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문화방송의 사극 '동이'가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다. 나는 드라마에 취미가 없어 잘 보지는 않지만 내가 사는 정읍(태인면)과 깊이 관련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비록 실록에 기록되어 있지않지만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요약하여 소개하면, 조선시대 영조의 친모이자 숙종의 후궁이었던 최숙빈(드라마 주인공인 동이)이 어린시절 태인 대각교(현 거산교)근처에서 놀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인현왕후(숙종의 계비 : 두번째 왕비)의 부모가 영광군수로 발령을 받아 한양에서 남쪽으로 가는 도중 대각교 근처에서 쉬는데 부모를 잃은 어린아이가 있길래 딸과 나이도 비슷하여 몸종으로 쓰기 위해 데려다 함께 키웠다고 한다. 그리고 인현왕후의 아버지는 곧바로 한양으로 다시 발령이 나서 올라갔었고, 인현왕후가 어린 나이에 간택이 되어 궁궐로 들어가면서 동이도 함께 따라 들어갔던 것이다. 그후 인현왕후는 장희빈의 계략으로 궁궐밖으로 쫒겨나고 이를 안타깝게 여겼던 동이(최무수리)는 인현왕후를 위해 기도를 드리던 중 숙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고 숙빈이라는 위치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만한 드라마틱한 인물도 드물다고 하겠다. 그야말로 조선시대 최고의 신데렐라가 아니겠는가 ? 비천한 신분에 고아로 자란 것이 사실이라면..... 일설에는 한양 태생설, 담양 태생설도 있는데 확실한 역사적 사료가 없어 설로서만 얘기가 되고 있다. 최숙빈의 아버지 이름은 최효원이고 남자 형제들이 있었다고 한다. 해주최씨라고도 하는데 족보에는 없다고 하니 나중에 왕이 하사한 본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왕조실록에 최숙빈에 대한 기록이 아주 적고 태생지나 출신과 관련해서는 거의 기록이 없으니 확실한 얘기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만 최숙빈이 미천한 출신인 것이 사실이었다면 숙종이나 아들 영조 입장에서는 심정적으로 최숙빈의 자라온 과정에 대한 기록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인현왕후와 장희빈으로 대비되는, 당파 싸움이 격심했던 시대적 상황에서도 후궁으로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신분상승을 성취하였고, 효심이 지극하였던 아들이 또한 조선의 왕이 되었던 점은 개인적으로 굉장한 호사를 누린 것이라 하겠다. 비록 49세의 길지않은 생애를 살긴 하였어도........
확실한 역사적 고증이 없기에 전설에만 의존하여 탄생지를 주장하기도 어렵고 또한 그와 관련한 유적지를 조성한다는 것이 무리일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정읍시에서는 용감(?)하게도 최숙빈과 관련한 터를 마련하였다. 유물과 유적이 없기에 그냥 안내문과 정자가 전부여서 썰렁하기 그지없지만, 정읍의 태인이란 곳을 오가면서 한번쯤 최숙빈(동이)의 전설이 서린 이곳 거산교 부근 '만남의 광장'을 들러볼 일이다.
그러고 보면 이곳 정읍에서는 조선시대에 왕의 부인을 둘씩이나 배출한 곳이라 하겠다. 바로 단종비 정순왕후가 칠보면 시산리 출신이었고, 그리고 숙종비 최숙빈이 이곳 태인 출신이라면...... 예나 지금이나 지방출신이 출세하기 어려운 중앙집권적 정치구조에서 말이다.
정읍시내방면으로 향하는 1번국도옆에 설치된 사극 동이 안내문.
숙빈최씨와 관련한 유적지. 역사적 자료가 없기에 그냥 만남의 광장이라 붙인 것같다.
숙빈최씨와 관련한 전설과 생애를 소개한 안내판.
만남의 광장. 썰렁한 분위기이다.
옛날 대각교가 있었던 곳에 지금은 신1번국도의 교각이 설치되어 있다. 다리아래로 동진강이 유유히 흐른다.
새로운 다리를 조성하면서 발견한 대각교의 흔적. 돌다리였던 대각교의 상판으로 쓰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바위가 공사현장에서 발견되어 지금은 거산교 근처 대각 가든이라는 식당 정원에 조경용으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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