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집과 삼백집사이엔 뭐가 있을까요? | ||||||||||||
금오호텔앞의 70년된 일본식 가옥에 얽힌 이야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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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시내 중심에 자리 잡은 금오호텔, 그 앞쪽에는 현대적인 호텔건물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초라한 2층의 일본식가옥이 눈에 뜨인다. 원래는 함석지붕이었을 지붕이 슬레이트로 바뀌고 건물내부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2층 벽체에 남아있는 함석 문 그리고 변색한 나무판자(일제시대 식민지였던 동남아시아에서 가져온 견고한 열대림의 목재라고 함) 등은 전형적인 일식 건물임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어차피 관심 없는 사람들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겠지만 잠시 멈추어 2층까지 자세히 바라보면 그저 예사로운 건물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35년 역사의 해장국집 '충남집', 모주는 술꾼들의 핑계 이 건물의 1층에는 여러 가지 간판이 내걸려있다. 부성슈퍼, 충남집, 동심상회, 단란주점 화실 까지, 가운데 동심상회는 주인 내외분의 생활공간이며 나머지는 타인에게 임대해준 공간이라고 한다. 1층 공간 중에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곳은 역시 해장국으로 오랫동안 명성을 쌓아온 충남집과 삼백집이라고 하는 식당 2곳이다. 이 중 충남집은 35년 정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식당을 운영하시는 분이 충남출신이어서 충남집이라 하였다고 한다. 이곳은 정읍의 술꾼들이 간밤에 마신 술로 생긴 숙취를 풀기위해 아침마다 찾는 곳인데 이곳을 찾는 애주가들은 또 여기서도 술을 마시기 위해 핑계거리를 만든다. 모름지기 취기를 풀려고 먹는 해장국에 모주라는 술을 곁들여 마셔야 제대로 해장이 된다며 근거 없는 이론으로 술꾼들은 또 음주를 부추키는 것이다. 해장국집의 진한 국물보다 더 깊은 역사를 가진 것은 이 건물이다. 그래서 언젠가는 허물어지고 사라져갈 건물이기에 사진이라도 남길 요량으로 디카를 들이대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주인아저씨로부터 가벼운 항의를 받았고 그때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인물이나 건물이나 주인이 있는 법,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깜박한 것이다. 셔터를 이미 눌렀으니 난 그냥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구하고 한씨 성을 가진 주인아저씨와 잠시 면담 시간을 가졌다. 건물 나이를 물으니 본인의 나이와 같다고 하시며 건물과 관련된 역사를 소상하게 알려주시는 친절함을 베풀어주셨다.
충남집 이층은 70년 넘은 일식 가옥 일식가옥 전체 건물의 주인아저씨는 당년 70세 고령이지만 신체연령은 그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연세를 고려하면 당연히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도 외견상 ‘아저씨’가 적절한 것 같다. 아저씨는 군산 태생이며 일제시대 이리농고를 졸업한 당시로서는 지식인이었는데 전공과는 다르게 정읍으로 이주하여 포목장사에 종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직업전선에서 은퇴하여 이곳 건물의 소유주로서 그 일부를 임대하고 있다고 한다. 주인아저씨는 나름대로 투철한 민족의식을 가지고 역사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시기도 했는데 일제를 몸으로 체득한 세대답게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강하게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요즘엔 컴퓨터까지 공부한다고 하면서 시대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뽐내기도 하였다. 2남1녀의 자녀분들도 이 건물에서 성장하였고 지금은 모두 어엿한 공직자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일제때는 의류공장, 해방이후에는 인쇄소, 지금은 해장국집 건물의 나이 70년, 일제시대에는 의류공장, 해방 이후에는 인쇄소로 사용하였으며 지금은 1층에 한해 식당과 매점 등으로 임대를 내주고 본인은 건물의 가운데 칸(생활공간)과 2층 공간(창고용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주인아저씨가 가운데 사는 이유는 가운데 칸에만 2층으로 올라가는 건물 내 계단이 있어서라고 한다. 한때 건물의 가운데 칸에 ‘동심상회’라고 하는 간판을 붙이고 구 시장 포목상회의 사무소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낡은 간판만 과거의 흔적으로 남아있는 셈이다. 사용목적이 끝나버린 간판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유는 주변 간판과의 조화를 위해서 그냥 철거하지 않고 유지한 것이라고 한다. 실용성보다는 미적 감각을 소중히 여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식 가옥 외형 왜 지금까지 보존했나? ...해장국집과 어울리는 외양 배려 마지막으로 가장 궁금한 점을 물었다. 이 건물에 대해 지금껏 외형을 크게 변형시키지 않고 보존해온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니, 어차피 이 건물에서 가장 명성이 높은 해장국집을 찾는 손님들은 이런 형태의 건물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탁월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현대화되어가는 시대에 옛 건물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차별화 전략에 성공비결로 본다는 것이다. 집주인과 건물을 임차한 식당주인은 어차피 공생(共生)관계이다. 사업경험이 풍부한 건물주의 배려 덕분에 오랫동안 장사를 할 수 있었던 해장국집들도 커다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이련가? 상업이라고 하는 동종의 경험 때문인지 자신의 적극적 이익추구보다는 임대인과 임차인간의 인간적인 신뢰를 소중히 여기는 아저씨의 마음을 잠간의 인터뷰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 정읍시내 상가에서 개업과 폐업을 손바닥 뒤집듯 빠르게 반복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수십 년 이상 전통을 이어가는 사람과 그 사람을 뒤에서 배려하는 건물 주인의 마음씨가 참 좋아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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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6년 08월 04일 03:24:48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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