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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스크랩] 동진강 발원지 답사기

 

 

동진강 발원지 답사기

일시 : 2005년 7월 23일∼24일, 9월 10일

이용수 : (주) 도화종합기술공사 수자원개발부(lyswater@dohwa.co.kr)


 

1. 동진강개요

동진강은 만경강과 함께 전북지방에 발원지를 두고 전북의 산하를 지나 서해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하천연장으로만 따지면 우리나라의 15위 하천이다. 동진강의 발원지는 실제로는 정읍천이 가장 긴 발원지로서 전북 정읍시 내장동의 내장산 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호남정맥의 산줄기인 내장산 까치봉(EL. 717.0m) 북동계곡에서 발원하여 정읍시를 지나면서 북진하다가 신태인에서 동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든다.

 

동진강(東津江)의 유래는 전북 부안군 동진면으로 흐르는 강이라는 뜻인데, 동진면은 1914년 일제가 산동면, 일도면, 이도면, 서도면 일부를 행정구역을 통폐합하면서 동진면(東津面)으로 고쳤다.

동진강이 흐르는 지역의 행정구역은 전라남도 정읍시 내장동에서 출발하여 정읍시내를 통과하고 덕천면, 정우면, 이평면을 거쳐 신태인읍에서 동진강과 만난 부안군 백산면, 부량면을 차례로 거친 다음 동진면에서 서해와 합친다.  동진강의 주요 지류로는 국가하천이 동진강, 고부천, 원평천, 정읍천의 4개 하천이며 지방1급 하천으로는 동진강이 있고 지방2급 하천은 신평천을 비롯하여 총 84개의 지류를 가진 방대한 하천이다.

동진강의 발원지는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의 매표소를 지나 약 1km 정도를 길 양쪽에 단풍나무가 우거져 아름다운 길을 지나서 내장사에 이르고 다시 우측의 원적암(圓寂菴) 가는 길을 따라 생태탐방로를 계속 걷다 보면 원적암 입구에 다다르고 여기부터 계곡을 따라 계속 올라가면 까치봉 바로 아래의 발원지에 이른다

 

        

      <표 1> 동진강 법정하천 현황

하천명

하천등급

하천연장

(㎞)

유역면적

(㎢)

비고

고부천

국가

37.00

247.17

지방2급 84개소

동진강

국가

51.03

1,124.14

원평천

국가

30.00

270.70

정읍천

국가

33.00

433.00

동진강

지방1

32.03

219.52

  여기서 잠깐 내장산 국립공원에 대해 알아보면 내장산(內藏山)은 원래 본사 영은사(本寺 靈隱寺)의 이름을 따서 영은산 이라고 불리었으나 많은 굴곡의 계곡이 양(羊)의 창자와 비슷해서 많은 인파가 몰려와도 계곡 속에 들어가면 어디에 그 많은 인파가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아 마치 양의 내장(內臟) 속에 숨어 들어간 것 같다 하여 내장(內藏)산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더불어 지명도 내장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내장산은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고 해발 600∼700m급의 기암괴석이 말발굽의 능선을 그리고 있어「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한다.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백두대간이니 호남정맥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산맥관은 하천의 수계를 나누는 분수계를 기본개념으로 하며 노령산맥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장산은 서쪽에 입암산(笠巖山)을, 남쪽에는 백암산(白巖山, 백학산이라고도 불린다)과 함께 동진·황룡·섬진 등 3하천의 물을 나누는 분수계가 되기 때문이다. 즉 내장산과 입암산의 북쪽사면은 동진강의 상류가 되고 입암산과 백암산의 남쪽사면은 영산강의 상류인 황룡강으로 흘러들어가며 내장산과 백암산의 동쪽사면(순창군 복흥면 일대)은 섬진강의 상류가 된다.

노령이란 이름이 유래된 갈재의 서쪽에 있는 고창 방장산, 동쪽에 있는 입암산, 백양사의 뒷산인 백암산을 연결한 능선은 곧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내장산은 1971년 11월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총 면적이 81.715㎢에 달하는 내장산 국립공원은 전북의 정읍시와 순창군 그리고 전남의 장성군에 걸쳐 있다.

 


 

2. 현지답사

동진강의 발원지 답사는 내장산 국립공원에 문의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다. 출발하기 전 사전 조사결과 발원지가 있는 먹뱅이골의 원적암부터 까치봉까지의 계곡은 현재 입산 통제구역으로 휴식년제가 실시되고 있어 출입허가를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2005년 7월 22일(금요일) 저녁 12시쯤 채비를 꾸리고 내장산으로 향하여 고속도로를 들어섰다. 여름이긴 하지만 휴가철이고 유명한 관광지라 아침에 도착하면 내장산에 들어가는 것조차 여의치 안을 것 같아 전날 밤에 내장산 인근의 입구 가까운 곳에 도착하여 차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이 답사를 시작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내장산 입구에서 멀리 떨어진 내장 저수지부터 입구에 이르도록 주변의 계곡이나 주차장에는 차가 없고 이따금 야영객 만 눈에 띄었다. 예상이 빗나가고 있었다. 내장동 식당가에서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눈을 약간 부쳤다.

다음날 아침 국립공원관리공단 내장산 사무소를 찾아갔다. 발원지 답사를 한다고 설명하고 입산통제구역을 가야 한다고 하니까 관리사무소의 관리과장인 박종규씨는 흔쾌히 허락을 해 주겠노라고 하고 친절하게도 입구에 전화를 넣어 주었다. 다만, 동진강의 발원지가 발견되면 그곳의 GPS좌표나 알려 주면 내장산 관리에 이용하겠노라고 부탁하였다. 나는 그러마 하고 약속을 하였다.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출발이니까 발원지를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내장사 입구에 도착하였다.

내장사를 향해 가는 도로는 양쪽으로 수백 년은 됨직한 단풍나무가 줄줄이 나를 반기고 있었고 이따금 관광객이 등산 배낭을 메고 걸어가고 있었다

내장사 일주문을 올라가는 탐방안내소에 도착하여 주차를 하고 배낭을 꺼내 메면서 GPS를 꺼내 좌표를 확인 하고(북위 35°29′06.5″, 동경 126°54′35.7″) 바로 옆에 있는 식수대에서 물병을 채운다음 100m 정도 내장사를 향해 걸어가니 일주문이 나왔다(북위 35°29′07.8″, 동경 126°54′30.8″).

일주문을 지나 단풍나무 길을 약 200m 정도 걸어가니 유명한 사찰인 내장사가 보였다.

내장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내장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내장사는 지금으로부터 1300 백제 30 무왕(600-640)37년인 서기 636(백제멸망 66024 ) 당시 도승이신 영은조사께서 지금의 입구 부도전 일대로 추정되는 자리에 대웅전등 50여동에 이르는 대가람으로 백제인의 신앙적 원찰로서 영은사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1098(고려조 숙종3) 행안선사께서 전각당우를 중창했다는 기록이 있을 자세한 연혁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1557(조선조제13 명종12) 희묵대사가 법당과 요사를,1639(인조17) 부용대사가 사우를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했으며,1779(정조3) 영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을 중수하고 요사를 개축하였다.

1923 백학명 선사가 사세를 중흥시킨 1938 매곡선사가 대웅전과 명부전, 요사등을 .개축하여 위치에 내장사의 면모를 일신시켰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하여 1951112 소실된 것을 마지막으로 창건이래 5 7건으로 역사가 있다. 1957 주지 야은스님께서 요사,1958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1964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 대웅전 불상과 탱화를 조성 봉안 하였다.

1974 국립공원 내장사 복원계획에 따라 일주문, 명부전, 정혜루를 복원하고 사천왕문이 신축되었다.조선조 성종때 석학 성임(1421-1484) 정혜루기에서 영은사는 고려말엽 지엄선사의 개산에서 비롯된다고 기록한 , 정혜루는 당시 영은사의 문루로 1467(세조12) 시작하여 다음해 준공된 3간으로 규모나 형태가 장엄무비하다고 전하고 있다.

최근 내장사는 향적원과 정혜원, 요사등을 신축하고 1994 10월에는 사리탑을 건립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원래 내장산에는 명찰 영은사가 있었으니 영은사는 지금의 부도전 위치에 있었다

내장사를 오른쪽으로 돌아 원적암 방향의 원적계곡을 향해 나있는 등산로를 걸으면서 보니 주위에 군데군데 생태탐방안내판이 붙어 있고 내장산의 식물, 동물들에 대한 설명이 안내판에 소개되어 있었다.

 드디어 원적암 입구에 다다르니 휴식년제 실시 선간판이 붙어 있고 철조망으로 등산로를 막아놓아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왼쪽의 계곡물이 흐르는 쪽으로 내려가 철조망이 없는 지점을 통과하자마자 물가의 바위에 배낭을 벗어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계곡 물속에 흔히 볼 수 없는 물고기 한 마리가 죽어 있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니 그 물고기는 자가사리 같아 보였다. 역시 남쪽에 오니까 북쪽의 한강 등에서 볼 수 없는 물고기도 볼 수 있구나 하는데 바로 옆에는 독사 한 마리가 있었다 아마도 독사가 자가사리를 잡아놓고 먹으려는 찰나 내가 나타나서 못 먹고 있구나 생각했다. 살생의 현장을 보다니 심상치 않구나 생각하고 계속 계곡을 따라 올라 갔다. 이외에도 원적계곡에는 1급수 산골 물에서만 살고 있는 버들치가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면 곧바로 바위틈으로 숨어 버리곤 하는 광경을 많이 보았다. 성어의 크기로 보아 버들치는 약 10㎝∼15㎝ 정도로 약 3년 이상은 족히 된 듯 싶었다.

계곡물은 너무나 맑아 바닥이 훤히 보이고 각종 수서곤충, 동물들이 서로 아옹다옹 살고 있어 건전한 생태환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경치구경도 하고 물 속 구경도 하면서 계속해서 먹뱅이골을 오르니 드디어 "전북 산 사랑회"에서 달아놓은 표식도 보였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생각하니 약간의 여유가 생기는듯 했다.

드디어 마지막 갈림 하천에 도달해서 양쪽을 살폈으나 어느 쪽이 본류 인지 판단이 무척 어려웠다. 지도와 나침반을 꺼내 주위지형과 비교하여도 워낙 산세가 험하고 숲이 울창하여 구분이 안 되었다. 고민 끝에 왼쪽 길을 먼저 택하여 올라가 보리라 마음먹고 왼쪽계곡으로 향하였다.

그러나 길을 잘못 택하였다. 험한 계곡길의 하천 끝이라 생각되는 지점을 찾아서 GPS좌표 및 사진을 찍고 봉우리를 향하여 올라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능선에 다다랐는데 왼편의 봉우리 쪽을 보니 너무 멀리 있는 게 아닌가!

여기가 아니구나! 생각하니 다리에 힘이 쭉 빠져 기운이 없어지는 것 같은 허탈감에 한참을 멍하니 주저앉아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능선의 왼쪽으로 사람의 키보다 큰 산죽을 헤치면서 다른 계곡을 횡으로 찾아 보았다. 그런데 계속 전진하여도 계곡은 안 보이고 까치봉은 높게만 보여 드디어는 길을 잃은 것 같다는 생각이 막 들려는 찰라 바윗돌 부서진 너덜지대 위쪽으로 까치봉이 보이면서 물길이 이어진 것이 보였다.

너덜지대는 경사가 급하고 산죽이 많아 위쪽으로 올라가기 쉽지 않았다. 억지로 숲을 헤치면서 올라가니 하천의 끝이라 생각되는 지점이 나왔고 여기에서 GPS 좌표 및 사진을 찍었다.

이때가 오후 5시쯤으로 지금부터 부지런히 내려가야만 일몰 전에 계곡을 빠져나갈 수 있다는  생각에 까치봉 정상을 밟는 것은 다음으로 기약을 하고 계곡 아래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내려오면서도 더 위쪽를 답사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내려오는 도중 너덜지대의 맨 아래쪽에 "전북 산 사랑회"에서 일전에 찾아 놓은 "까치샘"이라는 표시주가 눈에 들어 왔다(북위 35° 29′13.29″, 동경 126° 53′08.8″). 그러나 자연발생적인 샘이라기 보다는 너덜지대의 한가운데 있는 바윗돌을 겉어 내어 인공적인 샘을 만들었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사실 물은 그 위쪽에도 실개천을 만들며 흐르고 있는 것이 완연했다.

발원지는 반드시 샘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일부러 샘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어쨌든 "전북 산 사랑회"에서 찾아놓은 까치샘 까지는 찾아 본 것으로 만족을 하고 다음에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먹고 계곡을 내려 왔다.

시작부터 마음이 찜찜하더니만 살생을 보고 발원지도 확인 못하고 어둠에 조끼 듯 산에서 내려왔으므로 마음이 무거웠다.

 

 

 

2005년 9월 10일(토요일) 일전에 답사한 동진강 발원지의 끝을 확인할 요량으로 전날부터 채비를 차려 출장 일을 보고 대전에서 일박을 한 후라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오전 10시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를 통과하여 내장산 탐방로 앞에 주차한 다음 오늘은 실수 없이 발원지 확인은 물론 까치봉 정상을 밟아 최종 목적을 달성하리라 마음먹고 급하게 일전에 답사한 경로를 따라 마지막 갈림 하천까지 한걸음에 내 달았다.

 이 지점부터는 천천히 물길을 확인하며 올라가야 했다. 일전에 찾아놓은 "까치샘"에 다다르니 그사이 여름을 지나면서 제법 큰 호우가 몇 번 있었는지 샘을 둘러싼 바위들이 무너져 있었다. 역시나 인공적인 발원지는 영원할 수 없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이곳부터는 경사 급한 너덜지대와 뚜렷하지 않은 계곡, 그리고 사람 키를 훌쩍 뛰어넘는 산죽, 가시나무 수풀과 싸우며 올라가야 하므로 무척 조심하여야 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엎어지면서 실개천을 찾아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위로 또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 100m 정도 힘겹게 올라가니 바위틈을 따라 흐르는 물길이 보이면서 실개천이 이어지고 있었고 다시 어느 10m 정도 바위와 나무와 산죽을 헤치며 올라가니 드디어 물길의 끝이 보였다.

여기가 발원지구나 하면서 GPS좌표 및 사진을 찍고 다시 까치봉으로 향해 힘든 발걸음을 내 디뎠다.

 

 

드디어 안부에 다다르니 까치봉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보였는데 좌측이 까치봉 우측이 망해봉으로 향하는 것으로 보아 좌측으로 향하여 걸으니 까치봉으로 향하는 길과 봉우리를 통과하지 않고 옆으로 우회하는 길이 갈라져 있어서 확인하는 차원에서 우회 길로 들어섰는데 약간 걸어가니 여기도 실개천이 있는데 아닌가. 다시 GPS 좌표 및 사진을 찍으면서 후보지로 선정하였다. 그런데 이 지점은 마치 한강의 발원지 인 "고목나무샘"과 비슷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등산로의 우회로 한 가운데이면서 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는데 다만 고목만 없는 것이 특징이었다.

다시 우회로를 따라 걸으니 이번에는 아까 와는 달리 등산로를 횡단하여 까치봉쪽으로 상당히 많이 진출한 실개천이 보였다. 이것이 진짜 발원지 임을 즉각 알아차렸다.

 등산로에서 까치봉쪽으로 약 20m 정도 더 진출한 실개천이며 길이로 보아도 최장이며, 또한 물 끼도 많이 머금고 있어 틀림없이 발원지라 할 수 있었다. 발원지는 주위의 산죽 덤불 사이에 아래로 흙이 무너져 약간 움푹 들어간 형태로 되어 있고 주변에는 물기를 머금은 흙과 이끼가 공존하는 형태로 우리나라와 같은 지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발원지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GPS좌표를 확인한바 동진강 발원지의 좌표는 북위 35°29′03.9″, 동경 126°53′02.3″으로 확인 되었다.

위로 까치봉 까지는 약 50m 정도되는 산죽을 헤치면서 가면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까치봉 가는 등산로에서 까치봉을 오르지 않고 망해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택해 약 100m 정도 우회하면 발원지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점을 두 번이나 고생하며 헤매었다는 사실에 약간의 허탈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까치봉 정상에 올라서 서해 쪽의 입암산과 신선봉 쪽의 경치를 감상하니 빼어나 산세에 취해 잠시나마 신선이 된 듯한 착각을 느낄 때쯤 비로소 답사를 통한 여러 가지 의미를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은 그야말로 구름에 떠있는 상태로 발걸음 가볍게 내려와 비로소 내장사 경내를 들러 절 주변을 감상하면서 계곡을 빠져나왔다. 

 

 

 

 

출처 : 발원지를 찾아서
글쓴이 : 이용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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