교를 활용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는데 오늘 마침 농촌체험 영어캠프가 있어서 시끌벅적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촌에 활력을 줄 수 있는 대표적인 농촌혁신 사례의 하나로 볼 수 있는 곳이다.

 

 

 화천군 토고미마을의 여름 영어캠프.

 토고미마을의 체험객들을 위한 유람시설.

 오리농법을 나타내기위해 논 가운데에 오리 모형을 설치하였다.

 

 토고미 마을의 이정표 

 

 북한강을 거슬러 올라가 화천댐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화천댐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에 완공되었다. 화천댐은 수력발전의 방식이 수로식이어서 발전시설이 댐과 떨어져있으며, 터널식 수로를 따라 떨어지는 물의 낙차를 이용하고 있다. 해방 후에 북한에 속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발전시설이 파괴되기도 하였고, 전투가 치열했던 장소라고 한다. 파로호(破虜湖)라는 이름은 당시 북한군과 중공군을 이곳에서 크게 격퇴시킨 후 ‘오랑캐를 격파했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화천댐 아래쪽에 있는 ‘꺼문다리’로 이동하였다. 1945년 화천댐의 완공과 함께 건설된 다리로서, 교각은 콘크리트이며 철골 구조물 위에 목재상판을 올렸다.  상판의 목재에 부식을 막기 위해 검정 콜타르를 칠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교각에는 한국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하며, 최근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고 한다.    

      

 

 화천댐에 딸린 수력발전소.

 

 화천댐 아래, 꺼문다리.

 꺼문다리에서 기념사진을 한 컷....

                           

  우리는 잠시 후 민통선(민간인 통제선)을 지나 평화의 댐 안쪽에 위치한 안동철교에 도착하였다. 북한강을 가로질러 철제로 만들어진 다리인데 자동차가 지나는 곳이다. 민통선 안쪽이다 보니 원칙적으로 사진촬영을 제한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까운 곳에 DMZ가 있을 터인데, 북한 쪽에서 시작되는 북한강의 물줄기가 이곳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은 국제법상 다른 나라이니, 북한강은 국제하천이라 할 수 있고 그래서 남북한간의 상호협력이 필요한 부분이라 하겠다.  

  

 또한 이곳은 천연기념물로 정해진 수달이라는 포유동물의 서식지로 알려져 있는 곳인데, 사람들의 활동이 제한된 곳이기에 서식하기가 유리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휴전선이 그어진 북한강에서 남북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수달이 앞으로 남북화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하고 통일을 위한 상징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가져본다. 실제로 화천군에서는 ‘한강이’로 이름 붙여진 통일대사 수달 1마리를 작년에 방사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다음은 이번 답사를 통해 꼭 보고 싶었던 ‘평화의 댐’에 도착하였다. 먼저 댐의 안쪽을 둘러보고 나서 나중에 댐의 바깥쪽을 살펴보게 되었다.

 

 

 평화의 댐. 아래쪽에서 바라봄.

 평화의 댐,  조감도. 오른쪽이 상류.

 평화를 상징하는 종이 댐 아래쪽에 설치되어있다.

 

 평화의 댐 바로 아래쪽 풍경.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와 양구군 방산면 천미리 사이에 만들어진 평화의 댐은 북한강의 파로호 상류에 위치하며, 북한의 금강산댐(철원군 임남면 소재)에 의한 수공(수공)대비를 주 목적으로 국민성금과 함께 1989년에 1단계로 완성되었다. 당시 독재정권 시절 언론에 의해 크게 부풀려진 사실이 나중에 밝혀지면서 국민들이 크게 분노를 하기도 하였던  문제의 댐이다. 이후 금강산댐 정상부의 훼손에 대한 대비책으로 댐의 높이를 80m에서 125m로 높이는 2차 공사를 2005년에 완공하였다. 댐의 하단부에는 직경 10m의 배수구 4개가 있고 수문 장치가 없기 때문에 평상시 물을 가두지 못하고  단지 홍수의 위력을 약화시키는 기능만을 수행할 뿐이다. 이런 형태의 댐은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남북대치상황이 만들어낸 특별한 댐인 것이다. 처음부터 안보를 목적으로 만든 댐이기에 옆에는 안보전시관이 있고 그래서 ‘평화’라는 단어는 여기에 잘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통일 후에는 댐으로서 기능을 보강하는 공사가 다시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댐을 기준으로 민통선이 지나는데 댐의 아래쪽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훨씬 보기 좋았다. 석축으로 쌓은 댐은 나에게 웅장한 느낌을 주었다. 이곳 전망대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대형 종(鍾)이 매달려 있었는데 만져보니 플라스틱이었다. 평화의 댐에 속았던 나에게  플라스틱 종은 그저 애교로 느껴진다. 우리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양구군 방산면을 거쳐 양구읍에 있는 숙소로 향하였다.

    

  분단으로 인해 쪼개진 양구(楊口)군은 1읍, 4개면으로 구성된 인구 2만 여명의 군세가 작은 지자체이다. 그동안 DMZ 접경지역으로서 생활의 불편을 겪어야만 했고, 댐건설로 인해 외부와의 교통이 어려워지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 놓였었다. 하지만 최근 국토의 정중앙점이 양구군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의미를 널리 알림으로써 이제는 양구군을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리적 의미를 지역의 상징으로 연결시킨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국토 정중앙의 의미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하는데 크게 기여한 강원대학교 지리교육과의 김창환 교수님은 그래서 양구군에서는 크게 환영받는 홍보대사인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 교사연수도 이곳 양구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숙소가 작아서 2군데로 나누어 한 방에 2명씩 숙박을 하였다. 저녁식사 후에는 자유시간이라 근처에 있는 명품전시관(특산물 홍보관)을 비롯하여 양구읍의 시가지를 둘러보았다. 작은 도시지만 길은 바둑판모양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고 박수근 미술전시관을 비롯하여 향토유물전시관, 선사박물관, 청소년 수련관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시내에는 군인들의 출입이 많아 군인용품 판매점을 비롯하여 군인을 상대로 한 업체가 많았는데, 군인들은 양구의 지역경제를 지탱하는데도 크게 기여를 하는 것 같다.

  

연수 2일차(8월 7일)

 아침 7시에 식사를 마치고 7시 30분에 버스에 올랐다. 양구군 해안면에 위치한 침식분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펀치볼을 보기 위하여 아침 일찍 서두른 것이다. 김창환 교수님의 표현대로라면 지리학도들에게 이곳은 성지인 셈이고, 오늘 우리의 답사는 성지순례(聖地巡禮)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양구읍의 북쪽에 위치한 동면을 지나 가파른 도솔산의 돌산령을 오른다. 오르다보니 아래 쪽에 터널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가 완공되면 해안면의 접근시간이 훨씬 단축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공사로 귀중한 침식분지가 행여나 훼손될까 걱정된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버스가 오르는데, 아래쪽으로는 운해가 펼쳐져 있었다. 모두들 차창 밖을 보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교수님도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잠시 버스를 멈추게 하고 내려서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양구군 동면에 해당하는 이곳도 또 하나의 산간분지를 형성하는 곳이었다.

    

 

 돌산령에서 내려다본 양구군 동면의 산간분지.

 

  우리는 곧바로 목표지점인 돌산령 정상에 도착하였다. 민통선에 해당하는 곳이라 군관계자들의 민간인에 대한 신분 확인 절차가 필요하였다. 날씨는 흐려지면서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진다. 만약 출발 전부터 비가 왔다면 오늘 일정은 변경되었을 것이다. 그나마 하늘이 이 정도로 도와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모두들 미리 준비한 우산과 비옷을 꺼내 비바람을 막아본다. 난 설마 하는 마음으로 우산만 준비했는데 조금은 후회가 되었다. 뭐든지 유비무환이라는데....... 다행히 굵은 빗방울이 아니고 이슬비 정도로 내리는 비였다. 지금부터 우리는 해안분지의 능선을 따라 걷게 되는데, 이제부터가 발로 하는 진짜 답사(踏査)라 하겠다. 군사용 도로이기에 비교적 폭이 넓고 가파른 곳은 콘크리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주변 경치가 뛰어나기에 길은 비교적 평탄하기에 힘들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좋은 트레킹 코스라 하겠다. 해안분지의 서쪽 산록에 해당하는 이곳은 왼편으로는 양구군 동면에 속하는 지역으로 DMZ가 가까이 있고, 오른쪽은 양구군 해안면(亥安面)에 속하는 곳으로 바로 해안분지가 나타나는 곳이다. 참고로 해안면은 면 전체가 분지에 해당하며 민통선 안에 위치한다. 옛날에 뱀이 많았는데 뱀의 천적인 돼지를 기르면서 편안해졌다는 이야기가 ‘해안’(亥安)이라는 지명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출발하기 직전 해안분지 안에 하얀 구름이 가득 차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환상적인 모습이었다. 이곳이 펀치볼이니 수박화채 대신 하얀 솜사탕을 담은 그릇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전쟁 때 미군들이 붙였다고 하는 펀치볼(Punch Bowl)이라는 이름은 봉우리에 올라서 보면 엇비슷한 높이의 산들이 뺑 둘러서 있기에 가장자리가 뾰족뾰족하고 넓적한 화채그릇처럼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때 운석의 충돌로 형성되었다는 설도 있었으나 그것을 증명하는 지질학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돌산령 능선에서 바라본 양구군 해안면 분지의 운해. 화채그릇에 솜을 담은듯....

 

  양구군 해안면 서부산록의 능선을 따라 DMZ를 향해 트레킹을 하였는데 가히 환상적인 주변풍경을 볼 수 있었다.  

 

 

 도로변의 출입금지를 뜻하는 녹슨 철조망. 분단상황을 나타내준다.

 

 해안분지의 모습.

 곳곳에 피어있는 산나리.

 


  이곳 군 관계자들이 우리를 호위하기 위하여 군용 지프차가 뒤를 따랐다. 동시에 김창환 교수님이 손수 운전하는 지프차도 함께 따랐다. 교수님은 우리의 도착시간을 앞당기기 위하여 뒤쳐진 분들을 실어서 앞쪽으로 수송하는 일을 수행하였다. 군용 지프차도 대민 서비스 차원에서 함께 수송을 도왔다. 그냥 걸어도 되는데 이후 답사일정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서 그러시는 것 같다. DMZ HELP 센터라고 했는데 그 ‘헬프’의 정신을 살려 서비스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열정적인 모습에 감동을 하게 된다. 우리는 대우산(大愚山 1,179m) 정상을 거쳐 가칠봉 정상에 있는 전망대까지 걸었다. 봉우리의 기복이 확연하지 않아 능선 길은 평탄하였다. 길 양옆으로는 출입을 제한하는 가시가 붙은 철사줄이 이어지는데 군데군데 지뢰(mine)라는 표식이 붙어 있다. 분단의 현장이라는 실감이 나기도 하지만, 철사줄 너머엔 이름모를 들꽃들이 인간들을 비웃듯 예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약 2시간의 트레킹을 마치고 우리는 가칠봉 정상의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전망대에서 우리는 군 관계자로부터 이 곳에 대한 개황을 들었다. 가칠봉(加七峰 1,242m)은 금강산의 1만 2천봉 중 남쪽에 위치한 7개의 봉우리 중 가장 끝으로 더하는 7번째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금강산의 줄기가 이어지는 곳이어서 날씨가 맑으면 바로 눈앞에 금강산이 보인다고 하는데 오늘은 아쉽게도 날씨가 흐려서 보이질 않았다. 남방한계선상에 위치한 가칠봉은 북방한계선과의 거리가  780m로서 DMZ 내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라고 한다. 원래 DMZ의 폭은 4Km가 되어야하는데, 전략적인 측면에서 남북이 서로 한계선을 앞쪽으로 전진시키다보니 이렇게 근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관측에 의하면 북한군들은 평소 자체적인 먹거리 조달을 위해 비무장지대 안에다가 경지를 조성하여 농사를 짓기도 한다고 한다. 이곳 정상부에는 통일 기원탑도 있지만 눈에 띄는 것은 야외 수영장이다. 남북대치의 현장에 만들어진 수영장은 무척 어울리지 않는다. 물이 없어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것 같은데, 대북 심리전을 위해 만들었으며, 1992년에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수영복 심사장면을 여기에서 보여주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한 코메디가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우리는 교수님으로부터 DMZ의 의미에 대해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흔히 155마일로 알려져 있는 휴전선(군사분계선: MDL)은 동해안 고성에서부터 서해안의 임진강하구까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 선으로부터 남북 2Km 후퇴하여 DMZ(비무장지대)가 설정되었다. 그리고 서쪽으로 이어지는 한강하구 중립지역, 북방한계선(NLL) 등이 군사분계선의 역할을 한다. 하지만 최근 DMZ의 길이를 새롭게 재어보니, 155마일이 아니라 이보다 작은 148마일(238Km) 정도라고 한다. 측정도구의 향상으로 조정되는 값이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는 다시 가칠봉 아래쪽으로 이어지는 비포장의 군사도로를 따라서 약 1시간 반 가량을 더 걸었다. 하산 길에 비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드러나는 해안분지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우리는 산 중턱에 위치한 제4땅굴(갱도) 안보교육관에 도착하였고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라 해안면의 중심지를 향하였다. 12시 50분경, 해안면 현리 남원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곧바로 을지 전망대를 향하였다. 비구름이 다시 덮기 전에 해안분지를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버스가 힘겹게 지그재그로 올라 드디어 DMZ와 해안분지가 양쪽으로 보이는 을지 전망대(930m)에 도착하였다. 먼저 우리는 전망대 내부에서 DMZ를 관찰하였다. 울창한 숲이 조성된 이곳은 밀림지대를 연상케 하는데 DMZ 내에서 이곳이 생태적으로 가장 잘 보존된 구역이라고 한다. 군데군데 북한군이 조성한 경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에는 안개가 끼어 역시 금강산이 보이질 않았다. 이곳은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모양인데 대부분 그 목적은 DMZ를 조망하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우리는 전망대 밖으로 나가 해안분지를 제대로 관찰하였다. 이곳에서 교수님은 보드판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해안분지에 관한 설명을 자세하게 해주셨다.

  

분지(Basin)란 화분처럼 생긴 지형으로서, 분지를 형태별로 분류하면 해안분지처럼 물길의 출구가 하나인 폐쇄형 분지, 춘천분지처럼 물줄기가 분지내로 관통하여 흐르는 관통형 분지, 서울처럼 한쪽이 크게 트인 U자형 분지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곳 해안분지는 화강암의 심층풍화 후 토양 포행 및 우세(雨洗)에 의해 풍화물이 제거되면서 형성된 지형이라고 한다. 선캄브리아기의 변성퇴적암과 중생대 쥬라기에 관입한 후 심층풍화를 겪은 화강암이 차별침식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분지 외곽에는 변성암이 분포하고, 분지 내에는 풍화된 화강암(새플롤라이트)이 분포하는 것이다. 해안분지는 남북 길이 8㎞, 동서 길이 7.5㎞의 장방형 침식분지로서, 유역면적이 넓지 않아 큰 하천이 발달하지 않았다. 해안분지는 주변의 분지보다 약 300m 정도 높은 곳에 형성된 산간분지라는 점이 특이하다. 그 이유는 신생대 3기에 한반도가 융기하면서 하방침식이 활발해졌는데, 그때 해안분지 주변을 흐르는 인북천과 서천이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침식분지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해안분지를 우리는 실컷 눈으로 보고 또한 카메라에 담았다. 해안분지는 가장 낮은 중앙의 분지저가 약 500m 정도이며, 주변 산지는 약 1,000m 정도이다. 경사 변환점을 이루는 해발고도는 대체로 700m로서 그 아래쪽의 산록완사면을 따라 고랭지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이곳의 농가소득은 높은 편이라고 한다. 분지 내 낮은 지대에서는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주변부에서는 밭농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분지 내에는 잔구상의 구릉이 나타나는데 심층풍화가 이루어진 마사토로서 이곳을 개간하여 경작지로 활용한다고 한다. 큰 하천이 없어 홍수피해가 적으므로, 취락은 물을 구하기 쉬운 저지의 지하수대를 따라 형성이 되어있었다. 일반적으로 하천 하류에서 범람원을 피해 구릉지를 따라 형성되는 취락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비무장지대를 조망할 수 있는 을지전망대.

 해안분지를 내려다보며....

 

  

 양구군 해안 분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전형적인 산간분지에 해당하는 곳.

 

우리는 을지 전망대의 아래쪽에 위치한 제4땅굴을 견학하였다. 해발고도 750m 정도에 위치한 이곳은 남침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만든 시설이라고 하는데, 1989년 3월 3일 발견되었다. 너비 2m, 높이 2m, 깊이 지하 145m, 길이 약 2.1km에 달하는 암석층 굴진 구조물이다. 우리 측에서 땅굴의 징후를 포착한 후 갱도의 측면을 뚫고 들어가 발견한 것인데, 이곳의 화강암은 풍화를 전혀 받지 않은 상태이다. 남쪽에서 만든 굴은 첨단장비로 만든 것이어서 그런지 직경이 크고 원통형으로 깔끔하게 뚫어진 상태였고, 북쪽에서 뚫었다는 굴은 아무래도 좁고 조잡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안쪽까지 한참 걸어 들어가서 레일을 이용한 궤도차에 올라 땅굴을 몸으로 체험하기도 하였다. 현재는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활용하고 있지만, 통일 후에는 이런 시설들이 어떤 용도로 쓰일지 궁금하기도 하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데 우리는 다음 장소인 해안분지의 당물골이라는 곳을 찾아갔다. 분지내의 물이 모여서 빠져나가는 유일한 출구, 비가 오고 있어서 하천의 물은 부유물질이 많아 탁도가 높았다. 지금도 풍화물질이 침식을 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분지 내 하천은 수지상(樹枝狀) 내지는 구심상(求心狀) 패턴을 보이며 1차수부터 4차수까지 나타난다고 한다. 이곳 당물골은 화강암과 변성암의 접촉부분을 따라 물의 흐름이 이어진다. 이곳에서 빠져나가는 하천은 분지 밖 소양강의 지류인 인북천(인제군 서화면)을 만나게 되는데, 협곡의 지형에 100m 이상의 고도차가 나타나기 때문에 물길은 여울을 이루며 급하게 흘러 나가는 곳이다.  그래서 두 하천이 만나는 부분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하방침식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해안분지내 물이 외부로 빠져나가는 지점에 위치한 물골교.

 분지내 하천수가 모여 빠져나가는 지점.


우리는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인제군 서화면 원통리를 지나 다시 숙소인 양구읍으로 돌아왔다. 저녁식사 시간에는 양구 군수님도 함께 자리를 하였는데, 지역사랑에 대한 군수님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연수 3일차(8월 8일)

  

 오늘은 어제보다 여유가 많은지 늦은 시간에 출발하였다. 9시반경 버스는 출발하였고, 금강산가는 길(내금강의 최단코스)이라고 하는 31번 국도를 이용하여, 국토정중앙에 해당하는 지점(point)을 찾아갔다. 이곳에서 말로만 듣던 국토의 정중앙 점을 찾아가는데 역시 비가 내려 질컥거리는 산길을 걸어야 했다. 나지막한 산의 중턱까지 개설된 산길은 아직 정비가 안 되어서 걷기가 불편하였다. 더구나 이곳은 군의 사격장이 곳곳에 있어서 복잡한 지역이기도 하다. 드디어 우리는 국토정중앙점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양구군 남면 도촌리(배꼽마을)에 속하며, 동경 128도 02분 02.5초, 북위 038도 03분 37.5초의 경위도상의 위치를 갖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배꼽이라 할 수 있는 곳인데, 예상보다 초라하였다. 산을 깎아 만든 평탄지의 가운데 부분에 콘크리트 구조물만 달랑 위치하고 있었다. 아직은 주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인데, 나는 또 하나의 성지를 발견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아직은 국토지리정보원으로부터 공식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 상태지만, 곧 인정을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하였다. 우리는 한명씩 차례로 그 구조물에 올라서서 폼을 잡고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였다. 교수님은 이곳에 꽤 열정을 바쳐서 그런지 빗속에서도 설명이 길어진다.  요즘 여러 지자체마다 지리적인 위치를 가지고 지역을 홍보하려고 하는데, 이곳은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합한 우리나라 영토의 4극 지점을 기준으로 설정한 중앙점이라고 한다.

 

 

 국토의 정중앙에 위치한 양구군.

 

국토의 중심을 강조한  양구 쌀. 

 

 군인들의 출입이 많은 양구읍내 풍경.

 

 양구군 남면 도촌리 산중턱에 위치한 국토의 정중앙점. 아직 공사중이다.

 


  우리는 주차장이 있는 산 아래로 내려왔는데 그곳엔 국토의 정중앙의 의미를 살려 최근에 만든 정중앙 천문대가 있었다. 천문대 입구에는 한반도 모양의 석재에 4극점과 중앙점을 새겨 놓은 조형물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안에 들어가니 젊은 천문대장님이 우주와 천문에 관한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고, 영상실에 들어가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보는 자세로 영상물을 시청하기도 하였다.

 

                 국토정중앙 천문대. 

 

 


  도촌리에서 우리는 막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오후 일정을 재촉하였다. 양구읍을 지나 다시 북쪽에 위치한 방산면으로 향하였다. 고방산리 부근에 있는 민통선을 지나 북쪽으로 가는데 북한 지역에서부터 내려오는 수입천(파로호로 연결되는 북한강의 지류)은 비로인해 흙탕물로 변하였고 그 수량도 점점 증가하고 있었다. 첩첩산중이지만 곳곳에 군대막사가 위치하고 있었고, 개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어서 그런지 곳곳에 아름다운 풍광을 지니고 있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두타연은 최근에 일반인들에게 공개한 관광명소이다. 방산면 건솔리에 위치한 두타연은 수입천의 지류에 있는데 북한쪽에서 흘러오는 물이 동면 사태리의 DMZ를 통과하여 이곳을 통과한다. 주위 산세가 수려하고 오염이 되지 않아 천연기념물인 열목어의 최대 서식지로 알려져 있다. 과거 존재했던 두타사라는 절의  이름을 따서 붙여진 두타연의 ‘연(淵)’은 일명 ‘소’, ‘탕’, ‘담’ 과 같은 의미로   폭포아래에서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폭호에 해당하는 말이다. 폭포는 와류에 의해 기저부가 파괴되면서 계속해서 후퇴를  하게 되는데 일종의 두부침식(頭腐浸蝕)이라 할 수 있다.                                            

   

두타연은 10m 높이의 폭포를 가지고 있으며 비가 와서 늘어난 계곡물이 좁은 바위사이로 우렁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데, 그 웅장함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탱크 저지를 위한 구조물을 가까스로 통과하면서 우리는 다시 방산면 현리에 있는 방산자기박물관을 향하였다. 이곳은 예로부터 고령토(고령석)가 유명하여 자기를 만들었고, 북한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원료와 제품을 운반하였다고 한다. 자기박물관 뒤편으로 흐르는 수입천에는 높이 15m 정도의 직연폭포가 있어서 우리는 그곳을 찾아갔다. 그 아래에는 20m 정도의 폭호가 있다고 한다. 빗물이 불어나서 폭포의 위치가 구별되진 않지만, 하상의 화강암 지대를 통과하는 물줄기가 역동적인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두타연 폭포

 협곡을 흘러내리는 물이 폭포를 이룬다.

 소나기 후 흙탕물이 좁은 목을 통과하기 위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두타연 윗쪽.

 

 직연폭포.

 

  우리는 연수를 마무리하는 수료식을 위해 양구읍의 양구문화원에 도착하였다. 수료식은 간단하게 진행되었는데 김창환 교수님께서는 연수 참여자 한사람 한사람에게 직접 수료증을 전달해 주셨다. 전체 기념촬영과 함께 우리는 3일간의 연수를 마무리 하였다. 이번 연수를 진행한 강원대학교 부설 DMZ HELP센터 집행부의 팀웍과 치밀한 준비성에 감동을 받았다. 특히 연수를 총괄하신 김창환 교수님은 연수기간 3일 동안 열정적으로 답사를 이끌어주셨다. 답사장소에 도착하여 이루어지는 설명뿐만 아니라, 버스 이동 중에도 수시로 마이크를 들고 주변 경관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셨다. 이 글을 빌려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또한 양구 군수님을 비롯한 양구군청 관계자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표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DMZ 연수를 기획하신 조성호 답사부장님께도 수고 많으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 연수를 통해 DMZ의 실태와 그 의미를 생생하게 알게 되었고, 더불어 춘천, 양구, 화천 지역의 지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장소를 새롭게 알게 된 뜻 깊은 연수였다고 생각한다.

 

 

이번 연수를 마무리하는 폐회식 장면. 정리말씀을 해주시는 강원대 김창환 교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