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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누리(국내답사)

원평의 옛길과 동학농민혁명관련 유적지 답사

2009년 9월 26일 놀토에 이루어진 뜻깊은 문화유적 답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읍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와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가 함께 추진한 '김제땅 동학농민혁명 흔적을 찾아서, 역사길 걷기대회에 시민의 한사람으로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정읍시청에서 전세버스로 출발하여 김제시 금산면 원평리 면소재지를 지나 금산사 입구의 금평저수지 윗쪽에서 죄회전하여 청도리 동곡(구릿골)마을에 도착하였다. 시민과 학생 어린이 등 다양한 계층이 함께 참여하였는데 이곳에서 김제 분들과 함께 만나 답사를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오늘 답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안내를 담당하신 분은 이곳 김제 문화원장을 지내신 최순식(향토사학자)님의 따님이라는 분인데 현재 김제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의 사무처장을 맡고 있다고 한다.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주 자상하게 설명을 해주시니 듣는 분들이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었다. 답사안내의 내공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오전에는 동곡에서부터 청도리 귀신사까지 약 4-5킬로미터의 계곡을 따라 약 1시간 반 가량을 걸었다. 초가을인데 낮엔 무척 덥게 느껴졌고 길이 좁아 참가자들이 조금은 힘들어 하였다. 이 길은 과거 원평에서 전주를 가는데 지름길이 되는 옛길에 해당이 되며,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군들이 전주성을 향해 진격했던 길이라고 한다. 지금은 금평저수지에서 금산사쪽으로 이어지는 포장된 지방도로가 귀신사까지 별도로 만들어져 있어 구릿골(동곡)계곡의 옛길은 그저 숲속의 오솔길로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만간에 이 옛길이 저수지  조성으로 인해 사라진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한국농촌공사에서 발주하는 농업용 저수지가 이곳 구릿골 계곡에 만들어지기에 이 길은 이제 물속으로 수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현재 구릿골 아래에 위치한 금평저수지(1961년 완공)는 구성산자락의 구릿골계곡과 모악산 자락의 금산사계곡의 물을 모아 금산면과 봉남면 등 김제평야에 물을 공급해주고 있지만 수량이 부족하여 새로운 보조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식량증산을 위해서 유서깊은 옛길이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좁은 협곡의 계곡을 통과하여 목표지점인 귀신사 사찰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비교적 너른 고원상 분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전주쪽으로 이어지는 솔티고개를 경계로 동진강 수계와 만경강 수계가 분수계를 이룬다고 하겠다.

 

점심식사를 금산사 입구 상가지역에서 해결한 후 오후에는 원평일대에 산재한 동학농민혁명 관련 유적지 몇곳을 답사하였다.

 

원평을 중심을로 동학군을 이끌었던 김덕명장군의 생가지를 버스를 타고 가면서 눈으로 확인하였다. 아쉽게도 가옥은 남아있지않고 제과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동학관련 유적지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지자체의 행태에 분노가 앞선다. 이어서 1893년 1만여 명의 동학교도가 모여서 교조신원과 반외세를 외쳤다는 금구원평취회(집회)의 장소인 원평장터를 둘러보고 그날의 함성을 상상하였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위치한 구미란 마을 뒷산에 올라 동학농민군의 묘역을 둘러보았다. 이곳 구미란 전투지는 1894년 갑오년 2차봉기후 공주 우금티 전투에서 패한 농민군이 원평에서 다시한번 집결하여 싸웠으나 많은 전사자를 남기고 태인으로 패퇴했던  곳이다.  곳곳에 널부러져 있는 희미해져버린 봉분들 위로는 이미 소나무와 잡초가 무성하여 묘역으로 보기도 어려운데 후손된 자로서 그저 부끄러운 마음이다. 백여년전에 평등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수많은 농민군들의 원혼이 떠도는 것 같았다. 

 

이어서 원평시가지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집강소 터를 둘러보았다. 기와집이지만 사람이 살지않는 빈집이어서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상태를 보이고 있고 어디에도 이를 설명해주는 안내문이  없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가까운 어느 유명한 순대집은 자주 찾지만 이런 역사적인 유적을 그냥 지나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답사가 예정되었던 김덕명 장군 관련 학수재(노인당)건물이나 당시 탄환을 만들었던 어유동은 사정상 생략하였다.

 

오늘 답사를 통해 여러가지를 알게되고  느끼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은 정읍을 중심으로 인근 고창과 부안 그리고 이곳 김제의 원평일대가 주요한 거점이었다는 것을 이번 답사를 통해 다시한번 확인하게 되었다. 동학농민혁명의 주요한 지도자들이 당시 교통의 요충지였던 원평(금구현 수류면)을 중심을로 가깝게 교류하였으며 혁명의 거점으로 활용하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예컨대 원평의 김덕명 장군(언양김씨로서 전봉준장군의 외가쪽 일가임)은 전봉준 장군보다는 나이상으로 10년 정도 위였지만 전봉준장군의 능력을 인정하여 그 아래에서 참모장의 역할에 충실하였다고 한다. 전봉준 장군이 유년시절에는 원평에서 가까운 황새골(현 정읍시 감곡면)에서 살았고, 또한  원평에 외가가 있었으니 원평 생활권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상두산쪽 고개를 넘으면 정읍시 산외면 동곡마을이 가깝기에 그곳 출신 김개남 장군과도 교류가 가능하였을 것이다. 산외면 동곡은 전봉준 장군의 처가가 있는 마을로도 알려져 있다.

 

뜻깊은 답사를 주관해주신 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김제시 금산면 금평저수지. 금산사계곡과 구릿골 계곡의 물이 모여 동진강 수계중의 하나인 원평천의 주요한 수원을 형성한다.

              물이 모이는 이곳 제비산 아래쪽을 예로부터 오리알터라 하여 풍수적으로 의미있는 곳라 하는데 여러 종교와 종파가 이곳에 자

              리  잡고 있기도 하다.   미륵신앙의 터전인 금산사, 초기 개신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금산교회, 원불교교당, 천주교  수류성당,

             구한말 신흥민족종교인 증산교의 본산인 용화사와 그 교파인 대순진리회의 법당 등이 이곳 금산면 지역에 모여있다.

 

               제비산 아래 구릿골(동곡마을)부근에 세워져있는 조선의 혁명가 정여립 안내판. 진안죽도에서 죽기 전까지 이곳에서 살았음.

 옛길 걷기대회 출발지인 동곡마을 회관.

 

                동곡마을에서 금평저수지로 들어가는 하천수로.

               동곡마을에서 살았다는 강증산(강일순)의 동곡약방. 병자를 치료하는 기적을 행하고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였기에 증산교의 성지에 해당한다.  최근에 단장한 건물로 보인다.

                동학농민군들이 전주성을 향해 걸어갔던 구릿골 계곡의 옛길.

 

            멀리 모악산(금산)이 보인다.

             협곡을 따라 바위가 드러나는데 이런 아름다운 풍경이 댐건설로 수장된다고 하니 아쉽기만 하다.

 

 

 

 

 

 

 

 

            협곡을 지나 귀신사가 보이는 곳.

 

               목적지를 앞에두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행사에 참가한 정읍중학교 학생들의 발랄한 모습.

 

             행사에 참여한 신태인고 학생과 선생님.

 

 

                  귀신사 주변 풍경.

             귀신사 진입로. 옛길과는 별도로 712번 지방도가 전주와 금산사를 연결한다.

 

             걷기대회 종착점인 귀신사 사찰경내

               원평 장터 부근에서 바라본 모악산과 그아래 제비산. 산지와 평야부가 만나는 곳에 원평이  자리잡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

              이며, 정보와 물산의 집산지라 할 만하다. 소시장도 유명하여 고개넘어 소를 몰고 장터로 모여들었다고 한다. 태인으로 가는 솟튼

              재는 도적들이 소를 털어갔다는 말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원평장터 앞에서 기념사진 촬영. 기념비는 이곳에서도 열렸던 삼일만세운동을 기념하여 세운 것.

 

              원평 장터지역. 보은 집회와 더불어 같은 시기에 열렸던 금구원평집회의 장소.

 

             구미란 전투가 벌어졌던 구미동 마을과 뒷산.  거북꼬리 형상과 관련되어 붙여진 지명인듯....

 

               동학농민군들이 스러져갔던 곳. 묘역표시도 없고 나무와 잡초가 무성하다.

 

              원평집강소 건물이 있었던 곳. 초가지붕이 기와지붕으로 바뀌어있는데 지금은 폐가이다.

 

 동학농민혁명당시 집강소가 있었던 곳의 거리. 전주-태인간 1번국도가 지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