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산성비보다 무서운 우유비

뿌리기픈 2007. 12. 10. 09:59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사 중에는 재미있고 아름다운 일도 많지만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꼴불견도 많습니다. 엊그제 아침에도 눈살 찌푸리는 일이 발생하여 여기에 소개합니다. 학교 구성원 모두에게 고하노니 문제의 상황을 인식하고 나름의 해법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출근하여 교무실에 도착하면 책상 가까이에 있는 창문을 열곤 합니다. 요즘 장마철이라 환기가 더 필요한 때이기도 하지요. 그날도 창문을 열고 맑은 공기를 마시려고 할 찰나 위쪽에서 난데없이 하얀 비가 내렸습니다. 누군가 아침부터 먹던 우유를 아래를 향해 흘린 것입니다. 실수였을까요? 아니면 고의적이었을까요? 위층으로 달려가서 범인을 찾으려고 물어보면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물증이 없으면 아이들은 끝까지 불리한 사실을 감추려고 합니다.

위에서 비처럼 쏟아진 우유는 여지없이 창문의 유리창을 얼룩지게 만들었습니다. 이럴 땐 우유비가 산성비보다 무섭게 느껴집니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얼룩진 창밖을 보기가 싫어 제가 몇 번인가 닦아내기도 하였습니다. 왜 먹는 것을 가지고 장난을 칠까요? 분명 아래쪽이 선생님들이 근무하는 교무실이라는 것도 알 텐데 아이들은 그냥 쉽게 버립니다. 우유만 그럴까요? 아니지요. 학교 건물 주변엔 별의별 쓰레기가 위에서 떨어집니다. 종이, 휴지, 껌, 필기도구, 교과서, 체육복, 컵, 우유 빈 곽,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역겨운 건 날짜가 많이 지난 우유가 들어있는 우유곽이지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면 위치에너지에 의해 땅에 닿는 순간 파열이 됩니다. 진한 요구르트가 파편처럼 주변을 더럽히지요.


생각 같아선 우유급식을 당장 전면 금지시켰으면 좋겠습니다. 교실과 복도, 운동장 할 것 없이 곳곳에 우유곽과 상한 우유가 나뒹구는 현실에서 아이들에게 호소하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게다가 일부 영양학계에서는 우유가 몸에 꼭 좋은 식품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학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부작용을 감안할 때 이제는 우유급식 사업에 대해 근본적인 검토를 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유를 꼭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기성세대의 편견과 강박관념일 수도 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자기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합니다. 우유도 마찬가지지요. 자기가 먹어야 할 우유를 누군가 챙겨주지 않으면 먹지않고 지나쳐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담임선생님들이 종례시간에 꼬박꼬박 챙겨주지 않으면 하루에도 여러개의 멀쩡한 우유가 다시 회수용 박스에 담겨 반납처리되곤 합니다. 입맛이 없다고 안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게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세대들 답게 물질에 대해 연연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모습일런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교무실 차창 밖으로는 무언가가 계속해서 떨어집니다. 고체와 액체를 가리질 않고서..... 그저 낮은 곳에 살기 때문에 감내해야할 고통인가요? 위층에 사는 학생 여러분, 아래층에 사는 선생님들 좀 생각해주세요. 이럴 때 쓰는 말이 '역지사지'겠지요. 학생들의 습관이 안 고쳐지면 이번 기회에 차라리 우리 교사들이 교무실을 위층으로 옮기는 것은 어떨지...... 그래서 우리들도 한번 폼나게 맘껏 던져봅시다. 아이들이 뭐라고 할지......

 

[2006년 봄, 정읍중학교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