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정읍천변 벚꽃길, '각하의 분부'로 만들어졌다

뿌리기픈 2007. 12. 11. 14:26
정읍천변 벚꽃길, '각하의 분부'로 만들어졌다
[연재]박래철의 정읍땅이야기...정읍천변 우회도로와 박정희 대통령의 1973년 정읍방문

 

박래철 ppuri1@eduhope.net

 

 

 

 
▲ 벚꽃터널의 아름다움
정읍시에서는 최근 이른바 '정읍9경'을 선정하여 발표하였다.  그 과정에서 시민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정하였겠지만,  선정된 항목중 상당부분이 적절하지 못하다는 의견이 많다. 뚜렷한 기준도 없이 관에서 주도하여 인위적으로 선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며 이후에 논란이 뜨거워질 사안인 것 같다.


'아름다운 정읍9경' 이라는 주제에 적합하지 않는 것들이 의외로 선정이 되었고, 반면 다수시민들과 전문가들이 인정하는 것 중에는 예상을 깨고 빠져버린 것들도 많은 것 같다.

'정읍9경'에는 자연과 인문환경의 요소가 어설프게 뒤섞여 있어 어색함을 주는데, 차라리 경치가 아름다운 곳과 정읍을 알기위해 꼭 가보도록 추천할 만한 곳으로 분리해서 선정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예상밖의 '정읍 9경', 정읍천변

 

 

   
▲ 내장산에서 발원한 정읍천은 동진강으로 이어진다. 정읍시내를 우회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인 우회도로와 정읍천을 지금은 '천변'이라 하지만 과거에는 '방천'이라 불렀다.
그런 '정읍9경'중에는 예상외로 정읍천변이 들어있다. 아마도 정읍시민들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으로 각인된 덕분일게다. 천변은 그동안 시민들에게 각종 체육활동의 공간을 제공하고 ,사계절에 따라 풍경이 달라지는 모습에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그런 정읍천변의 변화모습 중에 단연 아름다운 장면은 역시 만개한 벚꽃가로수의 모습일게다.


고속도로 정읍나들목에서부터 시작하여 내장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약 5Km  우회도로, 그  양쪽에 심어진 왕벚꽃나무에서 피어난 벚꽃이 비록 1주일 정도의 짧은기간이지만 상춘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수령 40년의 천변 왕벚꽃길, 정읍 안팎 상춘객을 모으고

이제 수령이 벌써 40년정도라고 하며, 2차선 도로의 폭을 덮을 정도로 벚꽃 터널을 형성하고 있다. 요즘 축제기간이라 황사현상에도 불구하고 시민들과 외지인들까지 찾아온다. 서커스단에 풍물시장, 볼거리와 먹거리가 천변 가득히 들어섰지만 그래도 그것이 주빈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꽤 유명해진 정읍천변의 벚꽃, 이런 정읍천변의 우회도로와 벚꽃나무의 내력을 아는 시민들은 또 얼마나 될까? 그래서 그 내력이 돌에 새겨진 이른바 '헌수탑'을 찾아보았다. 우회도로 개설과 벚꽃나무 식재의 내력이 잘 기록된 헌수탑은 정읍시 상동 어린이교통공원 부근에 위치한다. 기념비 아래쪽에 새겨진 글을 여기에 소개한다.

 

 

 

 
▲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확포장된 도로에 정읍시민들중 일부가 벚나무를 기증하여 지금의 벚꽃터널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헌수탑(獻樹塔) 하단의 글]

 
이 내장로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께서 1973.11.22 내장산에 오셨을 때 정주읍 우회도로를 관광도로로 개설하라는 분부로 총연장5,361m(폭 12m)를 4억 5천 7백만원을 투자하여 개설케 되었으며, 왕벚꽃 가로수와 화단 내 상록수림은 각하의 하사금과 재경인사, 이 고장 독지가들의 헌수금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75. 11. 20 정읍군수 ○○○

 

1973년 11월 내장산 왔을 때 "정주읍 우회도로를 관광도로로 개설하라" 지시

윗글에서 내장로는 지금의 정읍천 우회도로를 의미한다. 그러면 여기에 우회도로 건설의 배경이 잘 기록된 글을 또 소개한다. 당시 박정희대통령을 가까운 곳에서 수행했던 황인성전라북도지사가 남긴 회고록중 정읍내장사 방문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 황지사, 잘하고 있소 ?>
내가 전북지사로 부임한 지 한 달쯤 된 1973년 11월22일 오후 3시에 대통령이 다음날 광주에서 거행될 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호남고속도로 전주 I/C를 통과하여 광주로 갈 예정이니 지사는 가능하면 전주 I/C에서 배웅을 하고 뒤따라 광주에 오는 것이 좋겠다는 김현옥 내무장관의 연락이 있었다. 나는 지시대로 했고 마침 대통령 일행의 차량행렬이 경호차를 선두로 질주해 가기에 도로변에서 경례를 했다. 행렬은 그대로 통과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대통령 승용차가 급정거를 하더니 김정렴 비서실장이 차에서 내려 “황지사!” 하고 부르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했다. 비서실장이 운전대 옆자리로 옮겨 앉자 대통령은 반가운 표정으로 “황지사, 잘하고 있소?” 하며 옆자리에 타라고 했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 당황하였다. 아무 것도 보고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서 그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큰 산을 가리키며 그 이름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만일에 대비해서 부임 후 공휴일에 비서와 함께 관내를 돌아보며 익혀둔 것이었다. “저 산이 전봉준 장군이 태어난 두승산(斗升山)입니다. 저 산은 삿갓을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해서 입암산(笠岩山)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저곳이 정읍입니다.” 나는 중요치 않은 것들을 화제로 삼았다. 그리고 무심코 지나가는 말처럼 이야기했다. “지난번 각하께서 호남고속도로 준공식 때 광주만 다녀가셨다고 해서 이 고장에서는 좀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박대통령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황지사, 내장산 호텔은 잘만한가?" 

“그래? 황지사, 정읍 내장산에도 호텔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 손님들이 많이 있나? 호텔이 잘 만한가?” 대통령은 지방 나들이 때 흔히 부산이나 대구나 대전 같은 데서는 유숙을 하였지만 전북은 대통령이 유숙할 만한 호텔 하나가 없어서 대통령이 유숙할 기회가 없었다. 나는 대통령을 도내에서 한 번 모시고 싶은 욕심이 났다. “예, 썩 좋은 호텔은 아닙니다만 관광객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대답이 화근이 되었다. 대통령은 金 비서실장에게 말하였다. “김실장, 내일 광주에서 올라오면서 하룻저녁 내장산에서 자고 가면 어때?” 김비서실장은 대통령 말씀이니 “예, 그렇게 하시지요” 하였다. “그럼 손님이 많으면 다음으로 하고 그렇지 않으면 하룻저녁 자고 갑시다. 광주에 가서 한 번 알아보시오” 하고 대통령이 지시하였다. 광주 관광호텔에 도착하자, 나는 전주에 있는 부지사한테 전화를 걸어 보안상 문제 때문에 구체적인 상황은 말하지 못하고 내무국장 책임 하에 지금 즉시 내장산관광호텔에 가서 대대적인 청소를 하고 모든 준비를 갖추라고 말해두었다.

 

"말이 호텔이지 여관만도 못해서 대통령께서 유숙할 수 없다" 

<누추한 침실에 콩나물죽 대접 >
그런데 저녁 식사 후 金비서실장으로부터 당황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황지사, 우리 경호답사팀이 내장산 호텔을 가보고 왔는데 그 호텔은 말이 호텔이지 여관만도 못하고 시설도 형편이 없어 도저히 대통령께서 유숙하실 수는 없다고 하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나는 바로 비서실장 방으로 올라갔다. “나는 자신이 없으니 그러면 내일 상경하는 길에 내장사나 잠깐 돌아보시고 올라가시도록 하시지요.” 이렇게 대안을 숙의한 후 대통령께 보고하여 내장산 호텔에서는 차만 한 잔 하고 내장사의 시찰을 하기로 했다. 나는 참 잘 됐다고 생각하고 한시름 놓았다. 당초 대통령일행의 계획은 대전 유성호텔에서 일박하게 되어 있었다.

 

“이런 데 오면 아무데서나 자는 거지 뭐. 비서실장. 나는 여기서 자고 가겠어.”

대통령은 그 다음날 광주에서 행사를 마치고 바로 내장산 호텔에 도착하였다. 대통령은 홀가분한 기분으로 차를 한 잔 한 다음 백지에 정읍시가지 약도를 그리며 정읍 우회도로를 건설할 것과 내장산 관광단지를 현 위치에 건설할 것,  그리고 지사 책임 하에 내장사의 복원사업을 추진할 것을 지시했다. 말하자면 지사 취임 후 대통령이 이 지역에 방문한 첫 선물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나서는 벌떡 일어나서 침실 쪽으로 가면서 “이 사람들이 여기가 어때서 못 잔다는 거야?” 하고는 침대방과 화장실까지 들여다보더니 그대로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이런 데 오면 아무데서나 자는 거지 뭐. 비서실장. 나는 여기서 자고 가겠어.” 가장 큰 낭패를 당한 것은 지사였다. 나는 한 시간 전에 먼저 내장산에 와서 보고는 그냥 한 번 돌아보고 가기로 결정 난 것을 참 잘한 것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조그마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호텔에서 대통령 일행이 유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전주 콩나물죽 공수하여 조찬으로 때우기도... 

전주에서 요리사를 데리고 오기에는 시간이 맞지 않아 결국 그 호텔 주방에서 준비한 일반 저녁식사를 대통령에게 대접해야 했다. 결국 朴대통령은 대통령 재직기간 중에 가장 험한 숙식을 대접받은 것이다. 그 다음날 아침도 흔히 전주에서 하는 콩나물죽을 준비하여 조찬으로 때우니 지사로서 그저 머리 숙여  몸 둘 바를 몰랐다. 대통령은 그런 조찬을 드시면서 “솔직히 어제 저녁은 좀 시원치 않았는데 오늘 아침 콩나물죽은 맛이 있구먼” 하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황인성 전 총리의 회고록 '나의 짧은 韓國紀行'에서]

 

입력 : 2007년 04월 01일 23:47:54 / 수정 : 2007년 04월 02일 0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