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맥지도의 격돌이 시작 된다
[한겨레21 2005-01-21 18:12]
[한겨레] 지리학계가 거부하는 국토연구원의 새 지도… 산악인·재야 학자가 지지하는
<산경표>의 산줄기 체계와 비슷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새해 벽두 눈길을 잡아끄는 흥미로운 기사가 보도됐다. ‘한반도 정확한 산맥지도 그렸다.’ 국토연구원이 지표의 높낮이 자료와 위성영상 기법 등을 활용해 한반도의 산맥지도를 새로 그렸다는 것이었다. 국토연구원은 3차원 영상으로 만든 이 산맥지도가 기존 초·중·고 지리 교과서에 실린 것과 매우 다르다고 밝혔다. 새로 그린 한반도 산맥은 기존의 14개 산맥 대신 48개의 산맥을 담고 있으며, 산맥의 위치나 생김새도 차이가 크다. 국토연구원의 발표대로라면 우리나라 국민들은 100년 가까이 ‘사실 아닌 지식’을 ‘속고 배운’ 셈이 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네 가지 자료로 ‘한반도 주산맥’ 밝혀
‘한반도 산맥 체계 재정립 연구’라는 제목의 연구를 담당한 국토연구원 GIS(지리정보시스템)연구센터는 네 가지 자료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1) 한반도 남북한의 지형 높낮이를 기록한 수치표고모델(Digital Elevation Model) 2) 한반도 위성영상 사진 3) 지질현황도 4) 해발고도 200m 이상의 고개·산봉우리를 모은 데이터베이스. 국토연구원은 이 네 가지 자료를 중첩시킨 결과 새로운 산맥 체계 지도를 얻어냈다. 이에 따르면 한반도에는 백두산~두류산~금강산~태백산~지리산 천왕봉에 이르는 1494.3km의 한반도 주산맥을 비롯해 주산맥에서 갈라진 20개의 2차산맥, 2차산맥에서 연결된 3차산맥 24개, 어느 산맥과도 연결되지 않은 독립산맥 3개가 있다. 연구를 이끈 김영표 GIS연구센터장은 “새 산맥지도와 가장 비슷한 것은 대동여지도의 산줄기 체계였다. 현재 1·2·3차 산맥으로 위계에 따라 분류해놓은 산맥마다 이름이 정해지면 교과서도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학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대한지리학회 이정록 회장은 “국토연구원의 연구는 근대 지리학에서 통용되는 일반적인 산맥의 개념을 분석한 것이 아니다. 국토연구원의 산줄기 개념과 자연과학에서 다루는 산맥과는 다른 개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산맥을 나누는 기준 중 산지의 규모와 연속성 외에도 산맥의 생성 원인, 지질 등이 산맥을 나누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산맥의 개념이 ‘두 동강’ 나는 것은 20년 동안 계속된 해묵은 논란과 맥락이 닿아 있다. 1980년대 한 고지도 연구가에 의해 조선광문회에서 출간된 <산경표>가 발견되면서 백두대간과 같은 산줄기 체계가 세상에 알려졌다. <산경표>의 저자로 알려진 신경준은 “강이 흐르듯 산이 흐르며, 산은 강을 가르고,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는 기준에 따라 산줄기를 정간과 정맥으로 나누었다. 강을 끼고 있는 것은 정맥, 물줄기와 상관없이 솟은 것은 정간인데, 이 중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는 큰 줄기 정간을 대간이라 명명했다. 각 산줄기는 자연 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으로 연결했는데, 모두 1650개의 지명을 밝혀놓았다. <산경표>의 1대간 1정간 13정맥은 실제 산줄기와 물줄기의 흐름과 거의 일치한다.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 또한 <산경표>의 한북정맥·낙남정맥 등에서 부분적 차이는 있으나 큰 틀에선 거의 비슷하다.
산경표의 해석이 세상에 알려지자 산악인과 재야 지리학자들은 열광했다. 실제로 교과서에 실린 노령산맥을 종주하고자 할 때 속리산에서 운장산을 넘으려면 금강이 가로막고, 소백산맥을 이루는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에도 섬진강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오대산에서 시작된 차령산맥 역시 남한강에 의해 끊겨 있다. 눈으로 배운 지도와 발로 밟은 땅이 다르다는 경험의 불일치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사람들은 <산경표>를 통해 이론적 근거를 얻은 것이다. 여기에 현행 교과서 산맥 체계가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의 한반도 산맥 연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또한 민족주의적 정서를 건드렸다. 우리 땅의 모양새와 다른 이론체계를 일본인이 창안했다는 것은 땅의 ‘창씨개명’과도 같은 처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지리학계 “생성 원인 설명 못해"
<산경표>의 해석이 사회 저변에서 날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에 대해 지리학계는 나름대로 대응책을 모색해왔다. 부산대 지리교육과 손일 교수는 “강이 산을 넘을 수 없고 산이 강을 넘을 수 없다는 <산경표>의 분수계 원리는 산맥과는 다른 개념”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강에 의해 산맥이 끊어질 수 있는 것은 지형학의 전제조건이다. 두부침식·하천쟁탈·하도절단 등의 지형 형성 작용에 의해 물 흐름이 끊어지거나 이동할 수 있으며, 그 결과 유역분지의 규모나 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그는 또 “한반도는 동해와 서해로 둘러싸인 땅덩어리 안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지질을 바라보는 전체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1억년 전 남중국판과 북중국판이 부딪혀 생겨났고, 이후 화산·융기·침식·평탄화 과정을 거치며 지금의 산맥이 생겨났다. 국토연구원의 새 산맥지도는 우리 산맥이 어떠한 이유와 구조 속에서 생겨났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대한지리학회는 국토연구원의 최종보고서가 나오는 2월께 공개토론회를 제안할 예정이다. 교과서를 새로 써야 할지도 모를 ‘지리학적 대사건’ 앞에서 산맥의 대격돌이 예상된다.
수산자 박사의 산맥 세우기
김영표(52) 국토연구원 GIS연구센터장은 지리학 전공자가 아니다. 대학에선 응용수학을 전공했고 산업공학으로 석사, 도시계획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지리학자가 아닌데도 그가 산맥 체계 재정립 연구에 뛰어든 이유는 이렇다. “저는 어릴 적 ‘쇼킹’했던 순간이 세번 있었습니다. 한글을 처음으로 배웠을 때 아~ 세상을 다 읽을 수 있겠구나 했고, 구구단을 외우면서 셈이란 건 이런 거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우리나라 산맥 순서도를 외우면서 우리 땅덩어리가 이렇게 생겼구나 깨달았습니다.” 글자와 숫자와 지리에 ‘개안’을 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데, 산맥의 생김새가 교과서와 다르다는 것을 안 것은 더 큰 쇼크였다. 언젠가 제대로 된 연구를 해보리라 다짐하며 10년 전부터 관련 자료를 모았고, 지난 한해 동안 본격적인 연구에 나섰다. 국책연구기관에 있기 때문에 수치표고모델이나 200m급 이상의 봉우리·고개 데이터베이스 같은 방대한 자료를 구축할 수 있었다.
“지난해 11월 연구가 거의 끝나갈 즈음 보고서를 집필하다가 위성 영상을 이용한 새 산맥 지도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때 사무실에 늘 걸려 있던 대동여지도가 눈에 들어왔지요. 근소한 차이는 있었으나 대동여지도와 새 산맥지도가 매우 흡사했습니다. 너무 놀라 대동여지도와 새 지도를 비교하는 내용을 부랴부랴 보고서에 넣었죠.” <동국지도>를 쓴 농포자(農圃子) 정상기, <대동여지도>를 쓴 고산자(古山子) 김정호를 본받아 스스로 ‘수산자’(水山子)라는 호를 붙인 김영표 박사는 연구와 병행해 ‘우리산맥 바로세우기 포럼’을 창립했다. 2004년 7월11일 창립한 ‘우리산맥 바로세우기 포럼’은 현장답사·워크숍 등을 통해 지세를 분석하는 모임이다. 그는 1차산맥, 2차산맥 등으로 분류된 산맥들이 문화와 역사성을 고려해 아름다운 새 이름을 얻는 날을 고대하고 있다.
일본학자가 만든 근대 지리학
우리 땅에 대한 인식을 최초로 풀어놓은 이는 통일신라 후기의 선승 도선국사(827~898)다. 그는 <옥룡기>에서 “우리나라의 지맥은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그치는데, 그 산세는 뿌리에 물을 품은 나무줄기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며 우리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전기만 해도 백두산을 국토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은 널리 퍼져 있지 않았다. 조선 태종 2년(1402)에 제작된 현존 최고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백두산이 표시돼 있지 않다. 16세기에 제작된 지도에 이르러 백두산을 국토의 기원으로 보는 시각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백두대간’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조선산맥·백두대맥·대간’ 등의 표현이 있다. 신경준이 지었다고 알려진 <산경표>는 산의 줄기와 갈래, 위치를 족보 형식으로 일목요연하게 표현하고 각 산줄기의 위계를 정했다.
개화기까지 전해지던 전통적 지리인식 체계가 변화한 것은 일본인 학자에 의해 ‘근대 지리학’이 도입되면서부터다. 1900~1902년 두 차례에 걸쳐 14개월 동안 한반도를 답사한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는 ‘조선산악론’(1903)을 발표했다. 그는 한반도의 산맥이 중생대에 나타난 세 차례의 커다란 조산운동과 백악기 말~3세기 초 대규모 단층운동에 따라 생겨났는데 추가령구조곡을 경계로 남북의 산맥이 랴오둥방향·중국방향으로 나뉘며 이후 단층운동으로 조선계방향의 산맥이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통용되고 있는 차령·노령·적유령·묘향 등 산맥 이름도 고토 분지로가 지은 것이다.
일본 지질학계의 태두인 고토 분지로의 영향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고토의 후학인 야쓰쇼에이·야마모토·다테이시는 고토의 조선산맥도를 일부 수정해 지리 교재에 실었다. 광복 이후에도 국내 지리학자들은 고토의 결과물과는 차이를 보였지만 기본적으로는 지질 구조와 생성 원인 등을 기준으로 산맥을 분류·명명해왔다.
그러므로 <산경표>를 지지하는 이들과 지리학자들이 ‘화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다른 차원에서의 국토 이해 방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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