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후보의 일곱가지 거짓말
한나라당 대선주자들이 오늘 경제분야 정책비전대회를 연다고 한다. 바른 정치란 ‘정치공학적 줄서기’가 아닌 정책경쟁이란 점에서 우선은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참다운 정책검증은 ‘집안 잔치’가 아닌 비판적 외부자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점에서 나는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경부운하 공약을 검증하고자 한다.
한 마디로 말해 이명박 후보는 대국민 사기극을 중단해야 한다. 경부운하는 불가능한 공약(空約)이다. 온갖 장밋빛 전망을 늘어놓고 있지만 지나친 과장, 근거 없는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경부운하는 일부 지역의 부동산값을 폭등시켜 몇몇 건설업체의 배를 불릴 뿐, 우리 산하를 돌이킬 수 없도록 훼손할 것이다. 게다가 이렇듯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서도 무용지물이 될 공산이 크다.
1. 바닷길보다 훨씬 오래 걸린다
경부운하의 모델인 독일 마인도나우운하의 운송속도가 13km/h에 불과하다. 길이 171km에 갑문이 16곳이다. 갑문 하나에 20분씩, 갑문을 통과하는 데만 5.3시간이 걸린다. 결국 전체 운송시간은 18.5시간, 대기시간 등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30시간이나 된다.
그런데 경부운하는 마인도나우보다 지리적 여건이 훨씬 나쁘다. 유량 차이가 큰데다 지천이 많아 충분한 수량을 확보하기 힘들다. 경사와 굴곡도 더 심하고 갑문도 19개나 된다. 길이는 무려 550km, 시속 13km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78.8시간 걸린다. 여기에 하역과 갑문통과, 대기시간 등을 감안하면 112.4시간으로 늘어난다.
남해안과 서해안을 타고 도는 연안해운이 61.5시간이므로 이보다 이틀 넘게 걸린다는 얘기다. 바다를 돌아가는 것보다 더 느린 운하를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건설할 필요가 있는가.
이 후보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24시간 안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평균속도로 환산하면 32.1km/h, 마인도나우보다 세 배 가까이 빠르다. 최저속도라 주장하는 22km/h 역시 두 배 가까운 속도다. 이 후보는 이 놀라운 속도가 어떻게 가능한지 설명해야 한다.
그런데 연안해운 평균 운항속도는 26.9km/h다. 구불구불한 운하를, 산을 넘어가며, 그것도 19곳에 이르는 갑문을 거쳐가는 것이, 거칠 것 없는 넓을 바다를 달리는 것보다 빠르다니. 이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2. 물류비용 절감효과, 터무니없이 과장됐다
이 후보는 경부운하로 물류비용이 연간 4조5천억원 이상 줄어들 거라 주장하지만 근거가 모호하다. 이 후보 캠프에 참여한 학자들의 전망도 제 각각이다. 목포해양대 노창균 교수는 4조5천억원, 고려대 곽승준 교수는 3,636억원, 세종대 이상호 교수는 1,294억원을 제시한다. 예컨대 곽 교수는 1TEU 기준으로 35만원씩 줄어든다고 전망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부산-서울간 1TEU 운송비용은 도로 48만9804원, 연안해운 31만8438원이다. 곽 교수는 이를 14만원 아래로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연안해운과 견줘 운송시간이 더 긴데 어떻게 운송비용을 줄일 수 있는가. 더욱이 연안해운보다 선박도 훨씬 작을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곽 교수가 구체적인 근거를 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심지어 도로운송의 80%를 경부운하로 흡수할 수 있다는 납득하기 힘든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3. 부산항 물동량이 줄어드는데 무얼 실어나르나
이 후보는 부산항의 수도권 물동량이 계속 줄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아니 일부러 숨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수도권 수출입화물 중 부산항을 통해 들어오는 비중이 2001년 69.7%에서 2005년 52.8%로 줄었다. 반면 같은 기간 인천항은 26.1 -> 37.8%, 평택항도 0.8% ->6.3%로 늘었다.
중국의 성장으로 서해안에 잇따라 새 항만이 들어서고, 부산항의 비중은 가뜩이나 줄고 있는 상황이다. 경부운하가 뚫리더라도 당장 실어 나를 물동량이 많지 않을 거란 얘기다. 경부운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 후보 캠프의 이상호 교수(세종대)는 “시멘트와 유연탄을 경부운하로 실어 나르면 물류비용을 연간 14억원(2020년 기준) 절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역시 처음부터 가정이 잘못돼 있다. 시멘트나 유연탄 운송경로와 경부운하 노선이 전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시멘트를 절반 넘게 생산하는 쌍용양회나 동양시멘트는 강원도 삼척과 동해에 있고, 연안을 따라 대전, 대구, 울산, 부산 등의 출하기지로 나른다. 부산항과 서울을 잇는 경부운하를 이용할 까닭이 전혀 없다. 유연탄도 대다수 물량이 남해안과 서해안 제철소 등에서 바로 처리된다.
4. ‘건설기간 4년’? 말도 안 된다!
경부운하는 배가 강의 상류를 거슬러 올라 산을 넘어가는 엄청난 공사다. 강바닥을 깊게 파야 하고 충분히 넓혀야 한다. 또한 굽이진 강의 흐름을 직선으로 뚫어야 하고, 남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인공수로 50km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조령산맥을 넘어가려면 갑문 19곳을 만들어 물을 가둬야 한다. 터널 20km를 뚫어야 한다.
171km 길이의 독일 마인도나우운하는 완공까지 32년 걸렸다. 청계천 5km 복원공사도 꼬박 2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 후보는 550km 경부운하를 50개 공사구간으로 나눠 4년 만에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환경영향평가 소요기간은 빠져 있다.
5. 모래 팔아서 건설비용 못 댄다
17조원이라는 건설비용도 지나치게 낙관적이다. 이 후보는 그 가운데 8조3432억원을 골재 판매로 충당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운하 건설에서 채취되는 골재를 1㎥에 1만원씩 8억3432㎥를 팔겠다는 계산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모래 수요는 연간 1억㎥도 안 된다. 채취되는 골재를 모두 팔 수도 없을뿐더러 생산이 넘치면 판매단가도 떨어진다.
실제로 생산․운송비 등을 감안하면 1㎥당 6천원도 채 안 될 것이다. 개발할 수 있는 골재와 채취할 수 있는 골재도 다르다. 건설교통부 자료를 기준으로 추산한 채취가능 골재량은 2억~2억8천㎥ 정도다. 이 후보의 계산은 3배 가까이 부풀려져 있다.
이 후보는 나머지 건설비용을 민자유치로 조달하겠다고 한다. 이 경우 건설비용을 뽑으려면 통행료를 받아야 하고, 물류비용은 그만큼 늘어난다. 통행량이 줄어들면 적자로 돌아설 수 있다. 물론 적자가 나는 만큼 정부가 세금으로 보조해줘야 한다.
이 후보는 무엇보다 유지관리비용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수심과 폭을 유지하려면 정기적으로 바닥을 준설해야 한다. 댐과 수중보를 건설해 물흐름을 끊으면 수질도 크게 악화된다. 갑문이나 보트리프트를 건설하고 운영하는데도 엄청난 비용이 들어간다. 이 비용은 모두 누가 댈 것인가.
6. 우리나라는 운하 만들 환경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강은 경사가 심해 하상계수가 크다. 하상계수란 연중 최소유량과 최대유량의 차이를 말한다. 한강의 하상계수는 1:393, 낙동강 1:372, 섬진강은 1:715나 된다. 독일 라인강이 1:14, 영국 템즈강이 1:8인 것과 극명히 대조된다. 하상계수가 크면 안정적 수심을 확보하기 어렵고 비용이 더 많이 들게 된다.
우리나라 강우량은 6월~9월에 3분의 2 이상이 집중된다. 게다가 경부운하가 통과할 낙동강 중상류는 강우량이 적기로 세 손가락에 꼽힌다. 충분한 수심을 확보하려면 댐이나 수중보를 건설해야 한다는 얘기다. 홍수라도 나면 경사가 심해 상류에서 토사가 휩쓸려 내려와 운하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갑문용수도 문제다. 배가 300m 높이 조령산맥을 넘어가려면 그때마다 갑문을 닫고 수위를 높이거나 낮춰야 하는데 여기에 연간 14억4천만톤의 물이 필요하다. 이 후보는 이 갑문용수를 충주댐에서 조달하거나 새 댐을 건설한다는 것인데, 홍수 때가 아니고는 이 정도 물을 늘상 공급받기 어렵다.
당장 경부운하를 건설하는 동안 한강과 낙동강 물을 먹고 사는 2,700만명의 식수원은 어쩔 셈인가. 최소 4년이라는데 그동안 다른 곳에서 물을 끌어올 방법이 없다. 이제 와서 새로운 취수원을 개발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운하 건설이 끝나면 수질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은 분명하다.
이 후보는 강바닥 모래를 준설하면 물이 맑아진다거나, 배의 스크류가 산소를 공급한다는 등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 물을 가둬 두고 모래를 준설하는 과정에서 수질이 악화된다는 사실, 물을 맑게 하려면 표면폭기보다는 심층폭기가, 수평순환보다는 수직순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7. 내륙운하, 외국에서도 실패한 모델이다
영국에는 3,500km의 운하가 있지만 관광용으로나 쓸 뿐 화물운송에 쓰는 일은 거의 없다.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운하는 내륙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은 19세기 모델이다. 유럽 내륙 물동량의 운하 비중은 4%도 채 안 된다. 대형 컨테이너선이 들어갈 수 없는 독일 마인도나우운하도 물동량이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잦은 사고도 운하의 매력을 떨어뜨린다. 올해 4월 독일 라인강에서는 화물선이 전복돼 컨테이너가 추락하는 사고가 나 한 달 넘게 선박운항이 전면 중단되기도 했다. 고속도로라면 한두 시간 안에 사고수습이 가능하지만 화물선은 규모가 크기 때문에 기중기를 설치하고 가라앉은 컨테이너를 끌어올리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겨울철 결빙도 문제다. 댐과 수중보가 물의 유속을 느리게 하거나 정체시키기 때문에 더 잘 얼게 된다. 마인도나우의 경우 지난 겨울 석 달 넘게 화물선 운항이 중단되기도 했다. 수질 오염도 심각한 문제다. 네델란드에서는 적조와 녹조가 확산되면서 5만2천여ha의 농경지가 부영양화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굳이 내륙운하를 만들지 않더라도 전국 어디서나 한 두 시간이면 바다에 닿을 수 있는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 붓고 환경을 훼손해 가면서 부산항과 서울을 잇는 내륙운하를 만들 이유가 어디에도 없다. 가뜩이나 외국에서 실패한 19세기 모델을 이 후보는 왜 고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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