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관련 인터넷업체인 '즐거운학교'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교사대상 무료 체험프로그램을 실시하여는데, 여기에 응모하여 참가하게 되었다. 2010년 8월 14일 광복절 하루전날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하였는데, 평소 가고싶었던 창경궁을 가게 된 것이다. 전에 경복궁과 덕수궁은 대충 살펴볼 기회가 있었는데 창경궁과 창덕궁은 보지 못했었다. 다만 어렸을 때 취학전으로 기억하는데 고모부를 따라 이곳 창경궁(당시에는 창경원이라 하였는데 이것은 일제가 궁궐안에 놀이시설과 동물원, 식물원을 설치하면서 궁의 명칭을 원으로 격하시켰다고 함)에 와서 놀이시설을 이용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하였다. 그때가 7살 때이니 거의 40 여년만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지금 그때 기억은 오로지 동물원이나 놀이시설에 대한 기억밖에 없다.
전문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여유롭고 행복한 마음으로 둘러본 서울 도심내 창경궁, 그 고풍스럽고 예술적인 건축물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여기에 올려봅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신 즐거운 학교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기회가 되면 학생들의 체험학습을 목적으로 이곳을 다시 또 찾아보고 싶습니다.
& 창경궁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백과사전) ......................................................................................
조선시대 궁궐로 태종이 거처하던 수강궁터에 지어진 건물이다.
성종 14년(1483)에 정희왕후, 소혜왕후, 안순왕후를 위해 창경궁을 지었다. 처음 지을 당시의 건물은 명정전·문정전의 정전과 수령전·환경전·경춘전·인양전·통명전 등의 침전 및 양화당·여휘당·사성각이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중에서는 유일하게 동쪽을 향해 지어졌다.
처음에는 별로 사용되지 않다가 임진왜란 때에 경복궁·창덕궁과 함께 불에 탄 이후, 창덕궁과 같이 다시 지어져 조선왕조 역사의 중심 무대가 되었다. 숙종의 사랑을 받던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독살하려는 못된 행동을 저지르다가 처형을 당했는데, 당시 희빈은 주로 취선당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영조는 아들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일을 저질렀는데, 세자가 갇힌 뒤주를 궁궐 안의 선인문 안뜰에 8일간이나 두었었다.
창경궁은 순종이 즉위한 후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09년 궁궐 안의 건물들을 헐어내고 동물원과 식물원을 설치하였으며, 궁의 이름을 창경원으로 낮추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1984년 궁궐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을 되찾게 되었고, 궐 안의 동물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면서 벚나무 역시 없애버렸다.
장조·정조·순조·헌종을 비롯한 많은 왕들이 태어난 궁으로, 광해군 때 다시 지어진 정문·정전들이 보존되어 있으며, 옆에 있는 창덕궁과 함께 조선시대 궁궐의 역사를 살피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유적이다.
서울의 도심 4대문 안의 동쪽편에 자리잡고 있어 예로부터 창덕궁과 더불어 동궐이라 불리는 창경궁앞.
정문의 이름은 홍화문이다. 서울의 다른 궁궐과는 달리 남향이 아니라 동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지형을 고려한 건축물 배치라고 한다.
궁궐안쪽에서 바라본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홍화문에서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곳. 물길을 건너기 위해 만들어진 돌로 만든 다리. 현재 보물로 정해져있다.
창경궁에서 유일하게 국보로 정해진 창경궁의 중심 건물인 명정전. 국가적인 행사를 치루는 곳이다.
임진왜란때 서울의 궁궐이 모두 불타버린 후 광해군때 창덕궁, 창경궁 등을 재건하였는데, 명정전은 그때 만들어져 이후 소실되지 않고 건물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고 한다. 창경궁 내 다른 건물들은 광해군 이후 또 전란과 반란, 또는 화재로 인해 소실되고 그래서 여러번 재건축되기도 하였다.
멀리서 바라본 명정전 건물과 앞쪽의 너른 공간. 이곳을 조정이라 하는데 나중에 조정이라는 말은 국가를 대신하는 말로 확장이 된 것이다.
명정전 앞의 길은 3개의 통행로가 있는데 가운데는 왕이 행차할 때 이용하는 어도이다.
품계석, 행사때 품계에 따라 신하들이 도열을 할 것이다.
명정전 건물의 현판.
명정전 안쪽의 왕이 주재하는 공간. 뒷쪽의 일월오봉이 그려진 병풍은 풍수지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한다.
왕이 정사와 학문을 토론하던 숭문당 건물. 현판글씨.
왕의 편전(정사를 돌보던 곳)으로 사용된 문정전. 다른 건물과 달리 남향을 하고 있다.
과거에 합격한 신하를 접견하고 어사주를 내려주었다고 하는 함인정.
이곳은 궁궐내 여자들의 공간으로 내전이라고 하는데 경춘전 건물이 위치한다.
후궁들의 거처. 영춘헌과 집복헌.
대비의 침전이었던 양화당 건물.
왕과 왕비의 침소인 통명전. 윗쪽에 용마루 형식이 생략된 점은 왕을 용으로 보고 그 위에 또다른 용 모양을 만들지 않은 결과이다.
통명전 주변의 아기자기한 연못과 석조물.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갈수 있는 계단.
창경궁의 내전 건물들.
뒷쪽에서 바라본 통명전.
정조의 어머니였던 혜경궁홍씨가 거처했던 곳에 건물은 사라지고 지금은 빈 공간에 숲이 조성되어 있다.
성종의 태를 모셨던 태실. 원래는 서울 밖에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이곳으로 옮겨왔고 내용물은 없어졌다고 한다.
창경궁의 후원인 춘당지라 불리는 연못. 원래 춘당지는 이보다 윗쪽에 작은 규모로 있으며, 이곳은 왕이 친히 농사를 권장하기위해 농경지가 있었던 곳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창경원으로 격하시켜 놀이시설을 만들면서 이곳에 호수를 만들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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