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 이야기

한겨레 신문에 기고하여 실렸던 글(2006년)

뿌리기픈 2008. 6. 12. 23:53
 

한겨레를 읽고


중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교사이다. 1월 6일자 한겨레신문의 ‘고유가 시대, 중동의 새바람‘ 이라는 글을 읽고 이 지역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이 기사의 제목으로 사용한 ’중동‘이라는 지명이 자꾸만 눈에 거슬려서 여기에 글을 올린다.


세계 각 지역을 구분하여 부르는 땅이름의 경우, 시대마다 나라마다 다양하게 불러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지명에 관한 표준화 작업이 국제적으로 필요한 일이라 여겨진다. 물론 한 지역을 놓고 인접한 나라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 그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도 결국 국제정치적 역학관계가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런 맥락에서 중동(middle east)이라는 이름도 철저히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하는 서양 사람들의 입장이 반영된 지명이라고 본다. 이는 과거 유럽인들이 아시아를 편의상 극동아시아, 중동아시아, 근동아시아로 3등분해서 불렀는데 그 중 한 가지에 해당된다. 이것은 지극히 유럽인 중심의 지명체계로서 우리도 이것을 함께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유라시아를 하나의 대륙으로 볼 때 오히려 유럽은 ‘극서 아시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세계는 둥근데 어디가 중심이라 할 수 있겠는가? 세계화 시대를 맞이하여 국제적으로 함께 사용하는 지명의 경우, 결코 특정지역의 관점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객관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극동’이라는 지명은 ‘동부아시아’로 부르고, ‘중동’이라는 지명은 ‘서남아시아’로 부르면 되는 것이다. 물론 이번 기사 제목에 서남아시아 대신 중동이라는 지명을 사용하게 된 배경에는 오래된 관행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 국민들에게 ‘서남아시아’라고 하는 교과서적 지명보다, 석유하면 떠오르는 ‘중동’이라는 지명이 더욱 익숙하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이 앞장서 비공식적인 지명을 계속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리고 기사에서 강조했던 세계적인 석유매장지라고 하는 이미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좀더 구체적으로 ‘페르시아만 연안’ 이라는 지명을 사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한다.


참고로 ‘극동 아시아’라는 지명은 우리나라처럼 유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대개 중국, 우리나라, 일본을 포함한 지금의 동부아시아에 해당된다. 따라서 서양인들이 자기중심적으로 붙인 ‘극동’이라는 말에는 단순히 지리적으로 중심부에서 떨어진 변방이라는 의미로만 그치는 게 아니라고 본다. 이러한 지명 사용이 우리 스스로의 의식 속에서 아시아 문화가 서구문화에 비해 뒤떨어져 있으며 결코 세계의 중심부 문화가 될 수 없다는 이른바 사대주의 근성을 은연중 길러주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