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까지 나라에서 운영한 주요한 교통 통신제도로는 역원제와 봉수제가 있었다. 역원제도라 함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말을 바꾸어타며 소식을 전하고 물건을 나르는, 요즘으로 말하면 우체국의 역할을 수행하는 '역'(대개 30리~40리마다)과 숙박을 해결하는 '원'을 합한 용어이다. 현재 역에는 말대신 철마(기차)가 지나고 있고, 원은 무수히 많은 호텔과 여관이 대신한다고 할 수 있겠다.
내가 사는 고장 이곳 정읍에는 3개의 역, 즉 삼남대로(해남로, 제7로)가 지나는 곳에 거산역(태인면 원거산)과 천원역(입암면 천원리) 그리고 영원역이 있었다. 정읍현 영역에 포함되는 거산역과 천원역이 연결되는 역로는 조선시대에 한양을 중심으로 엑스자 형태로 이루어지는 주요 도로 9개 중 7번째에 해당하는 이른바 삼남대로(한양~ 해남)에 해당하는 도로로서, 요즘으로 말하면 고속도로나 국도에 해당하는 1급 도로라고 할 수 있다. 아마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등 3개 도를 거치며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삼남도라고 붙인 것 같다. 여기에 비해 당시 고부군 영역에 해당하는 영원역은 북으로는 동진강 건너 김제 내재역(김제시 죽산면), 남으로는 청송역(고창군 무장면), 서쪽으로는 부령역(부안군 행안면) 등과 연결되는 역으로서 앞서 말한 삼남대로와는 관계없이 주변 지역과 연결되는, 요즘으로 말하면 지방도로상의 우체국이라 할 수 있겠다. 또한 정읍지역에는 영지원(지금의 연지동), 왕신원 등 다수의 원이 역로를 따라 위치하였다.
오늘은 그 중 영원역터와 그 남쪽 역로를 따라 고창군 성내면까지 가보았다. 급작스럽게 잡힌 오후 답사 일정에 영원의 향토사학자 곽상주선생님의 안내가 있었고, 정읍통문 편집위원 이진우씨가 함께 참여하셨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뜻깊은 답사가 되었으며, 다음번에는 영원역에서 북쪽 역로를 찾아볼 계획이다.
예전 영원역의 주 건물이 있었던 곳. 정읍시 영원면 운학리 태동마을. 역이 있었던 마을을 대개 '역말'이라고 하는데 사회적으로는 천시를 받았던 곳이라고 한다.
영원 운학리 태동마을 주변에 있었다고 하는 마구장터. 지금은 흔적없이 논으로 경작되고 있다.
영원면 운학리 운학마을 근처의 옛 역로의 흔적. 사진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농로길이 역로인데, 멀리 서낭당 고개를 넘으면 김제 방향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앞쪽 포장도로는 영원과 이평을 이어주는 지방도로.
영원면 운학리 운학마을의 나씨 재각건물 뒷편으로 이어지는 역로. 은선리 토성을 지나 고부방면으로 향하는데, 과거 동학농민혁명당시 고부봉기때 농민군이 고부관아를 향해 진격하면서 죽창을 만들었던 곳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제헌국회 당시 국회 부의장을 지낸 나용균씨의 생가가 있는 마을이다. 최근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을 받았는데 관리상태가 엉망이어서 복원이 시급하다.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하였던 나용균씨 일가가 모여살았는데 이 집은 나용균씨의 형제 나홍균씨의 집. 근대문화유산이니 건축연대는 100년을 넘지는 못했을 것이고 대략 일제시대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측한다.
쓰러져가는 근대문화유산의 건물.
엽전으로 장식된 출입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물에 딸린 화장실 건물. 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어 웬지 어색하다.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나용균씨 일가의 건물과 주변 흙담.
영원면 운학리 운학마을로 이어지는 역로길. 왼쪽으로 가까운 곳에 은선리 토성이 있어 역로였다는 사실을 강하게 뒷받침해준다. 이런 곳을 복원하여 역사체험장소로 활용하였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동학농민혁명때 말목장터에서 출발한 농민들이 고부관아를 향해 진격했던 곳이기에 동학축제와 관련하여 이벤트성 행사도 가능할 것 같다.
영원면 운학리에서 남쪽의 금사동산성(매봉산)방면으로 이어지는 옛 역로길. 무척 정감있게 느껴지는 오솔길이다. 말타고 달렸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생근마을에서 바라본 북쪽. 멀리 두승산이 보이고 앞쪽 논을 사이로 정읍시 고부면과 고창군 성내면이 경계를 이룬다. 이곳 생근마을은 정읍과 고창에서 운영하는 시내버스 종점에 해당하는곳인데 과거에는 이곳에 '생근원' 이라고 하는 원취락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동시에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이 부근으로 역로도 이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참고로 생근원은 당시 고부군 영역에 해당하는 원이라고 문헌(고부군 치소에서 남으로 18리 라고만 기록됨)에 나와있지만 현재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 일설에는 소성면 기린리 원두마을이라고도 하지만 지명으 로 보면 생근원이 이곳 고창군 성내면 덕산리 생근 마을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흥덕현과 고부군의 접경지역인지라 생근리가 당시 정확히 어느 영역에 속하였는지를 알아볼 일이다.
고창군 성내면 생근마을 근처에서 남쪽 흥덕면 소재지를 바라본 모습. 사진에서 가운데 낮은 산이 흥덕면 소재지인데 그곳을 향해 나있는 소로를 역로로 추정한다. 멀리 선운산이 바라보이는데 여기서 이어지는 다음 역은 지금의 고창군 무장면에 있었다고 하는 청송역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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