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9일에 실시한 옛길체험 5번째의 이야기를 올린다. 이젠 점점 봄을 향해 치닫는 날씨여서 그런지, 낮엔 제법 따사로움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일요일 아침 큰딸이 컴퓨터자격증시험을 본다하여 자동차로 정읍의 학산고등학교에 내려주고 곧바로 칠보산 아래 금북(검듸)마을을 향했다.
한가로움이 느껴지는 일요일 오전 10시경에 금북제라 불리는 작은 저수지옆에 차를 주차하고서 가벼운 마음으로 산길을 오른다. 지도를 확인해보니 금북제에서 2개의 고갯길이 갈라진다. 왼쪽으로 오르면 계곡을 따라 길마재길, 오른쪽으로 오르면 약사암(옛 금북사로 추정됨)에 이르는 피율 고개길이라 한다. 길마재는 질마재라고도 하여 시인 서정주의 고향인 고창 선운리 부근에도 같은 이름이 존재한다. 고지도상에는 안현(鞍峴)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는데 이는 말안장의 모습을 본따 붙인 이름일 것이다. 또한 피율고개의 '피율'은 아마도 고개너머 칠보면 수청리 피오마을의 이름이 변형되어 부르는 이름으로 추정한다.
이곳은 정읍시내에서 가까이 위치하는 마을인데 행정구역상 금붕동 금북마을에 속한다. 일명 '검듸'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는 3가지 설이 존재한다. 첫째, 검듸란 거문고 뒤라는 뜻으로 쓰인다. 칠보산 자락의 옥녀봉과 마을앞쪽의 거문고처럼 생긴 낮은 산을 묶어 풍수지리상 '옥녀탄금형'이라 한다. 예쁜 여자가 거문고를 연주한다는 뜻이다. 둘째, 검듸란 거문고(금=검)형국의 마을(듸)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셋째, 검듸란 신령스런 마을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아마도 길마재 고갯길 곳곳에 지금도 존재하는 서낭당과 관련되는 이야기일 것이다.(<정읍향리지> 참조)
유서깊은 이곳 금북마을은 요즘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다. 정읍시내에서 가까운 지리적인 잇점때문인지 노인복지회관을 포함하여 노인을 위한 각종 복지시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그야말로 정읍의 대표적인 실버타운이라 할 만한 곳이다. 칠보산의 남쪽 완경사면에 위치한 기존의 마을에는 외지인들이 새로이 입주하면서 만든 다양한 형태의 전원 주택이 들어서고 있다. 그리고 그 앞쪽으로는 계속해서 노인복지관련 건축물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었다. 한가했던 농촌마을이 이제 새로운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일정상, 우선 금북저수지에서 임도를 따라 피율고갯길을 올라갔다. 옛길이라 할만한 길은 찾지 못하였다. 다만 너른 임도를 따라 올라갔는데 약사암 아래 중턱쯤에서 끝이났고, 여기서부터는 가파른 산길을 따라 오르다가 능선상의 등산로를 찾게 되었다.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니 조금 후 칠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마재고개 정상부에 도착하였다. 길마재 정상을 중심으로 금북마을쪽은 대체로 급경사를 이루고 있었고, 칠보면 수청리쪽으로는 완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동진강의 지류인 태인천과 정읍천의 상류지역인지라 이곳도 분수계라 하겠지만 하류에서 물이 다시 만날 수 있으니 별로 큰 의미가 있는 곳은 아닌 것 같다.
지형의 특징을 확인한 후 칠보면 수청리 방향으로 내려갔다. 옛길의 흔적은 별로 남아있지 않았고 임도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외딴집 한 채가 골짜기 안쪽에 위치하고 있었고 바로 아래에는 49번 지방도가 이어지고 있었다. 아스팔트 길을 1킬로미터 정도 걸어야만 하였다. 지도상의 피오마을을 찾기 위해서이다. 부전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루 근처에서 우회전하여 완만한 산길을 300미터 정도 오르면 약수암이라 부르는 자그마한 암자가 나타난다. 스님 한분이 여기에 기거하는데, 지금은 칠보쪽에서 자동차를 타고 쉽게 여기까지 접근할 수 있으니, 예전처럼 정읍시내에서 가까운 금북마을쪽에서 힘들게 걸어와야 하는 수고가 사라지게 된 것이다. 마치 칠보면과 산내면 사이에 존재하는 석탄사라는 사찰의 경우와 같다고 하면 될 것이다. 요즘 스님들은 예전과 달리 웬만하면 승용차를 이용하여 사찰이나 암자까지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으니 이게 좋은 의미의 변화인지 모르겠다. 덕분에 육체적 수고로움이 없이 수도에만 정진할 수 있게 되었다고 긍정적으로만 봐야할 일인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이순간 보수적인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다시 칠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조금 전에 걸었던...)을 따라 가면서 피율고개 정상부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였다. 지금은 이용하는 사람이 없으니 거의 흔적이 사라져버린 것 같다. 조금 후 길마재 고개 정상부에 도착하였고 여기서 금북마을을 향해 급경사의 고갯길을 내려가게 되었다. 칠보쪽에 비해 이곳의 고갯길은 온전히 옛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평소 등산객들이 칠보산을 오르내리기 위해 통행을 수시로 하는 길이기 때문에 잡목에 덮히지 않고 유지되는 것 같았다. 사람의 발길로 해서 그렇게 길은 유지가 되는 것이다.
내려오면서 서낭당으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몇군데 보였고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장소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뭔가 신령스런 기운이 있기에 굿을 통해 기원을 올리는 것일게다. 그러고보면 길마재를 서낭당재라 해도 좋을 듯 싶었다. 하지만 조금 후 숲속을 통과한 후 마을쪽을 내려가니 거대한 아파트 공사장이 나타났다. 신령스런 분위기는 일시에 사라지고 도시적인 경관에 압도되는 듯 하였다. 실버타운답게 노인들을 위한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한다. 모두들 노부모 모시기를 기피하는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이런 시설은 계속해서 늘어날 것으로 추측된다.
고개정상부에서 마을까지 20분이면 내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 비록 짧은 고갯길이지만 옛스런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길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길은 이곳에서 노후를 즐기기 위해 이주해오는 노인들에게도 좋은 산책코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칠보산 아래에서 남은 여생 보내게 될 어르신들에게 축복을 기원해본다.
정읍시 금붕동 금북(검듸)마을에 속속 들어서는 노인 복지시설들. 왼쪽으로 칠보산이 위치하고 능선의 낮은 곳이 길마재 정상부.
길마재 고개를 클로즈업시켰는데, 바로아래에는 노인아파트가 만들어지고 있다.
칠보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 일차적으로 고이는 금북제(검듸저수지). 물빛이 독특하다.
금북저수지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모습.
피율고개로 오르는 길. 산림청에서 조성한 임도에 해당.
피율고개 정상부로 이르는 길. 위쪽에 약수암이 위치한다.
능선길에서 본 등산객을 위한 표식.
칠보산 줄기따라 이어지는 능선길.
칠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길마재고개정상부에서 칠보면쪽을 바라본 모습.
길마재 고개정상부에서 칠보 수청리 쪽으로 위치한 외딴집. 지도상에는 노적마을로 나온다.
길마재 고개마루.
길마재 고개 정상부로 이어지는 칠보 수청리 외딴집.
길마재에서 골짜기를 따라 칠보면 수청리로 내려면 49번 지방도를 만난다. 정읍 부전동과 칠보면 소재지를 연결하는 도로.
칠보면 수청리 지방도 옆에 서있는 표지판.
칠보에서 부전동으로 내려가는 고개정상부. 여기서 오른쪽 산길로 오르면 약수암에 도착할 수있다.
칠보면 수청리 피오마을에 위치한 한 가옥. 지붕재료를 벽에 붙이니 왠지 어색....
약수암에서 내려다본 금북마을 전경.
약수암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계단.
금북사로 추정되는 약수암. 약수터가 있어 약수암이라 한 것 같다.
약수암의 입구. 백구가 이방인에게 경계심을 드러낸다.
능선에서 내려다본 칠보 수청리 피오마을.
길마재 정상부에서 금북마을로 내려가는 길. 옛스러움이 절로 느껴진다.
길마재고갯길 중간쯤에 위치한 약수터. 무속인들이 굿을 하는 곳으로 보임.
길마재고갯길 상에 만들어진 서낭당(?). 한쪽이 원인모르게 무너져 있다.
길마재 고갯길에서 보게 되는 기원이 담긴 돌탑. 이런 것들이 지나는 행인들에게 큰 위안이 될 것이다.
검듸마을의 실버타운. 요양원과 노인회관.
노인종합복지회관 근처 조경시설.
금북마을의 노인종합복지회관 건물.
금북저수지에서 바라본 피율고개. 지금은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금북마을의 노인전문병원.
금북마을에 새로이 들어서고 있는 전원주택들.
검듸마을 초입에 들어선 현대식 교회건물. 정읍의 성결교회 건물임.
칠보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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