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옛길체험 2] 정읍 입암 군령마을과 장성 북이 목란마을 사이, 노령을 통과

뿌리기픈 2010. 4. 10. 23:11

 

정읍의 변방지역을 연결하는 옛 고갯길을 찾아가본다. 육상교통의 발달로 새로운 도로가 개설되고 확장되면서 옛길의 흔적을 좀체 찾기 힘든 평지에 비해, 고갯길에서는 개발의 손길이 적어 옛길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길체험, 이번에는 그 두 번째 이야기로, 정읍의 남쪽에 위치한 ‘노령(蘆嶺)’이라 불리는 옛 고개 마루를 소개한다. 흔히 노령을 ‘갈재’ 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 정상에 갈대가 많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로 갈대는 바닷가와 하천하류지역에 분포하고, 억새는 산간지역에 분포한다. 는 일반적인 사실을 고려할 때, 형태가 비슷한 억새와 갈대를 구분 없이 사용한 결과로 여겨진다. 일부 고지도상에는 ‘갈령(葛嶺)’이라는 표현이 발견되기도 한다. 이는 ‘갈재’를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로 해석된다.

 

 

 * 노령고개 정상에서 북쪽을 향해 굽어다 본 모습. 왼쪽에 입암저수지, 오른쪽에 입암면 군령마을이 위치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의 지질구조에 따라 정해진 산맥이름 가운데 하나인 노령산맥은 소백산맥에서 갈라져 나와 전북을 대각선으로 지나며 산간부와 평야부를 갈라놓는다. 그리고 그 맥은 내장산 부근에서부터 전북과 전남의 경계를 이루기도 한다. 이러한 노령산맥의 어원이 되는 ‘노령’이라는 고개가 바로 우리고장 정읍에 위치하는 것이다. 노령이라는 고개이름을 따서 산맥이름을 지은 것은, 이곳이 노령산맥에 해당하는 산줄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교통의 길목으로서 인적 물적 통행량이 많아 그만큼 유명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방장산과 입암산 사이의 가장  낮은 부분이 노령고개.  지금은 사람의 인적이 끊긴 지 오래지만, 우마차의 통과를 위해 인위적으로 바위를 깨부순 흔적이 보인다. 

 

 노령고개는 서쪽의 방장산(742.8m)과 동쪽의 입암산(626m)사이 가장 낮은 부분 . 즉 이른바 안부(鞍部)에 해당한다. 전통지리학의 산줄기 개념으로 보면 이곳은 호남정맥에서 갈라져 나온 이른바 ‘영산기맥’(내장산 부근 순창새재~목포 유달산)의 줄기에 만들어진 고개로서, 북쪽의 동진강수계와 남쪽의 영산강 수계를 나누는 분수계에 해당하는 곳이다. 사람과 말이 다녔던 오솔길 형태의 옛길은 고개마루를 통과할 때에도 이동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장 낮은 부분을 선택하였을 것이고, 편안함을 고려하여 가급적 등고선을 따라 지그재그형태로 길이 조성되었을 것이다.

 

또한 근대화 이후에 만들어진 고갯길도  자동차를 전제로 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개마루를 오르기 위해 대개 지그재그의 형태를 갖는다. 노령의 경우에도 일제강점기 국도 1호선(목포~서울~신의주)의 통과를 위해 옛길 대신 새로운 자동차 도로를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오늘날 ‘장성새재’(276m)라 불리는 새로운 고개마루를 통과하는 신작로였던 것이다. 토목기술이 발달한 오늘날 이제 고갯길은 또 한번 큰 변화를 가져온다. 모든 교통수단이 이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일직선상의 굴(터널)을 뚫어서 산줄기를 통과하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힘들여 고개마루를 넘나들 일이 없어졌고 더 이상 주목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기차가 다니는 철로, 배가 다니는 운하에 이르기까지 험준한 장벽이라 할 수 있는 산줄기 지형을 이제는 터널을 만들어 직선상으로 쉽게 통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터널에 따른 부작용도 있겠지만 산을 절개하여 만들던 공법에 비하면 외견상 자연파괴를 최소화한다고도 볼 수 있다.

 

2008년 2월 18일 오후, 모처럼 주어진 한가로운 시간을 이용하여 마음먹었던 답사를 떠난다. 공기는 여전히 차갑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일반적으로 겨울 답사는 차가운 날씨만 감수한다면 다른 계절에 비해 유리한 조건을 갖는다. 맑고 건조한 날씨가 많고 식생이 말라있어 경관을 관찰하기에는 더없이 좋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타고 집을 출발하여 정읍의 남쪽에 해당하는 입암면 등천리 군령마을에 도착하였다. 내장산에서 이어지는 입암산과 시루봉 그리고 방장산이 가깝게 보이는 곳에 위치한 군령마을은 무척 한가로운 농촌 마을이었다. 마을의 지세를 보면, 뒤쪽은 입암산에서 이어지는 낮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아늑하게 감싸주고 있고 남쪽으로는 노령산맥의 산줄기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마을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곳에는 옛날 노령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외적을 막기위해 군대를 주둔시켰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노령보 고개길이 사나워 전에는 도적이 떼를 지어 있으면서 백주에도 살육과 약탈을 하여 통하지 않았는데 중종 15년 보(堡)를 설치하여 방수(防守)하다가 뒤에 폐지했다.” 라는 기록이 있다.

 

옛날 같으면 고개를 중심으로 산아래 양쪽의 마을들은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다. 이곳은 나그네들이 고개를 넘기 전에 쉬기도 하고 숙식을 해결하던 곳일 터인데, 지금은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격세지감이랄까? 이제는 시대가 변하여 요즘 자동차들은 고개마루에 생겨난 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갈 뿐이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여쭈어보니, 예상대로 노령고개를 오가는 옛길은 이제 더 이상 쓰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도 가는 길을 대충 물어서 홀로 산행 길을 시작한다. 길은 모르고 눈으로 보아 가장 낮은 부분이 고개길이라 여겨 목표지점만 확인하면서 전진을 한다.

 

호남선 이설에 따른 폐선로의 흔적을 따라 구 노령터널 부근에 도착한다. 여기서부터는 길의 흔적이 없어 눈짐작으로 올라가는데 경사가 급하고 겨울인데도 가시덤불과 잡목이 우거져있어 한 걸음 한걸음 전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더구나 산의 북쪽사면지역이어서 잔설이 많아 눈 속에 발이 푹푹 빠지기도 하였다.

 

 

▲ 호남선 철로 이설로 인해 남겨진 흔적으로 노령고개를 향해 접근할 수 있는 도로임. 산자락의 낮은 곳이 노령고개가 있는 곳. 현재 이곳의 도로와 터널을 이용하여 도시가스가 산맥을 통과하고 있다.

 

군령마을 근처의 시루봉..  마치 사람이 누워서 하늘을 보는듯한 형태를 띠고 있다.

 

 

 

 

 

 

 

▲ 옛길을 따라 곳곳에 쓰러져있는 시멘트 전봇대가 희미한 길의 흔적을 보여준다.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도착한 노령의 옛 고개마루, 2년 전에 산줄기를 따라 등산을 하다가 처음 보고 느꼈던 감동은 아니지만 반가웠다. 비록 지금은 초라하기 그지 없지만, 이곳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관리하는 간선도로 10개 중 하나인 삼남대로(해남대로: 서울~해남)상에 위치한 중요한 고개마루(대략 250m)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이 부근은 많은 도로가 고개나 터널의 형태로 지나고 있다. 즉 옛길이 지나는 노령고개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호남선 철로의 노령제2터널이 산 아래를 지나고 있고, 현재 전주-광주간 신 국도를 위한 터널 공사도 한창이다. 서쪽으로는 호남선의 옛 터널과 호남고속도로의 터널이 산 아래를 지나고 있고, 장성갈재의 고개마루를 국도 1호선이 지나고 있어 가히 ‘도로의 전시장’이라 할 만하다. 앞으로도 호남고속전철이 지나면서 또 하나의 굴을 뚫어놓을 것이다. 지형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무수히 깎고 뚫어 놓은 풍경이 살풍경하게 보이지만, 사람들은 그저 편익을 제공받기 위해 기꺼이 지불해야 할 대가라고 할 것이다.

 

 

노령고개를 통과하니 여기서부터는 내리막길로 행정구역과 물길이 달라지는 곳이다. 고개를 넘어서면서부터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에 해당하고, 동진강 대신 영산강의 수계에 포함되는 곳이다.  역시 이곳도 옛길의 흔적을 찾기가 어려워 골짜기를 따라 무작정 내려가게 되었다. 가시덤불과 잡목을 제치며 한참을 전진하다가 겨우 발견한 길의 흔적, 그리고 그  산길 바로 른쪽으로는 장성갈재로 오르는 국도1호선의 아스팔트 포장길이 보였다. 그렇지만 이산길이 옛길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며, 근래에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된 길로 보인다. 그나마도 이제는 더 이상 관리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도1호선의 아스팔트길로 내려서서 조금 더 걸으니 오른편으로 목란마을이 보인다. 옛 호남선 철길과 옛 호남고속도로를 건너고 새로 이설된 고속도로의 육교 아래를 통과하여 도착한 농촌마을. 이곳은 전남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목란마을로서 건너편의 신목란과 구별하기 위해 이곳을 구목란이라 부르기도 한다.

 

 

 

▲ 노령고개너머 첫동네에 해당하는 장성군 북이면 원덕리 구목란마을

 

 

여기서 왼쪽으로는 시루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방장산이 보인다. 동네아저씨 한 분을 만나 마을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나니 어느새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여 오던 길을 돌아가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갈 생각을 하여 아찔해진다. 그래서 이번에는 코스를 달리하여 무작정 가까운 산자락의 능선을 따라 노령고개에 접근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목란마을 입구 이정표 근처에 있는 남양홍씨 제각을 출발점으로 하여 산행을 시작하였다.

 

 

시루봉으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북쪽으로 한참을 오르니 드디어 등산객들이 자주 다니는 주요 능선 길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진로를 서쪽으로 향해 조금 더 걸으니 노령고개가 나타났다. 비록 골짜기를 따라 이어졌을 옛길은 아니지만 노령고개에 접근하는 능선 길을 새롭게 걸어본 것이다.

 

▲ 신목란마을 주변에 국도1호선과 철도가 지나고 있고, 고속도로는 구목란마을쪽으로 이동하였다.

 

 

이제 다시 정읍 쪽을 향해 내려가면서, 올라올 때 보지 못했던 옛길을 세밀히 추정하며 길을 진행하였다. 덤불과 쓰러진 나무로 길을 추정하기가 거의 불가능 하였다. 작은 바윗돌을 쌓은 흔적과 쓰러진 시멘트 전주(電柱)를 옛길의 흔적으로 생각하며 내려가기는 했어도 옛길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그렇게 내려가다 만난 것은 호남고속도로의 터널부근, 무심한 자동차들은 그저 달릴뿐이었다. 고속도로 옆으로 만들어진 배수로를 따라 잠시 후 출발지점인 군령마을에 도착하였다.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늘 다녀온 여정은 정상적인길이 아니어서 시간이 지체되었음을 감안하면, 이쪽 마을에서 고개너머 저쪽 마을까지 대략 1시간 이내에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것으로 측정되었다.

 

 

 

 

 

▲ 돌로 쌓은 축대가 가끔 보이는데 옛길의 흔적으로 추정됨.

 

 

오늘 오후 한나절 만에 다녀오게 된 노령의 옛길, 비록 옛길을 제대로 찾을 수는 없었고 덤불 때문에 걷는데 고생은 하였지만 큰 숙제를 마친 듯 마음이 뿌듯해진다. 노령고개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위치하는 군령과 목란마을 사이의 옛길, 이곳에는 고개를 넘나들었던 수많은 옛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고 오랜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곳의 옛길을 복원하여 시민들에게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은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요즘 옛길에 관심있는 이들이 이곳을 도보로 통과하면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글로 남겨놓은 경우를 접하게 되는데 정읍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 안타까운 심정을 갖게되는 대목이기도 하다. 옛길을 복원하여 두 발로 걸어보는 일은 첨단의

디지털과 스피드를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무척 낯설은 장면일 수 있겠지만, 여전히

아날로그적 사고를 그리워하고 느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분명 가슴벅찬

일로 기억될 것이다.

 

 

▲ 노령고개에서 정읍쪽으로 내려오면서 만나게 되는 호남고속도로 터널부근. 왼쪽 배수로를 따라 군령마을까지 내려오게 된다.

 

 

입력 : 2008년 02월 19일 22:44:46 / 수정 : 2008년 02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