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농소동 ‘삼보들’은 '일보들'될까?

뿌리기픈 2007. 12. 11. 14:57
농소동 ‘삼보들’은 '일보들'될까?
[연재] 박래철의 정읍땅이야기...농소동(農所洞) ‘삼보들’(三洑坪)을 찾아서

 

박래철 ppuri1@eduhope.net

 

 

 

 

 
▲ 호남고속도로 육교에서 바라본 모습. 멀리 최근 이전한 한국농촌공사 정읍지사 건물도 보인다. 농소동에 농촌공사 건물이 있어 참 어울린다.
우리는 여행을 통해 평소 접하지 못한 풍경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 큰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강원도 산골출신의 사람들에게는 너른 호남평야가 의미 있는 장소일 것이며, 반대로 전라도 너른 들녘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는 기암괴석이 즐비한 강원도 설악산이 감동을 줄 것이다.


평소 산만 바라보며 자란 강원도 골짜기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으로 김제 들녘에 들러 한반도 최대의 평야를 바라본다면 가히 감동을 넘어선 희열을 느낄 만하다고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유일하게 수평선 같은 일직선의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이 곳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그래서 김제의 ‘지평선’은 높은 브랜드 가치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광활한 평야가 발달한 김제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적 특색을 갖는 정읍에도 곳곳에 너른 들녘이 펼쳐져 있다. 그러면 이제부터 정읍시내 권역에 해당하는 평야부 중 가장 너른 들녘, 농소동의 ‘삼보들(三洑坪)’ 을 찾아가본다.

   

 

 

▲ 삼보들을 지나는 호남고속도로의 모습


정읍시내 권역에서 가장 너른 들은 농소동의 삼보들 

  먼저 ‘삼보들’ 주변에 사는 주민들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한 편을 소개한다. 삼보평 서쪽에 펼쳐진 지명과 관련시킨 이야기인데 여기에는 민중을 수탈한 지배층을 풍자하는 해학(諧謔)이 담겨있다. 즉, 당그레(용계마을 뒷산)로 삼보평의 곡식을 긁고 바작(두승산과 망제봉 사이 산 이름)에 담아 키(두승산과 동죽산 사이, 치재)로 까불고 노적(두승산의 한 봉우리)에 쌓고 그것을 다시 말(斗)과 되(升)로(두승산) 퍼서 고부관아에 조세를 바치는 형국이라고 한다.

용계마을 뒷산에 해당하는 당그레산은 두승산의 산줄기가 동죽산과 바작산을 거쳐 낮고 길게 삼보들을 향해 뻗다가 정읍천 앞에서 진행을 멈춘 모습인데, 풍수적으로는 호랑이 꼬리 또는 용의 흐름으로 보기도 한다.

 

 

 

 
▲ 왼쪽은 두승산, 오른쪽은 망제봉, 가운데에 바작산과 당그레산이 위치한다.


정일동은 농소동에 비해 생명이 짧았던 지명 

 정읍천을 끼고 발달한 평야, ‘삼보들’은 과거 정읍현 서이면(西二面)에 포함되는 지역으로, 효죽, 복룡, 하평마을 일대에서 고부군 소정면, 우덕면 등과 접경을 이루기도 하였다. ‘삼보들’의 대부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을 전후하여 신설된 농소리를 중심마을로  포함되었으며, 1981년 시 승격과 함께 농소동(효죽마을에 동사무소 위치)에 편입되었다.

 농소동은 1998년 정일동과 통합하여 그  면적이 크게 확대되었는데, 동사무소는 구 정일동사무소(목련아파트 옆)로 확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1960년대 정주일리조합(단위농협)의 이름에서 유래한 ‘정일동’이라는 지명이 결국 ‘농소동’에 밀려 사라지게 되었는데, 이는 지역성과 관련이 적은 지명은 결국 그 생명력이 길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라고 하겠다.

현재 정일초등학교와 정일여중이 있어 그나마 정일동의 이름을 이어가긴 하겠지만 농사짓는 땅, ‘삼보들’은 정일동보다는 농소동과 훨씬 잘 어울리는 지명인 것이다.

 

 

 

 

 
▲ 목련아파트 근처 농소동 사무소. 원래 정일동사무소라 하였는데 정일동이 농소동에 통합되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삼보들 위 아래로 상평과 하평이...하평을 해평리라 부르기도 

 한편, 삼보들을 적셔주는 정읍천을 따라서 위쪽에는 상평(上坪)이 있고, 아래쪽에는 하평(下坪)이라 부르는 평야가 펼쳐져 있다. 상평에는 상교동이 자라잡고 있고 하평에는 농소동이 자리잡은 형국이다. 농소동의 한 마을 이름이기도한 하평(정일여중 길 건너편 마을)은 이곳 주민들에게는 ‘해평리’라는 지명으로 훨씬 익숙하다. 전라도 사람들의 사투리인데 발음구조상 ‘하평’보다는 ‘해평’이 부르기 편해서 일 것이다. 요즘 ‘복분자’를 ‘복금자’라고 부르는 어르신들처럼........

이제 삼보들의 유래와 농업용수 공급체계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최근 농소동 벚꽃길 옆으로 이전한 한국농촌공사 정읍지사를 찾아가 보았다. 원래 정읍시내 중심지에 있었던 건물이 낡아 변두리로 이전하였겠지만, 그 장소가 공교롭게도 농소동이며 논농사가 이루어지는 삼보들의 중심지에 위치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적절한 건물배치인 것 같다.

 

 

 

 
▲ 최근 농소동으로 자리잡은 한국농촌공사 정읍지사 건물
 삼보들의 중심지로 신축 이전한 한국농촌공사의 탁월한 선택 


물론 이번 건물이전이 이렇게 깊은 생각을 거쳐 이루어진 것 같지는 않고, 단지 땅값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곽지역을 찾던 중 이곳으로 이전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겐 더 중요하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농경지가 계절에 따라 다른 옷을 갈아  입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며, 실사구시(實事求是)의 농업정책을 펼칠 한국농촌공사 직원들의 모습은 생각만 해도 멋진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담당 직원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얻게 되었다. 삼보들의 전체 면적은 380ha, 현황판 지도에 색깔별로 관할구역이 나누어져 있었다. 한국농촌공사 정읍지사에서 나뉘는 북면지소와 소성지소가 정읍천 유역의 수리시설을 분담하고 있었다.

 

  삼보들의 지명 유래는 '3개의 보(洑)'에서 

  

 

 
▲ 한국농촌공사 정읍지사에서 본 지도. 가운데 큰 연두색 표시부분이 삼보들.


 

 

 

 

 

 

 

 

 

 

 

 

 

 

 

 

 

 

 

 

 

 

 

 

 

 

 

 

 

 

 

 

 

 

 

 

 

 

 

 

 

 

 

 

 

 

 

 

 

 

 

 

 

 

 

  

위에서 언급한 ‘상평들’은 소성지소가 담당하고, ‘하평들’(농소동 삼보들)은 북면지소에서 관리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삼보들’의 지명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예상대로 3개의 보(洑)에서 취수한 물이 도수로를 통해 이곳 삼보들에 공급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들 3개의 보는 내장저수지와 부전저수지에서 도수로를 통해 공급되는 물인데, 정읍시내를 통과하면서는 대략 조곡천의 물길과 겹치기도 한다. 제1보는 과거 각시다리 근처에 있었다고 하여 각시보로 부르고, 나머지 2보(롯데리아 근처)와 3보(서초등학교 부근)를 여기서는 1보와 2보라고 부른다고 한다.

 

1보는 각시다리 근처, 2보는 시기동 롯데리아 근처, 3보는 서초등 근처

조곡천이 복개되기 전까지는 그 모습을 모두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복개되어 확인이 어렵다. 현재 1보와 2보는 사용이 중지되고, 현재 서초등학교 근처(도로에 수문조절기가 있는 곳)에 있는 제3보만 활용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도심을 통과하는 도수로의 특성상 하절기 장마철엔 침수를 가중시킬 위험성이 있고, 또한 오수의 침투로 수질이 악화되어 농업용수로 계속 사용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관계자는 말하였다.

 

1보와 2보는 사용중지, 서초등 인근의 3보만 활용되고 있는데... 

그래서 2001년부터 사근보에서 취수한 정읍천의 물을 삼보들에 직접 공급하는 방법(정읍양수장)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 그 수량을 늘릴 예정이며 이에 따라 시내 쪽 제3보의 기능은 조만간 완전히 용도폐기될 것 이라고 한다.

과거 고지도에도 나타났던 3보의 도수로 길이 이제 지명으로만 남게 되는 것이다 명실상부했던 지난날의 삼보들은 이제 변신을 준비해야 할 것 같다. 농소동 너른 들녘에 공급되는 보가 이제 하나라면 ‘삼보들’ 대신 ‘일보들’이라 해야 마땅할까?

 

 

 

 
▲ 농소동 농흥마을 정읍가구점 근처. 정읍시내 3보에서 공급되는 물이 시내 도수로를 통해 이곳까지 이어지고 이곳부터가 삼보들이라 불리는 농경지이다.


 

 

 

 
▲ 지금은 가구점이지만 과거 도정공장으로 농경지의 중심지임을 알려주는 곳.
 

 

 

 
▲ 호남선 철도가 통과하는 농흥마을, 농소동의 신흥마을이라 하여 농흥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농소동의 '농소'도 농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언제적 이야기인지는 모르지만 농업과 관련깊은 역사성을 지닌다 하겠다.

 

입력 : 2007년 06월 05일 01:59:15 / 수정 : 2007년 06월 05일 12:3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