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고장, 정읍이야기

정읍판 '괴물'도 가능하다

뿌리기픈 2007. 12. 10. 22:18
정읍판 '괴물'도 가능하다
자전거로 따라가 본 조곡천...정읍천의 본류였고 각시다리 전설과 수성동 지명이 유래된 애환의 물줄기

 

박래철 ppuri1@eduhope.net

 

 정읍천의 지류인 조곡천(棗谷川)을 찾아가 본다. 물줄기를 탐사할 경우 대개는 발원지부터 시작하여 점점 물의 폭이 넓어지는 하류를 향하여 진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아래에서부터 시작하여 발원지까지 찾아가는 방식을 택하였다.

 조곡천이라는 이름은 상류쪽에 있는 마을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지금의 대림아파트 근처 마을 이름이 '대추고부'(대추골)로서 예전엔 상리 상신경동에 속하는 마을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곳에 대추를 실은 배가 들어오다가 뒤집혀서 그 주변에 대추나무가  많이 자라게 되었고 그것이 마을의 이름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 지도의 가운데에 새겨진 입석(장명동 당간지주)에서부터 그려진 조곡천이 정읍천과 합류를 하는데 그 중간쯤에서 빠져나가는 물길이 아마도 삼보평야로 보내졌던 인공도수로였을 가능성이 있다.  - 정읍현이 나와있는 고지도 중의 하나인 해동지도의 일부.
 


맑은 물길이 하수관이 된 조곡천의 운명 

 

 

 

 
▲ 연지동 정읍시문화원 앞. 사실상 하수관 역할을 하는 조곡천의 물이 정읍천 둔치에 별도로 매설한 오수관으로 빨려들어간다.(왼쪽)


 

 

 

 

 

 

 

 

 

 

 

 

 

 

 

 

 

 

 

 

 

 

 

 

 

 

 

 

 

 

 

  

비록 문헌이나 사진자료가 부족하지만 예전의 조곡천을 상상해본다.  조곡천은 지금의 정읍천보다 훨씬 폭이 좁은 시냇물이지만 정읍 시내를 자유곡류하며 지하수면을 높여주고, 결과적으로 샘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여름에 멱감기의 즐거움을 주었을 것이고, 아낙네들에게는 빨래터를 제공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민들에게는 풍부한 정서적 느낌까지 제공했을 것이다.

 그런 아기자기한 용모와 솜씨를 뽐내던 조곡천이 어느덧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조금씩 복개되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1980년대 후반 무렵 상류의 비도시지역을 제외하고 전부 복개되어버렸다. 자동차가 온통 거리를 활보하는데 일조를 하기 위해 조곡천도 기꺼이 콘크리트로 자기 몸을 덮는 희생을 치르게 되었다. 예전에 맑은 시냇물이 흐르던 물길이 지금은 하수관으로 이용되는 곳, 그곳이 바로 조곡천인 것이다.

 

삼보평야에 농수 공급하기 위해 조곡천에는 3개의 보가 있었다 

   

 

 

▲ 연지동 서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시설물. 아마도 보의 개폐 역할을 맡는 장치인듯....
조곡천을 탐사하는 첫지점은 여성회관 앞, 정읍의 도심을 관통하며 온갖 오수(汚水)를 나르고, 이것이 정읍천 고수부지에 형성된 오수관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잠시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부터 자전거로 복개된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간다. 서초등학교 부근에서 보는 보(洑)를 제어하는 기계시설이 눈에 보인다. 이른바 삼보평야(농소동 부근 들녘)에 물을 공급하는 수리시설 중의 하나이다. 나머지 2개는 지금의 롯데리아 근처에 하나, 또하나는 각시다리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조곡천에 있었던 3개의 보는 한국농촌공사에서 관리하는 시설로서 삼보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별도의 도수로를 만들어 활용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조곡천에서 이어지는 도수로 대신 삼보평야와 가까운 정읍천의 물을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양수장을 설치하여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농업용수 공급기능 사라지니 더 이상 상류에서 물 공급은 없다

조곡천은 외형상 상류지역의 집수면적을 감안했을 때 그곳을 흐르는 물의 양이 더 많았다. 그것은 아마도 내장저수지와 부전저수지에서  인공도수로를 따라 공급되는농업용수가 이곳 조곡천에 합류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곡천은 농업용수 공급의 기능이 멈추고 도시의 생활하수와 우수(雨水)가 흘러가는 이동경로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 더 이상 농업용수를 상류에서 충분히 공급할 목적은 사라졌다.

 계속해서 자전거가 속도를 내며 달려간다. 시내 중심부를 통과하면서도 반듯한 도로와는 달리 복개도로는 조금씩 휘어지는 느낌을 주는 데 이건 아마도 곡선을 지향하는 물길의 흔적이리라.

 

자동차가 집어 삼킨 조곡천으로 도시민들은 오수 흘려보내니...

복개도로의 경우 하천폭만큼만 형성된 도로도 있지만, 기존의 도로와 합하여 훨씬 넓어진 도로도 있었다. 이런 곳은 대부분 도로 한쪽을 잡아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곳이다. 결국 자동차가 하천을 집어삼켰고 여기에 도시민들의 오수를 흘려보내는 꼴인데, 어쩌면 이런 복개도로 아래에 또 다른 괴물(?)이 탄생하는 건 아닐까하는 걱정도 해본다. 

 드디어 광교다리가 있었던 광교집을 지나 각시다리 근처에 도착했다. 이곳의 소지명은 씨교동, 각시다리를 한자식으로 고쳐 쓴 지명일 것이다.  가문의 자존심 대결 때문에 가마타고 다리건너던 각시가 물에 빠져 죽었다던 어처구니 없는 전설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 이곳에 현재 다리는 없지만,  각시다리를 형상화한 석조물이 들어서는 이른바 포켓공원이 만들어지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겨진다.

   

 

 

▲ 장명동에 있으며 횡단보도 쯤에 각시다리가 있었다.


각시다리 전설, 빠져 죽을만큼 조곡천 물이 많았다는 사실일까?

아마도 그땐 사람이 빠져죽을 정도로 물의 양이 많았다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이곳이 정읍천의 본류를 형성하던 시절이었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직강공사로 정읍천의 위치가 시가지의 남쪽으로 확정되기 전까지 조곡천의 물길이 정읍천의 본류를 대신하였다면 지금의 물길보다 더 심하게 곡류하였을 것이고, 유속의 변화가 훨씬 다양하게 나타남으로써 경사도가 급한 곳에서 나타나는 물소리가 지금의 '수성동'이라는 지명의 또 다른 유래를 만들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조곡천 물소리때문에 수성동이란 지명 생겼나?

 이제 관통로를 횡단하여 '조곡로'라는 도로명이 걸려있는 길을 달린다. 그러다 상동회관 앞에서 내장산 가는 대로와 만나는데 여기서부터는 하천의 흐름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대로를 횡단하여 작은 과수원길쪽으로 이어진다고 하여 계속 달려갔다. 아파트가 밀집된 상동지역, 대우드림채 앞 명성교회 부근에서 드디어 복개되지 않은 물길을 찾았다. 가을 가뭄에 물이 메말라 있었고 하천이라기 보다는 여기서부터는 조그만 개울 정도로 변해버렸다. 상류로 갈수록 더욱 좁아지는 물길의 특성이긴 하지만.

 이 주변에는 바로 조곡천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는 '대추고부'(대추골)이라는 마을이 있다. 지금은 주변 아파트 그늘에 가려 그저 초라하고, 또한 고층 아파트가  허름한 가옥들을 눌러 버리는 형국이어서 마음이 불편하였다.

   

 

 조곡천의 근거가 되는 대추골. 상동 대림아파트 주변에 있는 오래된 마을. 

종교 모자이크, 대추골 아래 정골


   

 

 

▲ 다양한 종교시설이 있어 이채롭다.
여기서 조금 더 산자락쪽으로 다가가니 '정골'이라고 불리는 마을이 나온다.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아는 이가 없어 더욱 궁금하기만 하였다. 이곳에는 법인사라는 사찰, 나눔의 집이라는 선교교회, 산자락 바위밑에 굿당의 흔적, 최근 조성된 넓은 묘지 등 다양한 종교적 경관이나타나고 있어 가히 '종교의 모자이크'라고 할 수 있겠다.


이곳은 요즘 계속해서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고 그에 따라 앞으로 이곳의 경관은 크게 바뀔 것이다. 정읍 주변부에 위치하여 이른바  '베드타운'으로 성장하면서 시가지의 확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 곳 상동지역. 정읍 시내의 인구는 크게 늘지 않으면서 시가지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내부적인 인구이동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것일까?

 

조곡천의 발원지는 귀양실재

 

   

 

 

▲ 조곡천의 발원지로 볼 수 있는 곳. 직진하면 귀양실 고개이며, 고개정상에서 오른쪽으로는  칠보산을 오를 수 있다.
마지막으로 귀양실재라고 불리는 고개를 올라선다. 바로 이곳이 조곡천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은 칠보산에서 성황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으로 한적한 오솔길을 따라 고개를 넘어가면 구량마을(귀양실)이 나온다. 조곡천의 시작지점인 이곳의 아름다운 풍광은 끝지점에 위치하는 삭막한 하수관과는 무척 다름을 느끼게 한다.
  
 지금까지 자전거로 달려본 조곡천의 물길, 그리 길지않지만 정읍의 역사와 함께 변화를 겪어온 조곡천이다. 그 옛날 맑은 물이 흘렀을 때 느껴졌을 정취는 이제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정읍 시민들을 위한 하수도로서 기능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입력 : 2006년 11월 07일 22:38:25 / 수정 : 2007년 02월 18일 08: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