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세연암과 세연정

뿌리기픈 2010. 2. 22. 22:04

  정읍에서 승용차를 타고 전주를 갈 때마다 태인을 지나면서 한번쯤 들렀으면 하는 곳을 드디어 오늘 맘먹고 찾아보았다. 바로 1번국도 도로변에 위치하며 산자락 끝인지라 접근성이 좋은데도 이제껏 미루다 이제야 들른 것이다.  그 옛날 선비들이 시를 짓고 글씨를 쓰며 풍류를 즐겼다고 하는 정읍시 태인면 고천리 녹동마을 입구에 위치한 세연암과 세연정. 세연암은 벼루를 씻었다는 의미를 갖는 너럭바위를 말하고, 세연정은 부근에 위치한 정자를 말한다.

 

  이곳은 과거 고부 또는 정읍에서 태인을 거쳐 전주방향으로 가는 나그네들이 한번씩 쉬어가는 곳이라고 한다. 지형상으로는 동쪽에 위치한 상두산의 한 자락이  천애산을 거쳐 남쪽으로 이어지다 동진강의 지류인 용호천을 만나 바위를 드러낸 곳이다. 부근에 녹동이라는 마을이 위치하는데  배산임수형의 좋은 마을터로 여겨지며,  그런 마을의 초입에 세연암이 자리잡고 있다. 필자가 볼 때도 나름 좋은 풍치를 갖고 있는 곳이어서 나그네들이 한번씩 쉬어갈 법한 곳으로 보여진다. 예전엔 이곳 산자락 밑으로 이어지던 옛길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이른바 경목선(목포-서울-신의주를 연결하는 1번국도)이 새롭게 조성되며 그 위치가 하천 건너편으로 옮겨졌으며,  최근 1번 신국도가 조성되면서 도로는 높은 둔덕을 이루며 4차선으로 바뀌었다.

 

  동학농민혁명때에도 농민군들이 전주성을 함락시키기 위하여 이곳을 거쳐갔을 것이고 이곳 태인 사람들도 그당시 혁명 대열에 많이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곳엔  나그네들을 의식해서 만들어진 지방수령들의 선정비를 포함한 다수의 비석들이 서있고,  너럭바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새겨놓은 글씨들이 새겨져 있다. 암각 글씨는 금석문이라 할 수 있는데 가장 크고 뚜렷하게 새겨진 '세연암'이라는 글씨는 일제강점기에 활약한 이 지역 출신의 서예가 동초 김석곤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동안 세연암이라는 바위와 그 윗쪽에 전시된 고비군이 오랜 풍상을 견디며 이어져왔는데 정작 나그네의 쉼터 역할을 했을 세연정이라는 정자가 복원되지 않아 아쉬웠었다. 이에 2006년 드디어 정읍시와 지역인사들의 노력으로 세연정이라는 정자가 완공되었다. 비록 콘크리트 재료라서 운치가 다소 떨어지긴 하지만 세연암에 세연정이 세트로 조성되니 그럴듯하게 보였다. 다만 안내문이 적혀있는 비문을 읽으면서 느낀 아쉬웠던 점은 이곳 세연암에 새겨진 글씨중에 가장 빛나고 예술적 가치가 높은 김석곤 선생의 '세연암' 글씨에 대한 언급이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상두산쪽에서 시작하여 동진강으로 합류되는 용호천이 세연암이 위치한 산자락을 감싸며 지난다.

왼쪽은 최근에 만들어진 세연정이라는 정자. 옛날 남쪽에서 올라오는 나그네들은 이곳을 통과하여 전주를 향하였다.  

 

 세연정이라는 현판.

 

 

세연정 건립 공적비 

 

 세연암 바위에 어느 현감에 대한 흔적을 글씨로 남겼다. 이곳은 당시 태인현 관할 지역.

 

 

 동초 김석곤이 쓴 '세연암' 이라는 글씨.  초서 라는 글씨체라서 일반인들은 잘 알아보기 어렵지만  힘이 느껴진다.

 

 

 세연암의 글씨와 윗쪽에 세워진 비석들. 왼쪽 2기는 최근 복원된 것.

 

어느 어사의 영세불망비.

 

 

 

 어느 현감의 영세불망비.

 

어느 어사의 휼민 불망비 (백성의 어려움을 도왔다는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

 

조선후기 전라관찰사 이서구의 영세불망비.  

 

현감의 청백 선정비 (깨끗한 정치를 실천하고  선정을 베풀었음을  기념한 비석) 

 

 복원된 비석.

 

 오래된 비석들

 

 윗쪽에서 내려다본 모습. 앞쪽에 하천과 건너편에 4차선 국도가 지난다.

 

 

 

 오른쪽 농로는 과거 옛길에 해당하기에 이곳은 일종의 휴게소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모두들 차량으로 다니기에 이런 곳에서 쉴 일이 없어졌다.

 

 세연정 건립과 관련된 기념비.  이곳 출신 국회의원 김영구씨가 눈에 뜨인다. 이곳 녹동마을은 광산김씨 집성촌인듯....

 

 세연정과 세연암 그리고 옛길.... 사람들로 붐볐을 길인데 지금은 쓸쓸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