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으로 정읍과 인연을 맺다
며칠 후면 6.25사변 기념일이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이른바 6.25사변(외국에서는 한국전쟁이라 함)은 우리 민족에겐 엄청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며, 그 전쟁의 상흔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8.15 해방과 함께 강대국에 의한 한반도의 분단이 가져다준 비극이라 하겠다. 올해가 2016년이니 올해로 전쟁이 일어난지 어언 76년이 지났다. 전쟁 후 이른바 베이비붐(1955년~1963년)이 있었는데, 나도 이때 태어났으니 전쟁의 영향을 직접받은 세대이기도 하다. 흔히 '58년 개띠'라고 부르는 나이를 중심으로 자녀 출산이 정점을 찍었으니 지금도 이 나이에 해당하는 인구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고 한다.
현대사의 아픔인 6.25전쟁이 나의 가족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할아버지는 정읍과 인접한 순창군 복흥면 석보리에서 조상대대로 농사를 지으며 평화롭게 살았는데, 전쟁이 일어나기 일년 전부터 지역에 기반을 둔 이른바 구 빨치산의 탄압을 받으면서 거주지 이전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게 된다. 사회주의 관점으로 보면 이른바 부르조아라고 지목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한학자로서 동네일을 도맡아 보던 구장(요즘으로 하면 마을 이장)이었기에 이른바 반동분자로 몰렸던 것 같다. 인민재판을 거쳐 죽음 직전까지 경험했던 조부님은 가족을 살리기 위해 대가족을 이끌고 치안이 확보된 정읍으로 이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 정읍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아버지는 정읍 송산동에서 태어난 어머니와 인연을 맺고 결혼을 하여 나를 낳으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전쟁이 만든 결과물인 것이다. 시인 서정주가 말하길 "나를 키워낸 것 8할이 바람이다" 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나를 생각하면 "나를 키워낸 건 8할이 전쟁이다" 이렇게 말해도 과장된 말은 아닌 것 같다. 현대사의 질곡이 나를 만들었으니 6.25전쟁에 대하여 고마워해야할 지 난감한 노릇이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