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석회암 동굴이 정읍에도 있습니다

뿌리기픈 2007. 12. 10. 22:30

석회암 동굴이 정읍에도 있습니다 

[연재]박래철의 정읍땅이야기...산외면 정량리 상용두마을의 '용굴', 석회암 동굴을 찾아서

 

박래철 ppuri1@eduhope.net

 

 

 

      동굴의 입구. 구멍은 2개지만 하나로 연결된다.

 

      동굴 내부의 모습.

 

 

정읍의 지질을 알아보기 위해 정읍시사(2005년)를 살펴보았는데, 예상보다 다양한 암석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료에 의하면 우선
정읍에 분포하는 암석 중 가장 넓게 분포하는 암석은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인데, 이들은 화성암과 변성암을 대표하는 암석들이다. 그리고 퇴적암에는
내장산의 응회암(凝灰岩), 산외면 화죽리의 이암(泥岩), 산외면 정량리와 칠보면 시산리의 석회암(石灰岩) 등이 있다고 한다.


이중에서 역시 눈길을 끄는 것은 단연 석회암라고 하는 특별한 암석이다. 석회암은 일반적으로 열대지방의 바다밑에서 산호초가 쌓여 이루어진
퇴적암이라고 한다. 그런 석회암이 북반구 중위도 지역에 위치한 지금의 한반도에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이른바 대륙이동설에 근거하여 
설명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석회암의 존재는 한반도 형성과정을 추적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그 동안 지리교과서에 소개된 우리나라(남한)의 대표적인 석회암 지역으로는 강원 충북 경북을 들 수 있고, 가까운 곳으로는 시멘트 공장이
입지하는 전남 장성, 전북 유일의 석회동굴이라고 했던 익산의 천호동굴지역 정도를 기억하는 정도이다. 



정읍에도 분명히 석회암 지대가 분포하고 있다


하지만 정읍에도 이렇게 석회암 지대가 분명히 분포한다는 사실을 지금껏 알지 못했고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렇게
정읍사람들조차   석회암 지대의 존재를 널리 알지 못했던 건 아마도 지금까지 발견된 정읍의 석회암 지대가 그 분포지역이
협소하고 매장량이 적어서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무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석회암은 석회동굴을 이용한 관광자원으로 가치있다


일반적으로 석회암이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다. 하나는 건축용 시멘트, 농업용 비료, 제철용 원료 등 광물자원으로서의
가치이고, 또 하나는 석회동굴을 이용한 관광자원으로서의 이용이다. 특히 암석의 종류를 잘 구별하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도 석회암이 관심을 끌 수
있는 것은 석회암 동굴을 탐사할 수 있는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 때문일 것이다. 수억년 전 오랜 지질시대에 물에 의해 화학적 풍화로 용식되어
형성된 자연동굴, 그 안에 기이한 형태의 암석과 특별한 생태계가 나타나는 석회암 동굴은 제주도의 용암동굴과 더불어 새로운 체험과 학습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또한 지질 및 지형학자들에게는 좋은 연구재료를 제공할 것이다. 


 정읍에서 석회암과 동굴을 볼 수 있는 곳은 산외 정량리 용두와 칠보 시산리


그러면 이제 기록을 근거로 정읍의 석회암지역을 찾아가 보자. 글을 읽고 상상한 것과는 많이 다를 것임을 예상하면서도, 가보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이끌었다. 정읍에서 석회암 및 석회동굴이 발견된 곳은 2군데라고 한다. 참고로 정읍시사의 기록을 여기에 옮겨본다. 


"석회동은 산외면 정량리 용두마을과 칠보면 시산리에 발달되어 있다. 두 곳의 석회굴을 비교하여 보면, 용두 석회동굴은 석회암에 발달되어
있어 그 양상이 일반 석회굴과 별 차이가 없으며, 석회암 노두가 넓지도 않아, 그 규모가 작고 출입구가 하나이며 보존이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산리 석회굴은 운모편암에 다른 석회암이 섞여 있는 곳에 발달되어 있어서, 굴이 복잡하고 층을 이루고 있으며, 최근에 발견되어 그 보존상태가
좋으며 굴 내부의 규모가 용두 석회굴보다 크다. " 


칠보 시산리에서 석회동굴 찾아 헤맸지만 실패


 먼저 정읍에서 가까운 칠보면 시산리를 찾아가 보았다. 산이 가까워 동굴이 있을만한 시산리 송산마을, 행단마을의 주민들을 만나
알아보았지만 동굴에 대해 전혀 알거나 들은 바가 없다고 하였다.
다만 복호마을에 갔을 때 어느 주민이 마을 앞산 깊은 골짜기 어느 암자
부근에 동굴 비슷한 것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석회동굴인지 일반동굴인지는 모를 일이고, 그곳이 정읍시사 기록에 해당하는 곳인지
언젠가 큰 맘 먹고 한번 찾아가 볼 일이다. 당장 답을 얻을 수 없어 답답하였지만 다음 기회에 찾기로 하고 또 하나의 동굴을 향해
가본다.


산외 정량리 상용두마을, 상두산 줄기와 도원천이 만나 만든 절벽이 석회동굴


두 번째로 찾아간 곳은 요즘 한참 한우고기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산외면 소재지 주변, 정량리 상용두 마을을 찾아갔다. 목욕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와 상두리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합하여 도원천을 이루는 곳, 그 주변에 상용두마을이 자라잡고 있었다.  용두교를 건너 찾아간
마을은 배산임수형의 좋은 터로 보였는데, 그 주변 산줄기가 마치 용처럼 꿈틀거리는 모습이어서 지형도에서 확인해보니 더욱 그러했다. 그래서 용의
머리 즉 용두라는 지명을 붙였나 보다. 마을주민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문제의 석회암동굴은 낮은 산의 중턱에 있었는데, 지도로 보니 상두산에서
흘러내려온 산줄기가 도원천을 만나면서 절벽을 만들어 놓은 모습이다.


상용두마을 석회 동굴, 관광지로도 자원으로도 활용하기에는 빈약하다


마을주민의 안내로 석회동굴을 찾아 가보았다. 절벽 같은 급경사를 이루는 작은 산의 중간 쯤에 구멍이 몇 개 보였다. 현재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없는지 동굴까지 오르는 길에 잡목이 무성하다. 다행히 과거에 만들어 놓은 콘크리트 계단 덕분에 쉽게 오를 수 있었고, 어설프게 폐쇄한 철문을 열고 몸을 웅크린 채 한번 들어가 보았다.  안쪽은 낮에도 어둡기에 깊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동굴의 입구쪽에서만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고 곧바로 동굴을 나오게 되었다. 여기에 직접 와서 보니 이곳 석회암 동굴은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출입구도 너무 좁고 동굴 안의 규모도 작아 관광지로 개발하기도 참으로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고 이곳 석회암 지대를   공업용이나 농업용 광산자원으로 활용하기에는 매장량도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러한 경제적 가치가 없기에 지금껏 오랫동안 방치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그럴 것 같다.


지형도를 보니 이 곳 산의 높이는 80미터, 평지의 높이는 50미터,  그리고 동굴의 해발고도는 약 60미터 정도에 해당한다. 동굴의 존재를 예전부터 잘 알고 있는 마을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 석회암동굴의 존재에 대해 언제부터인지 점점 외부로 소문이 나고 외래객들이 자주 찾아 오다 보니, 한때는 외래객들을 위해 동굴 안에 전등까지 설치한 적이 있었고 계단을 만들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을사람들은 수 십 미터쯤 되는 이 동굴의 가장 안쪽에 있다고 하는 물웅덩이에서 물을 떠다 약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각종 암석에서 녹아 든 이른바 미네랄(광물질)이 풍부한 물이었으니 약효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안타까운 사실은 외지인들이 동굴 안쪽에 있었을 종유석을 불법으로 채취하여 가져가기도 했다는데, 마을 어르신들은 '종유석'이라고 하는 어려운 용어대신 이를 '고드름' 이라고 하는 재미있는 표현을 하였다.
생각해보니 '종유석' 대신 '돌고드름'이라고 하는 용어가 아이들에게도 훨씬 쉽게 이해가 될 것 같다.

 


 

     조그만 고드름처럼 종유석이 발달하고 있는 상태. 원래 있었던 큰 것들은 사람들에의해 불법채취되었다고 한다.

 

     컴컴한 동굴벽에 붙어있는 박쥐.

 

     탐사를 함께한 김형철선생님.

 

     동굴안쪽에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용두마을 동굴 이름은 '용굴'


지금껏 보호받지 못하는 석회암 동굴에 혹시 있었을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은 인간들의 손길에 전부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이제 다시 그 '돌고드름'이 다시 생겨나기까지 기다리기에는 우리네 인생이 찰나적 일 뿐이다. 한번 훼손된 자연은 원형을 회복하기가 거의 불가능한데도 사람들은
자연의 가치를 너무 가볍게 여기고 너무도 쉽게 망가뜨려 버린다.


용두 석회동굴을 마을사람들은 ‘용굴’ 이라 부른다. 용이 승천한 곳일까? 용굴에 용두라는 마을 이름이 잘 어울린다. 용굴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하느냐에 따라 이곳 용두마을의 운명도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은 용굴과 용두는 잠잠하다. 마을 앞을 흐르는 도원천 건너 산외면 소재지인 평사리는 날마다 '고기만'(?)으로 흥청거리는데도 이곳은 그저 조용하기만 하다. 앞으로 이곳이 각광받는 관광지는 아닐지라도, 자라나는 학생들을 위해  조그만 자연 학습장이라도 만들어졌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을 가져본다.


 

 

 동굴 안쪽에서 밖을 바라본 모습.

 

오른쪽에 있는 마을이 용두마을. 산의 모습이 용을 닮았고 이 부근이 그 용의 머리쯤으로 보여서 용두라 했을까?

산 중턱에 동굴이 위치한다.


[ 2차 탐사 이야기]

용두 석회동굴에 대한 1차 탐사는 소재파악의 의미였다면, 며칠 후 이루어진 2차 탐사는 내부규모를 본격적으로 파악하는 데 목표를 두었다. 2차 탐사는 지구과학을 전공한 정읍여고의 김형철선생님과 함께 하였다. 아무래도 석회동굴은 지질학적 접근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혼자서 깜깜한 동굴을 들어가기에는 쉽게 용기가 나지 않는 소심한 탓도 있었다.

드디어 동굴에 다시 들어갔다. 출발 전 동굴밖 나무에 준비한 실을 묶었고 실을 풀어가며 동굴 길이를 측정(약 40미터)하기도 하였다. 사전에 준비한 랜턴의 불빛에 동굴내부의 모습이 드러난다. 처음에 겨우 엎드려 들어가는 출입구와는 달리 안쪽에는 제법 반듯이 서서 다닐 정도로
높이와 폭이 커진다. 바닥에는 물길의 흔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물이 말랐고 천정과 벽면에는 군데군데 습기가 나타나며 이런 곳을 따라 미세한 크기로 종유석이라 부르는 돌고드름이 자라고 있었다. 아마도 제법 컸던 것들은 이미 외래객들이 채취해 간 것으로 추측된다.  한편 강수량이
많아지는 여름에는 바닥에 흐르는 물의 양이 다소 증가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이곳은 지하에 형성된 석회동굴이 아니고 산의 중턱에 위치하기 때문에 산정에 공급되는 지표수가 절리를 따라 들어가 화학적 풍화를 일으킨다. 따라서 그 풍화속도는 느릴 수 밖에 없고 거기에 따라 동굴이 크게 발달하지 않은 것으로 추측된다. 동시에 석회암 성분의 비중이 낮은 암석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동굴 안쪽에는  박쥐들이 동굴 천정 여기저기 붙어서 겨울잠을 자고 있었고, 갖가지 벌레들도 온도변화가 적은 동굴의 특성상 바깥의 차가운 기온과는 달리 겨울에도 온화한 기온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또한 보기 흉한 장면도 있었는데 그건 다름아닌 인간들의 흔적이었다. 긁힘자국이 잘 나타나는 석회암의 특성을 이용하여 벽면 곳곳에 이름을 새긴 낙서가  많았고, 이곳에서도 술판을 벌였는지 오래된 술병과 과자껍질 등이 나뒹굴고 있었다. 혹시 모를 일이다. 먼훗날 우리 후손들이 이런 것을 발견하고서 조상들의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고,  이런 낙서를 훌륭한 전위예술이라고 평가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저 꼴불견일 뿐이다.  이런 것을 보면서 또 다른 걱정이 생긴다. 의도하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글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면 분명 동굴을 찾는 외래객들은 증가할 것이고,  동굴은 또다시 아픔을 겪을지도 모른다. 과연 우리가 자연을 이용한다는 것은 항상 훼손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인가 ?


 

 

 

입력 : 2007년 01월 14일 22: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