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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옛길체험3] 정읍과 고창을 연결하는 소갈재를 찾아서

  봄기운이 느껴질 듯 화창한 날씨속에 옛길체험 세번째 시도를 해본다. 낮 최고기온은 10도를 넘어선다. 2008년 2월 22일, 오늘 가고자 하는 곳은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 반월마을과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갈촌마을을 연결하는 '소갈재'라 불리는 고갯길이다. 동진강수계의 정읍천과 고부천이 나뉘는 분수계 상에 위치하는 고개인데, 고지도상에는 소노령, 소갈치 등으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주요간선인  '삼남대로' 상에 존재하는 노령(갈재)의 옆에 위치한다하여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이 고개는 방장산 (744m)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즉 두승지맥' 상에 위치한다. 그 북쪽으로는 유점재, 밤재(율치)가 이어지는데, 밤재는 정읍시 입암면 봉양리와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를 연결하는 2차선 포장도로인 708번 지방도가 통과하는 곳이다. 현재 고창과 정읍을 연결하는 가장 큰 도로는 22번 국도가 있는데, 정읍시 소성면과 고창군 성내면을 연결하는 4차선 포장도로이다.  이곳 연월리 안쪽에 위치하는 반월마을과 소갈재는 오래 전부터 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이제야 와보게 된다.  하기야 정읍에 살면서 아직도 가보지 않은 곳이 많다. 정읍시는 면적으로 보면 서울시보다 조금 더 넓은 지역인지라, 간선도로에서 벗어난 곳은 일부러 가보기 전에는 접하지 않은 곳이 많은 것이다.

 

 11시경 집을 나서 남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 입암면 면소재지인 천원리를 거쳐 입암저수지를 오른쪽으로 끼고 1번국도를 따라 경사도로를 오르니 방장산 아래쪽에 연월리 신월마을이 나타났다. 우회전하여 시골길을 들어서니 분지상의 지형 안쪽에는 반월마을이 산밑쪽으로 집촌을 이루고 있다. 취락이 반달처럼 원호를 그리며 위치한다하여 반월마을이라 붙였다고 한다. 방장산과 소갈재의 위치를 확인한 후 최대한 고갯길에 접근하였는데, 주변엔 한우를 키우는 축사와 말을 키우는 말 사육장이 마을에서 떨어져 산 아래쪽에 위치해 있었다.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고개너머 고창사람들이 이곳으로 넘어오기도 하고 혼인관계도 있었는데, 모든 교통수단을 자동차에 의지하고 있는 요즘은 더 이상 소갈재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말사육장 아래쪽에 주차하고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오른다. 처음엔 묘지가는 길을 옛길로 착각하여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지만 아직도 오솔길이 오롯이 잘 남아있었다. 혼자서 걷는 호젓한 길이지만 옛사람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길이라 생각하니 발에 밟히는 자갈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개발의 손길이 언젠가는 이곳도 그냥 두지 않겠지만 아직은 옛스런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는 고갯길인 것이다.

 

 산길을 따라 10 여분을 오르니 드디어 고개마루에 도착하였다. 노령고개 못지않은 멋진 자태를 가지고 있는 고개였다. 고개마루 근처에 꽤 넓은 공터도 있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이곳에는 주막이 있었던 곳이라 한다. 고창사람들이 정읍으로 장을 보러 다니면서 먹거리를 해결하거나 잠시 쉬어가던 곳이리라. 고개마루에서 고창쪽으로 넘어서니 옛스런 풍경은 온데간데 없고 산림청에서 조성한 임도가 정상부까지 이어지고 수종갱신을 위해서인지 나무가 대부분 베어져 있어 황량한 느낌이 들었다. 옛길은 흔적이 보이질 않아서 일단 임도를 따라 마을을 향해 아래로 내려갔다. 정상부에서 좌회전하여 산중턱을 따라 지그재그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 15분 정도를 걸으면 외딴 집 두 채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갈촌마을의 일부이다. 한 집은 현대식 가옥으로 복분자 농사를 위해 이주해온 사람들인 것 같다. 한 집은 돌담으로 둘러 친 오래된 슬레이트 지붕의 토담집이었다. 용기를 내어 들어가보니 노인 한 분이 불청객을 맞아주었다. 쓸쓸하게 혼자 지키는 집인지라 말동무라도 되어줄 요량으로 면담을 하였다. 올해 나이 84세라고 하며 문패에는 '고연상' 이라는 이름자가 새겨져 있었다. 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딸들도 도회지에 살기 때문에 어쩌다 가끔씩 오게 된다고 하신다. 짠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왔던 곳을 향해 산길을 오른다. 아래쪽에서 오르니 옛길로 추정되는 길이 보이기도 하였다. 고라실 논이라 불리는 골짜기에 조성된 계단식 논을 따라 조금씩 전진하였으나 고개마루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잠시 잡목을 뚫고 임도를 올라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옛길의 흔적이 조금은 상상이 되었다.

 

 고개마루를 지나 고갯길을 내려왔다. 차를 몰아 오는 길에 연월리 안쪽에 있는 또 하나의 마을, 압곡마을을 가보았다. 수십가구가 산밑에 옹기종기 모여 살던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대부분 떠나고(아래쪽 마을로 이동한 경우도 있다고 함) 한 분의 노인과 고물상을 하는 분만 살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이 살지않는 폐가인지라 유령마을처럼 을씨년스러웠다. 여기서는 천원리로 넘어가는 고개와 고창군 신림면 유점마을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었다. 마을 전체가 폐촌이 되다시피 한 것은,  연월리 3개 마을 중 1번국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교통이 불편하다는 사실도 한 가지 이유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오늘 하루 짧은 답사였지만, 소갈재를 중심으로 정읍과 고창을 연결하였던 옛길을 체험할 수 있어서 행복하였고 다음번에는 지인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기회도 가져봐야 할 것 같다. 저마다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  오는 길에 시간에 여유가 있어, 입암면 천원리에 있었다고 하는 천원역의 흔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다행히 마을 어르신께서 자세히 알려주어 역사적인 장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소갈재의 위치를 별표로 표시함.

 

 입암면 연월리 신월마을을 지나 반월마을에 진입하기 직전 소갈재 쪽을 향해 바라본 모습. 왼쪽은 방장산이며, 가운데 낮은 부분이 소갈재임.

 

 정읍쪽에서 본 '소갈재'라 불리는 고개마루.

 

 

 소갈재 고개마루를 넘어서니 임간도로가 산 중턱에 조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왼쪽의 높은 봉우리가 방장산에 해당함.

 

 소갈재 아래쪽에 위치한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갈촌마을의 외딴 가옥.

 

 고연상 할아버님이 사시는 집의 돌담.

 

 고연상 할아버지의 가옥.  난방을 위해 지금도 나무땔감을 아궁이에 지핀다고 한다.  취사를 위해서는 엘피지 가스를 사용하고 있었다.

 

 고연상 할아버지가 사는 집 바로 아래쪽에 돌담의 흔적만 남아있는 집터가 있는데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한국전쟁때 이 마을도 좌우익의 대결로 인해 가옥이 불타는 아픈 역사를 경험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소갈재 정상에서 내려다 본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쪽. 가평저수지가 보이고 계곡을 따라 고라실 논이 조성되어 있고, 오른편으로 나있는 오솔길이 옛길로 추정된다.

 

 소갈치 정상에서 내려다 본 정읍쪽. 앞쪽으로 연월리 반월, 신월마을이 보이고 뒤로 입암저수지가 보인다.

 소갈재 정상 부근에 있었다고 하는 주막터.

 

 소갈재에 오르는 옛길.

 

 연월리 반월마을에서 소갈재에 오르는 길.

 

 산줄기 중에서 왼쪽의 낮은 부분이 유점재(고개). 오른쪽의 콘크리트길이 압곡마을의 진입로.

 

 정읍시 입암면 연월리 압곡마을의 어느 폐가.

 

 압곡마을의 전경.

 

 압곡마을에서 바라본 방장산.

 

 반월마을 노인회관에서 바라본 입암산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