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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옛길 체험1] 내장 갈재(추령)를 오르는 옛고개길을 찾아서

골짜기를 따라 오롯이 남아 있어요

[옛길 체험 1 ] 내장 갈재(추령)를 오르는 옛고개길을 찾아서

 

 

▲ 길의 형태가 뚜렷한 산길. 내장갈재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옛길.

 

요즘 옛길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 조만간 옛길이 문화재로 등록되고, 문화체험

과 레포츠의 장으로 활용되는 상황이 올 것 같다. 이제는 단순한 걷기나 등산보다

는, 역사와 문화가 서린 옛길을 맘과 몸으로 체험하는 일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

이런 분위기와 연관을 지어, 정읍의 옛길 그 중에서도 주변부에 위치하는 고갯길

을 찾아가 보는 일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록 문헌자료가 풍부하지

못하고 기록이 부실하다는 사실을 감안해도, 주민들의 증언을 참고하고 지리적인

상상력을 발휘하며 옛 고갯길을 찾아보는 일은 미로 찾기만큼이나 어렵지만 흥미

로운 일이다.

 

옛 고갯길은 역사의 뒤안길로...

 

고갯길은 일제강점기 이후 신작로가 개설되고 근대화 이후 도로가 포장되면서 커

다란 변화를 겪었다. 과거 도보시대 관점에서 최단코스로 넘나들던 오솔길은 당연

히 용도폐기의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봇짐이나 등짐을 지고

힘들게 고갯길을 넘어가지 않게 된 것이다.

 

자동차를 감안하여 지그재그로 폭넓게 만들어진 새로운 고갯길이 새롭게 등장하였

고 기존에 걸어서 넘어가던 옛 고갯길은 이제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

이하였던 것이다.

 

정읍과 순창을 잇는 고갯길 두 곳은 개운치와 내장갈재

 

여기서는 정읍의 옛길 중에 주변부의 고갯길을 하나씩 찾아가 보기로 한다. 그 첫 번째로 정읍과 순창을 연결해주는 고갯길을 찾아가 본다. 현재 정읍과 순창을 연결해주는 포장된 고갯길은 두 곳이다. 첫째는 내장저수지 아래 부전동 수통목에서 쌍치면으로 이어지는 29번 국도상의 개운치 고개(방산재)이다. 두 번째는 내장산을 끼고 돌며 (50번 정도 꺽어지는 고갯길) 갈재를 넘어 순창군 복흥면으로 이어지는 792번 지방도상의 내장갈재이다.

 

두 곳 모두 노령산맥(호남정맥에 해당)을 극복하는 꽤나 험난한 고갯길이다. 과거에는 이런 길을 '애로(隘路)'라고 불렀지만 지금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폭넓은 길을 자동차로 넘어가기 때문에 더 이상 험난한 길이라 할 수는 없겠다. 또한 고개마루를 중심으로 고원상 지형에 해당하는 순창과 평야부에 해당하는 정읍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이곳을 중심으로 지형과 기후 그리고 문화까지 달라지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이곳을 경계로 순창의 섬진강 수계와 정읍의 동진강 수계가 나뉘며, 사람들의 생활문화가 달라지기까지 한다.

 

내장갈재, 옛 지도상에 갈치(葛峙) 또는 추령(秋嶺)

 

 

 

▲ 내장갈재 정상부의 모습. 정읍과 순창의 경계이며 동진강 수계와 섬진강 수계를 가르는 분수계에 해당하는 곳. 이곳에서 골짜기를 따라 도덕암으로 내려가는 옛길이 시작된다.

 

내장 갈재를 찾아 가본다. 내장 갈재는 옛 지도상에 갈치(葛峙) 또는 추령(秋嶺) 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전자는 갈재의 ‘갈’을 칡의 음으로 해석한 것이며 후자는 ‘가을’로 해석한 것이다. 또한 장성갈재는 갈대의 의미를 살려 일명 ‘노령’이라 부르고 내장갈재와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서 앞쪽에 장성이라는 지명을 붙인다.

이제 내장갈재 고갯마루(해발 330미터 정도)에 오르던 옛길을 따라가보자.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등산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었고, 어렸을 적 이곳을 수시로 넘나들었던 경험을 가진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였다. 자동차도로가 발달하기 전에 순창(주로 복흥면 주민)과 정읍 사람들이 도보로 넘나들었던 길이며, 지금도 겨울에 폭설로 도로가 차단되면 걸어서 오갈 수 있는 주요한 통로인 것이다.

 

내장갈재 옛길 초입의 도덕암, 고 고형근 박사가 기거하던 곳

 

 

 

▲ 도덕암 뒤편에 위치한 고 고형곤 박사가 기거했던 집. 이곳에서 골짜기를 따라 내장갈재 마루를 향해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한겨울 아침, 집을 출발하여 내장산 매표소에 도착하였다. 매표소 왼쪽으로 100 여 미터를 걸어가면 도덕암이라는 조그만 사찰이 나온다. 스님에게 길을 물으니 건물 뒤편으로 오르는 산길이 있다고 한다.

 

▲ 고건 전 총리의 부친인 고형곤 박사를 소개하는 안내판의 글도덕암 뒷편에 자리잡은 아담한 집의 사연을 소개하는 안내판.

 

설레는 마음으로 한걸음씩 골짜기 안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50 미터쯤 이동하니 조그만 집이 나타났는데 이곳은 옥구출신의 정치가이자 학자인 고 고형곤 박사가 13년간 칩거하면서 철학사상연구에 몰두하였던 곳이라고 안내판에 씌어 있었다. 사색하고 연구하기에는 참으로 적합한 장소라 여겨진다. 산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고드름이 수정처럼 빛나는 별천지...도덕폭포

 

 

 

▲ 도덕폭포. 규모는 작지만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폭포. 수량이 제법 되어서 그런지 겨울에도 얼지 않고 흐른다.

 

지난번 내린 폭설이 대부분 녹았으나,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짜기에는 아직도 상당량의 잔설이 남아있어서 등산화가 푹푹 빠지는 곳도 있었다.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말로만 듣던 도덕폭포가 있었다.

 

도덕폭포는 급경사의 바위 틈새를 몇 단계를 거치며 흘러내리는 폭포로서 규모는 작아도 멋진 풍경을 만들어주었고 그 주변의 절벽에는 눈 녹은 물이 얼어서 이루어진 고드름이 수정처럼 빛나는 그야말로 별천지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안쪽에 보물을 감추고 있다’는 내장이 이래서 내장이구나 라는 생각이 나기도 하였다.

인적 없으나 발길의 흔적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오솔길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쓰러진 나무가 그대로 있는 것으로 보아 평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도 오랫동안 사용한 길인지라 사람들의 발길의 흔적을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눈 쌓인 길 위로 크고 작은 동물들의 발자국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들이 다니는 길은 동물들의 주요 이동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다. 골짜기 안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생각보다 급경사는 아니었으며 남녀노소 어렵지 않게 오를만한 길이라 생각되었다.

 

자동차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드디어 내장 갈재 마루에 근처에 도착하였다. 대략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나가는 출구가 철망으로 막혀있어 난감하였다. 이는 외부에서 함부로 진입하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에서 설치한 것인데, 옛길을 이용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나 추령봉에서 갈재를 거쳐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호남정맥을 따라 답사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장애물이 되고 있는 셈이다.

 

 

 

▲ 내장갈재 정상부에 설치된 철조망. 내장산 국립공원의 외부침입자를 막기위해 설치하였겠지만, 이로인해 호남정맥을 등산하는 사람들에게 장애물이 되고 있으며 옛길을 이용하고자 했을 때도 방해가 될 것이다.

 

고개 마루에 도착했으나 출구가 막혀 난감...옛길 복원의 걸림돌

내장갈재의 옛길을 복원하고자 할 때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 같다. 물론 국립공원관리공단 쪽에서는 자연보호가 최대의 목적이기에 가급적 사람들의 출입을 억제하고 옛길 복원 같은 사업에 대해서도 소극적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식물의 보호도 중요하지만, 지역민들이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과 문화유산의 가치를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내장이 간직한 비경, 내장갈재 옛 고갯길

 

 

 

▲ 도덕폭포옆 절벽에 맺힌 고드름. 멋진 풍경이어서 한참을 바라보았던 곳.

 

내장갈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은 설레임 대신 익숙함으로 발길이 가벼웠다. 사람들이 쉽게 찾지 않는 이곳은 그야말로 적막한 계곡이었다. 내려가면서 계곡의 물소리는 점점 커지고, 바위절벽에 붙어있는 고드름들이 시선을 붙잡았다. 이곳은 내장이 간직한 또 하나의 비경이라 여겨진다.

도덕암까지 내려오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 10분 정도 단축됨을 알게 되었다. 지도를 통해 해발고도를 비교해보면 도덕암의 위치가 160m 이고, 내장갈재 정상부는 330m 정도이니 대략 170m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이런 고도차이를 가지는 지형을 옛 사람들은 30분 내지 40분의 시간을 들여 넘나들었던 것이다.

요즘 현대인들은 이런 기복을 자동차를 타고 10분이면 통과하고 있지만, 지그재그 형태로 가는 것이기에 도보에 비해 그 이동거리는 훨씬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록 짧은 답사였지만, 옛 사람들의 흔적과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기에 스스로 마음이 뿌듯해진다. 내장산을 찾는 분들이 한번쯤 체험해 볼 수 있는 산길이며, 지역민들의 애환이 서려있기에 역사문화적 차원에서도 앞으로 정비하고 복원해야할 옛길이라고 생각한다.

 

 

 

▲ 도덕암 뒷편에서 본 굴거리나무.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내장산의 자랑거리인 굴거리나무. 비자림과 더불어 이곳 내장산까지가 북한계로 알려져 있다.

 

입력 : 2008년 01월 16일 23:12:38 / 수정 : 2008년 01월 18일 10:4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