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이야기

영어 못하는 것이 죄인 나라(한겨레 신문에서 퍼온 글)

뿌리기픈 2008. 2. 1. 15:23
 영어 못하는 것이 죄인 나라

김지예 (서울 신관중 교사/ 전 전교조 부위원장)


 

개학을 맞아 학교에 다녀온 6학년 딸애가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비명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앞으론 영어로 수업을 해야 한다며 신문기사를 보여주셨단다. 딸애는 “지금 영어시간도 못 알아들어 죽겠는데, 이제 학교는 어떻게 다니냐”며 “다들 미쳤어!” 하고 소리를 지른다. 정말이지 다들 미쳤다.

다이어트와 영어가 생활상의 종교가 된 지는 오래다. 그래도 그건 개인의 선택이고 취향이라 개입할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작금의 인수위 영어정책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정부가 하자는 정책이고, ‘영어 권력’을 가진 집단과 ‘영어 콤플렉스’에 빠진 지도층이 밀어붙이려 하니 제어하기도 버겁기 때문이다.

영어를 못하면 취직도 승진도 불가능한 현실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영어교사로서 국제회의도 여러 번 가보고, 회의나 연설하느라 적잖은 고통과 좌절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인들은 오히려 언어차별을 인종차별로 인식하며, 최대한 동시통역사를 배치하고, 그렇지 못한 나라들에 대해선 공식적으로 미안함을 표하며 회의를 진행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모국어 외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인가?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남미 나라 중 어느 나라 사람도 우리처럼 열등감을 느끼거나, 정부가 나서서 자국민을 이등국민 취급하지는 않는다.

기업이나 개인이 필요한 전문적 언어능력은 보통교육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 영어회화를 공교육이 책임지고 싶다면 학교 현실부터 직시하는 게 순서다. 콩나물 교실은 60~70년대만의 얘기가 아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여 나라 중 모든 교육지표에서 꼴찌인 처지에 전국민의 영어 상용화를 말하는 건 무지하고 허황하다.

왜 주체인 영어교사들과 의논 한마디 없이 고위층 여론만을 일방적으로 들이대는가?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입시 영어로는 생활영어 중심의 교육과정을 운용할 수 없다. … 입시과목에서 영어를 원천적으로 제외하는 것이 영어교육을 내실화하는 길이며 사교육 광풍을 막는 길이다”라고 교사들은 말해 왔다.

나이 든 교사들을 퇴출시키고 돌아오는 조기 유학생들을 고용하는 것이 숨은 목적이라면 그렇게 밝히는 게 옳다. 주부 영어교사 모집이니, 군복무 대체니 언론플레이를 하면서 떠볼 일이 아니다. 일선의 원어민 교사들 역시 왜 속수무책이며 매시간 좌절하는지 들어보는 게 우선이다. 적어도 정책이라 하면 관련 당사자들의 현실 진단에서 시작해야 한다.

불과 한두 세대 전, 우리는 일제강점의 역사를 겪었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은 식민치하의 모진 핍박 속에서도 창씨개명을 거부한 선대의 역사와, 일본말을 쓰지 않으면 매를 맞아야 했던 서글픈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말이 곧 ‘사람’이고 ‘나라’라고 배웠다. 또한, 한글이 얼마나 우수한지는 남들이 더 감탄하고, 우리의 문학작품은 자기 언어를 잊어가는 나라들한테 얼마나 큰 부러움인지, 한없는 자긍심을 느끼라고 배웠고, 그렇게 가르쳐 왔다.

‘말’은 혼이며, 문화적 유산이고, 의식을 형성하고 표현하는 도구이며, 공동체를 하나로 엮어주는 유전자다. 아무리 세계화 시대라 해도 영어를 상용화화고 우상화하는 것은 몰상식하고 사대주의적이다. 80% 이상을 실질적으로 모국어에 할애하는 프랑스의 교육정책은 과연 세계화에 역행하는가? 차라리 미국의 식민지였더라면, 아니 지금이라도 얼른 미국에 편입되는 것이 낫지 않겠냔 소리에 말문이 막힌다. 정체성을 빼앗기는 이 시대의 아이들은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