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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옛길체험8] 칠보 싸리재

 '싸리재'라는 고개이름은 전국적으로 꽤 많은 것 같다. 빗자루의 재료인 싸리나무가 많다하여 붙여진 경우겠지만, 때로는 '살이'(오랑캐를 죽은 곳이라는 의미)가 경음화되어 '쌀이'가 되고 그것이 연음화되어 '싸리'가 되었다고 하는 설도 더러 있다.  그런 싸리재라는 고개이름은 우리 정읍에도 몇군데가 있다.  그 중엔 정읍시내에서 남쪽으로 진출하는 고개 중에 호남중학교를 끼고 넘어가는 옛고개길이 있고,  또 하나는 바로 칠보산 자락을 끼고 칠보면 축현리(싸리고개라는 지명을 따서 붙인 행정구역명)에서 칠보면 수청리 수청저수지쪽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있다.  호남정맥 또는 노령산맥에 해당하는 고당산의 갈래인 칠보산 연봉은 대체로 동서방향으로 뻗어있는데 싸리재는 그 가운데쯤에 위치하여 고갯길 자체가 남북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자동차가 일반화되어 이런 고갯길을 이용할 일이 거의 없겠지만 과거에는 이런 고갯길이 주요한 도보길이었음을 생각할 때 옛 조상들이 숱하게 넘나들었던 길을 후손의 한사람을로서 넘어가보는 일도 나름 의미있는 일이라여겨본다. 그래서 시작한 고갯길 탐방이 벌써 8번째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도 가보아야할 우리 정읍의 옛 고갯길이 아직도 많다는 사실이 내겐 숙제라고 생각되면서도 한편으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기쁨이기도 하다.

 

  2010년 5월 21일 황금의 연휴 3일 중에 첫날이면서 생일날이지만 오래전부터 벼루었던 싸리재 고갯길을 걸어볼려고 한다. 더없이 화창한 봄날,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긴 하였지만 낮기온이 초여름 날씨여서 더운 느낌이 강하였다. 10시경 수성동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였다. 자동차로 목적지까지 갈 수도 있으나 체력운동도 할겸 자전거를 모처럼 타본다. 약 50분 정도 소요되어 북면을 거쳐 칠보면 축현리 축촌(싸리마을)에 도착하였다. 자전거를 마을회관옆에 보관하고 무작정 걸어서 고갯길을 향하였다. 경사도가 완만하여 힘은 들지않았으나  어제 과음한 탓에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거린다. 고갯길 초입에 태자산 아래에 위치한 동학농민혁명 지도자중에 한분인 최경선 장군의 묘역을 지난다. 풍수지리상으로도 좋아보이는 음택이다. 계단식 농경지에는 모내기를 하기위해 논배미마다 물을 담고 있었다. 산자락의 일명 고라실 논에는 대개 천수답이었으나 지금은 수리시설이 완벽하여 논농사를 하는데 물걱정은 사라진 것 같다. 자체 저수지를 통해 물을 공급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곳은 유역변경식으로 고개넘어 수청저수지의 물을 터널식으로 수로를 만들고 수도교를 만들어 관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수리안전답이라 하겠다. 지금은 오히려 쌀값하락으로 인해 논농사를 포기하여 묵정논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고, 논농사 보다 소득이 나은 복분자나 녹차밭으로 바뀌는 모습을 이곳에서도 발견할 수가 있었다. 다행히 축산이 발달한 이곳 정읍이지만 축촌마을 안쪽 골짜기까지는 진출하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이곳 마을에 사는 지인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까지는 수질이 좋아 지하수를 생활용수로 사용하고 있지만, 골짜기안에 행여나 오염물질을 발생시킬 수 있는 축사가 언제든 들어올 가능성이 있어 걱정이 된다고 한다.

 

  5월의 푸른 신록을 맘껏 감상하며 점점 경사가 급해지는 구불구불한 고갯길을 오른다. 길가의 하얀 찔레꽃, 온 산에 가득한 아카시아나무꽃의 향기가 나를 황홀하게 하였다. 초여름에 피는 꽃들은 대개 하얀색이라고 하는데 대처 푸른 배경색에 흰색만이 도드라져보이니, 벌과 나비를 유혹하기 위한 전략으로 꽃들도 하얀색을 선택하는 훌륭한 지혜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임도로 조성된 콘크리트 포장길을 약 40분 넘게 오르니 드디어 고갯길 정상부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고개너머를 바라보니 칠보산의 아버지산이라 할 수 있는 정읍과 순창의 경계에 위치한 고당산 자락이 보인다. 계속해서 고개아래 수청저수지까지 걸어볼 계획이었으나 더운 날씨와 피로한 몸으로 인해 애초 계획은 여기서 포기해야 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자동차로 한번 고갯길을 횡단해보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생각보다 고갯길이 잘 조성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산림청에서 관리하는 임도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제는 다시 왔던 길을 내려가게 되었다. 정상너머로 조금 내려갔다가 휴식하면서 준비한 얼음물을 다 마셨다. 점심때가 가까워 허기증이 느껴지기도 한다. 간식도 준비하지 않은게 후회가 된다. 어딜가나 준비가 중요한데.... 이젠 내리막길 속도가 훨씬 빨라진다. 오르막길에 소요된 시간의 절반, 정확히 20분이 소요되었다. 염치불구하고 지인이 사는 집에 들러 점심을 신세지고 다시 자전거 체인을 돌리며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 걸어본 칠보의 싸리재, 이름만큼이나 포근함과 정겨움 그리고 한적함이 물씬 느껴지는 우리 정읍의 또 하나의 보석인 것 같다.

 

 

축촌마을 초입에서 바라본 마을 뒷편의 싸리재와 주변 칠보산 산자락.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 최경선장군의 안내판. 

 

마을회관앞의 경로당 기념비 중의 축촌이라는 한자 지명. 

 

 마을회관인 축촌경로당과 모정. 지금은 농촌에 노인들만 남아 경로당이 곧 회관인 것이다.

 

최경선 장군의 묘역과 그 배경인 태자산의 모습. 

 

골짜기의 맑은 물. 

 

 5월의 신록이 싱그럽기만 하다. 산아래 계단식 논 또한 정겹다.

 

백화다원 이라는 차밭. 골짜기 안쪽에 위치한다. 

 

고갯길로 이어지는 농로길. 중간엔 수청저수지에서 공급되는 농업용수가 지나는 수도교가 보인다.

 

 

 마을 아이들이 즐겨노는 곳이라고 하는 사정자. 네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차밭에서 아이들이 함께 찻잎을 따고 있다.

 

 아까시 꽃이 만발한 숲.

 

 

 한적한 고갯길. 나홀로 걸어가니, 나를 위해 준비된 길인것 같은 착각이 든다.

 

 싸리재 고개정상에서 내려다본 북쪽 축촌마을쪽. 정읍의 산간부와 평야부가 경계를 이루는 점이지대이다.

 

 

 고개정상부에 설치된 안내판. 등산객을 위한 배려인듯....

 

 고개 정상부에서...

 고개 정상부에서 반대편을 바라보니 고당산 자락이 보인다.

 

 콘크리트 포장길 보다는 이런 흙길이 더욱 정겹기만 하다.

 

 수청저수지에서 공급되는 농업용수가 고개부근  터널을 지나 이렇게 길게 수로를 따라 뻗어 이어진다.

이른바 유역변경식으로 공급되는 것이다.

 

 고갯길 초입에 위치한 4정자 나무. 길손들의 쉼터로 제격이다.

 

 

 칠보산과 싸리재 부근의 지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