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명언)

사랑과 결혼(이나미)

뿌리기픈 2008. 1. 10. 18:51
 

사랑과 결혼 (1)


 이제 막 자신의 반쪽을 찾아 인생을 시작하는 젊은이들은 결혼 직전, 내가 정말로 사랑에 빠져있는가 자문한다. 결혼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사랑 없는 결혼이 어떻게 가능하냐며 애정이 식었다고 판단될 경우는 아무 미련 없이 이혼을 감행하는 신세대들도 적지 않다. 사랑하지 않으며 그 날로 헤어져도 좋다고 생각하는 할리우드 배우같이 단호한 태도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결혼생활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볼수록 가정이란 틀을 지속하게 해 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사랑은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열렬한 사랑보다는 어떤 상황에서도 가정만은 지켜 내겠다는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아슬아슬하게나마 결혼이 유지되는 게 아닐까.

 개인보다는 집단이 중요했던 과거에는 사랑이나 자신의 약속 같은 내적 동기보다는 외적인 조건, 즉 타인의 시선이나 경제적인 필요 등에 따라 가정이라는 테두리가 유지되었다. 물론 요즘에도 집안의 명예 때문에 이미 생명이 다한 의미 없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당사자에겐 이혼이 최선의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원망하며 불행하게 살기도 한다. 젊은이들 중에는 그런 외적 조건들은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의 결정 그 자체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고 있는 추세이다.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면서 본능적인 충동에만 지나치게 의지해서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물론 사랑을 시작하는 데는 육체적 감성에 불을 지피는 열정이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 있지만 그 사랑을 지속해서 강하게 단련하는 것은 진부한 상식이거나 별 멋도 없는 이성적 판단이 아닐까.

 상투적인 일상은 사랑의 꽃을 시들게 할지는 모르지만 결혼이란 열매를 알차게 만드는 거름이 될 수도 있다. 상대에 대해 금방 싫증을 내고는 끊임없이 새로운 대상을 찾는 이들은 오랜 연애의 항해를 마치고 난 뒤 결국 이 세상 어디에도 자신이 꿈꾸는 완벽한 상대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영원한 자유를 찾는 이는 그 대가로 고독이란 근원적 불안을 피곤한 맨몸으로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혼자라는 불안에서 도망가기 위해 가정이란 틀 속에 억지로 자신을 맞추는 이들은 안정이라는 보잘 것 없는(?) 선물에 넘어가 권태라는 덫에 걸린 자신을 발견하고 뒤늦게 자유를 희구해 보지만 부질없는 일이다.

 권태와 불안, 어느 쪽을 선택하건 우리는 가지 않은 길에 대해 아쉬움을 갖고 후회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사랑을 잃고 찢어지는 가슴을 추스르며 고독과 씨름해야 하는 처지라면 나른한 결혼생활을 지겨워하든, 애인과의 줄다리기로 불안에 떨든, 아직은 사랑을 잃지 않은 이들이 그저 부러울 뿐이 아닐까.

이나미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사랑과 결혼 (2)

 사랑을 잃고 비탄에 잠겨있는 사람들은 한동안 후회와 원망의 감정에 빠지게 된다. 왜 하필이면 그를 만났던가, 왜 그리 행동해 상대방이 떠나게 되었을까, 조금만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해주었더라면 이런 이별의 아픔은 격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등등, 끊이지 않는 회한으로 한동안 마치 강박신경증 환자처럼 과거에 집착하는 수도 있다.

 다른 무엇보다 마지막 이별의 순간을 제대로 끝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사실 때문에 안타까워하는 연인들도 적지않다. 영화 <카사블랑카>의 험프리 보가트나 잉그리드 버그만처럼 멋있고 낭만적인 연출은 못할망정 상대에게 매달리고 서로 비난하며 못볼 것 안볼 것 다 보여주며 추한 모습으로 헤어졌다는 사실에 더욱 자손심이 상하기도 한다.

 한때는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끝나는 순간까지 우아하고 고상한 이미지로 남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실은 그들 마음 속에는 언젠가는 다시 사랑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더 큰 까닭이 아닐까.

 특히 이별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상실보다는 오히려 자시 자신이 누군가에게 거부당했다는 점, 또 버림받았다는 점 자체 때문에 괴로워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겉으로 보아서는 매우 자존심이 강한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을 하지만 속으로는 항상 누군가의 인정과 보살핌을 받아야만 안심하는 경향이 있다. 부모로부터 일관된 사랑을 적절하게 받지 않고 자란 경우, 또 반대로 너무나 지나친 과잉보호를 받아 자신의 정서적인 문제를 홀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떠나가는 사랑에 지나치게 매달리기도 한다.

 때로 이렇게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별을 겪은 뒤에 아픈 상처와 손상된 자존심을 되도록 빨리 회복시키려는 생각만 앞서서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함부로 자신의 운명을 맡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하루빨리 또다른 사랑을 찾고 싶은 급한 마음으로 서두르다 보면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할 위험성이 높다.

 따라서 일단 어떤 사람과 헤어지면 그 애도감을 충분히 소진해버릴 기회를 갖는 것이 좋다. 혼자 통곡을 하며 몇날 며칠 울어 보거나 가까운 친구와 만나 그 나쁜 놈, 그 못된 년 하면서 있는 욕 없는 욕 죄다하는 것도 괜찮다 . 그는 이미 내게 죽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마치 상복인 듯 일정기간 검은 옷만 입어 보면 어떨까.

 사랑했던 기억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뇌세포에 맺혔던 주름이 펴지면 잊지 않으려 해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고통스런 시간을 연장하느냐는 내 마음의 집착이 얼마나 완강한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사람은 떠나도 소중한 만남의 기억과 사랑의 열정들은 고스란히 내 마음에 남아 더욱 성숙하고 새로운 내모습을 만들어 가는 에너지와 자원이 된다. 다만 헤어짐의 상처가 너무 커서 그 사실을 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것뿐이다.

이나미 신경정신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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