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이야기

'거짓말쟁이' 된 교사, 억장이 무너집니다 (오마이뉴스 전대원)

'거짓말쟁이' 된 교사, 억장이 무너집니다

 

[주장] 교육에 들이대는 이명박식 불도저가 겁나는 이유  전대원 (amharez)

 

불도저의 삽날 끝이 교육계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기 이전부터 가장 많이 변할 부분이 교육 쪽이라는 것은 익히 짐작이 되었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이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투기세력 일부의 기대 섞인 관측도 있었지만, 새 정부가 아파트 값의 폭등이 정권의 향배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지 모르는 바보가 아니라면 급격한 정책 변화를 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성급히 들쑤셨다가는 민심의 이반을 경험한 참여정부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분야는 좀 다르다. 교육 정책에 대한 불만 강도는 부동산 정책과 엇비슷하지만, 교육 정책의 변화가 당장 자신에게 어떤 변화를 주는 지에 대하여 피부로 느끼는 국민은 별로 없다.

 

게다가 국민들은 일단 변화를 준다고 하면 어떤 정책에도 박수를 쳐줄 태세이다. 여기에 참여정부 초창기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우호적인 새 정부의 언론 환경을 생각하면, 변화의 드라이브는 더욱 가속페달을 밟을 전망이다.

 

인수위가 출범하자마자 당장 올해 입시부터 수능등급제를 없애겠다는 이야기부터, 교육부 폐지라는 메가톤급 뉴스에 대학입시 전면 자율화까지, 분석은커녕 채 의미도 파악하기 전에 새로운 개편안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다. 교육마저도 운하 파듯이 전광석화처럼 해치울 요량인가보다.

 

그러나 공사 현장에 계신 분들에게는 미안한 표현이지만, 교육은 '노가다'판이 아니다. 세밀한 정책적 계산이 없다면 파장의 크기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게 된다.

 

수능등급제를 망친 자는 누구인가

 

지금은 만신창이가 되고 정권교체로 시한부 인생이 되어버린 수능 등급제를 살펴보자.

 

수학적으로는 수능 등급제로 피해를 입은 수험생이 다수는 아니다. 어차피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제한되어 있고, 이 좁은 문을 향해 경쟁하는 대학입시는 이익의 총합이 0이 되는 제로섬 게임이다. 다시 말해 내가 붙으면 누군가 다른 한 명은 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모든 수험생은 자신이 수능 등급제의 피해를 봤다고 생각한다. 입시제도 개편안이 호응을 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심리구조가 깔려있는 것이다.

 

사실 수능 등급제는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내신 강화와 쌍으로 물려 들어가는 제도였다. 이 두 정책은 수능 위주의 대입제도가 사교육 팽창과 재수생 증가라는 부작용을 낳는 현실을 타개하고, 학교를 중심으로 공교육을 정상화 시키겠다는 것이 근본적인 취지였다. 2008 대입안이 확정된 것이 지난 2004년 10월이었으니, 현 교3이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훨씬 전에 확정 발표된 셈이다.

 

그러나 서울의 상위권 대학은 똘똘 뭉쳐서 2008대입안의 핵심인 내신 강화를 무력화 시켰다.

 

고려대학교의 경우 1등급과 4등급의 점수 차이가 1000점 만점 중 2.4점에 불과했다. 세칭 '일류대학'이라고 치부되는 다른 대학도 정도의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수능 등급제의 전제였던 내신 강화가 무력화되었으니, 대학 입시에 대한 변별력이 의문시 되는 것은 당연했다. 대학들은 현행 내신제도가 학교 간 격차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명분으로 삼았다.

 

일선 학교에서는 교육부와 대학의 합의를 믿고, 현 고3이 신입생이던 시절부터 내신 강화 입시안이 2008학년도부터 적용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시험의 객관성 확보를 위하여 홈페이지에 정기고사 시험지를 공개해 놓았고, 학생들의 사소한 정답 시비에도 가슴을 졸이며 문제를 출제했다.

 

그러나 대학교의 갑작스런 내신 비중 축소로 인하여 지난 3년간 교사들은 본의 아닌 거짓말을 제자들에게 늘어놓은 셈이 되었다. 이래도 일선 고등학교 교사들은 대학에 대해 별 말이 없다. 연신 뒷담화는 늘어놓지만, 그냥 거기서 그만이다. 그 대학에 제자들을 보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중등교육은 잘못됐고, 대학은 잘하고 있다?... 근거는 뭔가

 

이명박 당선인의 주장을 보면 중등교육은 많이 잘못되었으니 개혁을 하고, 대학은 아주 잘하고 있으니 자율성을 확대하자는 주장으로 보인다. 속뜻이 그렇지 않을 수는 있지만, 나오는 정책들을 보면 중등교육은 3불 정책으로 낙후되어 있고, 대학교는 자율성만 확보하면 저절로 발전할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중등교육의 병폐가 3불 정책에 있다는 진단의 논리적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시장에 맡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극우파의 이데올로기적 맹신만이 존재할 뿐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 고교 평준화와 등급제 금지, 대입본고사 금지가 정말로 사교육비의 상승을 가져온 원인이라고 생각하는지 말이다. 우리는 경쟁이 부족한 교육환경이 절대 아니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평준화의 틀을 일부 훼손시킨 특목고의 확대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사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기 바란다. 오히려 우리 교육의 문제는 시장의 논리가 판치는 무한경쟁의 사교육이 망치고 있다. 진지하고 성찰적인 교육보다는 찍기 위주의 시험기계를 양산하고 있다.

 

공교육의 경쟁구도는 이미 극한을 치달은 지 오래이다. 지난해 고3담임을 맡은 나는 아침 8시에 출근하여 저녁 10시에 퇴근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보충수업으로 방학의 절반을 보내야 한다. 도대체 이보다 얼마나 더 경쟁을 붙여야만 속이 시원할 것인가? 고교평준화가 완전히 깨진다면 이 같은 모습은 중학교로까지 확대가 될 것이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 대학처럼 팔자 편한 교육기관은 없을 것이다. 대학 편입학 부정 시비로 대학교 총장이 물러나도, 그 대학의 입시 커트라인은 떨어질 줄 모른다. 가만히 앉아서 노력을 안 해도 우수 학생이 몰려오고 있다. 오히려 그런 대학들이 한술 더 떠 중등교육을 믿지 못해 고등학교 내신을 불신한다고 공공연히 떠들고 있다.

 

그들이 스스로가 하는 고등교육에 얼마나 자신이 없으면 국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제자들을 강단에 제대로 세우지도 않을까. 이렇게 스스로의 교육 결과도 미심쩍어하는 대학들에게 새 정부는 온전한 자율권을 주겠다고 나서는 것이다.

 

사교육비 절반으로 줄어든다는데, 학원가엔 '이명박 특수' 바람이

 

중등교육을 책임지는 교사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대학교 학벌이 카스트를 이루는 이런 한국 사회에서는 일류대학이 결정하면 고등학교 교육과정은 그에 맞춰야 한다. 한국 교육에서 대학은 상수이고 고등학교는 그에 따라 변하는 종속변수이기 때문이다.

 

이제 최고 정책결정권자마저 대학의 자율성을 보장하겠다고 나섰으니, 중등교육은 대학의 요구사항에 따라 춤이라도 춰야 할 지경에 왔다. 대학에서 내신 무력화 정도를 넘어 본고사까지 본다고 하면 인문계 고등학교는 그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본고사를 치른다고 하면 본고사 대비반을 만들고, 논술을 강화한다고 하면 예체능 교사까지 나서서 논술 연수를 받는 것이 고등학교 교육의 현실이다. 만약 대학에서 글씨 잘 쓰는 학생을 뽑는다고 하면 전국 고등학교는 펜습자 연습으로 밤을 새게 될 것이다. 발 빠른 사립학교는 목표 대학별 반 편성을 하고 나설 것이다.

 

대학입시를 자율에 맡긴다는 것은 단순하게 학생 선발권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한국의 중등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대학들이 결정하라는 것과 같다. 정말로 그럴 능력과 자격이 한국 대학들에 있다고 보는가?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아파트값 폭등을 불러와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국민들은 강남 지역 아파트 투기꾼들이 가장 선호할 것이라고 짐작되는 후보를 뽑아주었다.

 

이명박 당선인은 새로운 교육정책이 사교육비를 절반이나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강남 학원가는 벌써부터 '이명박 특수'를 기대하면서 새로운 시장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러니다. 시장의 힘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시장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해봤어?' 리더십, 적어도 교육에는 그러는 것 아니다

 

동전에 앞뒷면이 있듯이 어떤 정책이든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상존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고, 대학교에 자율성을 주는 일이 세계적인 추세에 부합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급변하는 시대에 100년 앞까지 내다보는 것은 무리라고 해도, 정권을 인수한 후에 교육정책을 차근차근 점검하고 그 때 결정을 해도 늦지 않다.

 

이명박 당선인의 리더십을 정주영 리더십과 똑같다고 해서 '해봤어?' 리더십이라고 한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는 소리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이 다 그래도 교육 분야만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섣부른 개혁이 피로감을 낳았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그대들 아니었던가? 나는 브레이크 없는 이명박표 불도저가 겁이 난다. 적어도 교육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