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수에 부딪혀 여학생 1명 사망, 화물차로 소풍가다가
(街路樹에 부딪혀 女學生 一名 死亡, 貨物車로 逍風 가다)
동아일보 1957년 10월 18일 기사
[원문] 화물차를 이용한 수학여행이 금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5일 오전 9시경 당시 내장산 단풍 구경을 하고자 김제여고학생 약 120명을 화물차 3대에 탑승하여 정읍군 북면00리 노상을 통과중 제일 뒤에 따라간 화물차에 탄 김제여고 1학년 000(17세)양은 가로수에 두부를 부딪혀 소성병원에 운반도중 사망하였다고 한다.
[해설] 학창시절 수학여행에 얽힌 추억과 일화가 참으로 많을 것이다.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시절에는 몇달 전부터 수학여행 보내달라고 부모님에게 간청하고, 허락받으면 한 달전부터 설레는 맘으로 기다려지고.... 반면 형편이 어려워 참여하지 못한 학생들은 평생 그 아픔을 간직하게 되고.....
지금은 수학여행이나 소풍이라는 용어대신 현장체험학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몸과 맘을 수련하고 교실에서 배운 지식을 현장에서 다시 학습한다는 의미로 붙여진 수학여행. 주로 조상의 얼이 담겨있는 역사유적지나 당시의 발전상을 한눈에 볼수 있는 곳을 골라 떠나는 게 수학여행이었다. 그래서 대개 경주, 부여, 공주등의 역사유적지,그리고 서울, 부산 등의 대도시 등지가 선택되었다. 지금은 경제수준이 좋아져 제주도를 많이 선택하고 있고 조금 더 사정이 좋은 학교는 해외로도 가는 게 요즘의 수학여행이다.
신문기사가 씌여진 1957년 당시에는 한국전쟁 직후여서 수학여행에 전원 참가할 수 도 없었고 지금처럼 삐까뻔쩍한 대형 관광버스를 타고 안락하게 다닐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을 것이다. 물론 요즘에도 버스기사님들의 실수로 교통사고가 일어나 인솔교사나 학생들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사고가 흔치않게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당시 일반버스가 부족해서인지 수학여행이나 소풍행사에 화물차를 투입하여 학생들을 수송했던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고 이런 관행은 졸업앨범사진을 보면 1970년대까지도 확인할 수가 있다. 당국에서는 화물차로 인한 안전사고를 염려해서 법적으로 금지한다고는 하지만 여행비의 단가를 낮추기 위해 학교측에서는 화물차를 이용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신문기사에 의하면 김제여고 학생들이 40명씩 화물차3대에 분승, 김제읍내를 출발하여 내장산으로 단풍구경을 갔다고 되어있는데, 단순히 단풍구경만을 목적으로 갔던 단일 행사였는지 아니면 내장산을 거쳐 또다른 일정이 잡혀 있는 수학여행이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사망 사고 지점은 1번국도 구간인 태인-정읍 구간인 것 같다. 비포장 도로에 지붕이 없는 화물차인지라 뒷좌석 쪽에 탄 학생들은 매우 심하게 요동쳤을 터인데 그런 상황에서 마침 가로변에 심어진 가로수(미류나무 또는 플라타너스) 가지에 머리를 부딪혀 그 충격으로 사망을 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있다. 사고를 당한 여학생이 응급으로 실려갔던 소성병원이 지금 어디에 있는 병원인지(기사에 있는 한자는 분명 소성병원인데 잘못읽었을까요?)..... 소성면에 이런 큰 병원이 있다는 얘기는 모르기에... 아산종합병원도 1977년쯤에 개원했으니... 아마도 정읍시내에 있는 큰 병원이었을 것 같은데...
즐거워야 할 수학여행이 이 사고로 이후 일정이 전면 취소가 되었을 것은 분명하고 학생들과 교사들에게 커다란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을 인솔하고 여행을 떠나는 교사들의 심정은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심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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