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이야기

문제는 '육수'라네, 이 사람아!" (미국쇠고기문제에 관한 기사)

뿌리기픈 2008. 7. 14. 15:29
문제는 '육수'라네, 이 사람아!"

설렁탕·곰탕··광우병특정위험물질(SRM)은 어디로?
육수 문제 파장 곱씹어 보고 한걸음 물러나 생명생태 사색해야

한국에서 에스알엠(SRM)은 육수(肉水)다. ‘광우병특정위험물질’이라고 번역되는 에스알엠(Specified Risk Materials)은 소의 등뼈 척수(脊髓) 머리뻐 편도 회장원위부 뇌 눈 등을 이르는 용어다. 광우병 프리온이 이 부위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 중 등뼈와 척수는 한국 음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육수의 가장 유력한 재료다.

전문가들은 “광우병 우려가 있는 소의 고기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부위가 SRM”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방역관련 한 고위공무원은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부위까지 골고루 먹는 한국 사람들의 비헤이비어(behavier)는 바뀌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비헤이비어는 부정적(否定的)인 의미가 짙은 단어로 ‘행실(行實) 행위(行爲)’등으로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은 매우 즐겨 먹고 미국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는 이를 돈을 들여 버리는데, 이제 돈을 받고 외국(한국)에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미국 축산업계가 사생결단의 자세로 기왕에 한국과 이룬 ‘계약’을 고수하려는 이유겠다.

‘30개월령’ 이상 고기를 파는 것은 양보하더라도 이것(SRM)은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속셈으로 풀이된다. 이를 알기 때문에 한국의 ‘꼼수 협상단’이 계속 “30개월령 쇠고기만 막아주면 될 것 아니냐?”며 연막을 피운 것일까?

중요한 이슈는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30개월령 이하 SRM △검역주권 등의 세 가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과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를 들여오지 않는 방법을 협상하고 있다고 계속 얘기해 왔다. 아예 나머지 두 가지 이슈에 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 한국의 대통령이 미국과 미리 짬짜미하고 벌이는 쇼일까?

이 중 검역주권 문제는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하더라도 미국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수입해야 하는 등의 먹거리 주권을 포기한 매국적 협상 결과에 대한 반발이다. 국민들이 양해할 이유가 없다. 30개월령 쇠고기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SRM이다. 모르면 당하기 쉬울 것이다.

한국 소뼈는 좋고, 미국 소뼈는 안 돼?

모두 ‘위험하다’ ‘안 된다’고 고함만 지르고 있지만 막상 SRM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가 없다. ‘한국에서 SRM은 육수를 뜻한다’는 해설이 진작에 나왔어야 했다. 몸이 약해졌다고 마련하는 곰국이나 대중적인 식사메뉴로 빠질 수 없는 설렁탕 국물이 육수다. 육수는 고기 고은 국물인데 서양 요리에서 만나는 그레이비(gravy) 스톡(stock) 등 육즙(肉汁)과는 다르다.

좋은 소뼈를 구해 오래 끓여 기름을 떠내고 뼈와 뼈 속 척수 성분을 국물로 우려내는 것이 육수다. 물론 양지 사태 닭머리 돼지뼈 등으로 육수를 내기도 하지만 이는 한길 아래로 친다. 가장 좋은 육수라 함은 오로지 한우 소뼈를 고은 것이라야 하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사골을 으뜸으로 친다. 전통 깊은 음식점의 비결 중 하나가 이 부분일 것임은 대부분 아는 사실이다.

‘미국 소는 한국 소와 다른가?’ 라는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미국 소뼈로 끓이면 안되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다. 미국에서는 소 따위의 육골분(肉骨粉)을 소에게 사료로 먹여 광우병이 발생했고, 축산업자들의 로비에 밀려 충분한 검사를 하지 않는다. 꼼꼼히 뒤져보면 광우병 소가 더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제는 제대로 된 검역과정 조차 없이 한국에 팔 수 있게 된 것이다.

육골분은 무엇인가? 소뼈 내장 고기 등을 갈아 사료로 먹이는 것이다. 인력과 경비를 줄이기 위해 풀을 먹어야 하는 소에게 곡물(穀物)을 주었고, 급기야는 제 동족의 뼈와 살을 먹이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가 꼬여 발생한 소의 질병이 광우병이다. 한국 소는 풀은 충분히 먹지 못하고 곡물을 많이 먹기는 하지만, 육골분은 먹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이해한다면 미국 소뼈로 남편과 아이들 몸보신을 위해 곰국을 끓일 가정은 없다. 모두 비싼 한우의 뼈만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행정력을 포함한 우리의 축산 시장은 한우와 수입소의 뼈를 엄정하게 구분해 줄 역량이 없다. 결국 뼈를 고아 음식을 장만하는 것에 큰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모두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음식점이나 정육점 등에서는 어떻게 될까? 식품산업을 오래 지켜보고 있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절망적이다. 모두가 제목은 ‘한우 뼈’를 내 걸 터이지만 실제는 ‘정체불명의 소 뼈’가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성실하고 양심적인 업체들도 함께 도매금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소뼈를 주재료로 쓴 요리를 먹거나 가족에게 권할 뱃장이 필자에게는 없다. 독자인 당신도 마찬가지 일 것으로 생각한다.

까짓 설렁탕 따위 없어지면 어때?

‘나이롱 냉면’을 아는가? 김밥집이나 분식집에서 파는 조악한 냉면을 이르는 말이다. 소위 인터넷 오픈 마켓이라는 회사들의 홈페이지에서 ‘육수’를 검색해 보라. 거리를 빼곡히 채우는 각종 음식점들이 재료로 삼는 ‘물질’들의 순결성(純潔性)에 대해 우리 사회는 고민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 음식 시장의 ‘타락’도 이다지 심각한데 여기에 광우병 SRM 육수까지 쏟아진다는 것이다. 고기는 말할 것도 없고. 조미료로 쓰이는 각종 음식재료들은 또 어떻고?

설렁탕 곰탕 갈비탕 해장국 등이 우선 생각나는 소뼈 육수를 활용하는 메뉴다. 평양식 냉면도 소뼈 육수를 쓴다. 전주비빔밥 요리에서 밥을 짓는 물을 소 뼈 육수를 쓴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많지는 않겠다. 흥건한 국물 요리는 거의 소뼈 육수가 기본이다. 심지어는 야채 샤부샤부 집의 냄비에 채우는 육수 중에서도 소뼈 육수가 많다.

이제 “우리는 소뼈를 쓰지 않습니다”라고 광고할 업소가 생겨날 것이다. 이제까지는 “우리는 진짜 소뼈만 씁니다”라고 광고했던 업소다. 소뼈가 가장 좋은 육수의 재료였던 것이다. 우리 식생활, 음식문화에서의 소뼈의 존재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새삼스럽게 실감하게 된다. 이제 미국산 소뼈가 우리 식당의 육수로 등장할 채비를 하고 있다. 값이 국산의 25~35%가 될 것으로 업자들은 기대한다. 대통령은 자동차와 휴대전화 ‘장사’를 위해 SRM인 미국산 소뼈 고아 만드는 음식도 양해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다. 검역주권 따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의 음식은 광우병 SRM에 오염됐을 수가 있으니 특히 주의해야 한다’는 말이 국제 여행자 핸드북 등에 오르는 끔찍한 상황을 상상해볼 필요가 있다.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대장금’으로 국제사회에 한껏 띄워놓은 한국 음식문화의 깃발을 바로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음식문화 망가지고 관광산업 잘 될까?

관광객에게 한국을 한국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음식이다. 쇠고기 협상으로 올 수도 있는 우리 식생활과 음식문화의 충격은 당장 쓰나미 이상이다. 아직도 ‘값 싸고 질 좋은 미국 쇠고기’ 타령을 한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공복(公僕)으로든 CEO로든 결격(缺格)이다. 그 곁에서 그를 오도(誤導)하는 이들도 많이 부끄러워해야 할 터다.

관광산업은 하루 이틀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자연이 아름답고, 문화적으로 풍부하며, 왕래가 쾌적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맛있고 멋있고 안전한 음식이 항상 곁에 있어야 한다. 근사한 건물 지었다고 컨벤선산업, 전시산업 되는 것 아니다.

배우 가수 등 한류가 세계를 휩쓴다 해도, 먹거리가 없으면 손님들이 한국을 즐겨 찾을 이유가 없다. 음식문화나 산업은 농업처럼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거나 다시 세우기 어려운 부문이다. 더 큰 고뇌는 우리 스스로의 분열과 불신이다. 예후(豫後)가 아주 나쁜 질병을 대하는 의사의 심정으로 이 ‘육수 문제’의 파장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두 한걸음 뒤로 물러나 이 문제의 의미를 사색(思索)해야 하는 것이다. 화두(話頭)는 ‘광우병 SRM은 육수다’가 되어야 한다.

광우병 SRM으로 만드는 설렁탕도 양해해 달라는 대통령 당부의 ‘의미’는 이렇듯 의외로 크고 심각하다. 필자와 동료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도 이웃과 후손에 부끄럽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강상헌 논설위원 ooso@ingopress.com (시민사회신문 제57호 10면 2008년 6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