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누리(국내답사)

울릉도와 독도 답사기

뿌리기픈 2007. 12. 9. 19:44

 울릉도, 독도 답사후기

 


       주관 : 전국지리교사모임

        일자 : 2005. 8. 16- 8. 19(3박 4일)

참가자 : 37명

지도교수 : 전북대학교 장호 교수님

답사 기록자 : 정읍여자중학교 사회과 교사 박래철 

  

 

[독도에 상륙하여 기념사진]

 

 전지모 회원은 아니지만 지리전공자로서 관심이 있어 가끔씩 전지모 홈페이지에 들어가 본다. 그러던 중 이번 울릉도, 독도 직무연수에 관한 안내 메일을 받게 되었고 이번 연수의 특성상 35명만 모집한다 하길래 바로 다음 날 서둘러 은행에 가서 경비 35만원을 입금하였다. 나중에 알아보니 정원이 2~3시간만에 차버렸다고 하는데, 난 18번째에 해당되므로 일단 참가자격을 획득하였고 그 기쁨이 여간 큰 게 아니었다. 지금껏 우리나라 국토 곳곳을 다녀보았고 해외여행도 세 곳이나 가보았지만 울릉도엔 기회가 되질 않아 가보지 못한 상태여서 더욱 기대가 되었다. 마치 수학여행을 앞둔 학생들의 마음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연수를 기다렸다.


 

1일차 (8. 16 화요일)

 육지에서 울릉도까지는 배를 타고 가는데 3곳(묵호, 죽변, 포항)에서 출발한다. 그중에서 죽변에서 출발하는 게 가장 최단거리이긴 하지만 이용자 수나 항구조건은 포항이 앞서기 때문에 우리도 포항에서 집결하기로 하였다. 출발시간은 아침 10시이고 집합시간은 9시까지이므로 난 이 시간에 도착하기 위해 전날 저녁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잠깐 눈을 붙인 다음 새벽 1시경 정읍을 출발하였다. 출발 전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미리 숙박을 할 것인지 그냥 승용차를 몰고 갈 것인지 고민을 하다가 결국 경비 지출면과 편리성을 생각하여 승용차를 타고 가기로 하였다. 포항은 운전자로서는 초행길이고 원거리 운전에 대한 부담 때문에 망설였던 것이다. 새벽 1시 20분, 짐을 챙겨 홀로 출발하였다. 호남고속도로를 달려 광주까지, 88올림픽고속도로를 이용하여 대구까지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아침 6시경 포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야간운전에 대한 부담과 곳곳에서 발견되는 새벽안개 때문에 쉬운 운전은 아니었다. 대중가요 가사중에 “새벽안개 헤치며...”라는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도착 직전 동해바다에서 빨갛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포항에 들어서는데 기분이 좋았다. 또한 북부해수욕장에서 아침운동을 하는 포항시민들의 모습이 아주 활기차게 보였다. 난 간단히 아침식사로 해장국을 먹게 되었는데 역시 전라도 음식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이 떨어진다.

[정읍에서 포항까지 4시간 40분 소요, 주행거리 약360Km]

 

눈을 붙이기에는 어중간한 시간이고 마땅한 장소도 없어 약속시간보다 훨씬 일찍 터미널 대합실에 가서 기다렸다. 기온은 높았지만 배가 출발하기에는 맑은 날씨로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 9시경 장호교수님을 비롯한 이번 연수에 참여하는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사회과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다. 특히 대학시절 우리를 가르쳐주신 장호 교수님과 같은 전북대학교 지리전공 후배들도 셋이나 있어서 더욱 든든하였다. 처음엔 전북지역에서 나 혼자만 참여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우리는 조를 편성하여 조별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안내를 받았다. 연수 중 장소 이동이나 방 배정 그리고 저녁에 열리는 자체 평가회까지 모든 것을 조별로 운영을 하였는데 지나고 보니 효과적인 방법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번 연수에 참여하는 교사들의 나이구성은 정확히 알 수는 없어도 대략 20대와 30대 중심이었고 나를 포함한 40대 정도가 소수로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남자보다는 여자 선생님들이 다수여서 조별 구성에서도 6개조 중 4개조가 여선생님들이 차지하였다. 갈수록 여성화되어가는 교직사회의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경 선플라워 호(편도 승선비가 5만원이 넘는데 울릉군민은 반액으로 할인해준다고 함)라는 대형 여객선을 타고 포항을 뒤로하며 울릉도를 향하여 힘차게 출발하였다. 오늘따라 날씨도 맑고 동해바다는 예상과는 달리 호수처럼 잔잔하였다. 따지고 보면 동해바다는 한반도와 일본열도에 둘러싸인 지중해가 아니던가?

예정된 3시간이 지나 오후 1시경 드디어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였다. 멀미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귀밑에 붙이는 약도 바르고 먹는 약도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배가 워낙 커서 흔들린다는 느낌이 없어서 그런지 별 탈 없이 도착할 수 있었다. 멀리서 보는 울릉도의 크기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크기보다는 훨씬 커 보였다. 곳곳에 우뚝 솟아오른 산들과 급경사의 해안에 어렵게 개설된 좁은 해안도로가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종상화산의 특징을 갖는 울릉도는 순상화산의 제주도와는 다른 화산지형으로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울릉도 도동항에 도착하여....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명한 바다 속이어서 수심도 측정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눈으로 상상되는 깊이보다 실제로는 훨씬 깊다고 한다. ‘삼발이’라 부르는 콘크리트 구조물을 쌓아 만든 인공 방파제와 선박의 접안시설이 비교적 잘 조성된 도동항은 좁은 계곡을 따라 주거지역이 산 쪽으로 길게 뻗어 있었고 경사가 급하여 걷는 게 힘들다는 느낌으로 약 10분 거리의 숙소(울릉호텔)로 향했다. 방을 배정받아 짐을 풀고 이어 구내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도동은 울릉도에서 저동 다음으로 큰 주거지역으로 여객선이 도착하는 장소이고 관광객을 상대로 살아가는 상가와 숙박시설이 밀집된 지역이다. 주변의 파란 바다와 푸른 산이 펼쳐진 녹색지대 속에 길다랗게 형성된 콘크리트의 회색지역이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 도동항 지역은 평지가 부족하기 때문에 땅값이 비싸고(최고가격 평당 2,500만원), 이로 인해 모든 건물과 도로가 육지와 달리 작고 오밀조밀하여 마치 소인국에 온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물론 역사적으로 이곳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수산업을 위해 개척한 곳이었고 그런 이유로 일본식 가옥이 지금도 곳곳에 남아있어 그때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만든다. 일본이나 이곳 울릉도의 가옥구조가 축소지향적인 것은 아마도 산지가 많고 평지가 부족한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곳에 있는 택시는 경사면을 항상 달려야 하기 때문에 4륜 구동의 SUV차량이 일반적이고 버스도 좁은 도로 탓에 최대 35인승의 소형 버스가 운행되고 있었다. 울릉도의 지도를 펼쳐 놓고 보면 대체적으로 5각형을 이루고 있는데 급경사의 산지로 인해 좁은 계곡마다 형성된 하천의 길이도 짧고 그나마 비가 오지 않을 때엔 건천을 형성하고 있었다. 급경사의 화산지형과 화산암의 특수성 때문에 농업용수나 생활용수 확보가 어렵게 보이기도 한다. 육지에서처럼 대형 저수지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계곡 상류에서 파이프로 얻는 물을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울릉군이고 (한때 강원도나 경남지역에 포함되기도 했음) 1읍(원래 남면지역이 울릉읍으로 승격됨), 2개면(북면과 서면)을 형성하고 있다. 인구규모는 한때 3만 명(1974년 최대)이었다가 이촌향도 현상으로 인해 지금은 약 9천명으로 줄었다고 한다. 주요 마을은 저동(어업전진기지), 도동(관광업과 상업이 발달한 지역으로 군청 소재지), 천부(북면 소재지), 남양(서면 소재지), 현포 등인데 과거 조선시대까지는 육지에서 좀더 가까운 서북쪽의 태하 마을이 울릉도의 행정중심지였다고 한다.

 

 

 좁은 골짜기에 가옥이 가득 들어차있는 울릉도의 중심지이자 인구밀집지역인 도동

 

 

 독도박물관에서 독도의 모형을 보면서...

 독도박물관에서 내려다본 도동 인구밀집지역.

 울릉도 도동항의 여객선.

 

 도동항 여객터미널. 뒷쪽 지형 역시 급사면을 이룬다.

 

우리는 2시 30분에 집합하여 오후 일정을 시작하였다. 먼저 도동항에서 가장 안쪽 산 밑에 있는 향토박물관과 독도박물관(삼성그룹에서 기증함)에 가서 견학하였다. 역시 경사도가 심하여 올라가는 데 힘이 들었다. 평지에 살다가 이런 곳에 오니 아직 적응이 안 되는 것 같고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이 한편으로 존경스러웠다. 뭐든지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생활속에 이곳 주민들은 따로 신체운동을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인간은 어차피 열악한 환경에 쉽게 적응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불편하다는 느낌도 쉽게 잊어버리는 것 같다. 향토박물관에는 선사시대 유물부터 최근의 생활모습까지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있어 울릉도의 과거와 현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약수공원 내에 같이 위치한 독도박물관은 개관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새 건물로 보였다. 일본 정부의 끊임없는 억지주장으로 인해 촉발된 독도 영유권 문제로 인해 이제는 독도가 우리 국민들의 커다란 관심사가 되었고 그로인해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모습이었다. 실내에는 독도에 관한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그중 ‘동해라는 지명보다는 조선해(Korea sea)라는 지명이 적절하다’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4시경 우리는 도동항에서 죽도로 가는 유람선을 탔다. 울릉도 동북쪽에 위치하며 해안에서 가깝게 보이는 부속 섬 죽도를 가면서 울릉도 동쪽 해안의 모습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 아직 해안도로가 완전하게 연결되지 못했는데 그 부분이 바로 동북쪽인데 선상에서 관찰해보니 암석지대로서 도로개설이 쉽지 않아보였다. 유람선이 출발하면 항상 따라다니는 것은 바로 갈매기이다. 수 십 마리가 떼를 지어 오는데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이라는 과자를 먹기 위해서이다. 특히 요즘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아 어부들이 던져주는 오징어 내장도 구경하기 힘들어 배가 고프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갈매기들도 안내원의 말씀을 빌리면 집단별 구역이 정해져 있어 한 무리가 끝까지 배를 �아 다니지는 않는 것 같았고 다른 지역의 갈매기들과 바톤 터치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울릉도의 부속섬으로 북동쪽에 위치한 죽도라는 섬을 바라보며....

 죽도의 접안시설과 정상부로 오르는 계단.  종상화산의 특징을 보여주는 급경사.

 죽도에서 바라본 울릉도 쪽.

 죽도의 정상부 평탄면.

 죽도에서 볼 수 있는 화산활동의 흔적인 부석(물에 뜰 정도의 가벼운 돌)

 죽도에  한 가족이 살고 있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소득을 올리는듯....

 

 죽도내 자가발전을 위한 시설.

 죽도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염풍화의 흔적이 남아있는 바위.

 

 우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죽도에 도착하였다. 이곳 죽도의 지형적 특색은, 상층부는 비교적 평탄지역이어서 농업과 주거가 용이하게 보이지만 해안은 온통 절벽이어서 접근이 어렵게 보였다. 그렇지만 해안에 선박의 접안시설을 하였고 케이블카와 기복을 극복하는 나선형 계단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이 모든 게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다. 이곳은 유인도로서 1세대가 이곳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고 이 섬 전체를 관리하며 소유자로 되어있다고 한다. 최근 <인간극장>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도 출연하여 그로인한 유명세 때문에 관광수입에도 큰 도움을 받는 것 같았다. 유람선 경비와는 별도로 섬에 오르니 입장료를 따로 내라고 하여 약간 불쾌한 느낌을 받긴 했지만 남의 땅에 들어섰으니 입장료를 내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도 든다. 뛰어난 경치 속에서 멋진 주택을 조성하여 자체 전기발전시설도 갖추고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식구들의 모습이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섬에서 산다는 것은 보기는 좋아보여도 막상 살라고 하면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게 우리 도시문명인들의 일반적인 생각이 아닐까? .

 

우리는 자유시간을 갖기 전에 더덕밭이 넓게 펼쳐진 섬의 정상부에 모여서 교수님의 설명을 들었다. 죽도를 포함한 울릉도의 지형학적 형성과정에 대한 이야기였다. 밭농사 때문에 드러난 노두의 중간 토양층을 관찰해보니 콩알만한 부석이 포함된 토양이었다. 또한 이런 토양이 여러 층을 이루는데 이는 신생대 시기 일본을 포함한 주변지역에서 여러 번에 걸친 화산폭발의 영향으로 하늘로 솟구친 화산재(다양한 크기의 쇄설물)가 여기까지 날아와서 겹겹이 쌓여 형성되었다는 설명이었다. 그리고 죽도는 대체적으로 평탄한 정상부(약 80m의 고도)와 주변의 절벽을 특징으로 하는 지형을 갖는데 이를 해안단구로 볼 수 있으며 그 증거로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마도가 높은 자갈을 이곳 정상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지도상으로도 주변 관음도와 더불어 정상부의 등고선이 완만하고 평탄하여 해안단구로 인정하기에 충분하였다. 정리하면 이곳 죽도는 별도의 화산폭발의 화구를 갖는 곳이 아니고 울릉도 본도가 폭발하면서 쏟아낸 현무암이 기저부를 형성하였고 그 위에 여러 번에 걸쳐 화산재가 쌓인 곳(화산회토)이라고 한다.

이곳의 식생은 난류의 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답게 상록활엽수와 관련된 이른바 난대성 식물이 관찰되었다. 대나무와 후박나무, 동백나무, 소나무(해송)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해안지역의 암석들은 울릉도 지역 전체가 그렇듯이 구멍이 숭숭 뚫린 암석(타포니)으로 염풍화를 받은 상태였다.

우리는 다시 배를 타고 숙소가 있는 도동항에 도착하였고 저녁 식사 후 숙소근처 군청회의실을 이용하여 답사 평가회를 가졌다. 진행방식은 두개조가 하루의 답사를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각각 요약 발표하고 부족한 점은 교수님이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교수님의 보충 설명에 의하면, 울릉도는 동서길이 약 9킬로미터, 남북길이 약 10킬로미터로 도보이동이 가능한, 생각보다 크지 않은 섬이라 하였다. 그리고 울릉도는 바다 밑에 형성된 현무암질의 순상화산(바닥으로부터 해수면까지 약 2,000미터 정도)과 그 위에 다시 형성된 종상화산(해발 약 1,000미터의 산)의 이중 구조를 갖는 섬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현무암질의 화산은 유동성이 커서 옆으로 넓게 퍼졌고(순상화산), 그 위에 형성된 조면암질의 화산은 점성이 커서 종처럼 우뚝 솟았는데(종상화산) 화구 내 마그마의 압력이 강하여 폭발과 함께 화구 부분이 함몰되어 나리분지라는 칼데라를 형성하였고, 그 후 다시 화산이 터져 지금의 알봉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의 울릉도 최고봉인 성인봉을 포함한 나리분지 주변부의 산들을 우리는 외륜산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남자교사들끼리 숙소 앞 공터에 모여 맥주를 곁들이며 일과를 정리하는 시간도 가졌는데 예상대로 12시를 넘겨버렸다.


2일차 (8. 17일 수요일)

 

 도동에서 동해 일출을 바라보며

 

 도동에 남아있는 일식가옥.

 

 울릉도 향나무

 

 도동 거리. 평지가 좁아 도로폭도 역시 좁다.

 울릉군청 건물.

 

 숙소로 사용한 울릉호텔.

 

아침 6시 30분경부터 구내식당에서 식사가 이루어졌고 7시 40분경 오늘의 일정인 등산을 시작하였다. 등산코스는 도동에서 출발하여 성인봉을 오르고 이어 북쪽의 나리분지를 거쳐 추산리까지 가는 것이었다. 종상화산답게 등산길은 처음부터 우리를 힘들게 하였다. 급경사로 된 등산로를 오르는데 그야말로 극기 훈련을 받는 느낌이었다. 교수님이 가장 앞장서서 속도를 조절 하시고 맨 마지막엔 남자들이 따라가면서 뒤쳐지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형태였다. 전문 산악인들이 아닌 관계로 매우 느린 속도로 전진하였고 중간 중간 휴식시간을 충분히 가지기도 하였다. 처음엔 뒤쳐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결국 낙오자 없이 모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성인봉을 오르는 길에서는 울릉도의 독특한 특색을 갖는 투막집이라 불리는 가옥들이 나타났는데 전통적인 재료인 억새를 대신하여 함석이나 나무판자를 사용한 집들이었다. 전통이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결합으로 새롭게 발전한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성인봉에 오르기 전 우리는 휴식을 취하면서 교수님으로부터 지형도를 펼쳐놓고 남침반으로 定置(Orienteering)하는 방법에서부터 GPS등 첨단장비를 사용하는 방법까지 살펴보기도 했다.

산에 오르면서 나타나는 식생의 특징은 난대성 상록활엽수(동백나무, 후박나무 등)와 그 밑에 자라는 음지식물(섬바디, 고비-고사리목에 해당 )이 잘 나타난다는 점이다. 역시 난류에 의한 해양성기후가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우리는 드디어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해발 984m)에 올랐다. 이곳은 화산지형으로 말하면 칼데라(마그마 분출 후 지각내부의 공간이 무너져 생긴 함몰부분으로 화구보다 규모가 커짐)의 외륜산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꼭대기 부분이 무척 뾰족하였다. 모두들 성인봉이라 씌어진 바위 옆에 서서 기념촬영을 하였고 조금 후 나리분지가 잘 내려다보이는 지점으로 이동하였다. 송곳처럼 우뚝우뚝 솟은 외륜산들이 우묵 파인 분지지형을 형성하고 그 안에 알봉과 주변의 평탄지형이 나타나는데 이른바 이중화산의 모습이 전형적으로 발견되어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인공물이 거의 없이 녹색 융단처럼 펼쳐진 태고적 모습에 분지 바깥쪽에서 바람과 함께 날아오는 흰 구름덩어리가 환상적인 경치를 연출하였다.  

 

 

 성인봉을 오르며 발견한 울릉도의 전통가옥을 촬영하며...

 산비탈의 밭농사.

 섬바디 라 불리는 식물.

 

 상록활엽수인 줄사철.

 

 성인봉을 오르는길에서 만난 휴게소.

 음지쪽에 자라는 고비 라는 고사리류 식물.

 산의 중턱에서 바라본 저동쪽 해안.

 울릉도의 최고봉인 성인봉을 바라보며....

 드디어 성인봉에 오르다. 기념사진을 찍는 동행인들....

 

이른바 이중화산인  나리분지 내에서 바라본 주변 봉우리.

 

 나리분지내에 위치한 억새로 만든 투막집. 겨울에 적설을 대비해 처마밑에 설치한 우데기라는 시설도 보인다.

관광객을 위해 만든 전시용 가옥임.

 우데기 안쪽 모습. 벽체는 튼튼하게 나무를 가로세로 엮어 만들었다.

 

 나리분지 내의 밭작물

 각종 산나물로 비빔밥을 만들어 먹는데 밥을 넣기전의 모습.

 높은 곳에서 바라본 나리분지 모습.

 전통 가옥에 딸린 재래식 변소.

 

 너와로 만든 지붕의 전통가옥.

 안쪽의 모습.

 전통가옥. 지붕과 우데기 시설은 볏집처럼 보이지만 억새로 만들었다.

 

  우리는 이제 발길을 산 아래쪽으로 향하였다. 등산도 힘들었지만 하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2군데의 약수터에 들러 목을 축이고 드디어 나리분지로 내려갔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투막집 이었는데 교과서에 등장하는 낯익은 모습이었다. 일명 우데기 집이라고도 하는데 우데기란 겨울에 내리는 눈이 처마 안쪽으로 쌓이는 것을 막고 벽체와의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시설로서 처음에는 억새를 이용하다 나중에 나무판자, 양철, 등을 이용하였다.

울릉도의 기후그래프를 보면 비교적 연중 고른 강수량을 보이는데 여름의 강우량만큼이나 겨울의 강설량이 많다는 뜻이다. 특히 겨울철에 내리는 강설량은 대단하여 주민들의 집밖 출입을 어렵게 만들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우데기고 이런 기후특색으로 인해 모든 주택들이 건축 재료는 다소 달라도 그 얼개는 비슷한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통나무를 가로세로 겹쳐서 벽체로 쓰게 된 것은 무거운 눈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목적이고 벽체나 지붕재료로는 구하기 쉬운 억새나 나무 조각(너와지붕)을 사용하였다. 투막집 내부의 공간 배치는 일자형으로서 왼쪽부터 소마굿간, 정지, 큰방, 머릿방, 사랑방 순으로 배치가 되었음을 관찰할 수 있었고 측간(변소)은 따로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나리(羅里)분지 내 마을과 경작지가 펼쳐진 너른 들판을 관찰하면서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을 향하였다. 점심메뉴는 산채 비빔밥이었다. 나리 분지 내에서 재배되는 각종 산채(삼나물, 더덕, 산마늘)를 맛볼 수 있었다. 동동주를 곁들인 비빔밥을 맛바람에 게눈 감추듯 뚝딱 해치우고 잠시 휴식하는 동안 주인아주머니의 배려로 남교사 몇 명이 뽑혀 주인집 승용차를 이용하여 나리전망대(천부리에서 나리로 들어오는 고갯길에 만들어진 조망대)에 올라가 사진촬영도 하였다. 성인봉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달리 분지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지질시대와 관련하여 설명하자면 울릉도는  수백만년전(신생대)부터 화산분출이 이루어졌고 칼데라가 형성된 것은 대략 9,300년 전이며 그 안에서 다시 화산이 분출하여 알봉을 형성한 것은 6,300년 전인데 그것이 마지막 분출이었다고 한다. 칼데라 형성 초기에는 안쪽에 백두산 천지처럼 호수가 형성된 적도 있었는데 나중에 해안이 가까운 추산리 쪽이 붕괴되면서 물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분지 내 경작지에는 다양한 작물이 심어져 있었는데 현재 가장 흔한 것이 더덕(육지의 자연산 더덕에 비해 향이 거의 없고 부드러운 맛을 지녀 도라지로 착각하기 쉬움)이고 한때 천궁이라는 약초(울릉도의 약초는 해풍을 맞고 자라기 때문에 약효가 뛰어나다고 함)를 가장 많이 재배하였는데 인삼처럼 지력을 너무 소모시키기 때문에 재배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분지는 평균 해발고도 250미터 정도로서 비교적 서늘한 기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여름철에도 무, 배추를 경작하는 이른바 고랭지 농업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곳 울릉도는 일제강점기 이후에 본격적인 거주와 농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경작의 역사가 육지에 비해 짧아 아직도 유기물질이 풍부한 편으로 무슨 작물을 선택하여도 경작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곳 울릉도를 상징하는 캐릭터는 오징어와 더불어 호박인데 특히 호박은 호박엿으로 가공되어 울릉도를 널리 알리게 된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호박엿은 원래 후박나무에서 채취한 재료를 사용한 후박엿 이었는데 나중에 후박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는 바람에 호박으로 대체되었다고도 한다. 나리분지 내 토양은 이른바 화산회토(화산재)로서 보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벼농사가 이루어지기 어렵고 대신 다양한 밭작물의 경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대신 이곳에 내리는 강수(비와 눈)는 나리분지의 지하에 커다란 지하수로 저장되고 그것이 추산리 쪽에서 용출하여 상수도와 수력발전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나리분지 내에는 나리라는 이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인위적으로 나리꽃밭을 조성하였는데 나리라는 지명과 나리꽃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도 발상은 좋다고 생각한다.

나리분지에 들어오는 길목은 천부리쪽(버스운행)과 추산리쪽(도보)인데 우리는 추산리 수력발전소를 견학하기 위해 추산리 쪽으로 향했다. 내리막길 중간 쯤에서 물흐르는 소리가 요란 하게 들렸는데 그것은 바로 용출소에서 시작하여 급경사 계곡을 흘러내리는 물의 소리였던 것이다. 우리는 급한 경사면을 조심스럽게 내려가 보니 신기하게도 지하수가 솟아나 조그만 저수지를 형성하고 있는 용출소라는 곳을 확인하였다. 바로 나리분지의 지하수가 이곳으로 나오는 것이다. 물이 투명하여 속이 훤히 보였고 이곳은 여름인데도 서늘하게 느껴졌고 안내문을 읽어보니 평균수온 섭씨 7도를 유지한다고 하였다. 대개 지하수 온도는 그 지방의 평균 기온과 비슷하다는 교수님의 말씀도 새롭게 들었다. 한편 용출소 위쪽에 드러난 노두를 보니 원지형위에 화산재가 시차를 두고 차곡차곡 쌓여 층리를 이루는 이른바 화산재 퇴적층을 볼 수 있었는데 특이한 것은 일반적인 퇴적암(물의 작용을 받아 수평으로 형성된 암석)처럼 반듯한 수평층이 아니라 약간의 굴곡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것은 결코 습곡의 결과가 아니고 화산폭발의 결과로 공중에서 내려온 화산재가 원지형의 굴곡면을 따라 쌓여 이루어진 결과라고 한다.

 

 나리분지의 지하수가  추산리 쪽으로 흘러나와  수력발전소의 수원이 되고 있다.

 

 추산리쪽으로 걸어서 내려가는 모습.

 추산리 제2발전소.

 

 

 추산리 해안가. 

 

우리는 왼쪽으로 펼쳐지는 송곳봉우리(錐山)의 위용에 감탄하면서 계속 해안가를 향하여 아래로 걸어 내려갔다. 용출소 아래쪽에서는 수력발전 후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이곳 북면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려는 상수도 공사가 한참 이었다. 우리는 해안가에 설치된 추산 제1발전소를 방문하여 관계자로부터 여러 가지 설명을 듣고 기계실 광경도 견학하였다. 참고로 울릉도에는 4곳에 발전소가 있는데 추산리에 수력발전소 2곳과 울릉도 동쪽 내수전 마을에 2개의 화력 발전소가 있다고 한다. 저수지가 흔치 않은 울릉도에서 지하수를 이용하는 수력발전소를 보니 열악한 환경을 극복할 줄 아는 인간의 의지에 다시 한번 감탄을 하게 된다.

우리는 추산리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서쪽해안도로를 도동으로 돌아왔다. 해안도로는 암석을 깍아 내고 만든 길이라 폭이 좁았고 이로 인해 버스도 소형버스만 운행되었다.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든 해안도로 상의 터널은 대개 일방통행(신호등 설치) 체제로 운영되었다. 또한 가파른 기복을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S자형 도로나 루프식(또아리 모양) 도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녁식사를 위해 우리는 도동의 약수공원 내 케이블카(488M 공중삭도)를 타고 도동 전망대라 불리는 산꼭대기로 향했다. 두개조로 나누어 타고 올라가는데 점점 오를수록 아래쪽 도동항과 그 주변 풍경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였다. 꼭대기에는 식당과 상점(스카이라운지)이 있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멋진 저녁식사를 하였다. 또한 이곳 전망대에선 맑은 날 울릉도 동남쪽으로 90킬로미터 쯤 떨어져 있는 우리국토 최동단 독도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은 수평선에 안개가 잔뜩 끼어서 아쉽게도 볼 수가 없었다.

우리는 아득하게 멀리보이는 동쪽바다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눈길을 돌려 서쪽에 병풍처럼 펼쳐진 울릉도 내륙 쪽 산지를 바라보았다. 그때 마침 석양빛으로 붉게 물든 구름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수줍게 서있는 성인봉을 비롯하여 뾰족뾰족 개성대로 솟구친 봉우리들을 실컷 감상하였다.

식사 후 우리는 울릉호텔의 야외옥상에 모여 둘째 날의 답사 평가회를 가졌다. 비록 책상이나 걸상이 없이 신문지를 바닥에 깔고 모둠별로 앉았지만 선선한 저녁바람에 맥주잔을 기울이며 더위를 �고 우리들의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이번에도 역시 여교사들로 짜여진 어느 모둠을 대표하여 모둠장이 발표하였는데 요약 정리된 내용을 무척 깔끔하게 잘 발표하였다. 이어 교수님의 보충설명과 질의응답시간이 이어졌는데 지리학 일반과 자연지리에 관한 명쾌한 설명이 현장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는 듯 하였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화산지형과 화산암의 차이(원지형의 흔적이 남아있으면 화산지형으로 간주함), 지리학과 지질학의 차이(지리학은 인간과 관련된 학문으로 주변과학에 대해 차별적이고 독립성을 가짐) 등에 관한 말씀이었다.

점점 깊어가는 밤하늘에는 보름달 직전의 달님이 우리를 밝혀주었다. 이후 우리는 맥주잔을 주고받으며 자기소개도 하고 지리교사들(이번 연수에는 역사나 일사전공교사들도 일부 참여함)의 우정을 나누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른 시점에 교수님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본인의 교직 초년 이야기를 중심으로 한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3일차 (8. 18일 목요일)

오늘은 해안도로를 따라 섬을 한바퀴 일주하는 일정이다. 도동에서 출발하여 서쪽을 돌아 북쪽의 섬목이라는 곳까지 왕복하는 코스이다. 우리는 아침 식사 후 전세버스를 타고 해안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향하였다.

현재 울릉도에는 동쪽의 일부구간(섬목에서 내수전까지)만 남기고 해안도로가 거의 만들어져 있어 과거처럼 배를 타고 다른 마을로 이동하는 불편함은 없어졌다. 특히 2004년에는 태풍 매미가 울릉도 해안에 큰 피해를 주었는데 태풍 진로상 서면지역이 큰 타격을 받아 이후 이곳이 오히려 복구건설작업의 혜택을 크게 받는 지역이 되었다고 버스기사님이 설명해준다. 일반적으로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님들은 안내원의 역할까지 1인 2역을 하게 되는데 울릉도에 관한 갖가지 지지(地誌)적인 사실을 재미있게 전달해주어 지리를 가르치는 교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울릉도의 중심산업은 처음에 산채와 약초를 재배하는 농업과 오징어로 대표되는 수산업이었는데 지금은 안정적인 소득이 보장되는 관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대형 어선과 여객선이 접안할 수 있는 항구가 만들어져야하는데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울릉도를 방문하여  저동과 사동에 새로운 항구를 건설하겠다는 공약을 하였다고 한다. 이후 저동은 근대적 항구시설이 조성되어 어업전진기지로서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사동항은 앞으로 도동항을 대체할 수 있는 대형 접안시설이 갖추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우리는 항구공사가 한창인 사동을 지나 울릉군 서면 남양리 통구미 마을 앞에서 잠시 내렸다. 통구미라는 지명은 통처럼 막힌 계곡마을이라는 뜻인데 구미는 후미에서 비롯되었다. 골목길처럼 막힌 곳이라는 뜻으로 전북 부안군 위도에 가면 ‘금’자로 끝나는 지명이 많고 이런 곳들은 대개 육지가 안쪽으로 들어간 만의 모습으로 마을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거북바위라 부르는 바위를 바라보며 울릉도의 지형 형성과정에 대해 다시 한번 살펴보기로 한다. 역시 이곳의 노두에도 현무암질 용암과 화산성 퇴적암이라 불리는 집괴암(흙, 자갈 등 크기가 다양한 화산 쇄설물이 뒤섞여 있는 형태)이 원지형의 굴곡을 따라 교대로 층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화산폭발의 규모와 재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일반적으로 현무암질 용암은 화구가 멀지 않은 지점에 있는데 점성이 약해 옆으로 잘 퍼지게 되고 그 위에 멀리 떨어져있는 화구호에서 날아온 화산재(부석, 경석, 화산탄 등 크기가 다양)가 쌓여 이런 층리 구조를 갖게 된다고 한다.  간혹 붉은 색의 화산암은 이곳 주민들이 ‘불탄 산’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화산의 형성과정을 정확히 알고 붙인 이름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화산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참으로 쉽고 재미있는 표현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어 남양리 남양마을 안쪽에 자리잡은 비파산을 보기위해 차에서 내렸다. 산의 정상부에는 비록 풍화가 많이 된 모습이지만 분명 주상절리가 나타나고 이런 모습을 이곳 주민들은 국수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정말 정감있는 표현라고 생각한다. 앞에서 소개한 해안지역의 타포니 바위도 제주도에서는 송이바위라고 부른다.

여기서 잠시 버스기사님의 말씀을 소개한다. 울릉도의 3無란 뱀, 도둑, 거지라고 한다. 그리고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처리가 된다고 한다. 섬이라는 특수상황으로 인해 나타나는 모습들이라 생각된다. 밭농사의 경우 경사도가 심한 곳에서는 모노레일이나 케이블카라는 운반시설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울릉도는 대체로 맑은 날(년간 50~60일)보다는 흐린 날이 많아 일조량이 부족한데 이는 자연식생이나 농업에 영향을 미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부색까지도 밝은 색으로 만든다고 한다.

우리는 차를 서쪽으로 달려 서면 태하리 황토구미마을에 들어섰다. 이곳의 유명한 역사유적 성하신당을 둘러보기 위해서이다. 이곳은 배를 타는 사람들이 해신에게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기위해 모셨던 무속신앙의 사당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신당(제당)은 근대화 과정에서 주로 기독교세력에 의해 미신으로 격하되고 그로인해 해안가 마을의 수많은 신당들이 거의 사라져 버렸다. 성하신당에 얽힌 전설은 조선시대 공도정책을 소재로 한 전설로 판단된다.

또한 이곳은 과거 조선후기 개척이후 행정중심지로서 역할을 다하였다. 육지에서 가장 가까운 접근성을 가지기 때문이며 대신 차가운 북서풍을 맞는 불리한 점도 존재한다. 그래서 요즘에는 바람을 이용하는 풍력발전기가 현포령 부근에 설치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부근에 울릉도 유일의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그곳의 집을 못집(연못의 못)이라 부른다.

우리는 북면 현포리 고분을 찾아갔다. 선사시대의 유적인 고분을 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주변지형이 바로 해안 단구면에 해당되기 때문이었다. 이곳 해안단구는 위쪽(해발 350미터)과 아래쪽(해발 30미터)의 2단으로 되어있다고 하는데 증거로서 원마도가 높은 자갈이 발견된다. 또한 이곳의 단구면은 육지 쪽보다 융기량이 많다고 한다.

우리는 현포리에서 조개박물관을 들러 국내외에서 수집된 조개류 표본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현포항의 안쪽에서는 긴 파이프가 이리저리 설치되어 있었는데 알아보니 바다 밑 심해의 물(심층수)을 추출하는 장면이라고 하고 앞으로 상업적으로 개발될 것이라 한다.

이곳 울릉도에는 군과 경찰이 배치되어 있는데 군의 경우 육군을 제외한 공군, 해군, 해병대 등이 주둔하고 있다.

조금 더 달려 천부리를 통과하였다. 항구에 풀장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징어축제 때 맨손으로 오징어 잡기대회도 열린다고 한다. 해안가에 가끔씩 흰색 스틸로폼이 떠있는데 이것은 양식장이 아니라 새우잡이를 위한 통발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곳은 지형적 조건으로 인해 수산양식업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홍합이나 전복이 잘 잡히는데 모두가 자연산이라 한다. 울릉도 하면 오징어잡이가 가장 유명한데 육지의 배들도 이곳까지 와서 오징어를 잡아간다. 그런데 이동시간이 길어 별수 없이 냉동을 시켜서 가져가기 때문에 바로 말린 울릉도 오징어에 비해 맛이 떨어진다고 한다. 울릉도 해안은 거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곳곳에 해식애, 해식동굴, 시스텍(침식작용에 홀로 남은 바위), 주상절리(용암이 바닷물을 만나 급속하게 냉각되어 기둥모양처럼 절리가 생긴 바위)등을 관찰할 수 있다. 그리고 화산암들을 관찰하면 색깔과 견고성이 다양한 것 같았다. 특히 붉은 쇳덩이처럼 보이는 암석으로 구성된 산을 이곳 사람들이 불탄 산이라 부르고 노란색의 흙(화산재)을 황토흙이라 부른다. 또한 회색계통의 조면암질 암석을 단단한 바위라 하여 야문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계속해서 삼선암, 물범바위, 관음도를 지나 섬목 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섬목은 바다를 향해 길게 나온 지형 중에 가장 좁은 목에 해당되는 부분으로서 원래는 관음도와 연계된 상태였고 나중에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나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바라보면 죽도가 가장 가깝게 보이며, 해안도로가 끝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높은 해안절벽이 나타나는데 여러 겹의 층리를 보인다. 즉 여러 번에 걸쳐 화산분출 후 용암이 흐르고 그 위에 다시 화산쇄설물(화산탄, 경석, 화산재)이 쌓이기를 반복했다고 하여 이를 성층화산이라 부른다.

또한 암석층 중간에 색깔이 다른 암석이 마치 나무뿌리처럼 관입한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암맥이라 부른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돌아오면서 천부리에 있는 이른바 천연 에어컨(풍혈)이라 불리는 곳에 들어가 보았다. 뜨거운 바깥공기에 비해 차가운 냉기가 느껴졌고 유리창 바깥쪽에 수증기가 응결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가운 지하수의 냉기가 밖으로 노출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곳의 도로는 유심히 보면 아스팔트 도로가 없고 모두가 콘크리트로 만든 길이다. 콘크리트 재료(시멘트와 모래) 운송의 편리성 때문이겠지만 결과적으로 자연을 지켜내고 공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울릉도 주민들의 가장 큰 소득원은 앞으로 가격 변동성이 커서 불안정한 농업이나 어업보다는 역시 관광업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정부에서는 이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려고 했지만 보존보다는 개발을 원하는 울릉도 주민 다수의 여론에 밀려 계획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앞으로 환경보전과 소득보장을 위한 개발 사이에 지혜로운 접점을 계속 찾아야 할 것으로 본다.

대풍령(바람이 많다는 고개) 부근의 농장에 들러 급경사의 경작지에 꼭 필요한 모노레일 시설을 관찰하였다. 숙소에 돌아오면서 마지막으로 견학한 곳은 호박으로 젤리와 빵을 만드는 공장이었다.우리는 숙소에 돌아와 구내식당에서 울릉도의 별미 홍합밥(10,000원)을 먹었다.

 

 

 통구미마을앞 통구미 해안의 바위.

 비파산.  국수가락처럼 보이는 주상절리의 모습이 보인다.

 남양리 하천의 모습. 급경사에 짧은 하천이라 물이 말라있다.

 

 울릉도 서면쪽의 노두.  화산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떡시루의 떡처럼 층을 이루고 있다.

 

 해안답사 모습.

 서면 태하리 논경작지.  울릉도에는 논을 조성할 만한 평지가 적다.

 서면 태하리 성하신당.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종교시설.

 울릉도 옥수수.

 

 앞쪽에 우데기의 형태를 갖는 가옥.

 

 현포리 고분군.

 통구미 해안.

 현포리 어항.

 

 울릉도의 북동쪽 섬목에서... 해안도로가 이곳에서 끝이 난다.

 섬목에서 바라본 죽도.

 섬목에서 바라본 삼선암.

 섬목해안.

 현포리  해안.

 

 

 현포리에서 본 농업용 모노레일의 이동수단. 급경사를 극복하기 위한 시설.

 

 울릉도의 상징인 울릉도 호박 젤리공장.

 울릉도 오징어의 건조장면.

 

 별미인 홍합밥.

 

 

드디어 독도를 향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독도 체험은 이번 연수에 참여하신 분들의 가장 큰 목적이자 관심사라 할 수 있겠다. 일본정부는 그동안 러일전쟁이후의 역사에 근거하여 독도를 자기네 땅(다케시마)이라고 주장해 왔고 급기야는 올해 들어 그 억지주장이 정도를 넘어서자 우리 국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로인해 올해 전격적으로 일반 관광객에 대한 입도가 허용되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불과 100년 전의 역사에 기대는 일본에 비해 우리는 1500년전의 역사를 거슬러 신라장군 이사부의 우산국 복속사실을 근거로 한다. 그야말로 이사부장군이 지하에서 웃을 노릇이다. 그 덕분에 올해 울릉도 관광객들에게 독도 상륙이 허용되었다는 사실도 우리에게는 행운이라 생각한다. 미리 예약을 받아 하루 200명으로 입도(상륙)를 제한하는데 승인을 받는다할지라도 그날 날씨가 악화되면 결코 접근할 수 없는 게 독섬(돌로 이루어진 섬이라는 뜻으로 한자 이전에 부르던 이름)이기에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운이 억세게 좋은 것이다. 여객선 선장님 말씀대로 우리는 ‘축복받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번 기회가 내 인생에 있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독도는 분명 동쪽 끝 우리 국토인데도 왜 이렇게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지 모르겠다. 단지 지리적으로 멀리(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92 킬로미터)떨어져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일본을 의식한 정치적 이유 때문인지....... 최근 국민들에게 독도접근을 허용한 것은 지금까지의 대일본 무 대응 외교를 탈피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의지 로 보면 될 것이고 이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좀더 자주적인 외교노선을 견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다고 영토문제로 전쟁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으로나 실정법상으로나 엄연히 우리 땅인데 도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정부의 태도에 우리도 할 말을 다하자는 것이다. 그들의 끊임없는 영토주장은 아마도 독도 주변의 수자원과 아울러 지하자원에 눈독을 들이고 벌이는 일련이 계획된 행동인지도 모르겠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50분 숙소를 출발하여 걸어서 10여분 걸리는 도동항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였다. 항구 주변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각자 나누어준 티켓에 인적사항을 기재하고 울릉도와 독도 간을 오가는 정기 여객선 삼봉호에 승선하였다. 운 좋게도 가장 앞쪽이었지만 앞쪽에 설치된 창문이 좁아 밖의 상황이 잘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뱃머리를 돌려 출발하는데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30분이었다. 정상적인 해상조건이라면 2시간 1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포항에서 울릉도까지 오가는 대형 여객선에 비하면 크기도 작도 속력도 빠르지 않지만 오히려 선체와 파도의 부딪힘을 느끼기에는 족했다. 선체의 앞머리가 약간 떠서 가기 때문에 파도에 부딪히면서 위아래로 뜨고 가라앉기를 반복하였다. 마치 놀이동산의 바이킹을 타는 느낌이어서 예민한 사람은 멀미를 느낄 것 같았다. 나도 자신이 없어 미리 키미테를 붙이고 승선했지만 멀미 증세가 나타났다. 어제 밤 맑은 날씨에 대한 간절한 기원이 통했는지 해상날씨는 비교적 좋았다. 육지에서는 오늘 비가 많이 내린다고 뉴스에 나오던데 여기는 멀쩡한 걸 보니 확실히 여기는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실감이 든다. 포항에서 울릉도에 올 때는 동해바다가 마치 호수처럼 느껴졌지만 오늘은 파도가 약간 높았고 그로인해 도착시간이 예상보다 10여분 늦어졌다. 배의 항해속도는 파도의 높이에 따라 달라진다고 한다. 동해바다 아니 조선해(Korea sea)가운데쯤에 해당하는 이곳 독도행 바다는 그야말로 망망대해라는 말처럼 360도 수평선이 하늘과 바다를 가르고 있을 뿐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처음엔 이제나 저제나 독도가 나타날지 몰라 기대하면서 바다를 응시하던 승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잠을 청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다 한참 후 우리 배 옆을 대한민국 경찰소속 경비정 한 척이 지나가는데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였다. 승객들을 위해 배안에서는 영상물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리 갑판에 올라가 바다를 감상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선실에는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들이 보였다. 독도를 보면서 나이에 따라 각자 무슨 생각을 하게 될 지 궁금해진다.

  

오후 4시 30분경 독도가 보이면서 배안은 술렁인다. 마치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느낌일까? 오후 4시 50분 드디어 우리는  독도 선착장(동도에 해당)에 발을 디뎠다. 출입구는 하나고 사람은 많아서 오르내리는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모두들 내리자마자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셔터를 눌러댄다. 한국인 특유의 ‘빨리빨리’ 정신이 발휘되는 장면이다. 동도와 서도의 높다란 암벽과 푸른 바다를 배경삼아 서로서로 사진을 찍고 찍히고, 준비한 현수막이나 태극기를 들고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기에서 허용된 20분 동안에는 사진 찍는 일 밖에 없는 것이다. 아마도 독도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정해져서 자연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입도 제한시간을 짧게 정해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우리같이 선택된 사람들은 여기 오지 못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흐르는 시간을 순간순간 사진으로 남기는 작업을 할 뿐인 것이다. 나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디카를 눌러댔다. 동영상도 한바퀴 돌리고....... 그러다 지리교사모임의 단체기념촬영에 참여하는 것을 놓쳐버렸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승선하라는 선장의 안내방송에 따라 배에 올라탔다. 전투경찰대원들의 늠름한 모습을 뒤로 하고 여객선은 독도 주위를 서도에서부터 동도 쪽으로 시계방향을 따라 한바퀴를 돌았다. 시간이 짧아 제대로 보지 못한 풍경을 우리는 다시 천천히 감상하는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흔들리는 선상에서 균형을 유지하면서 서있기가 힘들었다. 더구나 요동치는 배의 앞머리에서 사진을 찍는 일은 더 힘들었다.

교수님의 설명은 여건상 어디에서도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그냥 눈으로 감상하고 나중에 숙소에 가서 설명을 듣기로 하였다. 20분 정도 한바퀴를 돌고나서 오후 5시 30분경 울릉도를 향해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난 이틈에 집으로 휴대폰을 이용하여 전화를 해보았다. KTF가 자신있게 광고하는 것처럼 정말 선명하게 딸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독도는 지질학적으로 울릉도와는 별도의 화산체로서 바다 밑 부분의 최대거리가 50여 킬로미터로서 울릉도의 크기를 능가한다. 비록 수면 위 높이가 울릉도보다 낮지만 수면아래 산의 높이가 2,000미터에 이른다고 하니 백두산의 높이를 또한 뛰어 넘는 이른바 해중산(海中山)인 것이다. 형성 시기도 대략 250만년 전에 마지막 화산이 분출하였다고 하니 1만년 전 무렵에 끝난 울릉도보다 훨씬 앞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동도와 서도 및 부속 암석으로 구성된 독도는 화산분출로 형성된 칼데라의 외륜산 부분의 정상부에 해당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독도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는 표현이 적합하다고 할 수 있겠다.

독도의 암벽을 보면 울릉도 답사에서 배운 화산활동에 따른 층리와 상층부의 주상절리가 잘 드러나는데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울릉도를 향하면서 저녁노을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마침 집행부를 맡았던 전노을 선생님이 옆에 서 계셔서 더욱 분위기가 어울렸다(?). 그리고 어두움이 짙게 깔리면서 멀리서 집어등을 환하게 켜며 조업하는 오징어배가 우리를 반기는 듯 하였다. 도동항의 불빛 또한 검은색 바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빛을 발하였다. 난 가슴 뿌듯함으로 개선장군이 된 듯하였다.

 

 

 울릉도 - 독도간 여객선.

 독도 선착장에 도착하여...

 독도 부속 섬들.

 독도를 한바퀴 돌면서...

 

 독도 풍경.

 

 독도의 동도와 서도.

 

                                                        한반도 모양이 보이는 독도의 암벽.

 

 

 

 독도 선착장에서.... 케이블카선도 보인다.

 

 

 선착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진촬영뿐.

 나도 한장....

 독도 선착장 부근의 파식대.

 독도 선착장.

 독도에서 울릉도를 향해 귀환하며 바라본 일몰.


4일차 (8. 20일 금요일)

어제 밤  늦게까지 술을 먹다보니 잠자는 동안 개운하게 잠을 잤다는 느낌이 별로 없이 새벽에 억지로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휴대폰 시계를 보니 5시 10분 부리나케 숙소를 나서서 준비된 버스에 올라탔다. 한방을 썼던 우리 모둠원들이 가장 늦게 탔는지 나머지 분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한 마음으로 우리는 출발하였다. 목표는 도동항의 동쪽마을, 저동항(모시항구)이었다. 아직 어스름이 걷히지 않은 항구였다. 처음 도착한 곳은 조수간만의 차이를 조사한다는 검조장(일명 험조장). 그리고 우리는 방파제에 옹기종기 앉아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을 기다렸다. 그야말로 찬란한 아침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수평선에 구름이 잔뜩 깔려 빠알간 태양은 수평선이 아닌 구름위로 솟아올랐다.(일출시간 대략 05시 40분쯤) 내가 기대했던 만큼 장엄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우리는 곧바로 오징어 어판장으로 가보았다. 지금은 울릉도의 이름값을 해야 할 오징어가 무척 귀하다고 한다. 수온의 상승, 외국배의 남획 등에 원인을 돌리고 있지만 확실한 원인은 모르겠다. 오징어를 잡기위해 엄청난 조도의 등을 밝히는데 달의 밝기와 관련하여 보름달일수록 오징어잡이가 어렵다는 말도 듣게 되었다. 아무튼 집어등을 켜서 밤바다를 환하게 켜고 있어야 할 오징어배가 항구 안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보니 정말로 오징어가 안잡히는가보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울릉도의 주요 소득원이 오징어인데 오징어가 안 잡히니 어부들은 시름에 젖어있고 가끔씩 들어오는 오징어배가 그나마 저동항의 활기를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울릉도 오징어잡이의 전진기지 역할을 하는 저동항에서는 오징어를 잡자마자 내장을 빼내고 건조작업에 들어간다. 이 중 덜 마른 오징어를 ‘피데기’라 하는데 냉장고에 보관하여 마른 오징어보다 비싼 가격으로 판매하기도 한다.

우리는 저동항 수산물 위판장을 견학한 후 항구근처 후박나무 군락이 있는 곳으로 모였다.

여기에는 하나의 비석이 있었는데 바로 박정희 대통령이 군사혁명을 성공시킨 직후 이곳을 방문하여 저동 항구 건설을 약속하였고 여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이곳 주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비석이 서있는 곳은 바로 어부들이 풍어와 안전귀향을 기원하면서 제사를 드렸던 신당(제당)이 있었던 터라고 한다. 새마을 사업을 우리의 전통을 상당부분 훼손했던 사실이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독재자와 산업화의 주역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넘나드는 박정희 대통령은 적어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시혜를 베푼 은인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한 나라의 정치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그 나라 국민들의 정치의식인 것이다. 이곳 저동은 어업전진기지이자 울릉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이 모여 사는 곳이기도 하다. 도동보다 아파트 건물이 많이 보인다.  

우리는 저동을 충분히 견학한 후 숙소에 돌아와 아침식사를 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유람선에 올라타 울릉도 일주를 시작하였다. 오전 9시 도동항을 출발한 유람선은 시계방향으로 서쪽부터 돌기 시작하여 북쪽을 거쳐 약 2시간 동안 울릉도 한바퀴를 돌아왔다. 전날 버스를 이용하여 해안선 일주를 하였던 곳이 눈앞에서 펼쳐지는 데 대략 어디가 어디인지 기억할 수가 있었고 마치 내용을 복습하는 느낌이었다. 버스로 이동할 때보다 훨씬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고 갈매기가 우리를 따라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갈매기들이 여객선을 줄기차게 따라다니는 이유는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이라는 과자를 얻어먹기 위함이다. 평소 같으면 바다에 던져지는 오징어 내장을 배불리 먹지만 요즘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아 갈매기들은 배가 고플 것이라고 선장님이 친절하게 안내해주신다. 바다에서 보는 해안선의 모습은 단조로웠고 해안단구의 모습도 멀리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을 포함한 관광객 대부분은 갑판에 나와서 시원한 해풍을 맞으며 눈은 해안선 쪽을 응시하였다. 모처럼 여유를 부리며 울릉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껏 즐겼고 저마다 들고 있는 카메라에서는 셔터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저동항에서 바라본 일출.

 

 아침 저동항의 모습.

 

 저동항의 오징어 배들.

 

 저동항의 제빙시설. 썰렁한 펭귄모습이 이채롭다.

 

 생선을 선상에서 보관하기 위해 얼음이 필요한 것이다.

 

 저동항.

 저동항의 수산물 위판장.

 

 저동항의 모습.

 

 

 저동항에서 본 박정희장군의 흔적.

 

 울릉도를 한바퀴도는 유람선이 도동항을 출발하였다.

 

 도동항의 모습.

 

갈매기들이 유람선을 따르는데 목적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 

 

 겁도 없이 달려드는 갈매기들. 이들도 관할구역이 나뉘어 있다고 하는데....

 

 아름다운 울릉도 해안모습.

 

 추산리 근처 해안단구의 모습.

 

 코끼리 바위.

 

 

 

 삼선암.

 

 기암괴석의 울릉도 해안.

 

우리는 이어서 도동항에 도착하였는데 곧바로 군민회관에 모여서 울릉군청 공무원의 설명도 듣게 되었다. 울릉군청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부터 울릉도에 관한 일반적 행정사항 이른바 지지(地誌)적인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나름대로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몇 가지를 소개한다. 울릉도의 3무는 뱀, 도둑, 거지라고 한다. 울릉도의 쾌청일수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는 대략 50일 내지 60일이라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4일 모두 맑은 날씨였으니 정말 축복받은 사람인 것 같다. 울릉도의 인구는 한때 최대 3만명 정도였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업기구의 발달로 승선인원의 감소, 도시로의 전출 등의 이유로 인구는 현재 9,000명 정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울릉도는 쾌청일수가 적기 때문에 당연히 일조량도 적을 것이다. 그로인해 여기 원주민들은 대부분 얼굴 피부색이 하얀색을 띠게 된다고 한다. 참고로 서울 사람의 얼굴색이 하얀 것은 매연으로 인한 햇빛부족이 크다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서울과 울릉도는 차원이 다른 것 같다.

피곤했던지 많은 사람이 졸린 표정이었고 이어서 교수님의 설명이 있었다. 어제 갔던 독도를 포함하여 이번 연수를 마감하는 말씀까지 이어졌다.

 

점심시간은 조별로 호텔 밖에서 해결하기로 하였다. 우리는 울릉도의 별미, 약소(약초로 기른 소) 소금구이를 먹게 되었다. 이어서 개인별로 선물준비를 위한 쇼핑을 하게 되었고 우리는 오후  4시에 출발하는 포항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동해바다는 비바람에 출렁거렸고 그로인해 도착시간이 1시간 이상 늦추어져 8시 30분경 도착하였다. 난 교수님과 같은 길에 집이 있다는 선생님 2분을 모시고 포항을 출발하여 대전, 전주를 거쳐 새벽 2시경 정읍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오는 길은 그야말로 최악의 조건이었다. 추풍령을 지나 대전을 경유하여 논산까지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자동차로 가는 길에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앞을 분별하기 어려웠다. 다행히 우리 연수가 끝나서 내리는 비라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출발하는 날 안개 속을 헤치며 가던 승용차가 올 때는 빗속을 헤치며 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아무튼 최적의 기후조건 속에서 진행된 이번 연수를 통해 나는 울릉도와 독도라는 동쪽 끝 우리국토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으며, 또한 3박 4일의 추억이 가슴 한 켠에 아름답게 장식되길 빌어본다. 준비하는데 애를 써주신 집행부와 장호 교수님께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