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전교조가 ‘마녀’인가 (하종강)

뿌리기픈 2008. 11. 24. 13:18

전교조가 ‘마녀’인가

미국 사회는 종종 유럽 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의 대상이 되곤 한다. 프랑스 배우 줄리 델피가 출연하고 감독도 맡은 영화 <뉴욕에서 온 남자, 파리에서 온 여자(2 Days In Paris)>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나온다. 집에 좀 늦게 들어온 딸에게 엄마가 이유를 묻자, 딸이 답한다. “데모 때문에 차 막히고 난리 났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딸에게 이렇게 타이른다. “불쌍한 간호사들이 파업도 못하니? 여기는 미국이 아니야.”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천박한 자본주의’ 미국에서나 하는 교양 없는 짓이라는 은근한 비난이 그 짧은 대사 속에 담겨 있다.
탄압에 침묵하는 우리 사회
그렇지만 유럽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는 미국에서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시각이 우리나라처럼 편협하지 않다. 올해 초, 미국에서 골든글로브 영화제 시상식 행사가 열렸을 때, 배우는 한 명도 없이 사회자만 참석해 수상자를 발표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미국 작가노조의 파업에 배우들이 동조해 영화제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방송사의 작가들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파업을 벌였는데 탤런트와 배우 등 유명 연예인들이 그 파업에 동조하면서 한 명도 출연하지 않더라…. 그런 일을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어렵지만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미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철저한 시장경제주의자인 미국 노사관계 전문가조차 한국 정부가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해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운동선수의 팔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파렴치한 일인데, 한 나라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무노조 경영’을 자신들의 경영 철학이라고 말하고 국민이 그것에 분노하지 않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 지경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보수 세력이 그토록 즐겨 말하는 ‘글로벌 스탠더드’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세계의 표준적 시각이다. 우리나라처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노동운동을 혐오하는 사회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한국을 방문했던 핀란드 교장협의회 피터 존슨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핀란드에서는 대부분의 교장들이 교원노조에 가입해 있다. 나도 그렇다.” 영국에는 교사노조(NUT)와 교장노조(NAHT)가 따로 있다. 한국 사회 지도층이 그토록 좋아하는 이른바 ‘선진국’들에서는 교장도 전교조에 가입한다.
교육감이 교원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해지하겠다고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말하고, 교육청이 교원노조가 사용할 사무실, 집기 및 비품 등을 제공해온 것이 불합리하다는 주장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하지 않는 것은 노동조합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일천한지 보여준다.
노동운동에 대한 전근대적 인식
일선 학교에서는 교사가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 놓은 홍보물에 대해서조차 “징계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단체협약은 교육청과 전교조 지부가 맺은 것이니, 학교 단위 분회에서는 단체협약 규정을 거론하지 말라”거나 “일과 시간 중에는 ‘전교조’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는 등 후안무치한 주장을 아무런 부끄러움도 없이 하는가 하면, 그러한 대응논리를 개발해주면서 ‘밥 빌어먹고 사는’ 자칭 전문가 지식인들은 제철을 만났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에 지식을 파는 ‘지식 장사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전교조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 보고하게 하는 등 ‘마녀 사냥’하듯 전교조를 몰아붙이는 몰염치한 일이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 이유는 “교사가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전근대적 인식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도 불성실한 교사가 있다”는 지적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