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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이안길, 전주에서 정읍 내장산까지 걷다

뿌리기픈 2020. 2. 23. 21:55

오랜만에 제 블로그에 들어오게 되었네요. 일기쓰듯이 날마다 일상사를 쓰면 좋으련만....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내가 만든 일기장을 무시하고 살아온듯.....
블로그에 쓸만한 꺼리를 최근에 한 가지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인생사에 거창한 일, 이른바 버킷 리스트에 들어갈만한 일이라해도 좋을듯한 일을 완수하였지요.

 

역사의 길이라 할 수 있는 '조선왕조실록 이안길'을 1박 2일 간의 시간을 들여 힘들게 걸었습니다. 임진왜란 첫 해인 1592년 6월경 전주사고에 모셔져있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어진을 내장사 용굴암에 1년 정도 피란시켰었는데, 그때 태인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하인 30 여명을 동원하여 옮겼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길을 내 몸으로 한 번 꼭 걸어보고싶어서 정읍문화원 김용련 사무국장에게 제안하여 문화원 사업으로 실행한 것입니다. 겨울방학 기간이 적절하고 2월경이면 날씨도 그리춥지않을 것 같아 날짜를 2월 17일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당일 폭설이 내려서 불가피하게 다음날로 연기하여 18일부터 19일까지 2일간 예정된 계획을 실행하였습니다. 참가자 모집도 하였지만 날씨와 개인적인 일정관계로 포기하신 분들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와 사무국장 이렇게 둘이서 실행하나생각했는데, 당일 아침 장은실님이 둘째날만 참여하기로 하였었는데 첫날부터 참여하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셋은 정읍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아침 7시에 만나 전주를 향했습니다. 아침 공기가 차가웠고 어제 내린 폭설로 주변 풍경이 설국이었습니다. 좀 걱정은 되었는데 오전에 해가 떠오르면서 기온이 상승하고 도로의 눈이 녹기 시작하여 다행히 걷는데 미끄러움은 없었습니다.

우리는 전주 완산동 하차장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전주경기전으로 갔습니다. 전주사고를 둘러보고 여기서 기념사진 한 컷. 8시 30분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출발하였습니다.

 


전주경기전 동편 전주사고 앞에서 출발에 앞서 기념사진.

 

전주의 남쪽에 해당하는 평화동을 거쳐 완주군 구이면을 지역을 걸었습니다. 농촌풍경이 펼쳐지고 멀리 모악산의 설경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중간중간 시내버스 정류장에 들러 조금씩 휴식을 취하며 걸었습니다. 11시 30분경 구이면소재지에서 팥칼국수로 점심을 해결하였지요. 그리고 구이저수지 호수마을을 거쳐 계속 남진.

점점 발길은 무거워지고 중간 휴식하는 횟수가 많아졌습니다. 구이면 백여리 정자마을 삼거리에 위치한 백여상회에 들러 컵라면에 막걸리로 요기를 하였는데, 너무도 정감넘치는 주막집으로 보였습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오고 싶은 장소였지요. 우리는 신정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엄재라는 고개를 넘어 정읍시 산외면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엄재는 만경강과 동진강의 분수계에 해당하는 곳이었습니다. 이제 우리의 홈그라운드 정읍시의 영역에 들어서자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서 합류한 정금성씨와 이제 네명이서 걸으니 좀더 힘이 나는 듯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경 산외면 소재지에 도착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10시간 동안을 걸은 셈이었습니다.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8시간 반 정도 걸었고요.  숙박지는 산외면 캠핑장. 원래는 칠보면으로 잡았지만 대략 여기가 중간지점 약 30킬리미터 지점이었습니다. 내일은 32킬로미터를 더 걸야한다는 생각에 또 걱정되고 부담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원기를 보충하기위해 우리는 산외면에 유명한 쇠고기 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외면에 최근 만들어진 섬진강캠핑장의 카라반에서 숙박을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바람에 거의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이기도 하였습니다. 충분한 휴식이어야 하는데, 실수를 한 것이지요.

아침 일찍 우리는 서둘러 일정을 시작하였습니다. 7시 40분경 숙소를 나섰고 주변에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식당을 찾았으나 아침식사를 하는 곳이 없어 대략 5킬로미터 떨어진 칠보면으로 가서 아침식사로 해장국을 먹게 되었습니다. 날씨가 청명하고 기온이 상승하여 걷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쌓인 피로감에 발길은 점점 더 무거워졌고 휴식하는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그리고 칠보에서 내장동으로 가는 길은 점점 오르막길이었고 피오고개까지는 무척 힘이 들었던 것 같았습니다.

내장동 부무실을 지나 내장저수지에 이르렀고 여기서 또 한 사람의 중간 합류자인 유석기님이 나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 같았습니다. 중간에 초콜릿과 사탕을 나눠먹으며 서로에게 격려하고 발길을 재촉하여 드디어 내장사에 도착하였고 용굴암까지 약 2킬로미터 구간을 가는데 체력이 고갈되어 정신력으로 버티며 한 걸음 한걸음을 옮기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갈망하던 용굴암이 나타났고 우리는 환호성을 울리며 오후 5시 45분경 도착하였습니다. 역시 오늘도 10시간 가량 길을 걸었습니다. 이틀동안 63킬로미터 정도의 이안길 체험을 걸었는데, 하루 30킬로미터 이상을 걷는 것은 무리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안길 체험행사를 한다면 3일로 나누어 걸으면 좀더 여유롭고 편하게 걸을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장사 입구에서 정읍문화원장님을 비롯하여 관계자분들이 오셔서 우리를 환영해주시기도 하였습니다. 돌아올 때 승용차를 타고 정읍시내로 오게 되었는데, 평소 느끼지 못했던 자동차에 대한 고마움이 절로 생겨나기도 하였습니다. 걸으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생각하였고, 조상들의 역사기록물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다시금 존경의 마음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멀리 모악산을 바라보며 완주군 구이면 구간을 걷고 있는 모습.

 

 

구이면에서 정읍시 산외면으로 연결되는 엄재 고갯길.

 

 

마지막 내장산 용굴암에서 기념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