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12월 한겨레신문에서 퍼온 글]
"교육 제자리 찾기는 집에서 시작됩니다 ."
[아이랑 부모랑] 희망을 만드는 새해 제언
다시금 새해, 첫날 떠오르는 이른 아침 해를 맞으러 수려한 삼각산에 오를 것입니다. 맑고 밝고 고요한 빛, 커다란 광명 앞에서 나의 근본, 삶의 처음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하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우리 교육의 처음에 대해서 말이지요. 교육이라 하거나 삶이라 하거나 상관없습니다. 삶이 없으면 교육도 없고, 교육이 없으면 삶도 없기 때문입니다. 만신창이가 된 교육은 우리 삶이 얼마나 망가졌는지를 한 마디로 말해주는 것입니다. 엉킬 대로 엉켜 버린 실타래를 풀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 그리 된 까닭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이 자리에서는 그간 운위되어 오던 학교교육 문제에서 잠시 눈을 돌려 ‘가정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보고 싶습니다. 가정의 문화와 가정의 교육에 대해서 말입니다.
나는 우리 교육이 끊임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이유 중 하나를 부모와 가정의 정신적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여기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탐욕’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무지’입니다. 탐욕을 말하는 까닭은 많은 부모들에게서 자식을 통한 자기 존재의 확장, 기득권의 대물림이나 대리 만족적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무지를 말하는 까닭은 많은 부모들에게서 아이의 삶을 교육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의 부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테면 우리 사회는 교육에 대한 학부모의 ‘권리’를 옹호하는 맥락에서 사교육의 권리도 보장하였습니다.
자식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탐욕과 아이성적 빼곤 아는게 없는 무지가 교육 추락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
하지만 가사 상태에 빠진 어린이의 삶에 대한 ‘권리’는 아무런 법적 보장도 받지 못한 채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모순적 상황이야말로 바로 무지를 반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많은 학부모들은 사교육이 점수취득 능력 제고를 위한 콘베이어 시스템일 수는 있을지언정 이러한 체제가 아이들을 철저히 의존적이며 자기 밖에는 모르는, 아주 미성숙하고 냉혹한 인간형을 만들어낸다는 점은 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문해 봅니다. 우리의 많은 학부모들은 수능과 대학입시에 대한 정보에는 정통하지만,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인격적 관계 맺기, 삶의 가치에 대한 감각, 아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천품과 개성, 학업능력에 대한 합리적 고려 같은 문제에는 거의 무감각하지 않은가? 대학 진학을 위한 아이의 성적 빼고는 아이 자신에 관해서 정작 아는 게 거의 없지 않은가? 한 마디로 우리의 많은 학부모들은 교육에는 열을 내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적으로 사유하는 문제는 무관심하지 않은가? 요컨대 우리의 많은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근본적으로 ‘희망의 눈’이 아니라 그들 미래에 대한 ‘염려와 불안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데 길들여져 있지 않은가? 하나의 거대한 집단적 병리 현상이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한 가지 골똘히 생각해 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학(家學)’에 관한 것입니다. 가학이란 옛 선인들이 가정에서 간직해 온 ‘가정교육’에 관한 풍속을 일컫는 말입니다. 예전에는 가학만 잘 받아도 수준 높은 학덕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의 가정들은 지난 산업화 과정에서 그리고 제도교육과 사교육으로 인해 텅텅 비어 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무능력해져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가련한 처지에 놓인 우리들의 가정들이 다시금 제 힘을 되찾고 다시금 제 얼굴을 되찾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가학이 번성하는 가정은 가정의 문화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또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해 첫날, 가학을 위한 밑그림을 이렇게 그려 보고 싶습니다.
첫째, 우리들의 집을 정말 공부하는 자리로 만들어 보기. 생각하는 부모, 생각하는 아이를 위해서 말이지요. 이 원천에서 교육다운 교육이 시작될 수 있으니까요. 이 말을 ‘철학하기’라는 말로 바꾸어볼 수 있습니다. 철학이란 무슨 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삶을 위한’ 철학, 삶의 ‘이유’와 ‘가치’에 대해 생각하는 철학을 일컫습니다. 요새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의 중요성을 눈여겨보는 곳은 흔치 않습니다. 돈과 영어와 인터넷과 또 실용주의가 거의 전부지요. ‘인문학 공부’는 그 첩경이 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전문가 혹은 가까이 지내는 철학도가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몇몇 가정이 한 집에 모여 주말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나누는 풍경을 그려봅니다.
둘째, 한두 가지 공예 활동. 공예는 손으로 하는 예술 활동으로, 육체적 구조를 정교하게 발달시켜 줄 뿐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과 집중력과 미적 감각과 부지런함과 능동적인 태도를 길러준다는 점에서 많은 가치가 있습니다. 손의 정교한 활동이 두뇌 작용과 발달을 위해 얼마나 중요한지는 오늘날의 뇌 과학이 잘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 집을 실제 삶의 능력을 배우는 자리로 만들기. 지식은 실제 삶에 바탕을 두거나 여기에 연계되었을 때 생기를 띠고 나타나는 법인데 이 단순한 진리를 무시하는 것이 오늘의 학교요 오늘의 사회입니다. 오늘날 진정한 뜻에서 번영하는 문명을 건설한 나라치고 이 점을 간과한 나라는 없습니다. 이들 나라들은 청소를 하고 음식을 준비하고 자기 옷을 만들어 입고 가계부를 쓰는 능력 같은 것들 속에서 살아있는 지식의 모든 핵심을 끌어내어 오늘날과 같은 성과를 일구어냈습니다. 집은 학교에 앞서 이런 걸 해 내야 합니다. 모든 책임이 학교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런 집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연스레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속에서 솟아나는 동기에 이끌려 자기 삶의 결을 따라 스스로 ‘즐겁게’ 학습할 수 있는 능력도 말입니다. 오늘날 아이들의 불행과 고통의 태반은 아이들을 이런 ‘자기 인식 없이’ 전선에 내모는 부모들로부터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번창하는 사교육 현상은 우리들 가정의 ‘빈약한’ 자기 인식 능력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 대한 염려와 불안이 아니라 희망의 시선을 위하여 새해 처음, 이렇게 맑은 하늘에 대고 밑그림을 그려 보았습니다.
송순재 교수/감리교신학대·교육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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