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령옛길을 자주 찾게 된다. 지난주 서울에서 내려온 한국관광연구원 관계자들과 함께 길을 안내하기도 하였지만 내심 미진한 게 있어 오늘 맘먹고 혼자서 옛길의 흔적을 다시 찾아보았다. 마침 오늘이 내가 몸담고 있는 학교의 개교기념일이라 이런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사람의 발길이 끊어진지 몇십년 된 길이라 잡목때문에 여름에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길이다. 그래서 산길을 답사하기엔 이런 초봄이 시기적으로 최적인 것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 잡목 제거용 낫을 준비 하였다. 오늘의 목표는 입암면 등천리 군령마을에서 시작하여 노령옛 철길 끝 터널입구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것이었다. 길이 없는데 길을 만들려니 막막하였지만 계곡을 따라 천천히 올랐는데 다행히 옛길까지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급경사의 단점을 가지기에 이곳을 새로운 길로 개척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노령 고개마루에 올라 잠시 능선길을 따라 방장산쪽으로 이동하였더니 군부대에서 만들어놓은 참호와 벙커를 확인할 수 있었고 여기에서 조금더 가면 헬기장도 있었는데 조망이 좋아 북으로는 정읍, 남으로는 장성을 연결하는 철길, 고속도로, 국도 등이 한눈에 보이기도 하였다. 조망이 뛰어난 곳이어서 나중에 이곳 옛길이 복원된다면 탐방객들에게 권장할 만한 곳이라고 생가가된다. 이곳에 서있노라면 노령이 왜 길이 집중되고, 가히 길의 전시장이 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곳은 노령산맥이 지나며 전남북의 경계를 만들고 남쪽과 북쪽의 문화를 만들었다. 영산기맥에 해당하는 산줄기는 동편에 입암산, 서편에 방장산이라는 산체가 우뚝 솟아있고 그 가운데 비교적 낮은 부분(그래도 해발고도 200미터 정도됨)이 마치 말안장처럼 보이는데 모든 길들은 이곳을 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군령마을은 노령을 지키기위해 태어난 마을이지만 오히려 근대화이후 철길, 고속도로, 고속철까지 가세하면서 길에 에워 싸여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유사시 사용하기위해 잘 만들어진 군사용 벙커가 능선상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곳에서 남쪽으로 급경사의 군사용 오솔길이 이어지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노령 옛길과는 무관한 별도의 길인것이다. 능선상 햇빛좋은 잔디밭에 앉아 준비한 떡을 점심으로 해결한 후 곧바로 왔던 길로 내려선다. 이제는 새로운 루트에 대한 미련은 버렸으니 원래의 옛길 흔적을 찾아가본다. 제법 널찍한 길이 잘 보존되어 있는 편이었으나 사람의 발길이 없어 잡목이 앞길을 막아선다. 가시나무종류가 신경이 쓰여 준비한 낫으로 낫질을 하며 전진을 하였다. 군령마을을 향해 직선상으로 내려가면 급경사이니 등고선을 따라 자꾸만 옆으로 옆으로 지그재그식 걸음을 하게 만든다. 옛사람들은 시간도 시간이려니와 가급적 힘이들지 않는 갈지자형 길을 선호한 것이다. 그래야 소달구지에 물건도 실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군령마을 촌로들을 만나 확인해본 결과 이곳을 넘어 장성 시장에 소를 팔았다고도 한다. 곰소 줄포쪽에서 소금장수와 젓갈장수등이 등짐을 매고 노령옛길을 넘어 장성장까지 넘나들었다는 말씀도 해주신다. 소달구지도 고개마루까지는 물건을 실어나르기도 하였는데, 고개마루의 폭이 좁아 장성쪽으로 넘어가지는 못하였다는 말씀도 해주신다. 귀중한 증언인데 이런 말씀을 해주실 어르신들도 동네에서 만나보기도 쉽지는 않다. 세월이 흘러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소중한 증언들도 체계적으로 수집을 하였으면 좋겠다.
호남고속도로 정읍쪽 터널입구에 관리사무소와 월동자재 보관창고가 있는데 이곳까지 옛길은 구비구비 산자락을 따라 이어지며 내려오게 되는데 지금껏 찾지 못했던 부분도 고스란히 찾아내게 되니 기쁘기 그지 없다. 내려오다가 군령마을에서 오셨다는 나이드신 할머님이 약재로 쓴다며 오래된 뽕나무 뿌리를 캐고 있어 몇가지 이곳 옛길에 대해 질문을 하기도 하였다. 미루어 짐작했던 이곳까지의 옛길의 흔적이 예전에 확실히 사용되었음을 그 할머니께서 증언을 해주시니 그저 고마울 뿐이다. 여기에서 군령마을까지는 호남고속도로로 인해 옛길의 흔적이 사라져버려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할머니께서 알려주신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 내려가니 군령마을과 연결되는 고속도로 박스형 터널이 나타난다. 이곳을 통과하여 처음 출발지점인 군령마을 마을회관까지 도착하니 마음이 뿌듯하였다. 이제는 노령 옛길의 흔적을 완전하게 찾았으니 말이다.
군령마을 입구에서는 또다른 길인 고속전철로를 만들기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동쪽에는 신국도 1번도로를 만들기위해 터널을 만드느라 어수선한데 이곳까지 공사라니 군령마을사람들은 그야말로 이런 저런 길로 인해 갖히는 형국이 되어버린 것이다. 도시민들의 편리성을 위해 시골사람들이 그 불편함을 감수하니 이것이야말로 다수의 횡포가 아닐지...... 씁쓸한 마음이다. 이제는 고속철이 고속도로 옆구리를 뚫고 지나가게 되니, 길이 마을만 괴롭히는 게 아니라 또다른 길을 공격하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조만간 노령옛길이 복원되어 일반 탐방객을 맞이한다면 단순한 생태적 관점보다는, 이 지역의 역사 지리적인 문화콘텐츠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개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소통으로서의 길' 그리고 '길이 갖는 역사적 의미' 등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길을 주제로 한 테마박물관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 조성되는 옛길의 출발점과 끝점이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군령-목란 또는 천원옛역-백양사역을 상정해볼 수 있음) 옛 주막촌 복원이나 먹거리장터 조성도 필요할 것이다. 가히 길의 전시장이라 할 수 있는 이곳 노령은 그만한 풍부한 역사문화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기에 앞으로 옛길 복원에 대해 기대감을 가져본다.
앞으로 정읍시나 시민단체에서도 정읍을 통과했던 삼남대로상의 옛길복원에 대해서도 관심과 참여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옛 노령(갈재)를 향해 호남선 옛 철로길이 이어진다. 호남선 철로 이설로 남게 된 길인데 무척 호젓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길이다.
레일과 침목이 남아있다면 훨씬 운치있는 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가스관과 통신선이 매설되어 있다. 사진의 가장 가운데 낮은 부분이 노령 고개마루임.
노령옛길의 흔적인 축대.
노령 고개마루. 남쪽을 바라보았는데 여기가 전북과 전남의 경계가 된다. 동진강과 영산강의 분수계이기도 하다.
인공적으로 깎아낸 흔적이 보인다.
노령 고개마루 암석벽면에 지방수령인 장성부사의 불망비가 새겨져있다. 옛사람들의 흔적인 것이다. 조선시대 주요한 8대 도로 중 하나인 삼남대로는 서울에서 천안, 삼례, 정읍, 장성을 거쳐 해남, 제주까지 이어지는 길이었는데 이를 연결하는 역과 원이 옛길 주변에 있었다. 말과 사람이 쉬어가던 옛 천원역은 그 흔적이 이제는 사라져버리고, 사람들은 현재 기차가 지나는 천원역만을 기억할 뿐이다.
왼쪽의 입암산과 오른쪽의 시루봉이 이곳 노령고개마루에서 낮아졌다가 다시 방장산쪽으로 이어진다.
노령고개마루 부근 헬기장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니 호남고속도로와 옛철도 그리고 국도가 보인다.
헬기장에서 바라본 북쪽. 정읍시 입암면 지역.
호남고속도로와 입암저수지 그리고 군령마을이 나무사이로 보인다.
비교적 잘 보존된 노령 옛길. 이 즈음이 답사하기에는 최적이다.
호남고속도로와 호남선 철로 그리고 군령마을. 노령고개를 지키기위해 군대가 주둔했던 마을. 수많은 길로 인해 수난을 당한 마을이다. 여기서 바라보니 이부근 노령을 통과하는 길의 종류가 무려 8가지에 이른다.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옛길,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1번국도, 곧 완공될 신국도, 1912년의 호남선 옛철길, 80년대 복선화되면서 이설된 현재의 철길, 앞으로 만들어질 고속철로, 70년대 준공되어 사용되다가 폐기된 고속도로 일부구간, 80년대 중반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이설된 현재의 고속도로, 등등
모두 8개의 길이 이 노령고개를 통과한다. 토목기술이 발달하여 지금은 산을 깍아내리며 직접 산을 타고 오르는 공법은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교통수단이 직선을 지향하기에 이제는 터널이라는 형식으로 산을 뚫고 지나며 이곳저곳 노령의 산줄기에 상처를 내고 있다.
왼쪽은 호남고속도로, 가운데는 옛 고속도로, 오른쪽은 현재의 호남선 철로. 가운데 군령마을 입구에서는 고속철로 공사가 한창이다.
호남고속도로 박스터널에서 바라본 군령마을.
군령마을에서 바라본 노령고개. 가까워보이지만 옛길은 직선이 아니고 산자락을 돌고 돌아서 이어진다.
군령마을 모습. 사람을 만나기가 어렵다.
호남고속도로를 뚫고 이어서 산을 뚫고 지나가게 될 새로운 고속철 노령터널.
고속철을 위해 고속도로의 옆구리를 뚫고 있는 공사장면. 군령마을 입구가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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