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스승의 날에 대한 유감

뿌리기픈 2007. 12. 10. 10:04

  봄과 가을이 각기 무르익는 5월과 10월은 학생들이 공부하기에 참으로 쾌적한 시기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날씨가 좋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더욱 힘들다고도 말할 수 있다.  이 시기엔 나들이나 행사를 진행 하기에 좋은 때여서 정작 책을 가까이 하기가 어려워진다.  

야외활동 하기가 좋은 시기인지라 일선 학교 교육계획서에도 5월과 10월에는 행사가 무척 많이 배치된다.  이제 5월의 한 가운데에 스승의 날(5월 15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스승의 날에 대하여 현장교사의 한사람으로서 갖는 느낌과 생각을 여기에 밝히고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승의 날, 그리고 그와 관련한 촌지문제. 스승의 날이 기다려지기보다는 회피하고 싶은 게 솔직한 우리 교사들의 심정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 시대 우리 교사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몇해전부터 많은 학교에서 스승의 날이 임시휴교일로 정해지고 있다. 덕분에 학생과 교사들이 하루를 쉬게 되었지만 스승의 날에 집에서 쉬게 되는 이유를 알게 되면 왠지 찝찝한 마음이 앞선다.

스승의 날에 하루를 쉬는 이유는 알다시피 교사와 학부모간 촌지 수수를 봉쇄하기 위해서이다. 대가성 금품과 선물 및 향응제공이 우려되어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지역의 일부 학부모의 경우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학교에서 그간 촌지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 휴교라고 하는 이런 극단적 조치까지 스스로 내리기에 이르렀다.

모든 게 과정보다는 결과, 인성보다는 성적으로 평가가 되는 현실에서 자녀를 맡긴 학부모는 조바심이 앞선다. 한발 더 나아가 내 자녀만을 특별한 아이로 취급해주기를 바라는 일부 학부모들의 이기심이 이를 더욱 부추긴다.

또한 내 자녀에게 주어질 지도 모르는 불이익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라는 개념으로 촌지를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대가성 음성적 촌지수수 관행이 교사와 학부모들의 인식 전환이 없이는 쉽게 고쳐지기가 어려울 것 같다. 아무리 휴교를 하여도 요즘엔 간단히 '택배'라는 간접적인 전달 형식이 있어 굳이 학교를 찾아가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과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장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최근 서울시 교육청에서는 스승의 날을 학년이 마무리되는 2월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참교육학부모회에서도 스승의 날 옮기기 청원운동을 하고 있다. 참으로 의미있는 운동이다. 학기 중간인 5월 15일에 스승의날을 진행하는 것보다 학년말로 옮겨 우리의 전통인 책 한권을 다 배우고 나서 하는 책거리 행사로서 진행하여 교사와 학생이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학기중에 이루어지는 스승의 날이기에 미풍양속으로 여길 수 도 있는 교사와 학부모간에 촌지(寸志 : 작은 정성) 주고받기는 결코 순수할 수 없다고 본다.  양자간  대가성이 개입되는 심리구조이기에 그것은 불순한 거래가 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위해 스승의 날은 하루빨리 학년말로 옮겨져야겠다.

이런한 일련의 운동과 더불어 이제는 스승에 대한 개념을 원론에서 다시 정리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스승의 날은 왜 학교에 국한된 행사로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교사는 스승의 부분집합이다. 우리 사회에 교직과 직접 관련이 없으면서도 존경받는 수많은 인사들을 생각해 볼 일이다.

무너져가는 교권을 바로 세우고 스승을 존경하는 풍토를 통해 올바른 인격체를 기르고자 한다면 스승의 날엔 역사발전에 기여한 큰 스승의 표본을 찾아 그 의미를 되새겨볼 일이다. 스승의 날에 그저 모범교원들에 대한 정부표창만 이루어질 일은 아닌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꼭 짚고 넘어갈 중요한 문제가 있다. 왜 대한민국의 엄마 아빠들은 스승의 날이 되면 자녀들의 스승만을 챙기시는가?  어찌하여 내 아들과 내 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는가?  

오히려 스승의 날엔 나를 가르쳤던 선생님들 중에 존경했던 분들을 찾아 장미꽃 한송이라도 건네면서 존경의 표시를 하는 날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본인도 잘 실천하지 못했지만 나를 낳아준 부모님 못지않게 올바른 가르침과 인격을 형성시켜준 스승님을  찾아보는 일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참으로 아름다운 행동이다. 다만 교육적 관점에서 내 자녀들에게도 자녀의 선생님(스승)에게 예를 갖추기를 가르칠 수는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녀를 대신하여 부모님들이 직접 자녀의 선생님을 찾아뵙고 정성(?)을 표현하고 예를 갖추는 일은 이제 그만 두어야 할 일이다.

스승의 날을 빙자하여 이루어지는 대가성 거래의 의도가 아니라면 사실 이런 분들이 자녀의 선생님을 찾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내 자녀가 특별한 아이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면,  촌지를 통해 내 자녀가 특별한 대우를 받게 하는 것은 이제 그만 둘 일이다.  

이제 우리 교사들은 스승의 날에도 떳떳해지고 싶다. 그리고 당당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스승의 날은 학년말(2월)로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스승에 대한 개념도 올바르게 규정하고 실천하자. 자녀의 선생님이 결코 나의 스승은 아니다.  나를 가르쳤던 존경하는 선생님을 스승으로 찾아뵈면 될 일이다. 그러면 스승의 날을 옮기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6년 봄, 정읍중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