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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옛길, 역로를 찾아서 두번째(영원역 ~ 내재역)

 요즘 '옛길'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이를 복원하고 개발하여 또 하나의 문화상품으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고적답사에 대한 관심과 열풍에 이어  옛길을 찾아 답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참으로 고무적인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옛 것에 대한 의도적인 파괴와 자기부정의 시대를 살아오던 우리들이 산업화를 거친 이후 다시 우리 문화와 전통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옛길'들이 하나씩 복원되면 이것이 또 하나의 문화재로 인식되고 문화체험의 장소를 제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옛길을 두발로 걷는 다는 것은 박물관 체험과는 달리 단순한 '앎'의 문제(지적영역)가 아니라 역사와 국토를 몸소 몸으로 체득할 수 있다는(정의적 영역) 또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옛길을 찾아 두번째 답사를 떠나본다. 2008년 1월 15일(화) 오후, 영원의 문화지킴이 곽상주선생님을 모시고 영원역이 있었던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태동마을을 출발하여 북쪽 방면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답사코스는 영원역에서 북쪽으로 가장 가까운 내재역(김제시 죽산면 내재마을)까지이다. 영원면에서 부안군 백산면을 지나 동진강을 건너면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가 나오고, 거기에서 벽골제(김제시 부량면)을 지나 죽산면에 위치하는 내재역까지이다. 차량 미터기를 이용하여 대략 측정해보니 약 16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역과 역 사이의 거리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대략 40리 거리라 할 수 있겠다.

 

 옛길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문헌상에 자세한 경로가 언급되지 않았고 또한 근대화 이후 엄청난 변화를 겪었기에 옛길을 추적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몇가지 기록과 주민들의 증언, 그리고 지도상의 흔적과 지형지세를 가지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작업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영원역을 중심으로 2차례에 걸쳐 남쪽과 북쪽으로 다녀본 길들이 확실하게 역로로 사용되었던 옛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이런 시도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답사라고 하니 모름지기 걸어야 '답사'인데 자동차로 가니 '차사'라고나 해야할까? 두발로 걸어가면 훨씬 더 느낌이 좋겠지만 시간관계상 차로 달려야 하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다. 언젠가는 뜻을 함께하는 이들과 이런 길을 걸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요즘 웰빙시대에 맞추어 걷기대회도 많은데 이왕 걸을 것이라면 이런 역사가 서려있는 옛길을 걸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 호남 서부지역의 옛길 추정 : 영광-무장-흥덕-고부-영원역-동진강 통과(원천나루)-화호-벽골제 제방길-원평천 통과(포교)-내재역-김제

 

 

 영원역 부근(운학리 운학마을 앞쪽)에서 북쪽을 향해 이어지는 소로가 역로로 사용되었을 것을 추정되는 옛길.

 

 

 이평면 청량리의 경작지.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보이는 2모작을 위한 보리밭 경관. 정읍의 변방으로서 부안군 백산면과의 경계지역이다.

 

 

 옛길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기념비. 이곳은 이평면 청량리 지역.  비석의 내용은 일제 강점기에 청량마을 구장(요즘의 이장에 해당)을 지낸 이택수라는 분의 공적비인데, 내용으로 미루어 태평양전쟁시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마을사람들을 징용 보내는 일에 앞장섰던 것 같다.  지금의 민족적 관점에서 보자면 수치일텐데 길옆에 당당히 서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다. 앞으로 후세를 위한 역사적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마을안쪽에 있던 이장님의 공적비가 이곳으로 옮겨져 왔다고 한다. 이곳은 이평면 지역에 해당하는 곳으로 백산면과 접경지역이다.

 

이평면 청량리에 해당하는 마을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있고,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옛길은  이곳에서  낮은 구릉성 산지의 능선(마루)을 따라 이어진다. 지형적으로 높은 곳이기에 침수가능성은 없을 것 같다.

 

 옛길 옆에서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역사자료. 정읍과 부안 접경(부안군 백산면 수정마을 근처)에 있는 지운 김철수선생이 말년까지 기거했던 토담집. 지운선생은 일제시대 조선공산당 간부로서 활동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는데 해방직후 은퇴하여 이곳에서 기거하였다고 한다.

 

김제시 죽산면쪽에서 바라본 평야지역. 가까운 곳에 있는 산이 잔구지형의 백산(45미터 정도로 동학혁명과 관련된 곳)이며, 뒷쪽으로 천태산, 매봉산, 두승산이 함께 보인다.  해발고도가 낮은 곳에서 바라보면 낮은 산들도 높아보이니 그래서 언덕이라 하지않고 산이라 했을 것이다. 이 주변에서는 방향을 감지할 수 있는 중요한 지형적 특색을 가지는 것이 결국 높은 산인데, 여기서 보는 두승산과 천태산은 가까운 곳에서 볼 때보다 훨씬 높아보인다. 두승산, 천태산, 백산이 마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처럼 고도를 달리하며 정답게 한 가족을 이룬 느낌이다.

 

 

 이곳까지 일직선으로 뻗어온 역로는 드디어 강을 만난다. 원천나루(부안군 백산면 원천마을)라고 추정되는 곳으로 동진강을 건너 신태인읍 화호리로 연결된다. 이쪽 나무와 강너머 화호의 서낭당을 이루는 나무까지 옛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원천나루 제방에서 바라본 원천마을길. 멀리 정읍 영원의 매봉산이 바라보인다.

 

 

 구릉지와 달리 너른 평야에서는 모든 길들이 일직선으로 반듯하기만 하다.

 벽골제 근방에서 김제시 죽산면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도로.

 

 

내재역이 있었다고 하는 김제시 죽산면 내재마을 입구 

 

 

 내재역이 있었던 자리. 현재는 서해플라우라는 농기계 공장이 위치한다.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에 일본인들의 가옥이 있었다고 한다.

 

 

 

김제시 죽산면의 근거가 되는 또하나의 잔구지형인 죽산(대뫼)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