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터 따라 한바퀴, 소원풀이 했어요 | ||||||||||||||||||||||||||||||||||||||||||||||||||||||||||||||||||||||||||||||||||||||||||||||||||||||||||||||||||||||||
[연재] 박래철의 정읍땅이야기...영원면 은선리 매봉산의 금사동 산성을 찾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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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영원의 천태산과 매봉산을 중심으로 산재하는 문화재를 대하면서도 많은 감동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또한 그 유적이 방치되고 훼손된 모습을 보았을 땐 마음 한 구석이 아리기도 하였다.
11월 18일 일요일, 늦가을 답게 하늘은 맑고 기온은 평소보다 아래로 내려간 느낌이다. 게다가 강한 북풍이 몰아치니 체감온도가 더욱 낮게 느껴졌다. 이번 답사는 어린이 2명을 포함하여 모두 8명이 참여하였다. 오전 10시경, 인원을 점검한 후 백정기 의사기념관을 출발하여 첫번째 장소로 향하였다.
석우제 아래 주차시키고 매봉산 남사면 따라 오르다 영원에서 고부쪽으로 29번 국도를 따라 조금 가다보면 석우제 저수지 아래에 청솔가든이 보이고 그 안쪽에 일반주택을 활용하여 만든 '고선사'(古仙寺)라는 작은 사찰이 나온다. 우리는 타고 간 승용차들을 여기에 주차시키고, 안내자인 곽선생님을 따라 매봉산의 남사면을 따라 올랐다. 낙엽이 수북이 쌓인 등산로를 따라 가다가 길에서 약간 벗어난 위치에 백제시대의 돌방무덤이 나타났다. 천태산과 매봉산을 중심으로 분포하는 약 200 여기의 고분들 중에 하나이다. 개인적으로는 천태산 주변의 은선리 고분군을 이미 보았었는데 그 양식이 비슷하였다. 주변에 위치한 또다른 양식의 돌방무덤을 보니 시대에 따라 돌의 크기와 모양이 달라졌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수난당한 돌방무덤의 모습들... 원형 사라지기전 대책 마련 시급하다 또한 고분의 봉분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빗물에 씻기고 인위적으로 파헤쳐져서 겉으로 드러난 것들이 많은데, 그로인해 무덤의 재료인 돌(커다란 판석과 작은 크기의 할석)들도 수난을 당한 모습이다. 마을사람들이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가거나, 도굴꾼들이 부장품을 가져가기 위해 마구 파헤쳐버려 돌방의 원형이 파괴된 사례가 확인되고 있었다. 국민들의 문화재에 대한 낮은 인식수준과 함께 행정당국의 문화재 정책이 이곳에 미치지 못함을 느끼게 되는 장면이라 하겠다. 돌방무덤의 원형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당국에서는 하루빨리 복원과 보존대책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두번째로 간 곳은 영원 은선리에 위치한 금사동산성이다. 29번 국도변에 위치한 은선리 은선마을, 매봉산 아래쪽에 위치한 과거 '지사리'라 불렀던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에서 가까운 곳에 '지사리 고분군'이라 불리는 마한시대의 수혈식 무덤으로 추정되는 5기의 대형무덤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다. 고대(마한에서 백제)에는 이곳 영원 은선리 일대가 역사의 중심지였음을 증명하는 자료인 것이다. 마을에서 조금 위로 올라가니 금사동산성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었는데 곽선생님이 준비해간 낫으로 잡초를 제거한 후에야 글씨를 읽고 사진촬영을 할 수 있었다.
고부 장문리~영원 은선리의 금사동산성, 매봉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산성
금사동 산성은 동쪽에 위치한 해발고도 229m의 신선대와 서쪽에 위치한 190m인 응봉(鷹峰)의 능선을 성곽으로 삼고, 북쪽으로 트인 계곡의 아래쪽을 가로막아 이루어진, 둘레길이 2,365m의 이른바 포곡식(包谷式) 산성에 해당한다. 마치 삼태기를 북쪽으로 향한 모양이라 할 수 있는데, 계곡 중간쯤에 회랑로를 동서로 연결하여 내성과 외성 체제를 갖춘 성곽이라 하겠다. 성곽의 재료로는 돌과 흙을 지형의 특색에 따라 적절히 활용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계곡의 수구(水口)에 해당하는 곳에 북문이 위치하고, 능선이 이어지는 남쪽의 중앙에 남문이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중에서 남문지의 흔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백제시대 관아가 있었던 은선리 토성과 연계된 중요 군사시설 또한 이번 답사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지만, 성곽의 중요한 몇군데에 치성(雉城)이라고 불리우는 성곽의 방어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계곡 안쪽에는 절터가 있다고 하는데 금사동이라는 지명도 이곳 '쇠절골'이라는 지명을 한자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거의 모든 게 원형이 사라져서 아쉽기는 하지만 역사의 현장을 거닐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금사동 산성은 백제시대 관아가 있었던 은선리 토성과 연계된 산성이라 할 수 있으며, 유사시 적의 동태를 살피고 적은 숫자로도 적을 효과적으로 방어할 수 있는 중요한 군사시설인 것이다. 능선을 따라가는 산행은 참으로 편한 길이다. 잠시 후 드디어 매봉산의 최고봉인 신선대에서 올랐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오늘 날씨는 춥지만 공기가 맑아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서니 이곳이 왜 전략적으로 요충지라고 할 수 있는지 실감이 난다. 주변에 웬만한 산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는 내장산, 입암산, 선운산, 변산 등이 보이고, 가깝게는 두승산, 천태산, 고부 성황산 등이 손에 잡힐 듯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고부천과 동진강 유역을 따라 전개되는 낮은 구릉과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져있고, 멀리 서해바다가 보인다. 동쪽에서 뻗은 산들이 그 기세를 다하는 지점인데도, 매봉산은 상당한 정도의 해발고도를 유지하기에 사방을 조망하면서 교통과 통신을 제어할 수 있었을 것이고, 주변 평야에서 식량을 안정적으로 조달하며 전략과 전술을 유리하게 펼쳤던 곳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금사동산성은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 인접한 고부산성과 비슷한 구조
우리는 동쪽 성터에 해당하는 능선길을 따라 내려오면서 천태산을 볼 수 있었고, 분지상을 이루는 매봉산의 지형을 확인하면서 계곡의 아래쪽 처음 출발지로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둘러본 금사동산성의 구조는 인접한 고부 두승산성과 비슷한 구조임을 알게 되었다. 매봉산은 전체적으로 인접한 두승산(444m)의 지형과 비슷하기 때문인 것이다. 능선으로 연결된 봉우리들이 둘레를 이루며 성곽을 이루고, 한곳으로 모아져 흘러나가는 계곡쪽에 석성을 쌓고 성문을 만들었던 점이 전형적인 포곡식 산성에 해당한다.
찬바람속 산성 답사, 메기 매운탕으로 녹이고 우리는 불과 2시간 여의 짧은 산성답사를 마치고 매봉산의 남사면에 위치한 청솔가든에서 점심을 해결하였다. 곽선생님이 추천한 메기매운탕이 찬바람에 얼었던 속을 녹여주는 느낌이었다. 비록 짧지만 의미있는 오늘의 답사를 위해 애써주신 곽상주선생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곽선생님의 소망대로 영원 지역이 간직한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함께 기원해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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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11월 20일 02:31:0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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